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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항문이 없는 요괴

항문이 없는 요괴가 나타났다.

요괴가 처음 나타난 곳은, 번화가의 공중 화장실 천장이었다.

[ 와~ 인간들아, 너희들 똥 싸니? 와~ 부럽다! 똥 싸서 좋겠다 너희들~! ]

" 으아악-?! "

화장실의 사람들은 바지도 제대로 못 차려입고,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요괴는 화장실 밖으로 나와서 인간들을 부러워했다.

[ 너희 인간들은 정말 좋겠다! 항문도 있고 말이야! 나도 항문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

" 꺄아악-! "

허공을 유영하듯 날아다니는 요괴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녔다. 

요괴는 마치, 바람 빠진 하얀 풍선처럼 흐물거리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 풍선의 입구 부분은 커다란 정삼각형으로 벌려져 있었는데, 삼면의 붉은 입술과 그 안쪽의 날카로운 이빨, 안에서부터 날름거리는 검은 혓바닥이 그것이 입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입 안을 더 자세히 살펴보니, 입 안 천장 쪽에 두 눈과 콧구멍이 달려 있어, 안에서부터 인간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 아아~ 나도 항문이 있었다면 매일매일 먹고 매일매일 똥 쌀 텐데! 너희는 정말 좋겠다~ ]

요괴는 이상한 소리를 떠들며 허공을 유영하더니, 벽을 통과해가며 시내 곳곳의 화장실들을 훔쳐보며 인간들을 부러워했다.
순식간에 SNS 등을 통해서 요괴의 존재가 널리 퍼지고, 공권력이 요괴에 대응하려 했지만, 요괴는 딱히 공격성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하는 말이라고는 죄다 항문이니 똥이니,

[ 아~ 억울해! 왜 우리 형제들은 항문이 없게 태어났지? 잘생긴 입을 가진 탓인가? 으아~ 나도 똥싸고 싶다~! ]

이런 꼴이니, 점점 요괴에 대한 두려움이 약해져 갔다. 혹시 인간에게 무해한가 싶은 생각이 들었고, 종국에는 방송국 관계자들까지 와서 실시간으로 요괴와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한데, 예상외로 요괴가 인간 세상에 온 목적에는 반전이 있었다.

" 다, 당신은 뭡니까? 이곳에 온 목적이 뭐죠?! "

[ 어! 난 인간을 잡아 먹어볼까 싶어서 왔어! ]

" 뭐, 뭐야?! "

방송을 본 사람들은 요괴의 말에 경악했다! 인간을 잡아먹는다니, 정말로 유해한 요괴가 아닌가?! 하지만 또,

" 이, 인간을 먹겠다고?! "

[ 음~ 아직 몰라! 난 정말 특별한 걸 먹어야 하거든! ]

" 뭡니까? 무슨 말이죠 도대체?! 인간을 먹겠다는 겁니까, 안 먹겠다는 겁니까?! "

요괴는 갈등하는 듯, 제자리에서 왔다 갔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자신의 사연을 얘기했다.

[ 너희들이야 항문이 있어서 모르겠지만, 우리 형제들은 태어날 때부터 항문이 없거든! 그래서 우리 형제는 평생 딱 번 밖에 음식을 먹지 못해! 먹고 나서, 쌀 수가 없어서 말이야! ]

" 뭐?? "

[ 매일 같이 똥을 쌀 수 있는 너희들은 정말 축복받은 존재들인 거야! 아~ 정말 부럽다! ]

" ...그러니까, 평생 단 한 번만 먹을 수 있다는 겁니까? 인간을 먹는다면 한 명만? "

[ 응 그렇지! 근데, 아직 결정한 건 아니야. 생각해봐~ 평생 단 한 번만 먹을 수 있고, 그 맛 하나만을 평생 되새김질하며 살아야 하는데! 신중히 결정해야하지 않겠어? ]

" 그...렇군요.. "

[ 아~! 인간을 먹을까~ 말까, 고민이야! 아직 형제 중에 인간을 먹어본 요괴는 없거든! 우리 큰형은 말야, 소나무를 먹었는데! 나보고도 소나무를 먹으라지 뭐야? 솔잎 향이 좋다나? 큰형은 평생 솔잎 향을 되새김질하고 있거든! ]

" 아아..그럼 당신도 소나무를 먹는 게 어떨지요...? "

[ 아~ 안돼! 난 채식보다는 고기 맛을 보고 싶거든! 근데, 고기도 잘 골라야 해. 우리 동생이 참 불쌍하지. 글쎄 하이에나 고기를 먹었는데~ 어우~! 평생 노린내나는 맛을 되새김질하고 있어! ]

요괴는 한참 동안 형제들의 식사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그러다 번뜩! 방송국 기자의 머리 위로 날아와,

[ 역시 인간 고기를 먹는 게 낫겠지? 다른 요괴들 말로는 그렇게 맛있다던데! ]

" 흐, 흐익! "

기겁한 아나운서가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요괴는 다시 휙! 뒤돌아,

[ 아니야~ 신중히 결정해야 돼. 평생 한 번이라고! 인간을 먹더라도 맛있는 인간 맛없는 인간 잘 골라야 돼~! ]

계속해서 허공을 유영했다. 

요괴는 며칠 동안 번화가 중심에서 사람들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며 먹을까 말까를 고민했고, 그 때문에 시내에 사람이 사라져, 가게 주인들은 울상을 지었다.

" 미치겠네! 저 요괴는 왜 하필 여기서 날아다니는 거야? "
" 저것 때문에 장사가 안돼 장사가! 저거 죽일 수도 없다며? 총알도 다 통과해버린다던데... 어휴~! "

그들은 솔직한 말로, 그냥 요괴가 아무나 잡아먹고 가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한데, 그들의 소원을 들어줄 만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 요괴님! 저를 먹어 주십시요! "

[ 뭐?? 너를?? ]

자진해서 요괴에게 먹히기 위한 사내가 나타난 것이다!

" 어차피 실패한 제 인생에 더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누군가 죽어야 끝나는 일이라면, 제가 희생하겠습니다! "

[ 흐음~! 그래? 너 맛있어? ]

" 돼지도 이 돼지나 저 돼지나 다 맛이 똑같습니다! 어차피 인간 맛도 다 똑같지 않겠습니까? "

[ 글쎄... 어쩔까~ ]

요괴는 사내 근처를 유영하다가, 위로 날아올랐다.

[ 역시 좀 더 생각해봐야겠어! 평생 딱 한 번의 식사인데 신중해야지! ]

" 아! 요괴님! 저를 드십시요! 이것만 약속해 주십시요! 인간을 먹으려거든, 꼭 저를 드십시요! "

[ 생각해볼게~~ ]

사내는 요괴를 쫓아다니며 자신을 먹을 것을 계속 종용했다. 아예, 시내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
사내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반응을 불러왔다.

" 정말 놀라운 남자야! 어떻게 자신을 저렇게 희생할 수 있지? "
" 와~ 저 사람이 우리 번화가의 구원자구나! "

방송국도 사내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게 되신 겁니까? "
" 아.. 저는, 어차피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제가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제 목숨 하나로 사람들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

사내는 수많은 방송국의 취재 열기 속에, 하루 만에 최고스타 대우를 받았다. 사람들은 사내의 행동에 감탄하고, 감동하며 찬양했다.
한데, 사내는 하나의 특이 인간이 아니었다.

" 요괴님! 저를 드세요! "
" 아니! 나를 먹어줘! 제발 나를 먹어줘! "
" 제가 더 맛있을 겁니다! "

전 세계에서 요괴에게 먹히기 위해 나타난 사람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 뭐야? 먹히고 싶은 인간들이 이렇게 많다고? 너희 인간들은 참 희한하네~ ]

그 말이 맞았다. 세상은 넓었고, 특이한 인간은 많았다.
어차피 특이한 그네들을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들 각자의 기구한 사연들을 제쳐두고서, 그들이 요괴에게 가장 매력을 느꼈던 부분은 대체로 동일했다.

" 전 인류 중에 오직 한 명밖에 먹지 못한다잖아! 세상에서 단 한 명! 그게 내가 되고 싶어! "

" 하 참나...? "

일반인들은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졸지에 그들 사이에 경쟁이 붙었다. 요괴의 한 끼 식사가 되기 위한 경쟁이었다.

[ 뭐 이렇게 많아? 누구를 먹어야 하는 거야 도대체? ]

" 요괴님! 저를 드십시요! 저는 채식주의자라서 맛이 담백할 겁니다! "
" 웃기지 마! 당신은 암에 걸렸잖아? 썩은 고기라고! 요괴님! 저를 드십시요! "
" 지방으로 뒤룩뒤룩한 당신을 먹으면 입맛만 버릴걸?! 하려던 대로 가서 자살이나 하셔! "
" 당신들 다 집어치워요! 여자가 남자보다 더 살이 연해요! "
" 요괴님! 저런 사회 부적응자들과 인생 패배자들의 고기는 썩은 맛이 날 겁니다! 저는 성공한 CEO입니다! 성공한 고기를 드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

[ 아~ 미치겠네~! 난 아직 인간을 먹을지도 결정하지 않았단 말야~! 평생 한 번뿐이라고 난~ ]

사람들은 이제 이 기묘한 관경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세계에서 모여든 특이 인간들은 한 명씩 늘어만 갔고, 그들과 요괴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도 엄청나게 늘어만 갔다. 요괴가 나타난 번화가는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동네가 되어 있었고, 사람들로 거리가 빽빽하게 가득 메워져 있었다.
번화가의 상인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 요괴 덕분에 장사가 잘 돼서 정말 살맛 나네! "
" 크~ 우리 번화가 명물로 영원히 남았으면 좋을 텐데~! "
" 요괴 상품 판매합니다! 요괴 상품~! "

그러던 어느 날, 요괴가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 알았어! 인간을 먹을게! 난 인간을 먹기로 결정했어! 평생 딱 한 번 먹을 수 있는 식사를 인간으로 하겠어! ]

" 와아~! "
" 오오오~! "

사람들은 환호했다. 먹히기 위해 모인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이 흥미로운 대사건을 즐겁게 지켜보던 나머지 사람들도 환호했다. 요괴가 인간을 먹겠다는데, 그랬다.

[ 그럼 누구를 먹을까 결정해야 하는데... ]

" 요괴님 저요! 저를 드세요! "
" 아니! 나! 내가 먹힐 거야! "
" 저를 선택해 주세요! "

[ 아으~ 또 선택해야 돼? 미치겠네~! ]

요괴는 우왕좌왕 허공을 유영하다가, 그들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며 후보를 추렸다.

[ 여기 뚱뚱한 인간! 여기 어린 인간! 여기 늙은 인간! 이 셋 중에 하나로 먹을게! ]

" 와아아~! "
" 오오~! "
" 드디어 먹는단다~! "

사람들은 드디어 결정된 후보군을 보며 환호했다! 사람이 요괴에게 먹힌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건지 뭔지, 현장은 흡사 축제 분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후보 셋은 급조한 무대 위에 모였고, 그 모습이 전 세계로 생방송 됐다. TV 앞에 선 사람들도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화면에 집중했다. 온 인터넷도 드디어 요괴가 사람을 먹는다며 열광했다.

많은 이들이 즐겼다. 세상엔, 오히려 이 상황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드물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들이 스스로 나섰다는 합리화를 해 보아도, 참 이상한 일이었다.

[ 아~ 누구를 먹어야 하는 거야~! 나 누구 먹어? 응? 인간들아~, 나 누구 먹을까? ]

요괴는 셋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며 고민하다가, 하늘로 솟구치며 말했다.

[ 으~ 도저히 난 결정을 못 하겠어! 너희 인간들이 나 대신 결정해줘! 그 인간을 먹을게! ]

현장의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우리가 한 명을 골라야 한다고? 요괴가 알아서 잡아먹는 건 상관없었지만, 우리가 희생자를 고르는 것은 좀... 꺼려졌다.
그때, 무대 위에 있던 뚱뚱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 제가 먹혀야 합니다! 제 꼴을 보십쇼! 이게 사람입니까? "

남자는 자신의 뚱뚱한 살을 흔들고, 얼굴을 가리키며 열변을 토했다.

" 제 얼굴은 또 어떻습니까? 이렇게 혐오스럽게 생긴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저 같은 사람은 살아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친구도 한 명 없고, 직업도 없고, 하는 일이라곤 하루 종일 방구석에 처박혀서 게임만 하는 인간쓰레기입니다. "
" ... "
" 맞잖습니까? 제가 시내를 지나다니면 사람들은 모두 저를 훔쳐보며 비웃습니다. 어떤이들은 대놓고 욕을 하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뚱뚱하고 못생긴 건 죄이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뚱뚱하고 못생겼고, 항상 왕따를 당했습니다. 사회에 나와선 나아졌을까요? 아니요. 사회에서도 저는 그냥 혐오스럽고 못생긴 돼지일 뿐이었습니다. 세상에는 그냥 인간과 못생기고 뚱뚱한 인간이 존재합니다. 못생기고 뚱뚱한 인간은 자기관리를 못 하는 인간이고, 게으른 인간이고, 의지가 약한 인간입니다. 그렇죠? 그렇게 생각들 하시죠? 그런 인간이 굳이, 필요한가요? 굳이 필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죽어야 합니다! "
" ... "

남자는 울분을 토해가며 열정적으로 자신을 어필했다. 꼭 자신이 먹혀야 한다며 소리쳤다.
한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반응이, 남자의 의도와는 반대로 흘러간 것이다.

" 저 남자 먹히지 말았으면 좋겠다.. "
" 뚱뚱하다고 먹혀야 하는 게 뭐야? 그런 게 어딨어! "
" 누가 외모 가지고 사람 욕하고 그런데? 진짜 저급한 사람들이다! "

남자는 당황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 죽지 마세요! 당신은 죽으면 안 됩니다! "
" 당신이 왜 필요 없는 사람이야?!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이 어딨어?!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분명 존재할 거야!  "
" 죽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당신을 모욕한 사람들이지, 당한 당신이 왜 죽어?! "

현장의 사람들, TV 앞에 선 사람들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남자가 죽지 않길 바랐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말문을 잃었다.

" ... "

수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 눈앞에 펼쳐진 이상한 관경, 처음 보는 그 관경을 바라보던 사내는, 부들부들 떨다가 말없이 뒤돌아 걸었다.
사람들이 그의 뒷모습에도 끝까지 소리치는 와중에, 여인이 앞으로 나섰다. 사람들의 고개가 여인에게로 옮겨갔을 때, 여인이 팔을 들어 올려 소매를 걷었다.

" 보이시죠? "

여인의 팔목에는 칼로 그은 자국들이 있었다.

" 저는 어차피, 여기서 선택되지 않아도 죽을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죽을게요. "

앞서 남자의 여운이 남아서일까, 누군가 소리쳤다.

" 아가씨는 왜 죽으려고 하는 거요?! 거 젊은 아가씨가 참! "

여인은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죽겠다는데 내 마음이지! "
" 거~참나! 사람 목숨 귀한 줄을 모르고 말이야! 요즘 어린 애들은 이래서 문제야! 이 편한 세상에 뭐 힘든 게 있다고 툭하면 자살이고 뭐고~! 우리 때는 먹고 살기 바빴는데~ "

한 남자의 꼰대같은 소리는, 여인을 울컥하게 하였다!

" 당신이 뭘 안다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르면서 지껄여?! "
" 저, 저?! "

여인은 발악하듯 소리쳤다!

" 편한 세상? 편한 세상 살았다고? 그래, 이 편한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들려줘?!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는 바람나서 도망가고! 엄마도 친척 집에 날 버리고 도망가고! 어?! 친척집에서 눈치 보며 살다가, 중학교 때부터 씹세끼한테 강O당했어! 중학생 때! 당신 중학생 때 뭐했는데?! 어?! "
" ... "
" 씹할, 고등학교 때 도망쳐나와서, 팔려간 곳이 또 술집이야! 하루하루 죽고 싶은 마음으로 살다가도, 언젠가 엄마 찾아갈 거라고! 엄마 한 번 보러 갈 거라고 그렇게 살았는데! 어! "

여인은 어느새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 겨우 찾아갔더니... 엄마는 나 같은 거 낳은 적도 없다고, 기억도 안 난다고! 내가 어떻게 찾아간 건데...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
" ... "
" 난 살기 싫어! 이런 세상, 당신이 말한 그 편한 세상! 정말로 난 살기 싫다고-!! "
" ... "
" ...엄마한테 보여줄 거야. 엄마가 낳은 딸이 어떻게 죽는지, TV로 똑똑히 지켜보라고...! "

울며불며 절규하는 여인의 모습에 사람들이 숙연해졌다. 곧, 누군가의 한마디가,

" 어떡해... "

울먹이는 누군가들의 한마디들이 여기저기서,

" 세상에... "
" 어떡해 진짜... "
" 어휴~ 세상에 그런 죽일놈년들이...! "

수많은 사람들이 울면서 여인의 사연에 함께 아파했다. 
이번에도 사람들이 내린 결론은,

" 죽지 마요! 제발 죽지 마세요 아가씨! "
" 죽으면 안 돼요! 그렇게 불쌍하게만 살다가 가면 억울해서 어떡해! "

울던 여인의 눈에, 자신보다 더 울어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응원해주고, 격려해주고, 당장 무대 위로 손수건을 건네주려는 손들이 보였다.
여인은 주저앉아 버렸다.
곧, 마지막 노인이 다가와서 여인의 어깨를 토닥이며 뒤로 물러나게 하고는, 사람들 앞에 나섰다.

" 이제 잡아먹힐 사람이 정해진 것 같습니다... "

노인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사람들의 분위기는 이미 그렇지 않았다. 노인의 사연을 듣기도 전에 죽지 말라는 말이 쏟아졌다.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담담히 말했다.

" 저는 살 만큼 살았습니다. 만약 지금 요괴에게 잡아먹히지 않더라도, 몇 년 안에 자연히 늙어 죽을 겁니다. 다른 젊은이들의 아까운 목숨을 버리느니, 제가 죽는 것이 정답입니다. "

누군가 반박했다.

" 세상에 그런 게 어딨습니까?! 나이를 떠나서 사람의 목숨은 평등합니다! "
" ... "

노인은 잠시 잠깐 말을 멈췄다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 지나가다가, 폐지 줍는 노인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게 바로 접니다. 폐지를 줍는 인생. 여러분이 만약 그런 인생을 살아야 한다면 어떻습니까? 하루 종일 폐지를 줍고, 몇천 원도 안 되는 돈을 벌고,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밥을 먹고, 다시 새벽부터 폐지를 줍고... 그 인생에 의미가 있어 보입니까? "
" ... "
"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저는... 외롭습니다. 장성한 자식들은 저를 찾지 않은 지 오래고,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말을 나눌 동무들도 다 세상을 떠났고, 제 주변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직 살아지니까 살긴 하는데, 제가 왜 살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냥 아직 살아지니까 살 뿐입니다. 이렇게나 외로운데, 죽는 그 순간만이라도 특별하게 죽고 싶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그렇게, 죽고 싶습니다. 마지막 소원입니다. "
" ... "

노인의 말은 너무나 담담하여, 그저 사실을 말하는 듯 했다.
한데, 이번에도 노인의 주장은 정반대 효과를 불러왔다.

" 할아버지 죽지 마세요! "
" 외로우시면 제가 한 번 찾아뵐게요! "
" 댁에 김치는 있으세요?! 반찬이랑 좀 드릴게요~! "

수많은 사람들이 노인의 죽음을 반대했다. 기세에 휩쓸려 하는 말일지 몰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노인의 외로움을 달랠 방안들을 쏟아냈다.

" ... "

그 모습을 본 노인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노인은, 갑자기 고양이 이야기를 꺼냈다.

" 저는... 고양이를 좋아합니다. "
" ?? "
" 동네 길고양이들을 볼 때면 걱정을 합니다.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 고양이들도 있을 텐데... 겨울이면 추워서 얼어 죽는 고양이들이 많을 텐데... 새끼 고양이들이 태어나면 그중에 몇 명이나 살아남을까? 걱정을 하곤 합니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길고양이들이 길 위해서 죽어가고 있겠죠. 그렇지만,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어디서 혼자 몰래 죽는 건지, 이상하게도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
" ... "
" 실은... 저는 그게 저희 폐지 줍는 노인들 처지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 바라보기야 하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도 노인들은 길고양이처럼 어딘가에서 혼자 아무도 몰래, 죽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죽기 싫습니다. 죽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알게 죽고 싶습니다... "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은 뒤돌아 걸어갔다. 사람들은 무어라 쉽게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굳은 얼굴로 노인의 말을 곱씹었다.
곧, 하늘에서 요괴가 내려왔다.

[ 인간들아! 결정했어? 나 누구 먹으면 돼? 누구 먹을까? ]

사람들은 곤란해졌다.
세 명의 후보가 자신이 꼭 먹혀야 하는 이유를 밝힐 때마다, 오히려 절대 죽지 말아야 할 사람이란 생각만 들었다.
결국, 사람들이 끝내 한마음으로 외친 말은,

" 저 사람들 먹으면 안 돼요! "
" 그래! 저 사람들 먹지 말라고! "
" 인간은 맛없어요! 다른 게 더 맛있어요! "

[ 뭐어야?? ]

요괴는 황당해서 빙글빙글 돌았다.

[ 이게 뭐야~ 나보고 먹어달라고 난리 치던 인간들은 다 어디 간 거야? ]

수많은 사람들이 '먹지 마! 먹지 마!'를 열창했고, 다른 소리들은 모두 묻혀서 들리질 않았다.
그리고, 이 요괴는 참 한결같은 점이 있었다.

[ 음~~~ 그럼 그럴까? 인간 말고 딴 걸 먹을까? 으~ 고민되는데! ]

" 와아~~~! "

사람들이 환호했고, 요괴는 하늘을 왔다 갔다 하며 다시 고민에 빠졌다.

[ 아~씨, 그럼 뭘 먹지? 뭘 먹어야 하는 거야~! 아~ 미치겠네~ 뭐가 좋을까? 난 항문이 없어서 평생에 한 번밖에 못 먹는단 말야~아! ]

요괴가 연처럼 날아다니는 하늘 위로, 사람들의 박수와 함성이 울려 퍼졌다.

요괴에게 먹혀도 될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뚱뚱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슬픈 사람도, 아픈 사람도, 외로운 사람도, 누구도 없었다.
댓글
  • 복날은간다 2016/12/18 06:06

    식상하지 않은 요괴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다가..
    중간에 이상한 흐름을 타버리는 바람에; 막 나오는 대로 썼는데, 조금 과잉과 억지와 이상할 수 있겠네요. 지금은 판단이 안 되니, 한숨 자과 와서 다시 읽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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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푸아 2016/12/18 07:02

    죽기 직전이라고 다 까발렸지만 한 입만 먹고 떠나갈까? 도 생각했었는데 내용이 전개니깐 아니네요 ㅋㅋ 많은 고민 해봤습니다 뭘 먹어야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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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프링로제 2016/12/18 10:21

    요괴 시리즈는 진짜 재밌는 것 같아요 ㅋㅋㅋ
    볼때마다 질리지 않고 새롭고 너무 재밌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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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십장생 2016/12/18 10:29

    마지막까지 못 골라서 전부 먹을수 있게 지구를 먹을줄 알았는데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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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록저금통 2016/12/18 10:38

    재밌게 잘 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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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 2016/12/18 10:48

    업진살 먹지~~ 업진살 살살 녹는다~~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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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임★오렌지 2016/12/18 10:51

    뭘 먹어야할지 모르겠다면 치킨을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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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슝밍 2016/12/18 11:17

    복날님 글 항상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
    그런데 중간에 노인 대사 중에
    "새끼 고양이들이 태어나면 그중에 몇 명이나 살아남을까?"이라고 되어있는데
    고양이 세는 단위니까 [몇 명→몇 마리]로 수정하시는 게 어떠실지 댓글 남겨봅니당.. ㅎㅅㅎ
    의도하신 단어라면 뎨동..... ★
    항상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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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맛있는샐러드 2016/12/18 11:33

    공게 보다는 좋은 글 게시판 어떠세요? 감동도 있고 교훈도 주고 요괴도 해 끼치지 않았으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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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날은간다 2016/12/18 11:33

    아아...과하네요; 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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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야순시려 2016/12/18 11:48

    정말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근데 "복날은간다" 라는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으신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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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먀담 2016/12/18 11:57

    동화같아요 ! 진짜재밌네요

    (zDt0li)

  • 재밌는인생 2016/12/18 12:02

    중간에 그네가 있군요

    (zDt0li)

  • 이덧휴 2016/12/18 12:20


    베오베 축하드려요!

    (zDt0li)

(zDt0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