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의 경우
연산군은 갑자사화 이전까지는
무난하게 정치를 하던 왕이 었음
문제는 갑자사화 = 연산군10년
이라 중종반정(연산군 12년) 까지 단 3년동안 흑화해서
폭군화 된것
갑자사화 이전까지는 경연도 꾸준히 참여함
선조의 경우
1. 선조는 김덕령 사안과 관련해 오히려 김덕령을 구하려 함
-다만 동인과 서인 불문하고 김덕령을 국문할지 안할지만 갈릴 뿐 사형은 빼박인게 중론이었음
2. 선조는 임진왜란 대비를 임진왜란 이전 왜변 수준에서도 역대급으로 대비함
-그런데 글쎼 10만명 드랍을
태종(이방원)의 경우
숙청을 하는 방식이
일가족을 모두 숙청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만 처벌하고 정치적으로 몰락 시킬뿐
본인이 숙청 했어도 능력만 있으면 다시 끌어 올림
(ex. 정도전 일가)
실제로 심온일가도 심온과 심온의 형제 몇몇만 죽임을 당했을 뿐
벼슬길만 막혀 있었고 결국 문종때 허통 돼서 고관 역임
실제로 민씨 4형제도 민씨 4형제만 조짐 당하고 벼슬길이 끊겨서 쇠락해서 그렇지
결국 자손들이 모두 살아남음
고종의 경우
1. 명성황후 민씨와 민씨척족의 행위에 대해 고종의 묵인이 없었으면 불가능
2. 대한제국 시기에도 원수부에 민씨들을 꾸준히 등용할 정도로 친위세력으로 활용
숙종의 경우
효종-현종-숙종으로 이어지는 정통성이 확립되어 있었고
현종의 남자형제가 없었고
숙종 또한 외아들이었기 때문에
언터처블 정통성을 기반으로
환국정치를 시행함
(과거 사극에서는 여자에 휘둘리는 왕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음
그러니 각본가들이 노력을 해야지. 그런데 그런 모험을 하는 각본가들이 몇명이 될까??(이 모험을 한 사람중에 가장 기억 남는건 정도전의 각본가 정현민)
임진왜란 이전까지 왜구 총병력이 3만이하였는데 진짜 온갖준비 했더니 선봉만 3만이 와버림. 그것도 근접최강으로
근접만 최강이 아님 그래도 원딜은 우리도 잘했는데 조총 대량 등장
고종은 외척 이용해서 애비 견제 해볼랬는데
이놈들이...
그리고 선조는 임진왜란 3년 전쯤에 가정이긴 하지만 왜적이 대규모로 쳐들어올거 고민한 기록도 있음.
상이 이르기를,
"그때(을묘왜변) 왜적이 얼마나 되었는가?"
하니, 변협이 아뢰기를,
"배 70척에 군사가 약 6천 명쯤 되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수만 명이 쳐들어올 기세는 보이지 않던가?"
하니, 변협이 아뢰기를,
"왜선(倭船)은 그다지 크지 아니하여 중국 배에 미치지 못하므로 한 척에 1백 명밖에 실을 수 없습니다. 1백 척이면 1만 명이니 1만 명밖에는 더 나오기가 어려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