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 출처:https://www.pixiv.net/artworks/93015900)
맨하탄 카페에게는 일반적인 방식으론 교류는커녕 보는 것조차 불가능한 ‘친구’가 있다.
뭐, 이건 담당 트레이너로선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가끔 해가 지고 난 후의 트레이너실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종종 천장에서 탁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거나, 갑자기 오래된 물건들 위주로 툭툭 떨어진다거나 하는 폴터가이스트 현상까지 일어나니 몸으로도 알고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여기까지는 뭐, 심령 현상과 동거 중이나 다름없는 평범한 일상인데.
최근, 쉬는 시간에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본 내용에 은근히 흥미가 간 것이 일의 시초가 되었다.
요컨대 귀신이라는 것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앱이나 기기가 있다는 것.
이전 같았으면 심령 현상이니 오컬트니 철저하게 배제했을 트레이너였지만, 맨해튼 카페를 담당하면서 자주 겪는 폴터가이스트부터 시작해서 이명을 비롯한 자잘한 현상들은 그 인터넷의 스레드에 단박에 흥미를 느끼게 했고, 앱스토어를 검색해서 곧바로 적당한 앱을 내려받게끔 이끌었다.
“이딴 앱이 정말 그런 게 가능하다고?”
문제는 받고서도 이게 정말 맞나 싶어서 반신반의하는 상태였다는 거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에이, 뭐 그냥 흥미만 돋우는 유사 앱이겠지.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앱을 켰다.
치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러 주파수 대역의 라디오 소리가 뒤섞이는 가운데, 그는 무심코 말해버렸다.
“어차피 증명 불가한 영적 존재 따위가 무슨 말을 하겠어?”
그렇게 혼잣말을 한 순간-.
「...주. ....하네....」
“응?”
앱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잡음인가 싶어서 볼륨을 한껏 올린 트레이너는 그 직후 결정을 후회하게 되었다.
「아주, 염병하네.」
라디오의 여러 소리를 조합해서 나온, 카페와 비슷하지만 낮고 다소 긁히는 목소리.
“이런 미친.”
그 분명한 말에 트레이너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며 들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아니 왜 진짜로 말이 들려?
「어, 진짜 들렸나? 신기하네.」
문제는 치직거리는 소리와 백색소음이 뒤섞인 앱에서 목소리가 계속 나왔다는 거고. 그렇기에 그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겠는데, 지금 말하는 게 그 카페의 ‘친구’냐?”
「그렇다만.」
“세상에.”
확실한 답이 다시 돌아오자 트레이너는 얼굴을 감싸쥐었다. 아무래도 위험한 짓을 시작해 버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파르게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가운데 ‘친구’가 말했다.
「거 후손 하나 좀 잘 되게 해주려고 물건 좀 툭툭 건드렸는데, 그걸로 쫄아서 감히 내 목소리를 들으려고 해?」
“어째 말이 길어졌는데?”
「존댓말, 꼬마야.」
‘아니 대체 나이를 얼마나 먹었으면 30대 초한테 꼬마라고 하는 거지’라고 구시렁거리자 치직거리는 목소리의 조합이 답해줬다.
「우마소울하고 나 자신의 나이를 다 합치면 어디보자, 여기선 일찍 죽어버린 거 고려해도 너보다 20살 정도는 많지 않을까 싶구나.」
“와, 노인네.”
「갈!」
‘끼긱.’
순간 방 안에 정리해 둔 커피잔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움직일 이유가 없는 물건이 움직인다는 건 ‘친구’가 열받아서 한 말에 반응해서 그런 거겠지.
새삼스레 겁나 강한 귀신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혀를 내두른 그는 언젠가 그녀와 접촉이 가능해지면 묻고 싶었던 것을 꺼냈다.
“말하는 걸 보아하니 카페를 도와주려고 하는 건 알겠다만, 그렇다고 심령 현상 자주 터지게 하는 건 좀 그만둘 순 없나?”
「허, 끝까지 존댓말 안 하는 거 보게. 뭐 그래도 답해주마.」
치직거리는 소리 너머의 존재는 생각을 정리하는 듯 뜸을 들이더니 이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경주 때는 그 아이 곁에서 인도만 해줬지만, 그 아이의 일생에서 가장 귀중한 달리는 시기가 끝나가는 지금은 다르다. 그 애가 누구만 보고 있는지 네 녀석은 알기나 하냐?」
“......”
트레이너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아주 그냥 귀신 할미 아니랄까 봐 별의별 거에 다 참견하고 자빠졌네, 라는 말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고 해야 옳겠지만.
「어쭈 말 안 하는 거 보니 아주 잘 아는구먼. 그래서 네 녀석이 눈치 밥 말아먹은 행동을 일부러 해대니 자손 좀 도와주려고 한 건데 뭐가 어째?」
“...거 노인네, 오해하는게 있는 모양인데 정정 좀 합시다.”
말을 탁 끊은 그는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친구’를 향하듯 손가락을 펼쳤다.
“우선 첫째, 대체 뭘 보고 그리 생각한 건지 모르겠는데 카페와 저는 학생과 교육자의 관계입니다. 그렇게 오해하고 들들 볶으셔 봤자 이 사회적 관계를 못 바꿉니다. 잘못하면 저만 끝나는 게 아니라 카페도 같이 끝나요.”
「허, 이 당돌한 녀석 보게 그게 무슨….」
“그리고 두 번째, 그렇게 할수록 카페가 더 곤혹스러워합니다. 댁이야 뭐 친구라고 잘 대해주고 있지요, 그런데 아시잖습니까. 걔가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다른 거. 댁이 심령 분탕질 칠 때마다 이상한 게 계속 기숙사로 모이려 하는 거 같다고 상당히 당황해합니다.”
「.....」
“산 사람의 일은 산 사람들끼리 할 테니 죽은 자들과 산 사람들 사이에서 분란 그만 일으키고 자손 곁에서 조용히 지켜주십쇼. 뭐 어떤 눈으로 카페와 절 바라보고 있는지는 알겠습니다만. 지금은 설령 카페에게 진짜로 그런 생각이 있더라도 졸업 전까진 하지 말라고 만류해야 진짜 조상입니다.”
-어째 무당이 된 느낌이긴 한데.
내심 혀를 차며 트레이너가 말을 끝내자, 한동안 앱 너머에선 침묵이 감돌았다.
「푸훗, 아하하하!」
느닷없이 폭소가 들려오기 전까진.
치직거리던 소리와 달리, 선명하기까지 한 여성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트레이너의 안색이 새파래지는 찰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참 제대로 된 남자로군. 이만하면 합격이야. 그동안 괴롭혀서 미안했네.」
그리고 뭔가 아리송한 말을 한 후, 앱 너머에선 응답이 끊겼다. 동시에 트레이너실에 늘 감돌던 이상한 한기도 사라졌다.
“....간 건가?”
이해 안 가는 말을 마지막에 한 것이 조금 걸리지만, 아무튼 잘 해결되었으니 된 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트레이너는 남은 일을 마저 끝내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렇게 별일 없이 평온한 밤으로 돌아가는 거 같았다.
-⏲-
다음날.
“‘친구’에게서 들었습니다.”
어딘지 쭈뼛거리는 카페가 트레이너실에서.
“당신이 절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줄 몰랐습니다. 앞으로 더 노력할게요.”
트레이너는 뒷목을 잡고 싶어지는 걸 참아야 했다.
이 귀신 할미, 대체 뭔 바람을 카페한테 불어넣은 거야?
어쩐지 창 너머에서 카페와 똑같이 생겼지만 어쩐지 더 남성적인 분위기의 우마무스메가 웃으면서 따봉을 날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선데이 사일런스(후손들 잘되라고 절찬 응원 중)
할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