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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남의 일상과 음악 그리고 완결

 
 
 
쓸 말이 없었다. 할 말도 없었고 나의 하루는 완전한 원이 되어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였다.
그래서 완전해진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나 - 여기서 나는, ~살았다 에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
속에서 울컥울컥 올라오는 알 수 없는 기분은 내가 잊으려고 애 쓸 때마다 자꾸만 올라왔다.
어떤때에는, 그것이 사랑이 되기도 했다. 어떤때에는 미움이 되기도 했고 즐거운 추억이나 슬픈 기억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즐거운 생각이나 슬픈 생각이 들 때면 여지없이 눈물이 차올라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술이 그것을 해결해 준다고 생각했다. 술을 마시면, 아무 슬픔 없이 잠들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속이 쓰렸다.
하루하루가 멍했다. 멀쩡한 기분으로 지내려고 해본들 술에 의지하면 할 수록 쌓여가는건 간암에 대한 두려움과
100원짜리 빈 병뿐이였다. 그래서 이제는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점심을 조금 넘은 시간이다. 일을 거의 마치고 나는 회사로 복귀하기 위해 다시 차에 올랐다.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 를 들으며 운전대를 잡는다. 원래의 발음은 잘 모르겠다.
방금 전까지 노바소닉의 '진달래꽃'을 들었던 주제에 잘도 감상에 빠져든다. 초등학교때 어머니가 가져온 팝송 시디에 들어있던
영어번안곡을 듣고, 잘 되지도 않는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음악이다. 오랜시간 내 감성을 자극해 온 그 노래는 성인이 되고 30 중반에
이르는 지금에서도 나의 사랑을 받고 있다.
 
 
푸른 하늘이 우리들 위로 무너진다 해도
 
모든 대지가 허물어진다 해도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신다면
그런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사랑이 매일 아침 내 마음에 넘쳐 흐르고
내 몸이 당신의 손 아래서 떨고 있는 한
세상 모든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당신의 사랑이 있는 한
내게는 대단한 일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만약 당신이 나를 원하신다면
세상 끝까지라도 가겠어요
 
 
사랑은 위대한 것.
많은것을 포기하고 인내하고 참게 만든다.
그리고 나를 변화시킨다. 나라는 꽃은 완전히 다른 이름의 식물이 된다.
나를 포기하는 과정에서의 그 잡음들은 병충해와 같지만 그것을 이겨냈을 때 나는 좀 더 생존력이 강한 꽃이 된다.
전보다 아름답지는 않을 수도 있으나, 비바람이 불어도 꺾이지 않는 꽃이 된다. 누군가 나를 보고 꺾으려 한다면, 가시나
독으로 괴롭힐 수도 있게 된다. 하나, 나를 찾아오는 나비와 벌에게 만큼은 언제나 따스한 쉼터가 될 것이라.
 
성공을 하고, 수많은 연인들을 만나 죽기 직전에 마침내 진정한 사랑을 만났지만, 진정한 사랑을 꽃피우기도 전에 죽어버린
불운의 여가수. 아니 그녀는 평생 자신의 반쪽을 찾아 사랑의 여행을 했으니 행복했던 것일까? 그녀는 어땠을까. 갈색 바람이
창문을 타고 들어온다. 리미트인 90키로에 가까운 속도지만 바람도 속도도 느껴지지 않는다. 퀸의 'don`t stop me now' 를 들을
때보다 진한 쾌감이 온몸을 파고든다. 담배연기가 상쾌하다. 산 정상부터 붉게 물들어 오는 안녕의 가을이여 환영의 초겨울이여.
 
수없이 많이 겪었던 계절이여 앞으로도 겪을 계절이여 반복이고 불행하고 슬프고 나는 또 웃을 것이다. 또 울 것이다.
낮의 갈색 바람이 부웅- 하고 큰 소리를 낸다. 꿈에서 깰 시간이야. 커다란 소리와 함께 다가온 바람은 속삭임을 남기고 저 멀리로
사라졌다. 잘가. 내 처음이자 마지막 갈색바람.
 
 
 
나는 인내하지도 참지도 못했다.
그래서 완전한 새로운... 꽃이 되지 못했다. 여전히 병약하고 잘 꺾이고 비바람에 잘 흔들린다.
꿈에서 깨었을 때 초라한 나의 모습이 전면에 비춰졌다. 초췌한 눈이 백미러에 들어오자 눈물이 났다.
나는 항상 생기있다고 생각했다. 그런것 쯤,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제자리였고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그만 화가 나 버리고 말았다.
 
음악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듣는다. 듣는 순간만큼은 어떤 꿈에 빠져 초라한 내 자신을 잊을 수 있다.
마약과 같은 그 황홀함에 취해 후유증을 맞는대도...
가수의 생애와 나의 생, 그리고 노래가사와 멜로디. 모든것을 상상하는 것. 후유증을 감내할 만큼 좋은 진통제임이 틀림없다.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보건대 나는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이혼남의... 시리즈를 쓰지 않을 생각이다.
이제 더 쓸 말이 없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나는 완전한 원을 그리며 챗바퀴의 삶을 살 것이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은 지난 과거 내가 살아왔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며 평범한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남자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나의 글을 읽고 많은 응원과 충고를 보내주어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작가도 뭣도 아닌데 글을 올릴때마다 올려주시는 많은 댓글에 힘을 얻고 팁을 얻어가고 그럴때마다 감사인사를 남겼다.
마지막에 굳이 음악 이야기를 쓴 것은 그냥...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음악 이야기였을 뿐이다.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 준비는 다 마쳤다. 가끔 내가 살던 과거가 그리워 질 지라도 되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다 챙겼니? 응. 이건 놓고가고... 이건... 가져가고...
왜냐하면 사실은,
 
 
 
 
 
 
 
보고싶어.
 
아직까지는.
 
댓글
  • 딸들사랑해 2017/11/07 22:47

    그 마음 이해합니다.
    어쨋든 내가 선택해서 살을 부비며 살아 온 세월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거 아닙니다.
    다른 곳에 신경을 쓰세요.
    취미생활이나 운동, 친교활동 등등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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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귤먹는곰돌이 2017/11/07 22:49

    결혼은 아니지만... 최근 이별한 내 모습을 보는 듯 해서 잘 봤고, 놀랍도록 같은 의식의 흐름에 어느 새 글을 기다리며 마음으로나마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마음 한켠이 아리지만... 행복합시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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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랑안놀아 2017/11/07 22:49

    결혼도이혼도하지않은내가
    님글을읽으며울컥할때마다
    나도이별했구나를실감해요.
    나이도이별의시기도
    기간도상관없이
    이별은누구에게나아픈것인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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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랑빠 2017/11/07 23:40

    마지막
    보고싶어
    아직까지는..
    그래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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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블고물린 2017/11/07 23:58

    잘 봤습니다.
    그래도 글은 계속 쓰셔고 좋을 것 같습니다.
    와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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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쿨 2017/11/08 01:55

    그래서...킹크림슨의 epitaph나 빅트로 초이의 오래된 곡들을 듣다가 나중엔 하루 종일 빗소리나 파도소리가 녹음된 파일을 계속 연속재생하죠.
    글은 에세이처럼 계속 쓰세요.
    치유던 기분전환이던 취미던 말이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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