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비를 선택했는가?"
정사 기록 = 유비가 제갈량을 3번 만나 설득해 제갈량을 얻었다.
제갈량이 왜 유비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데
이유는 아래와 같음
- 제갈량은 유비에게 등용되기 전부터 형주에서 꽤 유명한 인물이었음
- 제갈량의 형인 제갈근은 오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갈 수도 있었음
- 당시 형주자사였던 유표는 막장으로 유명했지만 유비보다는 훨씬 상황이 좋았던 인물이었음
- 유비는 제갈량을 얻을 당시에도 떠돌이 신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상황이었음
아쉽게도 제갈량이 유비의 어떤 점을 보고 선택했는지에 대한 정보는 존재하지 않음
P.S : 일본 소설가 "진순신"은 서주대학살로 인해서
제갈량이 조조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설을 믿었다고 함
침착맨이 그러는데 조조군 면접 망하고 배고파서 그랬다더라
두번 피했지만 세번째 유비에게 걸려서 진실의방 들어감
유비한테 맞을까봐 따라갔겠지
자기 몸값 제일 높일수 있는게 유비세력이어서 아닌가
유비가 매력100이라 그렇지
유비가 매력100이라 그렇지
유비한테 맞을까봐 따라갔겠지
유관장 맏이가 괜히 유비가 아니다.
유비고른건 인덕 떄문 아니였어?
침착맨이 그러는데 조조군 면접 망하고 배고파서 그랬다더라
그럼 오나라 가서 형이랑 해먹지 길거리 거렁뱅이를 쫓아가냐
제갈근: 인사 넉하산을 요세 하기가 좀 그래 미안 량아 ㅋ 요세 감사가 빡셔
근데 당시에는 다 낙하산이었음
누구의 소개로 누구의 소개로...
그래서 삼국지 게임할때도 보면 애들을 시험으로 뽑는게 아니라 탐색해서 뽑음. 뽑을때 잘찾는 애가 있고 못찾는 애가 있는데 결국 다 인맥빨이라는 소리
악진같은 애들이 특이한거지
이말년 씨리즈 내용얘기하는건데 왜 진지해져
이말년이 삼국지 좋아해서 제갈량 소재로 그린적 있음
위군과 오군은 토익이 후달려서 못갔다더라...
영걸전 할때는 그러던데
진짜로 그렇게 유명하면 왜 아무도 모르냐고
언더그라운드 특징인데 서로 물고빨고 하면서 다른사람 디스하는게 흔히 보이는 일이라
수경크루원들이 서로 칭찬하고 그랬다더라
수경크루장이 그래도 취직은 시켜야되니까 뿅뿅소기업 유비한테가서 입털어서 보낸거라고 하던데
ㅇㄱㄹㅇ
엄백호 군도 토익 본다고 함
알어 이말년이 삼국지 좋아하는건
만약 면접 떨어진거면 형 낙하산이 더 좋았을텐데 이런거지
이런설도 있더라
한명이 일이 잘못되면 연좌제로 친족도 같이 화를 당할 수 있어서 씨 마를까봐 여기저기 흩어져서 임관한다는
두번 피했지만 세번째 유비에게 걸려서 진실의방 들어감
자기 몸값 제일 높일수 있는게 유비세력이어서 아닌가
나도 이거같음...
이미 딴 데는 박힌 돌이 세를 잡고 있음.
그런거치곤 객관적으로 보면 유비세력이 없다시피 햇으니깐 몸값이나 자리에 대한 향후 개런티가 불확실한거 아닌가?
유비 꼬추가 커서 크게될놈이다 생각했나보지
유비한테 처맞고 들어갔는지, 얼굴 보고 꼴렸는지
제갈량 일기라도 발견되지 않는한 아무도 모르지
귀큰놈이 pv는 잘만듬
문관 고인물이 없는 동네가 유비뿐이라서?
조조는 개인적으로 별로였겠고 유비한테가면 제갈량한테 무조건 잘해줄수 밖에 없지않나
장비랑 관우가 옆에있는데 거절하면 뭔일있을까봐 들어왔다는설이 유력하지않음?
쌍칼 휘두르는 그 팔뚝을 생각해보면
마동석 같은 녀석이 오라는데 안갈 수 있나
마동석 같은놈이 셋이 처들어 온거지 ㅋㅋㅋ
이게 가장 그럴듯한데
2번이나 도망갔지만 3번은 못 피했지...
야.
네..네!!
몇번째지?
세번째입니다!
가자
네.....
제갈량 은(는) 유비군의 군사가 되었습니다
그냥 중2병에 걸려서 가장약한놈으로 시작해서 끝발날리겠다는 생각아니었을까?
그럼 엄백호군에 가야지
엄백호는 이미 없었을거같은데
그때는 엄백호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엄백호는 진작에 리타이어
제갈량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인물이긴 한데
자기 스스로 우주제일 천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음.
쪼랩이지만 인망이 두터운 패왕유비를 왕으로 만드는 킹메이커가 되리라 다짐하고 유비 밑으로 갔을지도 모름. 근데 의외로 고집쟁이라서 계책 만드는 재미때문에 더욱 붙어있다가 매력에 푹빠져서 정들어서 영원히 모신건 아닐까?
나도 어릴때는 그냥 인품에 탄복했다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었는데
나이들고 보니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더라.
뭔가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사람이라
자기 개인으로서의 한계를 알고 그걸 대신 행해줄, 말하자면 매개체를 찾는데
조조는 자기를 유비만큼 우대해줄 것 같지 않고(물론 서주대학살이나 기타 인품 문제도 있고)
잘해봐야 대우 좀 받는 작전과장 정도였다면
유비는 3번이나 온 거 보니 일단 거의 2인자 자리는 확실하겠다 싶어서
자기가 그리던 그림에 가까워질 거 같아서 간 느낌.
저 전란의 시대에 인품이 있는 장수가 귀하기도 하지만, 그런 시대인만큼 인품 하나만 보고 갔다기에는 너무 동화스러움.
삼고초려 자체가 소설이잔음
유비가 제갈 찾아간게 아니라 제갈이 유비 찾아가서 등용 좀 해줍쇼 해서 된거지.
삼고초려 정사에도 있는 내용인데
제갈량이 출사표 내면서 직접 삼고지례를 언급했었죠. 소설은 아닙니다.
삼고초려가 소설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잘 못 알고 있었구나;
마음씨 좋은 군주에게 인간적 매력을 느꼇겠지.
??? : 제갈량인지 양아친지 당장 튀어나와.
오에 가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주유때문일수도 있고
위에 가지않은 이유는 대학살때문일거고
유비에게 간 이유는 정확히는 모르나 군주가 될 자가 직접 찾아가 설득했다는점 아무리 홀대게 대해도 인내있게 참고 다시 찾아왔던점?
아마 인성을 중요시했다는점이겠지
나도 서주대학살설을 지지하는 쪽.
유표는 애당초 형주의 자기세력을 보존할 생각만 했고, 손권은 딱히 조조와 척을 질 생각도 없고 항복할 생각도 많았지. 당시 조조는 일단은 한 황실의 신하였으니까.
조조와 상대를 할만한 세력은 유비말고는 없었으니까...적벽대전도 유비세력이 없었다면 조조에게 항복하고 끝났을거라고 생각함.
제갈량이 10대에 본게 강을 막을 정도의 시체라면 충분히 미래를 결정할 이유가 된다고 생각함.
조조나 손권은 참모진이 두툼해서 텃세 부릴까봐?
중국에서 유학할때 몇번 들엇던 썰중 하나가 유비랑 제갈량이랑 막판 사이가 더럽게 안좋았단거임.
초반에 첨만나고 나라 키울때는 제갈량이 진짜 킹메이커 한번 해본다고 촉을 키워냇다고 보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나라 키워낸 자기의견보단 감정적인 지 의견으로 밀어붙여서 말짱낸게 한두건이 아닌지라 말년에 사이는 최악이였다는거임.
유비가 죽기전에 제갈량불러서 유선 부탁한다고 말한것도, 니가 앉을생각 처 말고 주변에 사람있는대서 보좌나 하라고 말뚝박은거라던데 흥미로운썰이엿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함...이릉말고는 모든 내치를 제갈량이 통괄하게 했는데, 이릉 하나만 보고 그러는건..
유비가 뒤에 관우랑 장비 세우고 왔는데 거절을 할 수 있었겠냐
제갈근이 있는 손권 쪽만이 아니어도 애초에 유표부터가 제갈량과 인척관계로 얽힘.
큰 딸은 황승언(黃承彦)의 처가 되었으며 작은 딸은 유경승(劉景升)의 둘째 부인이 되었는데 이들은 채모의 누님이었다.
<양양기구기>
괴흠(蒯钦)은 할아버지 괴기(蒯祺)의 아내를 모셨는데 이가 곧 제갈량의 큰 누나이다.
<양양기구기>
그의 아들 방산민(龐山民)에게도 대단한 명성이 있었는데, 제갈공명의 누이를 취하여 아내로 삼았다.
<양양기구기>
황승언?
잘난사장 밑에 들어가서 딱가리짓 하는거보다 못난사장 머리위에 서서 쥐락펴락 하는게 더 좋아서겠지.
제갈량이 보수 꼴통이라 그럼.
광무제가 전한 이후 후한을 중흥시켰던 것처럼 400년 한실을 부흥시키고 싶었기 때문에 조조나 손권처럼 자기가 새로 왕실을 세울려고 하는 세력에 들어가지 않음.
그러므로 그런 목적을 달성하려면 정통성 있는 한실의 종친(유씨들) 밑으로 들어가야 됨.
근데 세력이 남아있는 종친 중에 유표는 노쇠해서 자기 땅 지키는 생각만 할 뿐더러 외척인 채씨 집안에 내정이 완전히 먹힘.
유장도 비슷한 인물.
결국 그나마 패기도 있고 전국구급 명성도 가지고 있는 유비한테 갈 수 밖에 없었음.
자만맨 관우와 알콜릭 장비만 없었어도 제갈량이 삼분지세 이뤘을텐데
그 둘 없었으면 저때까지 유비가 살지도 못했겠지
삼고초려할 때 어깨맨들 관우랑 장비 데려갔잖어
제갈량 최고의 업적은 만두를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