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사열독(文史悅讀)
여자를 놓고 보면 중국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인은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주(周)왕조의 여황 무측천이고, 또 다른 한 명은 바로 남조(南朝)의 산음공주(山陰公主) 유초옥이다. 이 두 여인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녀들은 모두 여성의 평등권리를 쟁취하였다.
무측천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황제의 보좌에 올라서, 중국역사상 유일한 여황제가 된다. 유초옥은 31명의 남편을 취할 권리를 쟁취한다. 만일 무측천이후에 중국역사상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 빅토리아여왕과 같이 매력이 뛰어난 여왕이 출현했다면 동방의 법률과 풍속 그리고 전체 인민의 소질을 크게 제고되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무측천이 태평공주에게 황위를 넘기지 않은 것이다. 태평공주도 엘리자베스와 같은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 이것은 동방의 큰 유감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산음공주의 운명은 하나의 비극이다. 젊은 나이에 죽는다. "군수염여극(君鬚髥如戟), 하무장부의(何無丈夫意)"(그대는 창과 같은 수염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찌 사내대장부의 뜻은 없단 말인가?). 이것은 산음공주가 후세에 남긴 명언이다. 또한 그녀에 대한 겨우 남은 약간의 기록이다. 후세의 남자들은 자연히 이 풍정만종(風情萬種), 방탕불기(放蕩不羈)의 여인에 대하여 전(傳)을 마련해주지도 않았다. 그녀들의 풍자소엽(風姿笑靨), 애원비수(哀怨悲愁)은 가벼운 바람처럼 역사의 하늘 속으로 흩어져 종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산음공주는 황제인 동생에게 부마를 구해달라고 요청한다. 유자업(劉子業)은 시원하게 승락하고 금방 그녀를 위하여 30명의 젊고 멋진 남자를 구해준다. 이들에게 어떤 이름을 붙일 것인지에 대하여 유자업은 한동안 고민을 한다. 당연히 부마(駙馬)라는 용어를 쓸 수는 없다. 유자업은 참신한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남조사회의 삼엄한 등급제도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방대한 사족집단도 무시할 수 없다.
남편이 안되면 애인이 될 수밖에 없다. 부마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러면 "면수(面首)"라고 부르자. 남조 사람들은 따지기를 좋아했다. 특히 문자에서. 유자업의 문자공력은 괜찮은 편이었다. 그가 쓴 글을 문재가 있었다. "면(面), 용모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수(首), 머리카락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면수는 즉 얼굴이 아름답고, 머리카락이 검고 빛나는 미남자를 가리킨다. 용모가 아름다운 것은 이해가 된다. 머리카락에 왜 검고 빛나야 하는가? 왜냐하면 중의에서 말하기를 머리카락은 신(腎)의 기운을 주재한다. 머리카락이 좋으면, 신이 좋다는 것이다. 신이 좋으면, 성기능이 왕성하다.
유자업이 면수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남총(男寵), 소백검(小白臉), 압자(鴨子), 흘연반적(吃軟飯的)보다 훨씬 생동감있고, 재미있는 말이다. 왜 이 말이 전해져 내려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서방의 명사인 '정인(情人)'이 나중에 나타나서 우위를 점하게 된다.
산음공주가 30명의 면수를 얻은 것은 중국역사상 대단한 일이다. 이것은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천지가 유유한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창연이체하(愴然而涕下)"해야할 일이다.
우리는 기뻐해야 한다. 중국여인의 권익이 한번 만족을 얻었다는데 안위해야 한다.
유자업이 감히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남조사회의 기풍과 관련이 있다. 남조는 방종의 시대이고 인성해방의 시대이다.
사람들은 술을 마음껏 마셨고, 욕망을 마음껏 해소했고, 감각적인 자극을 누렸으며, 자연 그대로를 마음 껏 즐겼다. 현대의 마약은 서방에서 들어와서 남조시대에는 아편이 없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총명한 두뇌는 일찌감치 마약과 유사한 물건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마약보다 훨씬 고명했고, 위해도 적었다. 그것은 무엇인가? 오석산(五石散)이다. 한식산(寒食散)이라고도 부른다.
위진시대부터 시작하여, 사인들은 오석산을 많이 복용했다. 그것은 석종유(石鍾乳), 자석영(紫石英), 백석영(白石英), 석유황(石硫磺), 적석지(赤石脂)의 5가지 석약(石藥)을 합성한 중약산제(中藥散劑)의 일종이다. 이 약방문이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장중경(張仲景)의 이다. 상한(傷寒, 고대인들이 말하는 풍사(風邪)가 든 것)을 치료하는데 쓴다. 진(晋)나라에 이르러, 명사 하안(何晏)은 몸이 허약하여 오석산을 상복했다. 약성이 맹렬하여, 하안은 전인의 약방을 고쳐서, 한번 먹어보니, 정신이 맑아지고, 체력이 강해졌다. 그래서 널리 보급하게 된다.
정신이 맑아지는 것은 마약의 효능이다. 체력이 강해지는 것은 춘약이다. 현재 비아그라의 기능이다. 낙양인들이 앞다투어 이를 본떠서 만들어 먹어 일종의 유행이 된다. 진나라때, 명사들은 이 오석산을 많이 마셨다. 그러나 이 약을 복용한 이후에 반드시 차가운 음식으로 열을 식혀야 했다. 그래서 '한식산'이라는 명칭도 얻는다. 춥게 입고, 차가운 것을 마시며, 차가운 것을 먹고, 춥게 누워서, 따뜻한 술을 마시면, 술기운으로 땀이 나서, 약성을 발산하게 된다.
여자가 나체로 춤을 추는 것도 남조의 유행이었다. 기실 남조인들만 종정성색(縱情聲色)한 것이 아니라, 그 영향으로 북방인도 마찬가지였다. 전진의 천왕 부견은 일찌기, "궁녀와 남자들이 대전의 앞에서 교합하게 하고, 여러 신하들이 그 자리에서 구경하게 했다"고 한다. 고대에는 야한 영화가 없었고, 그저 현장에서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이것이 바로 북조 제왕귀족들의 오락 레크리에이션이었다. 음탕한 기풍의 영향을 받아, 유자업과 산음공주가 이런 행위를 한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유자업과 산음공주는 같은 모친에게서 태어났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아주 친밀했다. 산음공주는 회계장공주(會稽長公主)의 작위를 받는다.
세상사람들은 모두 미련의 심리를 갖고 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면 뭐라고 하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스타를 추종하는 팬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남조에는 스타를 추종하는 기풍이 있었다. 동진의 명신 맹창(孟昶)이 아직 성공하지 못했을 때, 경구(京口)에 살고 있었다. 그날, 하늘에는 눈꽃이 날렸고, 명사 왕공(王恭)은 학창의를 입고, 높은 가마에 앉아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맹창은 대나무담장 사이로 몰래 쳐다보며 탄식을 한다: "이 사람은 정말 신선이로다." 현대의 영화배우를 숭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조인들은 명사를 쫓았다. 왕공이 말한, "이소(離騷)를 숙독하고 술을 통음하는" 소위 명사이다.
산음공주는 이십세의 묘령의 여자였고, 자연히 그런 점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녀는 한 남자를 미친 듯이 숭배했고, 갈망했다.
그 명사의 이름은 저연(褚淵)이다. 그도 부마이다. 처는 산음공주의 고모인 남군공주(南郡公主)이다. 송문제(宋文帝) 유의륭(劉義隆)의 딸이다. 저연은 재능도 있고, 활달했다. 부친이 죽었을 때, 형제가 분가를 하는데, 저연은 단지 집안의 수천권 도서를 가진다. 나머지는 한푼도 취하지 않았다. 명문망족 출신이고, 부마여서 관직은 자연히 순조로웠다. 미관(美官), 태자사인, 태재참군, 태자세마, 비서승, 중서랑, 이부랑을 지냈고, 도향후(都鄕侯)의 작위를 승계받는다.
저연은 용모가 준미하고 행동거지가 우아했다. 거수투족에 풍도가 넘쳤다. 매번 조회때면, 문무백관들 심지어 외국사신들까지도 그의 얼굴을 앞다투어 보려고 했다. 목을 길게 빼고 있으면 저연의 풍모를 감상하는 것이었다. 저연은 뛰어난 재주도 있었다. 음률을 잘 알았고, 비파를 잘 탔다. 유송국의 저명한 음악가이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저연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하자는 있다. 그는 흰ja위가 크고, 검은눈동자가 작았다. 질투하는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백홍관일(白虹貫日, 하얀 무지개가 해를 뚫고 지나가다)"이라고 놀렸다.
저연은 사안(謝安)의 기풍이 있었고, 침온하면서 아량이 있었다. 하루는 집에 불이 났는데, 검은 연기가 가득했다. 불꽃이 여기저기 옮겨져서 거의 그의 수염을 다 태웠다. 이 대송국의 미남자는 전혀 신색을 변하지 않고, 태연자약해 하며 천천히 말했따: "가마는 어디에 있는가?"
한 사람을 사랑하고, 한 사람을 그리워하면, 그의 결점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산음공주의 눈에, 백홍관일은 결점이 아예 아니었다. 저연의 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동자였다.
산음공주는 황제에게 상사의 정을 토로한다. 유자업은 웃으며 말한다. "나는 너를 도와서 그를 불러줄 수는 있다. 그 다음의 일은 네 재주껏 해봐라."
유자업은 저연을 불러서 입궁하게 했고, 궁중에서 잠을 자도록 안배했다.
어화원에 있는 한 대전에는 공기중에 아름다운 꽃향기가 넘쳤다. 그 냄새를 맡으면 취할 정도였다. 처음에 저연은 무슨 일인지 몰랐다. 달이 버드나무 끝에 걸리고 나서야 대전에 또 한 사람이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경국경성의 미인이었다.
미인에게는 아름다운 노래소리가 있다. 오성(吳聲)은 가녀리고 듣기 좋았다. 하물며 부르는 사람이 절세가인임에야.
야장불득면(夜長不得眠), 명월하작작(明月何灼灼)
상문산환성(想聞散喚聲), 허응공중낙(虛應空中諾)
춘림화다미(春林花多媚), 춘조의다애(春鳥意多哀)
춘풍부다정(春風復多情), 취아나상개(吹我羅裳開)
칠흑같은 머리카락이 봄바람 속에 움직인다. 매미 날개처럼 얇은 옷 속에 날씬하고 기복있는 몸이 드러난다. 옷은 느슨하게 입었고, 은연중에 길다란 다리가 보일 정도이다.
여자는 조용히 그를 주시했다. 두 눈에는 유혹이 충만했다. 화산과 같았다. 저연의 호흡은 바로 멈춰진다. 만일 세상이 누군가가 미인과 꽃향기와 노래소리속에 있으면서 태연자약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저연일 것이다.
향기가 더욱 짙어진다. 여인이 이미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목소리는 봄바람처럼 가볍다.
"너 혼자서 적막하지 않느냐. 내가 너와 함께 있어주겠다."
"필요없습니다." 저연은 담담하게 말한다. 그는 돌연 눈앞의 이 풍정만종의 여인이 누구인지 생각났다. 황실공주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 유초옥이었다.
산음공주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이곳은 원래 내가 거처하는 곳이다. 네가 나보가 같이 있지 말라고 하더라도, 나는 여기에 있어야 한다."
저연은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이 평정하게 말한다: "당신이 여기에 있겠다면 내가 떠나겠다."
산음공주의 표정은 아주 기괴했다: "이곳은 황제가 안배한 거처인데, 네가 항명하려는 것이냐? 다시 말해서, 네가 대전을 나간다고 하더라도 이곳은 황궁이다. 네가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이냐?"
저연은 마침내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정교하게 계획된 함정에.
산음공주는 더욱 가까이 다가간다. 유혹적인 머리카락의 향내도 맡을 수 있을 정도였따. 여인의 몸이 접촉해왔고, 부드러운 손가락이 저연의 얼굴을 미끄러져 내려간다. 수염을 애무했다. 천천히 가늘고 긴 손가락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저연은 가만히 서 있으며,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 후, 산음공주가 웃는다: "그대는 수염이 창과 같은데, 어찌 사내대장부의 뜻은 없단 말인가?"
저연이 담담하게 대답한다: "회(回)는 비록 불민하지만, 이처럼 정리에 어긋나는 일은 할 수가 없습니다(何敢首爲亂階)" 저연의 자는 언회(彦回)이다. 그는 공자의 큰제자 안회(顔回)의 말을 인용하여 산음공주가 놀리는 것에 대응한다.
산음공주가 이를 악물고 말한다: "못믿겠다. 네가 나에게 꺽이지 않는다는 것을."
한 정상적인 남자와 한 풍정만종의 여인이 십일 밤을 같이 한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남자가 저연이기 때문이다. 그는 달이 동산에 뜰 때부터 아침 안개가 일어날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이런 쑥맥을 만나면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산음공주는 실로 탄복해 마지 않았다. 저연은 저연이다. 영원히 그녀의 우상이다. 다행히 그녀에게는 30명의 건장한 면수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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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왜 역사게가 아니라 미게?
친누나 산음 공주(유초옥)와 근친상간을 했다. 어느 날 폐하는 육궁에 후궁이 많으면서 신은 겨우 부마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이는 매우 불공평합니다.라는 식으로 산음 공주가 불만을 가지자 유자업은 산음 공주에게 면수, 즉 아름다운 남첩 30명을 선물했다.
산음 공주는 남편 하집이 미남이었고, 30명의 남첩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이것도 만족하지 못했다. 하집은 하언의 아들이었으며 첩으로 송씨가 있었다. 산음 공주는 의원을 유혹해 음욕을 채우고 거기에 당대의 미남이었던 이부랑 저연을 유혹했다. 문제는 저연은 남군 공주의 부마로 남군공주는 산음 공주의 고모였다. 즉, 저연은 산음 공주의 고모부였던 것이다. 산음 공주는 동생 전폐제에게 허락을 구했는데 차마 고모부에게 목적을 설명하기가 그랬는지 조서를 내려 무조건 산음 공주 집에 가도록 했다. 산음 공주는 저연이 오자 끊임없이 유혹하고 온갖 추태와 교태를 다 부렸지만 저연은 당대의 인재답게 유혹을 거부했고 산음 공주는 결국 포기했다. 이런 음란한 산음 공주는 전폐제가 죽은 후에 바로 처결됐는데 진짜 불쌍한 것은 산음 공주가 데리고 살던 30명의 남첩들로, 그들은 산음 공주의 무덤에 순장되었다. 당시 산음 공주의 나이는 19세에서 20세에 불과했다.
산음 공주의 외동딸이 바로 제나라 욱림왕 소소업의 음란한 황후 하씨인 하정영이다. 하정영이 산음 공주가 아니라 하집의 첩 송씨의 소생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기록에는 산음 공주의 소생으로 되어 있는데 하정영도 음란함이라면, 어머니 산음 공주에게 뒤지지 않는다. 참고로 저연은 겉과 속이 모두 아름다운 남자로 개인적인 성품과 인격, 수양, 능력이 모두 뛰어난 엄친아였다. 음란하고 사치스러웠던 당시에 매우 드문 인물로 유송이 망하고 남제가 들어서고도 승승장구해서 고위직이었던 사도까지 승진해 뛰어난 정치 업적을 남겼다. 이는 물론 한족 왕조가 군주의 성만 바뀌는 유력 귀족의 국가였다는 증거가 된다.
유자업도 보통 막장이 아니라서....
진짜 유자업 집구석도 가만 보면 콩가루도 저런 콩가루가 어떻게 왕이 되었는지도 참~ 희안하고, 자기 숙부를 돼지라고 부르면서 툭하면 죽이려 들다가
결국 역관광으로 자기가 뒤지죠..근데, 그 콩가루 기행이 1년동안 이뤄진거라는...ㅡ,.ㅡ
근데, 그렇게 돼지왕이라며 죽이고 싶어했던 유욱도 황제가 되자...역시나 막장이 되더라는...
눈에 음란마귀가 꼈는지 자꾸 'ㅅㅇ'공주로 보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산음'공주로 보이네요ㅋㅋ
뭐지?!
뭐지.. 여기 계신 분들 다 읽으신건가요?...
이 길고 난잡한걸....ㄷㄷ
이게 뭐라고 이걸 다읽네ᆢ헐, 그래서 다 땅에 묻혔다는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