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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남편의 옛 여자의 집착

" 으이구, 얼른 갔다 와! "

남편이 지갑을 가지러 주차장으로 돌아가고, 홍혜화는 유모차의 아이와 함께 마트 입구에서 기다렸다.
혹시 주머니에 카트용 100원짜리가 있나 확인해보려던 그때, 한 여인이 웃으며 다가왔다.

" 어머~ 아기가 너무 이쁘다. "
" 감사합니다. "

아이 칭찬에 안 웃을 수 없는 홍혜화. 상대를 살펴보자 어딘가 좀 초췌한 여인이었다.

" 정말 행복하겠다. "

여인의 말투가 메마르다. 홍혜화가 조금 경계심이 생기려는 그때, 여인의 입에서 남편의 이름이 나왔다.

" 애가 치열이 닮았네. "
" 아? 아! 우리 남편을 아세요? "
" 그럼요. 잘 알죠. 요즘 연극 주연 준비 중이라면서요? 소문을 신경 써야겠어요. "

여인은 웃으며 말했지만, 홍혜화는 왠지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표정을 굳히는 여인.

" 행복하시죠? 부러워요. 나는 불행하거든요. 원래라면 내가 행복했어야 했는데... "
" 네...? "
" ... "

여인은 말없이 홍혜화를 노려보다가 쪽지 하나를 쥐여주고 떠났다.
당황한 홍혜화가 쪽지를 확인해보자, 인터넷 주소가 하나 있었다.
 
" 뭐야 이 주소는...싸이월드? "

홍혜화는 남편이 돌아오는 게 보이자 황급히 쪽지를 주머니에 숨겼다. 왠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
.
.

남편이 잠든 뒤, 홍혜화는 쪽지의 주소로 접속했다.

" 세상에 싸이월드가 아직도 있네.. "

기억에 남아있던 인터페이스와 배경음악 눈의 꽃. 추억에 잠길 정도였다. 그 내용만 아니라면 말이다.
주소의 미니홈피에는 남편과 그 여자의 옛날 사진이 있었다. 

" 오빠가 옛날에 사귀었던 여자...? "

마지막 게시물 날짜가 무려 8년 전이었다. 8년 전에 남편과 사귀었던 여자가, 왜 이제 나타나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이런 사이트 주소를 알려준 이유가 뭘까?
홍혜화는 딱딱한 얼굴로 게시물을 좀 뒤져보았다. 한데 그때,

" 어? "

갑자기 새 게시물들이 빠른 속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남편과 여자가 다정하게 찍은 사진, 손깍지를 낀 사진, 포옹을 하고 있는 사진 등등.

" 뭐야 이거? "

홍혜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가 접속할 때까지 계속 대기하다가, 방문자 수를 보고 바로 게시물을 올린 거란 말인가? 
약간은 소름 끼치게 기분이 나빴다.

댓글이라도 달아볼까 하다가 그냥 꺼버리는 홍혜화.
그냥 무시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인터넷 관종이나 악플러의 대응법이 으레 그렇듯.

다만 궁금했다. 그 여자의 목적이 뭘까? 옛날 연애 이야기로 부부싸움이라도 일으키려는 걸까?
홍혜화는 이 일에 대해선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넘어갔다. 인생 첫 주연으로 바쁜 남편이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베란다에 빨래를 널려던 홍혜화는 "꺅" 작게 비명을 질렀다.

" 뭐,뭐야? "

골목에 그 여자가 가만히 서서 홍혜화의 집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미소짓는 여인. 
홍혜화는 소름이 돋았다. 집을 안다는 것, 감시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었다.

여인은 보란 듯이 쪽지를 든 손을 흔들더니, 바로 옆 주차된 차 앞 유리에 쪽지를 꽂아두고 떠났다.
잘게 떨던 홍혜화는 안 내려갈 수가 없었다.
긴장하고 내려가 쪽지를 확인하는 홍혜화.

" 또 주소야...? "

홍혜화는 집으로 돌아가 쪽지의 사이트에 접속했다.

" 블로그... "

주소에는 방문자도 없는 유령 블로그가 하나 있었다.
그 내용은 남편과 데이트를 했던 식당의 사진이나 여행지에 대한 것들이었다. 
마지막 게시물이 올라왔던 날짜를 확인해보니 4년 전이었다. 

" 4년 전이면...? "

남편을 만난 게 3년 전이었다. 그 1년 전까지도 만나던 여자였다니? 그럼 남편은 그 여자랑 얼마나 오래 만난 건가?
조금 찜찜해진 홍혜화가 게시물을 뒤져보던 그때,

" 아! "

또 새로운 게시물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 미친! "

남편과 그녀가 키스를 하는 사진, 클럽에서 찍은 사진, 모텔 침대에 누워서 찍은 사진, 야하게 포즈를 잡고 찍은 사진 등등.
수위 높은 사진에 홍혜화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 이 여자 도대체 뭐야?! "

그냥 넘길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벗어났다.
상상하면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집을 알고 찾아온 거나, 과거의 연애가 담긴 블로그를 보여주는 거나. 
그리고 또 내가 언제 사이트에 접속할 줄 알고 계속 기다리다가 바로 사진을 올린단 말인가? 다른 일은 하지도 않고 오직 그것에만 매달려있었을 그녀를 생각하면 너무 소름 끼친다.

홍혜화는 남편이 오자마자 블로그를 보여주며 모든 걸 알렸다.

" 헐! 이 미친! "

경악한 남편은, 먼저 강하게 부인했다.

" 나 진짜 최근에 만난 적도 없고, 생각한 적 자체도 없어! 4년 전에 헤어진 이후로 소식도 모르는 사이야! "
" 근데 왜 갑자기 나타나서 그러냐고?! "
" 몰라! 집착이 심했어 원래! "

둘은 고민했다. 경찰에 신고하자니 법에 걸릴만한 행위를 한 것도 없었다. 그리고 연극 첫 주연으로 중요한 시기에 시끄러워지는 것도 껄끄러웠다.
홍혜화는 그냥, 짜증이 폭발했다.

" 아 내가 행복해서 부럽대! 뭐 어쩌라는 거야?! "
" 아나 미치겠네 진짜! 도대체 무슨 목적이야? "

둘은 이렇다 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음에 또 찾아오면 그때 남편이든 경찰이든 바로 연락하기로 했다.
블로그의 사진 때문인지, 남편은 내내 저자세였다. 
홍혜화도 퉁명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지난 일이라지만, 키스나 모텔 침대나 그런 사진들을 보는 건 기분이 너무 더러웠다.

그녀의 목적이 이것이었을까? 며칠간 저기압이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날, 집 앞에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서던 홍혜화는 "꺅!" 깜짝 놀랐다!
그녀가 서 있었던 것이다.

" 사진 잘 봤어요? "

그녀를 만나면 욕설을 내뱉으며 강하게 나갈 마음을 먹었던 홍혜화였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너무 무서웠다. 
그녀가 한 걸음씩 다가오자, 겨우 입을 여는 홍혜화.

" 미, 미친 여자야! 당신 목적이 뭐야?! 왜 이러는 건데?! "

그녀는 싱긋 웃더니 손을 들어 올렸다. 쪽지가 들려있는 손. 

" 나만 불행하기는 억울하잖아요? "

그녀는 손을 놓았다. 쪽지가 땅으로 떨어지고, 돌아선 그녀가 미련 없이 떠났다.
마치 선택은 홍혜화에게 맡긴다는 듯이.

" ... "

홍혜화는 갈등했다. 
저 쪽지를 확인한다면 분명 후회하게 될 거란 확신과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강하게 부딪혔다.

그녀는 현명하게 대처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이런 일은 악플과 똑같다. 그냥 무시하는 게 정답이다.
애써 쪽지를 외면하며 집으로 걸어가는 홍혜화. 한데,

" 아! "

쪽지가 바람에 날려가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이 뻗고 말았다.

" ... "

인상을 찌푸린 홍혜화는 결국, 쪽지를 주워들었다. 그곳에 적힌 주소를 바라보는 그녀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도착한 홍혜화는 곧바로 컴퓨터를 켰다.
한자씩 주소창에 쪽지의 주소를 적은 뒤 엔터를 누르자,

" ! "

남편과 그녀의 O스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얼른 영상을 꺼버리는 홍혜화! 
후회했다. 역시 보지 말았어야 했다. 속이 매스꺼울 정도로 기분이 더러웠다.

" 이, 이 미친것들이! "

욕설을 내뱉던 홍혜화는, 그 여자가 이 동영상을 보여준 목적이 떠올랐다.
남편이 지금 어렵게 연극 주연을 따냈는데, 이 O스 동영상이 퍼진다면? 그보다 더한 협박이 어디 있겠는가!

홍혜화는 당장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시에 컴퓨터의 소리를 줄이고 사이트에 다시 접속했다. 남편의 얼굴이 자세하게 나오는지 확인해야 했다.
영상을 보며 인상을 찡그린 홍혜화는 남편이 받자마자 쏘아붙였다.

" 어! 오빠, 진짜 미쳤어? 오빠 도대체 무슨 연애를 어떻게-, "

소리치던 홍혜화는 순간, 두 눈이 흔들리며 말문을 잃었다. 
왜 동영상이 올라온 날짜가 4년 전일까? 

[ 왜? 무슨 일인데? 걔가 또 찾아왔어?! ]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홍혜화가 떨리는 입술로 물었다.

" 오빠 쓰는 아이디가...skychi10 맞아? "

[ 어? 어 맞아. 근데 왜? ]

" ... "

홍혜화는 핸드폰을 끊었다. 순간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행복하냐고. 나는 불행하다고.

이제 곧, 그녀 혼자만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댓글
  • 복날은간다 2017/11/04 01:31

    솔직히 말하면, 이 이야기는 며칠 전에 올렸던 그것들과 같이 썼던 건데. 너무 똑같고 또 뻔해서 그냥 안 올리고 묵힌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뭐 그다지 위대한 작품활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란 생각에 그냥 막 올려요 흐하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이야기 하나! 홍혜화의 이름은 혜화역을 떠올리고 지었는데, 앞에 홍을 붙인 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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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게덕후 2017/11/04 01:39

    세상에 첫 추천의 영광이라니!!
    일단 선추천하고 읽어야겠어요~~
    매일 소설이 올라와서 신나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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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채호빵! 2017/11/04 01:41

    skychi10... 공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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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고파파 2017/11/04 01:45

    흐으으으으음 이번 글은 무슨뜻인지 모르겠어요 ㅠㅠㅠ...
    동영상의 날짜가 4년 전이면 그 여자를 만나고 있을때이니 문제 없는거 아닌가요??
    아이디는 뭐지 ㅠㅠㅠ 영상을 남편이 올린건가? 으어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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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지지자 2017/11/04 02:08

    남편의 아이디가
    헤어질때쯤 전 여친과의 관계영상을 인터넷에 올려서 전여친을 사회적으로 매장시켰네요
    항상 즐겁게 보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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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게덕후 2017/11/04 02:18

    아... 전여친이랑 그런 비디오를 찍어서 저렇게 아무나 주소를 치면 볼 수 있는 사이트에 올렸던 거네요 남편이...
    날짜가 4년 전인 걸 보고 저 전여친이 홍혜화를 대기하다 올린 게 아니라 남편이 그 여자랑 헤어질 무렵에 올렸다는 걸 알게 된 듯.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면서 홍혜화한테 자꾸 과거를 보여주는 전여친이 소름이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더 소름이네요. ㄷㄷ
    남편이 그런 사람인 걸 알게 됨으로써 불행해진 건지 그나마 알게돼서 다행이라 해야 되는 건지;;
    암튼 오늘도 역시 소름 결말ㄷㄷ 소재나 분위기가 비슷하다 하셔도 매번 결말은 신선해요!! 오늘도 재미있는 이야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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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게덕후 2017/11/04 02:33


    참, 복날님 소설이 다른 곳에 스크랩 돼서도 반응이 폭발적이길래 혼자 보기 아까워서 가져와 봤어요.
    이미 아실 수도 있지만..^^;
    사실 저도 저 커뮤니티 공포 게시판에서 복날님 소설 몇 편 보고 넘 재밌길래 여기 와서 정주행 한 건데ㅋㅋ 저기서도 인기 많으시더라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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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쁘면다야 2017/11/04 05:51

    리벤지 포르O로 인해 자살하는 피해자들이
    있음을 생각한다면,
    그 동안 전여친은 얼마나 끔찍한
    고통속에 살아왔을까요.
    홍혜화도 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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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탕살인마 2017/11/04 07:34

    아우ㅠㅠ소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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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록라임민트 2017/11/04 08:15

    아... 정말이지 리벤지포르O 피해자분들 생각하니 가슴아프고 무섭네요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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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발론랜딩 2017/11/04 08:24

    섬뜩한건 전 여친이 아니라 남편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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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쵸코냥이 2017/11/04 15:32

    ㅜㅜ 뭔 추천만 누르면 조작이 의심된다고 뜨냐고
    ㅜㅜ 벌써 세번이나 나갔다 들어와서 눌러도 안되넹
    이러니 추천누르기가 힘들어짐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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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방구향기로와 2017/11/06 02:50

    싸이월드에서 새 게시물들이 빠르게 올라온 건 어떤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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