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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과 싸울 일이 별로 없는 이유





조금 있으면 2주년을 맞는 남자친구와 지금껏 지내면서 싸울 일이 거의 없었다. 

물론 가끔 투닥거릴 때도 있었지만 이성을 잃고 포효하거나 하는 상황까지는 간 적은 없다.

난 초예민보스인 것에 비해 남자친구는 초연하달까 나보다 살짝 둔하고 그릇이 넓은 덕분도 있을 듯

현재 30대 초반으로, 20대의 연애랑 지금이랑 다른 점이 갑자기 와 닿을 때가 있어서..



1. 거리감


20대 때 나는 초애정결핍환자였고 당시 남친이 갓 신내림 받은 무당같이 내 상태나 기분을 알아채주길 바랐다. 

왜 안 알아줘ㅡ 왜 위로 안 해줘 ㅡ라는 불만을 넘어 피눈물 나는 서러움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그 시끼가 지만 아는 이기주의자였기 때문에 더더욱.

구남친의 하자 부분은 그렇다 쳐도 ... 

지금은 몸이 아프거나 기분이 안 좋아도 남자친구를 붙잡고 늘어지진 않는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어때 ? 라고 물어보지 않아도 딱히 섭섭하지 않다. 내가 스스로 추스리고 약 챙겨먹고 하면 된다는 것을 아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떠냐고 걱정하는 남자친구임을 아니까. 그땐 히히 웃으며 이젠 나아졌어, 하고 꽁냥꽁냥한다. 

생각해보면 정말 고마운 일이다. 지금 당장은 서로 좋아해서 누구보다도 가까이 지내고 있는 관계지만, 실은 생판 남이다. 

난 가족, 부모한테도 제대로 된 관심과 애정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이 세상에 당연한 애정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사람이 내게 뿌려주는 사랑이 너무나 소중하고 귀하다. 

나는 남자친구를 이미 나와 동일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

그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게 일어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누가 남자친구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 인간을 조낸 때려주는 것은 내가 될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어떤 거리감이 있다. 얼마간 지나면 괜찮아질 일로 민폐끼치고 싶지 않다, 혹은 이 정도는 내가 커버할 수 있다 하는 독립심과도 비슷한 것 같다.

내 생활, 공간 존중받고 싶듯이 애인도 존중해야한다고 늘 기본적으로 생각한다. 내가 한 개인 이듯이 그도 한 개인인 것이다. 함께 하고 있는 개인들인 셈.




2. 매의 눈


앞에도 말했지만 난 초예민한 사람이고 그만큼 눈치도 사람들이 식겁할 정도로 빠를 때가 많다.

사람이 평소랑 다를 때는 어떻게든 티가 나기 마련이다. 특히 가까운 사람이라면 더더욱 귀신같이 눈치챌 수 있다.

눈치채면 당장 물어본다. "지금 기분 어때 ? 괜찮아 ?" 그러면 십중팔구 무슨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하게 되고, 대화를 하고, 기분이 좀 더 빨리 풀어지게 된다.

남자친구는 학습능력이 뛰어나서, 내가 몇 번 기분 어때 ? 라고 물어봤더니 나에게도 똑같이 질문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서로 세상사에 대한 스트레스라던지 서로에 대한 응어리들 냄새를 잘 캐치하고, 불어나기 전에 풀어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한쪽이라도 고집부리면서 끝까지 입 안 열고 하면 정말 피곤할텐데 다행히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편.

그런데 하루는 한 10번을 기분 상태를 물어봐서 확 짜증이 난 적은 있었다. -_-; 뭐든 적당히 .....



3. 투닥거릴 때는 단순하게


많이 안 싸운다지만 그래도 투닥거리는 때가 오긴 온다.

사람이 애초에 가졌던 불만이나 섭섭함보다, 오가는 말 속에서 더 큰 분노와 상처가 쌓이는 것을 20대 때 징그럽게 경험했었다.

감정이 북받치기 때문에 떠오르는 이미지, 비유, 묘사가 마구 쏟아져 나오려고 한다.. 그리고 저런 사족에서 아주 쓸데없는 감정소모가 확 일어나버린다. 

다 잘라내고, 완전 단순하게 말한다. 거의 유치원생 문법같이.. 그리고 이게 더 확실히 전달이 잘 됌. 

"자기가 ㅇㅇ 해서 나한텐 ㅇㅇ했어. 내 기분이 ㅇㅇ했어. " 이게 투닥거림의 절정에 와 있을 때 나오는 말이다. 

에베레스트에 올랐다가 뚝 떨어지듯이 싸우지 말고, 집 앞 둔덕에 잠깐 올라갔다 내려오듯이 완만하게 싸우는 게 앙금이 거의 안 남고 화해한 뒤에도 뻘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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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라 다른 분들을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어요.

다른 커플징어님들은 어떠신가요 ? 



댓글
  • 힐2링타임 2017/11/04 12:25

    '애인이 없어서...'라는 짧은 한 줄이 있을 줄 알았는데.. 하하 이쁜 사랑하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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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시46분 2017/11/05 17:58

    빠르게 진심담은 사과를 해서
    화낼 타이밍 놓쳐서 응어리 지기전에 풀립니다
    것도 ..능력인거 같아요. 상대방이 화낼수없게 만듦

    (6h7q81)

  • 염제신농씨 2017/11/05 18:23

    저는 애인이랑 싸울 일이 좀 있으면 좋겠네요.
    그러려면 우선 애인부터 만들어야겠지만

    (6h7q81)

  • 후츠 2017/11/05 19:16

    추천과 스크랩

    (6h7q81)

  • 신들의황혼 2017/11/06 15:41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대화

    (6h7q81)

  • 휘쨩 2017/11/09 18:30

    추천과 스크랩, 그리고 커플톡방으로 링크전달
    (이상 7년차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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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나먼서쪽 2017/11/09 18:39

    이렇게 쌓여만 가는 이론..

    (6h7q81)

  • ukari 2017/11/09 18:55

    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글을 들어왔을까......
    이쁜 사랑하세요
    (나이=솔로기간)

    (6h7q81)

  • Ah몰랑몰랑 2017/11/09 18:58

    20대를 떠나 보내면서 깨달은 건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철저하게 손익계산 다 맞춰서 대해야 하는 법이더군요.
    자기가 손해를 조금 볼지라도, 상대방이 손해는 절대 안 보게 계산서를 맞춰 줘야 되며
    결정적으로 상대방도 결국 자신과 똑같은 스탠스를 취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감정 욱하는 게 있더라도 그걸 다 논리로 풀어서 말해야만 감정적 싸움을 피할 수 있고요.
    사람이 만나는 건 운명일 수 있지만, 그 만난 사람과 계속 이어가는 건 위에 설명된 대로 내쉬 균형이였어요.
    먼저 배신하지 않기, 그리고 그를 위한 철두철미한 감정 관리가 장기적 관계를 이어나가는 핵심이었습니다.
    항상 그렇게 지금 여자친구를 대해 온 입장에서 공감이 많이 가네요.
    (장거리연애 9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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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똘이형 2017/11/09 19:00

    있어야 뭘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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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ren 2017/11/09 19:03

    저도 연애초에 작성자님이랑 비슷했는데 남친님이 하해와같은 아량으로 봐줘서 한 반년만에 제성격이 고쳐졌어요 스스로 반성도 많이하구 지금은 더질하려고해요 근데 남친도 제 영향을 받아서인지 초기엔 무뚝뚝하고 표현도 잘 못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귀척과 능글한 말투가 넘나 익숙해진.. 들었다놨다하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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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오베상주녀 2017/11/09 19:04

    먼저 애인이 있냐고 물어보는게!!!!! 으아앙아 와장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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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머해영 2017/11/09 19:15

    2년까지는 괜찮아요... 몇년 더 지나보심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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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심한체대생 2017/11/09 19:16

    저희랑 비슷한 커플이시네요 제 여친이 글쓴님이랑 비슷합니다. 남자 편에서 보자면 간단합니다. 그 사람은 알거든요 제가 사랑해주는 모든 것을.
    제가 보내는 사랑을 감사히 여기고 내가 너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걸 알기때문에 전 더 희생하고 사랑해줍니다. 그걸 모른다면 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 사랑할 자격도 없습니다. 그저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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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벤젖소 2017/11/09 19:25

    많이 공감가는 내용이네요 핵심을 잘 으시는 듯 ㅋ
    비포 미드나잇이라는 영화에서 할아버지한테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해 물어보는 장면이 있는데  첫마디가 이거죠
    "우린 한번도 하나였던 적이 없었어 항상 같이 있는 둘이 되길 원했지 "
    그 장면이 생각나네요ㅋ 작성자님이 현명하신 분인듯해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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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꾸뀨까꺄 2017/11/09 19:35

    저는 모든것에 당연하지않고 고마워하기?
    제가 조금 표정 안좋은거 보고 남친이 몸이 안좋아? 하길래 알아줘서 고마워, 티내서 미안해 하면서 안기거나
    데려다줘서 고마워,
    바쁜데 나만나러 와줘서 고마워,
    피곤할텐데 이시간까지 나랑 통화해줘서 고마워 역시 여보가 최고야!!
    등등ㅋㅋㅋ항상 고마워 사랑해 네가최고야!! 했더니 싸울일도 없고 오히려 남친도 저에게 매번 표현하려하고, 기분 안좋은일 등등 캐치해내고 혼자 엄청 뿌듯뿌듯해함ㅋㅋㅋ
    지금은 6년연애끝에 남편으로 전직했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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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슨닉무슨닉 2017/11/09 19:48

    저기요!!
    애인이 없으면 애인과 다툴 일이 저-------------얼대 없습니다!!!
    애인과 헤어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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