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1화
사람을 해롭게 하는 건 여러 가지가 있다.
술, 담배, 그리고 약물.
“공을! 제발! 네모 안에! 넣으라고! 이 싯발럼들아아아악!”
그리고 지금 트레이너실 안에서 발광하는 광인의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할 것이 명백했다.
야구는 사람에게 해롭다.
밑줄 쫙.
“아하이고, 또 공놀이 보고 열불내고 있나.”
일주일에 몇 번씩 반복되는 일상이라 그런가, 트레이닝을 끝마치고 온 타마모 크로스는 그런 트레이너의 모습을 흐린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또 응원하는 팀이 꼬라박았나봅제?”
“다아아아아악! 다아아아아악! 시이이잇발 놈들! 다 이긴걸! 말아먹어!”
국적도 알려졌겠다, 이제 마음 놓고 VPN을 써가며 한국 야구를 보기 시작한 트레이너에게 찾아온 것은 처참한 패배의 기록으로 인한 스트레스의 연속뿐. 이쯤 되면 대체 얼마나 꼴아박는 팀이기에 이렇게 고통받는 것인지 타마모도 슬슬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이번엔 또 우예 졌노?”
“9회 말 12점에서 역전당했다.”
“와 쓰벌 그게 프로팀 맞나? 열불 낼만 하네.”
그래서 물어봤더니 더욱 호기심에 불이 붙었다.
저 정도면 지는 것도 가히 예술이라 할 정도의 패배 아닌가.
그래서 반쯤 즉흥적으로 하얀 번개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거 지는 방식이 매번 색다르니 궁금해서 못 견디겠네. 또레나, 담 경기부턴 내랑 같이 보재이.”
“…진심이가?”
순간 진심으로 우려가 담긴 정색이 돌아오자, 타마모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훗날 돌이키기를 ‘이 문디 자슥아, 와 그때 그걸 같이 보자 캐선!’이라고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되지만, 이 당시의 그녀가 그걸 알 턱이 없었다.
“뭐꼬 그 반응은.”
“아니, 니 열불 터져서 못 견딜 긴디?”
“에이, 꼴랑 공놀이 가꼬 그라믄 안 되제.”
그저 야구 까짓거 보면서 화나봐야 얼마나 혈압 오르겠냐고 정면 돌파를 선언할 뿐. 미래의 그녀가 본다면 ‘이 등시야 그 팀 한 번도 우승 못 한다 카이, 하지 마라, 보면 안 된다!’라고 뜯어말리겠지만 이미 늦었다.
“트윙클 시리즈도 견디는 우마무스메의 멘탈을 우습게 보지 말라 카이.”
타마모 크로스는 콧방귀를 뀌며 스스로 꽃길에 올라 버렸다.
롯○ 자이언츠 팬이라는 (불)꽃길로.
-⏲-
처음 같이 본 경기는 예상을 벗어나 승리한 경기였다.
타마모는 ‘뭐꼬 이기는 경기도 있긴 하네, 여태 호들갑 겁나 떨었구마’라고 트레이너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을 정도였지만, 그는 답하지 않았다.
기대치가 시작부터 높아지면, 떨어질 때 충격이 높아진다는 걸 그는 상당히 많이 봐왔으니까.
그리고 몇 번 이기기 무섭게 귀신같이 창의적인 형태로 꼬라박기 시작했다.
첫 패배는 방어를 안 하다시피 하여 순식간에 승패가 결정.
두 번째는 오랫동안 버티나 싶더니 마지막에 만루를 허용하여 패배.
세 번째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나 싶더니 막판에 방어에 구멍이 송송 뚫리며….
네 번째는….
…
가면 갈수록 기상천외해지는 패배의 양상에 ‘오, 이렇게 지는 방법도 있구마, 신기하네’ 하던 타마모의 안색도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진 건 당연지사. 가벼운 마음으로 같이 보던 작달막한 우마무스메도 점점 진심으로 언성을 높여갔다.
“아니 이 쓰벌 대체 이놈들은 뭘 보고 빠따질을 하는 기가! 눈을 어따 달고 휘둘러야 저따구로 하는 긴지 모르겠네!”
야구엔 맥주가 기본, 하지만 미성년자니, 콜라 캔을 손에 쥔 채 부들거리고 있는 타마모 크로스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일본인은 아니었다. 응, 절대 아니지. 그녀는 이미 꼴리건 바이러스 중증 감염 상태에 이르러 아무렇지도 않게 ‘시발’을 외치며 핏대를 올리고 있었으니까.
“내 말했제, 이거 보면 너한테 이로울 거 없을 기라고.”
한번 극도의 빡침을 토해낸 후, 잠깐의 해탈이 찾아온 듯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들이킨 트레이너는 덤덤하게 옆에서 말했다. 그런 그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분노가 가시지 않은 채 타마모는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또레나는 대체 뭘 믿고 저런 팀을 응원하고 있던 기가?”
“그야 고향 연고 팀이니께.”
“아.”
순식간에 의문이 풀렸다.
고향 연고 팀이라고? 그럼 어쩔 수 없지. 분명 트레이너의 가족들도 저 답 없는 팀을 응원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내 장담하는데, 저놈들은 웰시코기랑 경기해도 한번은 질기라.”
“와, 그건 너무한 평가 아이가.”
박해도 너무 박한 평가에 타마모가 태클을 걸려 했지만, 제동이 걸렸다.
“타마, 니도 봤으니 알지 않나. 저놈들은 백날천날 빠따질 해봐야 답 없대이.”
“쓰읍, 그건 또 그러네.”
열불이 터지는지 시원한 콜라를 쭉 들이켜 어떻게든 열을 삭히려 하는 자신의 담당을 보던 그는 무심코 말했다.
“시리즈 다 끝내고 나면 한국으로 가서 직접 함 볼래?”
“어, 그래도 되긋나?”
“울화통 터지는 경기 직관하고 병원 실려 가는 거지. 눈 떠 보니 낯선 천장일 수도 있다.”
“크흐, 스벌 경기 볼 맛 나겠구먼. 좋다, 그래 보재이.”
생각만 해도 어이없는지 두 사람은 잔을 짠, 하고 마주치며 앞날을 기약했다.
훗날 타마모 크로스가 회고하길 ‘이거 생각해 보니까 둘이서 여행 가기로 하자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은 또레나도 이상했대이’라고 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
담당과 트레이너의 합은 참 잘 맞았다.
걸쭉한 사투리를 쓰는 꼴리건으로서도 말이다.
자이언츠 이름 붙는 팀은 몸에 해로우며 이는 모 대원수가 증명한다
역시 자매팀
모 메지로 영애님이 듣고 찾아왔다가 고혈압으로 실려가셨다네요
요미우리 : 그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