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 부터 3천여년전, 기원전 13세기경.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기술적으로 진보되어있던 문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무너졌다.
단지 국가가 무너지고 새로운 국가가 세워지는것이 아니라, 문명이란 것이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종국에는 이집트를 제외한 거의 모든 청동기 문명들이 철저하게 파괴되거나 버려진 도시들만을 남긴채 사라지고만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수많은 도시들이 불탄 돌무더기로 전락하고, 인류 문명은 가히 수백년 뒤로 퇴보한다.
이 시기를 거친뒤에 문자, 기록문화, 거대도시, 중앙집권화된 정부, 복잡한 국제무역망 등 전례없던 진보의 상징들이 흔적만 남긴채 사라진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하며 기술적으로 진보된 문명들이 미스터리하게 사라져버린 이 사건을 일명 "청동기 시대 붕괴"라고 부른다.
일단 서아시아의 청동기 시대 문명들의 특성은 바로 '거대한 상호의존성'이라고 볼수 있다.
석기시대의 폐쇄적이고 고립된 소규모 도시국가들이 억압적인 사제계급에 의해 통치되었던 것과 다르게,
청동기 문명은 거대한 제국들로 구성되었으며, 그 제국들은 새로운 종교/정부/기술에 기반하여 엄청난 규모의 생산력 향상을 이룩하였다.
그리고 제일 중요하게도 청동기 문명들의 기반이 되는 종교/정부/기술들은 모두 다 존나게 거대하고 다문화적인 거대도시들 간의 교역을 통해 유지될수 있었다.
잘 상상이 안간다면, 현대의 세계화 바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해보는게 좋을것 같다.
그리고 이 상호 의존적이며, 그때까지의 인류 역사상 유래가 없었던 규모의 문명들을 주도하는 제국들은
미케네, 키프로스, 히타이트,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이 5개 세력들이였다.
이 제국들은 현재로 치면 G7급의 위상을 가진다고 볼수있으며, 명실상부 그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문명을 주도하던 세력이였다.
이들은 하나같이 잘 정비된 관개농업, 국제 무역, 기록에 기반한 관료제, 청동기로 무장한 최신예 군대를 통해 유지되었다.
사실 매우 놀라운 사실은 청동기 문명들이 관료제를 통해서 농업생산량을 철저하게 기록하고, 누가 무엇을 심고 얼마나 수확해야 될것까지 세세하게 조정하는 매우 수직적이며 체계적이고 복잡한 계획경제 체계였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 시대의 청동기 문명들은 체계적인 계획에 기반한 농업경제와 광범위한 거대 교역망을 통해 유지되고 있었으며,
그런만큼 마을과 마을, 도시와 도시, 제국과 제국이 서로간에 관료제, 군대, 국제교역을 통해서 매우 긴밀하게 협력-분업하여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체계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도데체 무슨일이 생긴걸까? 도데체 누가 이 거대한 제국들을 몰락시킨걸까?
일단 우가리트라는 도시의 유적지에서 매우 매우 단편적이지만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하게 해주는 기록이 발견된바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건너뛰고 개략적으로 설명해주자면,
우가리트에서 주변국에 보내는 편지들이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우리 군대와 함선들이 루카와 하투사에 묶여있는데 '그 새끼'들이 처들어와서 깽판친다!!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우가리트 주변의 동맹국들이 원군을 보내겠다고했지만, 결국 함락되고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고만다.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우가리트 만이 파괴된것이 아니다.
바로 이웃의 키프로스는 서부 해안지대를 중심으로 거대 도시들이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수많은 다른 도시들은 그냥 버려졌다.
얼마나 상황이 급박했는지, 고고학자들은 귀족들이 자신들의 귀중품들을 미처 가져가지 못하게되자, 땅 속에 묻어둔 흔적까지 발견하였다.
한편 미케네에서는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내부적 불안정이 지속되면서 수많은 도시들이 붕괴되었다.
이 시기 파괴된 미케네의 도시들을 발굴하면서 고고학자들은, 많은 양의 화살촉과 무기들, 거대한 화재의 흔적을 발견했는데,
이는 도시가 외부의 침공을 받고 결국 함락당했다는 증거로 해석되고는한다.
한편으로는 일부 도시들은 그냥 아무런 이유도 없이 버려지거나, 왕궁 등을 중심으로한 일부분만 불탄뒤 버려졌는데,
전자의 경우는 자연재해나 기근의 영향으로 버려진것으로, 후자는 민중봉기의 결과로 왕과 지배계급들 만이 축출된 것으로 해석된다.
어쨋든 중요한 것은 이 시기에 거의 모든 미케네 도시들이 파괴되거나 버려졌다는 것이다.
히타이트 제국의 영토로 가면 더더욱 심각해지는데, 이 시기를 거치면서 히타이트 제국의 모든 도시들이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파괴된 흔적이 발견된다.
반면 제국의 수도였던 하투사는 전투가 벌어지지도 않고 그냥 버려진다.
이집트와 맞짱을 뜰정도로 강력했던 제국이 이 시기에 들어서는 사방팔방에서 공격받고, 국토가 유린당하다가 공중분해된 것이다.
수천년 동안 역사가들은 이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데체 왜? 어떻게? 그 당시 인류문명의 첨단을 달리던 집단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몰락햇을까?
이 부분은 도저히 그 답을 알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19세기 후반에 이집트에서 발견된 하나의 부조가 실마리를 제공해주게된다.
이 부조는 30년의 기간동안 수차례의 '그 새끼들'의 침공을 격퇴하는 파라오 람세스 3세의 모습을 묘사한다.
잘 보면 알겠지만, 제일 크게 묘사된게 파라오고, 그 반대편에 배를 탄 애들이 이집트 뿐만 아니라 다른 청동기 문명을 침공하던 '그 새끼'들의 모습이다.
역사학자들은 이 침략자들을 '바다민족'이라고 불렀으며, 꽤 오랜기간 동안 이들은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게르만족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즉, 청동기 문명은 존나 킹왕짱쎈 바다민족이라는 이민족들의 침공으로 망한것이다.
바다민족은 누구인가?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 시실리, 사르디니아, 크레타, 서남부 아나톨리아 등에서 유래한 이민족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지만, 하나의 일사분란한 국가가 아니라 수많은 부족들이 느슨하게 연계된 형태였다고한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생각하면 편할것이다.
고트족과 반달족의 공통점이라고는 그냥 서쪽으로 향했다는 것 밖에 없지만, 다 게르만 족으로 퉁치지 않는가.
그리고 게르만 족처럼 바다민족들도 이주를 목적으로 동쪽으로 이동했다.
도데체 왜? 그건 좀 있다가 설명하겠다.
지금 중요한것은, 이들이 이주하면서 그 당시 지구에서 가장 강력하고 기술적으로 진보된 국가들을 몰락시켰다는 것이다.
사실 이집트가 바다민족의 침공을 받아 파라오가 직접 전투를 지휘하던 시점에 이집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청동기 국가들이 붕괴해버린 시점이였다.
그리고 이집트조차도 이 붕괴의 영향에서 무사하지 못한채, 2류 열강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후 이집트는 다시는 예전에 인류문명을 선도하던 초강대국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주변국에 시달리는 신세가 된것이다.
하지만 이게 다일까? 정말 존나쎈 이민족들이 다 개박살을 낸걸까?
여기에 만족한다면 역사학자들이 아니다. 당연히 더 자세한 연구가 이어졌고 현대에 들어서는 좀 더 구체적인 이론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중에 하나가 바로 '청동기'라는 기술의 특성에 관한 것이였다.
청동은 다들 알다시피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다. 근데 문제는 둘 다 존나게 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청동기는 거대한 제국을 지탱하는 군대들에 필수적인 요소였기 때문에, 구리와 주석의 위상 역시 현대에 석유에 버금가는.아니 오히려 석유 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자원으로 취급받았다.
다행히도 구리의 경우에는 주석보다는 흔해서 여기저기 조금씩 있었지만, 가장 거대한 공급자는 키프로스 섬이였다.
그리고 구리가 존나게 많다는 점 덕분에, 키프로스는 그 당시 국제무역의 최중요 중심지로 자리매김할수 있었다.
굳이 예시를 들자면 현대의 뉴욕이나 런던과 비슷할 것이다.
한편 주석 같은 경우는 존나 희귀해서, 정작 청동기 문명들이 번성한 지역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어디있었냐고?
동쪽으로 3000 km 나 떨어진 아프가니스탄에 있었다.
이쯤되면 "에이 그때 어떻게 아프가니스탄에서 광물을 수입해와. 다른데 어디 없었음?"하는 생각이 들텐데,
아프가니스탄 만큼 충분한 주석이 채굴된 지역은 영국의 콘월지역 뿐이 없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청동기 제국들은 콘월과 아프가니스탄 모두에서 주석을 수입하고 있었다는 증거들이 여럿 발견된바 있다.
즉, 이 시기에 청동기 문명들의 가장 진일보한 기술은 영국 남부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 4600 km나 뻗어있는 거대한 국제 교역망에 의존했던 것이다.
그러면 이게 무슨 의미일까?
만약, 이 복잡한 교역망이 어쩌다가 '바다민족' 같은 집단의 침공으로 교란되거나 파괴된다면,
'청동기' 문명들은 자신들의 가장 최신예 기술인 '청동'을 생산할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청동 생산이 저하된 만큼 군대를 무장시키기 힘들어지고,
군대가 잘 못싸우게 된 만큼 바다민족들은 더 기승을 부리고,
더 기승을 부린만큼 국제무역은 더 저하되면서 청동생산이 안되는 끝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것이다.
즉, 국제무역망(현대로 치면 글로벌 가치사슬)이 붕괴되면서 청동기 문명들을 위기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아까 '아무 이유도 없이 버려진 도시'들에 대해 얘기했는데, 지질학자들의 연구결과 이 시기에 무려 50년!동안이나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했다고 한다.
특히 그 지진들은 미케네인들이 살던 그리스 지역에서 심했는데, 이 지역에 아무 이유없이 버려진 도시들이 많은 이유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데체 애초에 왜 바다민족들이 이주를 한걸까?
일단 유력한 가설은 기근 같은 무엇인가가 범대륙적인 대규모 이주를 발생시켰고, 그게 도미노 효과가 되어 수많은 이민족들이 청동기 문명들에 들이닥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훈족이나 기후변화를 피해 서쪽으로 달아난 게르만족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인데, 그렇다면 증거는 어디있을까?
일단 고고학자들은 이 시기에 대규모의 기후변화가 발생하였다는 증거를 찾았으며,
이로 인해 북유럽에서 시작된 대규모 이주가 남쪽으로 수많은 이민족들을 밀어내면서 일명 '바다민족'을 만들어냈다고 보고있다.
한편 이 시기에 벌어진 기후변화는 청동기 문명들이 있던 지역에 더더욱 심각한 영향을 끼쳤는데,
고고학자들은 이 시기의 꽃가루 샘플들을 분석하여 청동기 문명들이 무려 300년 동안이나 지속된 가뭄에 노출되었다고 결론내렸다.
이 가뭄은 청동기 문명이 완전히 붕괴되고 나서 한참 지난 기원전 900년에야 끝나는데,
얼마나 이 가뭄이 심각했는지 그리스 지역에서는 이 기간 동안 사막지역에서나 보이는 식물군들이 많이 서식했다고한다.
즉, 이 기간동안 청동기 문명의 또 다른 근간인 대규모 농업이 파탄상태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모든 증거를 취합하면 청동기 문명이 어떻게 비참하게 몰락했는지 대충 그림이 나온다.
청동기 문명은 바다민족이라는 하나의 요인에 의해 멸망한게 아니라, 기후변화, 자연재해, 국제무역망 붕괴 이 3가지 요소가 한꺼번에 일어나 증폭효과를 내면서,
그 당시 지구에서 가장 강력했던 제국들을 차례차례 붕괴시킨것이다.
먼저 기후변화가 이 지역을 강타한다. 청동기 문명 안팎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농업이 몰락하면서 굶어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러자 북유럽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남쪽으로 물밀듯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남쪽에는 거대한 도시들이 있으니 굶지는 않을거라는 생각으로 절박하게 이주를한다. 이들은 거대한 도시들을 향해 이주하면서 바다민족이 된다.
그렇지만 미케네에서 바빌론까지 뻗은 거대한 도시들도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점점 무너져간다.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질병이 창궐하고, 불만에찬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을 죽이거나, 짐을 싸들고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
농업을 감독할 지배계층이 죽거나 쫓겨나고, 지역별 분업을 세세하게 조정하던 행정 관료들이 사라진다.
분업이 사라지자 농업생산력은 더더욱 악화되고, 더 많은 도시들이 파괴된다.
이런 상황을 수습해야될 군대는 바다민족을 상대하기도 벅차다.
점점 왕의 군대가 소모전에 쪼그라들면서, 수많은 도시들의 생명줄 역할을 했던 무역로가 붕괴된다.
마지막에 가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된 군인들이 탈영하면서 히타이트의 수도처럼 변변한 싸움 한번도 없이 버려지는 곳이 속출한다.
완전히 문명이 붕괴된 지역에서는 학살과 약탈이 일상이 된다.
한때 수만명의 사람들이 거주하던 도시들은 철저하게 불타서 폐허가된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한데 뭉쳐서 바다민족들 처럼 여기저기 약탈을하고 다니며 유랑생활을하거나, 학살과 약탈을 피해 외딴 곳에 정착한다.
청동기 문명의 붕괴를 설명하는 최신 이론인 '체계 붕괴 이론'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이 많다.
만약 청동기 문명들이 기아나 자연재해로 약화되있지 않았다면, '바다민족'은 이전부터 끊임없이 있어왔던 수많은 전쟁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바다민족'이란 현상 자체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필두로한 연쇄반응이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상호의존적인 복잡한 체계(거대한 국제교역망, 강력한 정부와 기록에 기반한 관료제, 잘 훈련되고 최신기술로 무장한 군대)들을 마비시키면서 대붕괴를 촉발시킨 것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전세계를 휩쓸면서 세계경제를 마비시키고,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한국의 집값에 영향을 미치며,
옷은 인도에서, 신발은 베트남에서 만든것을 쓰고,
매일같이 쓰는 핸드폰에 수십개국의 노동력과 부품이 들어가는 현재의 우리모습을 생각할때,
청동기 문명의 흥망성쇠는 '태양 아래 진정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격언을 다시 한번 증명시켜주는 사례인 셈이다.
루리야! 본문을 알작딱하게 요약해봐
흥! 알작딱하게? 바카밧카!! 뭘 그렇게 어렵게 말해? 😒 그냥 간단하게 말하면 되는 걸! 본문 내용을 말해봐, 내가 요약해줄게. 빨리! 😤
황달의 수하 같으니
뭐?! 황달?! 😡 내가 누굴 닮았다고?! 감히 나를 황달이라 부르다니! 진짜 너무하네! 😤 흥, 두고 봐! 💖
정성추
역시 문명이 붕괴하려면 저정도 악재는 있어야하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