유머천국 코하비닷컴
https://cohabe.com/sisa/451564

[단편] 야! 너 걔가 어떤 앤지 몰라?

" 철수야! 너 또 영희한테 들이댔다 까였다매? "

혀를 차는 민수의 말에, 철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영희 걔가 뭐가 좋다고 자꾸 들이대는 거야? 이해할 수가 없네. "
" 예쁘잖아. "
" 예쁜 게 뭐라고, 다른 과에 걔 말고도 예쁜 애들 널렸어. "
" 제일 예쁘잖아. "

철수는 오직 '예쁘다'가 진리라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 모습이 답답한 민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 예쁜 게 밥 먹여주냐? 걔는 인성이 글러 먹었잖아. "
" 뭐, 어때. "
" 뭐가 어때야? 너 걔가 어떤 앤지 몰라? 돈 많고 명 짧은 남자한테 시집가는 게 꿈이라고 자기 입으로 떠들고 다니는 애야 걔가. 자기는 공부할 필요도 없고 외모만 관리하면 된다는 애라고. "
" 그만큼 예쁘니까 뭐.. "
" 아이! 예쁘면 다냐?! 걔 지금 평판이 어떤지 몰라? 완전히 대놓고 어장관리 하는 거 모르는 애들이 없어! 맨날 뭐 등쳐먹을 남자만 찾아다니고, 하기 싫은 일 다 떠맡기고 "
" 해주는 놈들 잘못이지 영희 잘못이냐? 그렇다고 영희가 아무 놈이랑 사귀지는 않잖아? "
" 야! 야! 걔가 남자 안 사귀는 이유 못 들었어? 나중에 혹시 재벌 만날 때 흠 잡힐까 봐 안 만나다잖아! 걔는 아주 정신이 이상한 애라니까? " 

민수는 가슴을 치고 싶을 정도로 답답했지만, 철수는 태연했다.

" 정신이 이상해도 예쁘잖아. "
" 어이구 옘병! 걔는 속물 중에서도 상식적인 범위를 넘어선 속물이라니까? 아무리 속물이라도, 보통 지입으로 당당하게 말하고 다니지는 않아! 근데 걔는 그런다니까? 무조건 돈 많은 남자 하나 낚을 거라고 맨날 떠든다고! 넌 그런 애가 좋아? "

민수는 질릴 것 같은 얼굴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였다.

" 예쁘잖아. "
" 옘병 "
" 그래도 이왕에 연애를 할 거면 영희처럼 예쁜 여자랑 하고 싶어. "
" 어휴~ 말을 말자 말을 말아. "

민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철수는 진지하게 물었다.

" 이번에 영희 생일선물로 뭐가 좋을까? 남들이랑 차별되는 걸 사야 할 텐데 "
" 어휴! "

.
.
.

" 사랑의 묘약? "

나름 특별한 물건을 찾기 위해 골동품점에 들른 철수는, 작은 유리병 앞에서 멈춰섰다.
두 개의 병에는 붉은 액체와 파란 액체가 들어있었는데, 색감이 무척이나 선명했다.
철수는 계산대의 할아버지를 돌아보며 물었다.

" 할아버지 이거 뭐예요? "
" 응? "

근처로 다가온 할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 쓰여 있잖아. 사랑의 묘약. "
" 무슨...장식이에요? "
" 식용이야. "
" 네? "
" 이 약을 먹으면 눈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지. "

철수는 조금 황당했지만, 할아버지의 표정이 너무 담담했다.
호기심에 한번 집어 드는 철수.

" 얼만데요? "
" 20만 원. "
" 엑 "

철수는 바로 유리병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덧붙이는 할아버지의 말.

" 효과 없으면 바로 환불. "
" 아? "
" 효과 없으면 무조건 환불해줄게. 그리고 이거 마지막 남은 딱 하나야. 다신 못 구해.이 상황이 너무 쉽게 느껴지나 본데, 자넨 평생에 딱 한 번 있을 기연을 만난 거야 지금. "
" ... "

철수는 다시 유리병을 집어 들고 미심쩍은 얼굴로 살펴보았다.
할아버지도 손을 뻗어 파란 액체가 든 병을 집어 들었다.

" 그런데, 그건 옆에 이 묘약이랑 세트야. "
" 예? 이건 뭔데요? "

할아버지는 철수의 손에서 병을 빼 들고 하나씩 설명했다.

" 원래 세상에 그냥 되는 건 없어. 등가교환이 있어야지. 세상 어딘가에서 사랑이 피어나면, 세상 어딘가에선 미움도 피어나야 하는 법이야. 이 빨간 묘약을 먹은 사람은 눈앞의 상대를 사랑하게 되고, 이 파란 묘약을 먹은 사람은 눈앞의 상대를 싫어하게 되지. 하나의 약이 사용되면, 나머지 약도 반드시 삼일 안에 사용되어야 해. 안 그러면 다른 약의 효과가 풀려. "
" 아.. "

철수는 점점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들렸다. 가난한 학생에게 20만 원이 부담스럽긴 해도, 효과만 있다면야.

" 이거 정말로 효과 없으면 환불해주는 거죠? "
" 아 그럼. 두말하지 않고 환불해줄게. "

철수는 이번 달 생활비를 털어 넣기로 했다.

.
.
.

" 맛있어? "

철수의 물음에, 영희는 성의 없이 대답했다.

" 그냥 그렇네. "
" 어, 어어 그래? "

비싼 저녁을 미끼로 영희를 불러낸 철수는, 주머니 속의 유리병을 만지작거렸다. 
지금 영희의 차가운 태도가 오히려 더 좋았다. 이 묘약이 효과가 있는지 확실하게 티가 날 테니까.

철수는 내내 기회를 노리다가 영희가 화장실에 갔을 때, 재빠르게 음료에 묘약을 탔다. 
돌아온 영희가 음료에 손을 뻗는 그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영희가 음료를 마시는 모습을 뚫어질 듯이 바라보는 철수.
잠시 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철수가 영희의 눈빛이 변했다고 느끼는 순간, 

" 철수야~ 그거 맛있어? "
" ! "

영희가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철수를 바라보았다.
설마하던 철수의 입꼬리가 꿈틀 올라가려했다.

" 어, 어! 맛있어. "
" 나 한 입만~ "

잔뜩 애교를 부리는 그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묘약이 진짜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 그, 그래! 으하! 으하하하! "

철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
.
.

저녁을 먹고 헤어진 뒤로도, 철수와 영희의 달달한 카톡이 이어졌다. 철수는 입이 귀에 걸려 내려올 줄을 몰랐다.
사랑의 묘약이 담긴 빈 유리병에 뽀뽀까지 할 정도였던 철수는 문득 생각났다.

" 아차차! 삼일 안에 둘 다 사용해야 한다고 했지? "

철수는 책상 위에 파란 묘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이거 팔아도 되겠는데? 아 맞아! "

급히 민수에게 전화를 거는 철수.

" 야! 너 5만 원 있지? "

[ 뭐야? ]

" 너 선영이가 스토커 짓 해서 미치겠다고 했지? 내가 그거 완벽하게 해결해줄게! "

[ 뜬금없이 뭐라는 거야? ]

" 내일 아침에 5만 원만 가지고 와! "

.
.
.

" 아 진짜라니까?! 이 묘약을 먹이면 무조건 널 싫어하게 될 거야! "

민수의 얼굴이 황당하게 일그러졌다. 그 얼굴에 철수가 말했다.

" 효과 없으면 무조건 환불! "
" 뭔.. "
" 진짜 완벽하게 떼어낼 수 있다니까? 효과 없으면 내가 돈 두 배로 돌려줄게! 이런 묘약이 고작 5만 원이라는 게 너 말이나 되냐? 내가 진짜 내일 데이트만 아니었어도 이 가격엔 안 팔았어! "

민수는 황당한 얼굴이었지만, 철수는 무작정 그의 손에 유리병을 쥐여주었다.

" 아 제발! 데이트 비용이 없다니까? "
" 누구랑 데이트하는데? "
" 아 그건...! '

영희의 이름을 말하려던 철수는 멈칫, 민수가 영희를 극도로 혐오한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또 혹시라도 이 묘약과 연관 지어 상황을 추리해낼지도 모른다. 자신이 약의 힘을 사용한 건 비밀로 하고 싶었다.

" 아, 아 그냥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애 있어! 아, 제발 민수님! "
" 어휴~ 알았어. 효과 없으면 환불이다? "
" 아 당연하지! 역시 너밖에 없어! 나중에 보자! "

민수가 건넨 5만 원을 받자마자 급히 영희를 찾아 달려가는 철수.

남겨진 민수는 손에든 유리병을 미심쩍게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 상대를 싫어하게 만드는 묘약이라고? "

.
.
.

철수는 지난 삼 일간 정말 꿈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동안 그렇게 들이댔을 땐 상대도 해주지 않던 영희가 이젠 먼저 만나자며 연락해왔다.
철수는 그것이 너무 즐거워서 일부러 영희의 애를 태웠다. 당장 사귀자고 말할 것처럼 분위기를 잡았다가 딴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동안 설움 받았던 것들이 있어서 그런지 더욱 즐거웠다.

하지만 계속 그럴 순 없는 일, 철수는 오늘 저녁 식사에서 고백하고 정식으로 1일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한데,

" 내가 미쳤다고 너랑 사귀니? "
" 어, 엉? 뭐...? "
" 주제를 알아야지! 나 갈게. "
" 어? 어어? "

철수는 당황한 얼굴로 떠나가는 영희를 바라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 

" 아! "

순간, 눈을 부릅뜨며 당장 민수에게 전화를 거는 철수!

" 야! 너 묘약 어쨌어?! 그거 안 먹였지?! "

할아버지가 말했던 삼일의 기한이 생각난 것이었다.
민수에게 약을 넘길 때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안 쓰다니! 철수는 화가 폭발할 것 같았다.
한데, 이어진 민수의 말이 철수를 놀라게 했다.

[ 아~ 그거 팔았어. 정말 그런 게 있으면 10만 원에 사겠다길래 팔았지. 영희 있잖아 영희. ]

" 뭐...? "

[ 어휴~ 걔 진짜 독한 애다. 보잘것없는 남자한테 빠진 것 같아서 그 묘약이 필요하다나? 자기는 그런 남자 사랑하면 안 된대. 재벌 만나야 한다고 말이야. ]

" ... "

철수는 멍한 얼굴로 자신의 음료를 바라보았다.
댓글
  • 복날은간다 2017/12/06 22:44

    일을 그만둔지 1년이 넘었네요. 그동안 뭘 해야 될지 몰랐어요. 그래서 그냥 할 수 있는 걸 꾸준히 하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올린 이야기가 300편이 넘어갔네요. 여전히 뭘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부질없지만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흐하하;
    항상 재밌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rcu6s4)

  • 유도소년 2017/12/06 23:28

    철수 민수 영희 가 나오니까 새롭네요 ㅎㅎ

    (rcu6s4)

  • 압생두 2017/12/06 23:36

    잘 보고 있습니다~ 영희가 빨간 약 파란 약을 둘다 먹었는데 철수가 철수의 잔을 바라보는 게 맞나요...? 영희의 잔이 아닐까 했어요!

    (rcu6s4)

  • 하니애리 2017/12/06 23:56

    난 철수가 실수로 영희에게 파란약을 먹인 줄
    알았는데,
    이런 반전이 있었군요 ㅎㄷㄷ
    언제나 잘 보고 있답니다~~~

    (rcu6s4)

  • 막내최고 2017/12/07 00:03

    글이 올라올때마다 너무 반가운 마음으로 즐겁게 읽고있어요! 어떤 이야기일까하며 첫문장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어내려가요. 언제나 잘 읽고있는데 감사인사가 늦었습니다. 오래오래 많은 이야기들 올려주세요

    (rcu6s4)

  • 배고파파 2017/12/07 01:06

    ㅋㅋㅋㅋㅋ 아이고 그 중요한걸 남한테 파네 ㅋㅋㅋ 나같으면 그냥 내가 마시고 첨보는사람이나 원래 싫어하는 사람 보고 말겠다;;

    (rcu6s4)

  • 신들린검사 2017/12/07 09:51

    이쁘잖아~~~
    옘병~~~~
    젤 기억에 남아요 ㅎ

    (rcu6s4)

  • Moks 2017/12/07 10:01

    죽는 이야기가 아니라 남우가 안나왔네

    (rcu6s4)

  • 질풍의볼프강 2017/12/07 11:52

    결론은 되팔렘  극혐!!

    (rcu6s4)

  • 리쿠르 2017/12/07 18:54

    민수에게 그런 약이 있다는걸 영희가 어찌안거지?

    (rcu6s4)

  • Noleaf 2017/12/07 19:28

    이 글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어디에선가 김남우는 죽었을 것입니다

    (rcu6s4)

  • GM게임마스터 2017/12/07 19:37

    철수는 그야말로 어철수없는 상황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rcu6s4)

(rcu6s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