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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에서 벗어나고 나를 사랑하는 법.

안녕하세요, 요 3년간 무기력증에 시달린 한 남자의 독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014년, 제게는 찬란하고도 처절했던 해이지요. 1년 동안 지금까지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기쁨과 절망, 좌절까지 한꺼번에 겪었으니까요.

2014년 2월, 저는 졸업을 하고 집에서 백수로 3개월인가 있다가 취직에 성공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이었죠. 정년 보장도 되고 봉금도 괜찮고 호봉도 쌓이는 그런 직장.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직장에서는 제가 그때까지 쌓았던 지식과 경험 어떤 것도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었죠.




한순간에 내가 알던 세상에서 내가 예상도 하지 못했던 세상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굴에 빠진 것처럼 가버렸던 저는

하루하루 지옥같은 삶 속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죠. 하루의 시작과 끝 사이에 생소한 것들로만 가득 차 있었던 시간이었죠.

나름 머리도 쓸만하고 공부하던 분야에서도 괜찮은 수준이라고 자부하던 제 자존감은 박살난지 오래였고,

또래를 포함한 직장 상사들도 인간적인 교류를 요구하던 제게는 차갑기만 했죠.




그러다 퇴사를 했습니다. 반년만에 퇴사. 멘탈은 가루가 되어있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긍정적인 생각은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대학원을 왔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있고요. 취업도 하려고 노력중입니다. 이번주 토요일에 시험봅니다.




대학원을 들어왔을 때 제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절약과 성과.

그 중에 절약은 기가 막히게 실천했지만 성과에서는 그러지 못했어요. 제일 먼저 수면 패턴이 망가지고 의욕도 사라졌으며

당장 이상한건 못느끼지만 건강도 한번쯤은 체크해 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드네요.

매일같이 패배 자살 침전 도피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만 했지만 겉으로 티는 안냈어요. 자존심 때문에 더 콧대를 높게 세우고 다녔죠.

그렇게 시간이 지나 스스로도 문제를 인식하고 고쳐보려 했지만 높은 목표의 설정과 실망스러운 결과의 반복은 제게 학습된 무기력만을 남겼죠.

이 상황을 타개해 보려고 노력을 하며 저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었던 독서를 선택했어요. 무기력에 관한 책을 만족할 만한 내용이 나올 때 까지 읽는다는 전법이었죠.




결과는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 같습니다. 세번째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게 사는게 덜 힘들어졌어요.

제가 무기력에 빠졌던 이유는 단순했거든요. 기대에 못미치는 성과. 그걸 보면 불편하니 아예 실천을 안하고 걱정만 하는 것.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저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하나하나 고쳐나가려고요.

드높은 천상과 같이 고고한 목표보다는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교우관계를 돈독히 하며 내 자신에게 만족감을 안겨주는 일.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봤어요. 온라인 쇼핑몰에서 장바구니에 담아보았죠. 그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됐어요.

다 담아보니 500,000원이라 몇개를 삭제하니 350,000원이 됐어요. 아차피 당장 사지는 않을 거에요. 하지만 동기부여로는 충분했죠.

어제 일찍 자려다가 덕질 끝내니 새벽 5시였어요. 평소라면 날 비난했겠지만 그러지 않고 내게 말을 걸었어요.

야, 너 할일 있지 않냐? 어, 할 일 있지. 그럼 이렇게 밤에 잠을 안자면 안되는거 아냐? 맞아. 그런데 왜 안잤어? 덕질했어. 어땠어? 기분이 좋았어.

그럼 내일부터는 미래의 덕질을 위해 일찍 자는거다? 그래, 그렇게 할게.

오늘 점심 무렵에 일어났지만 평소같은 무기력으로 인해 다시 눈을 감고 한두시간 보내는 일은 없었어요.

7시간 잤네? 그래, 하루에 5-7시간 자면 되더라. 그럼 이제 할 일을 할까? 그래, 그러자.




그래서 도서관에 나와서 공부하고 있었어요.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자괴감이 들지 않고 할 일을 하나씩 해치워 나가고 있다는 점이죠.

괜찮아, 괜찮아, 내가 이런다고 세상은 멸망하지 않아. 라고 되뇌며 할 일을 하나씩 해가고 있습니다.

내가 계획한 일은 해야지, 어렸을 적 어른들에게 반항하듯 할 일을 안하는 시기는 끝났어. 소극적 저항은 그만 두어야 할 시간이야.

이런 생각이 듭니다.



세번째 읽은 책에서 무기력은 치유하는 것이 아니고 극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기력에서 빠져나왔다고 해서 안심하면 안된다는 말이죠.

전 같았으면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불평불만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무기력했던 내 자신조차 저의 일부인걸요. 당시 정말 심한 상처를 입고 회복하기 위해 웅크렸다가 잠시 함정에 빠졌던 저니까요.





내 이상에 맞지 않는다고 거부하던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삶이 편안해 졌습니다.

버리고 싶던 내 자신도 수용하고 이해하려고 하니 받아들여졌습니다.

이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습니다. 오래 지속되면 좋겠고, 선순환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노력해야죠.

그렇다고 해서 부정적인 감정으로 위기에 대처하는 일은 전보다 적어질 것 같습니다. 건강해졌네요.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도 저와 같이 무기력의 늪에 빠졌던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힘내요. 여러분 자신들은 여러분들의 생각보다 소중하고 강한 존재들이에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거에요. 저도 이제 시작했어요. 혹시라도 저같은 사람 있으면 이 글을 읽고 힘내길 바래요.
댓글
  • 손이작은아이 2017/11/11 18:20

    어릴 때 저는 초콜릿을 조금씩 아껴서 녹여먹었거든요. 깨물어 먹으나 녹여 먹으나 어차피 똑같은 양을 먹는건데 맨날 녹여 먹었어요. 조금씩 천천히 아껴 먹으면서 내가 커서  어른이 되면 초콜릿도 막 깨물어 먹을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그때는 성공=초콜릿을 깨물어먹는 어른이 되는거였어요. 그래서 요즘도 가끔  천원짜리 초콜릿을 사서 우적우적 깨물어 먹어요. 손바닥만한 초콜릿을 막 깨물어 먹으면서 내가 초콜릿도 막 깨물어 먹는 사람이라고, 이 정도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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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글라이더 2017/11/11 23:46

    지긋지긋한 만성우울 모시고산지 꽤 됐는데 한번씩 도질때 마다 여간 귀찮고 괴롭고 그러네요. 과정이야 힘들고 괴로워도 버티면 또 좋아지더라구요. 뭐 언젠간 더 좋아지지 않겠어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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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세상의증표 2017/11/12 20:22


    괜찮으시면 도움이 되셨던 책 제목 공유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글쓴님이 하셨듯 마음챙김이 확실히 도움이 되더라구요 내 기분에서 도망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되,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저도 아직 현재진행중이에요ㅎㅎ 우리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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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3회묻효 2017/11/12 20:32

    저도 가장 우울하고 무기력과 힘든 시간을 지날때 동네 도서관, 직장근처 도서관을 습관적으로 갔어요...
    책냄새...흥미있는 제목의 다양한 책들을 보면, 마음도 차분해 지고 어떨때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처럼 행복해지더라고요...
    그래서 현실 도피이자 내면의 힘을 기르기 위해 정말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어요...저는 소설보단 실용서적을 좋아해서 자기계발서를 포함한 인문 서적들을 보이는 대로 다 읽어본거 같아요...
    읽다가 딱 꽂힌 책이 있는데 “아직도 가야할 길”을 시작으로 스캇펙이 쓴 책은 다 읽어보았어요...
    그때 무기력, 우울과 현실에 힘들었지만 보석과도 같은 귀한 시간이었다고 감히 말할수 있을거 같아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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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eemason 2017/11/12 20:32

    I am getting better and better
    나는 점점 더 잘해 나가고 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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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얍짭짭빠라 2017/11/12 20:40

    제가 무기력에 빠졌던 이유는 단순했거든요. 기대에 못미치는 성과. 그걸 보면 불편하니 아예 실천을 안하고 걱정만 하는 것. 동감합니다
    글 너무 잘 쓰시네요 힘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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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rllllo 2017/11/12 21:03

    댓글달려고 로긴했요... 진짜 오랜만에 로ㅣㄴ하네요. 요즘 인생에 낙고 없고.. 불안감만 시달리고 그저 집집집 직장만 다니느 저에개 참 큰 위로가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이 너무힘들어 자꾸좋은 생각이 드는건 어쩔 수없나봅니다.. 죽으면 편하게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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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영혼 2017/11/12 21:19

    어떤 책을 읽으셨는지 추천해 주셔도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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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wnhere 2017/11/12 21:21

    어떤 책이 그렇게 도움이 되셨는지 궁금하고요.. 우울을 극복하는 첫번째 단계는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부분은 솔직하게 자신을 받아들이는게 힘들어서 더욱 겉돌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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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닉언좀하지마 2017/11/12 23:27

    음... 그냥 들어왔다가 닉네임 옆에 숫자가 바뀌었길래 뭐지;; 이러고 들어왔는데 베스트에 가 있네요.
    다들 추천 감사드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무력감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기운 차리기를 바래요.
    개인적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얼마나 잘 받아들일 수 있는지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에 읽었던 책은 제목이 "문제는 무기력이다" 입니다. 광고같아서 안썼었는데 요청하신 분이 있어서 올립니다.
    그럼 다들 일요일 마무리 잘하시고, 발기, 아니, 보람찬 한주의 시작을 잘 맞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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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리도리킹 2017/11/13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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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밀턴86 2017/11/13 02:45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저도 작년 부터 지금까지, 정말 좋은 회사에 입사했었죠.
    그러다가 제가 못견디고 퇴사했어요.
    나는 왜 이렇게 병신일까를 3개월 보내고 있는데
    지금 팀장님과 가족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인지 그래도 어떻게 지내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대부터 했었던 실패들. 그리고 최근의 실패들 때문인지 무언갈 시작하기도 싫고
    무기력. 아무것도 하기 싫음. 이 2가지가 같이 공존해오고 있습니다.
    이제서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았는데
    쉽게 안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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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코치 2017/11/13 02:49

    오와.. 진짜 지금 저에게 너무나 위로가 되고 필요한 조언이 가득한 글이네요.. 지금 새벽 3시인데 뒤척이다가 결국 컴퓨터 켰어요 ㅜ
    내 스스로와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내가 먼저 위로해주어야 할 것 같아요.
    "괜찮아, 괜찮아, 내가 이런다고 세상은 멸망하지 않아" 이 구절도 정말 위로가 많이 되네요.. 마치 저는 제가 하는 일에 있어 완벽하지 못하면
    세상이 무너질 것 처럼 걱정하고 두려워 하고 있더라구요 ㅜ
    좋은 글 넘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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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브핸들날개 2017/11/13 02:51

    남성분이지만,  수산나 타마로의 마음가는대로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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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샘입니다 2017/11/13 04:51

    이 글을 읽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네요
    나를 알아주는거 28년동안 내 마음을 몰라주고 힘들어만 한 제가 불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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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룰룰루 2017/11/13 05:46

    공감이 너무 많이 가네요. 저도 지금 반복되는 결심 --> 이행하는데 실패를 겪으면서 계속된 자책과 만성적인 무력감에 지쳐있는 상태예요. 정신적으로 지쳐있으니 무슨 생각을 해도 자꾸 네거티브한 쪽으로 빠지게 되고, 내 스스로 다른 주변 사람들을 챙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되서 만남을 가급적 자제하다보니 정말로 외톨이에 혼자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아져서 이제는 이런 외로운 상태를 만들고 사람들과 거리를 벌린 자신에 대해 이젠 책임까지 물으면서 답답해 하고 있네요.... 위에 추천해주신 책들 외국에 살고 있지만 해외배송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솔하고 따뜻한 글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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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키니야미안 2017/11/13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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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부남8년차 2017/11/13 06:35

    와.. 정말 멋진 글입니다.
    감사히 잘 읽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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