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잘 쌓다가 인생 말년에 굴욕적인 항복으로
당대부터 지금까지 욕먹는 명장 우금.
난세에 항복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건만
유독 우금이 독보적으로 까이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1. 커리어 말년에 항복함.
올라갈 데까지 올라가고 누릴 거 다 누려놓고 인생 말년에 항복한 것만으로도 일단 추함.
2. 그냥 살고싶다 이외의 항복 명분이 없음
관우는 일단 항복은 해도 기회만 있으면 주군인 유비에게 되돌아가려 했고
장합은 억울하게 패전 책임 뒤집어쓰고 항복 안 하면 앉아서 죽을 판이었는데
우금은 아무리 봐도 당장 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항복한 것.
3. 주군이 먼저 망했거나 부하에게 잘못한 것도 아님
장합은 항복 안 하면 억울하게 패전 책임 뒤집어쓰고 원소에게 숙청당할 가능성 99%였고
장료는 주군이 그 여포였는 데다가 그나마도 여포가 패망한 후 항복한 건데
우금은 조조가 자기에게 잘못한 거 하나도 없고
조조 세력은 멀쩡했는데도 항복.
4. 비교 대상이 너무 많음
당장 우금 옆에서 방덕이 끝까지 항복을 거부하다 장렬히 처형당했고
그외에도 고순, 저수, 제갈첨 등 항복만 하면 살 수 있음에도
충성을 택하고 죽은 사람은 삼국 시대에도 한둘이 아님.
5. 내로남불
제일 큰 이유인데 우금은 커리어 내내 조조군 FM 군기반장으로 활동해 놓고
막상 자기가 포로가 되니까 귀신같이 항복해버림.
장료의 경우 항복한 관우가 유비에게 돌아갈 뜻이 있음을 알고
이걸 조조에게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가
'우정보다 충성이 우선이다' 라고 한탄하며 뒤늦게 조조에게 그사실을 알리거나
반란을 일으킨 창희 토벌 때 창희가 살고 싶어함을 간파하고
군대 끌고 가 쳐죽이는 대신 창희를 설득하여 항복을 유발하는 등
자기가 항복해서 살아남은 만큼 타인의 생존욕구도 이해하는 유연함이 있었는데
우금은 자기 친구이기도 한 창희가 다시 반란 일으켰다 또 항복하자
조조도 한 번은 더 살려주려 한 걸 군법으로 처형하고
조조 휘하 청주병이 약탈했다고 그자리에서 몰살시키는 등
남한테는 누구보다 엄하게 굴어놓고 정작 스스로에게는 너그러움.
오 가서 극진히 대접받았음에도 본인은 외관변화까지 뚜렷히 일어날정도로 스트레스가 극심했던거보면 자기도 선택을 잘못한걸 알고있음 적어도 그 시대의 보편적인 무장들의 사고관으로 치면
바로 밑에 방덕이랑 너무 180도 비교되어서 그럼. 항장출신도 칼을 맞는데 최고로 후대받던 우금이 추하게 항복을 해...?
그치만....갑자기 비가 오는걸 군인이 어케해 ㅜㅜ
오 가서 극진히 대접받았음에도 본인은 외관변화까지 뚜렷히 일어날정도로 스트레스가 극심했던거보면 자기도 선택을 잘못한걸 알고있음 적어도 그 시대의 보편적인 무장들의 사고관으로 치면
근데 일단 항복 안 하면 뒤가 없기도 했음
번성에 갇힌 조인도 항복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던거 생각하면...
조인은 항복이 아니라 도망을 칠 지 고민하다 끝까지 성을 사수했던 것임
항복하고 욕쳐먹는거<당연
당시상황은 진짜 천재지변이라서 불가항력이기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