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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팔리기 시작한다.

내가 졸업을 언제했더라. 아무튼 올해가 사년째.


허생도 아니지만 처음에는 대충 십 년을 잡아보았다. 십 년쯤 해보고 안 되면.

안 되면. 그 때 가서 생각하기로.




화두는 한 개였는데

나는 도무지,

글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인간인 모양이다

쓰지 않고서야 배겨낼 도리가 없으니

그러니 쓸 수밖에




장르를 가리지 않겠다는 것은 오랜 다짐이다.

신문사 신춘문예고 각종 장르소설 공모전이고 열심히 내 보았다.

실패라면야 쓴맛이 날지도 모르지만. 나는 쓴 잔을 마신 적이 없다.

계단을 밟는 것이 힘들었다면 진작에 1층에 집을 얻었을 것이다.

1층은 모기가 많이 들고 외풍이 세다.

게다가 난 계단 오르는 행위 자체에 기쁨과 쾌락을 느끼는 인간이었다.




아무튼 생활의 궁핍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궁핍이라.

그런 식으로 표현하면 뭔가 괴상한 개념으로 뒤바뀐다. 넘버쓰리를 보면 젊은 송강호가 헝그리 정신을 외친다.

자기가 무엇을 외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매우 잘 표현했다.

내가 무엇을 쓰는지 모른다면. 쓰는 것에 과연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나는 별로 궁핍한 적도 없다.

우리나라는 무척이나 살기 좋은 나라여서. 생필품이나 식료품을 상당히, 상당히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해보다가 안되겠다 싶으면 일을 하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예전에는 이런 저런 일도 많이 해봤다. 별로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지,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시시때때로 나에게 술과 고기를 먹였다.




아무렇든 간에 소설이 팔리기 시작한다. 심지어 제법 잘 팔린다.

나는 어머니 손을 붙잡고 양장피와 아구찜과 소고기 찌개와 새우를 먹었다.

어머니는 대단히 기뻐하셨다. 기뻐하시길 바랐기 때문에 한 일이었지만.

글쎄.

먹는다는 행위는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파리만 날리던 거미줄 친 통장 잔고에

가뭄 단비처럼 원고료가 입금되던 날의 마음을 기억한다

뜻밖에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동안 입버릇처럼.

나는 그저 앞서 걸어갈 뿐이고

돈은 자연스럽게 뒤따라 올 예정이라고,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별로 그걸 바란 적도 없다고 말해왔다

그 말이 허공에 뜬 깃털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한 말이 곧 나였다는 것을.




어쨌거나

판타지 소설이 팔리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적당히 써서

적당히 이어쓰고 있는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이 팔리는 것을 보니

기뻤다.




아무렇지 않은 것은 계좌의 잔고 부분이고

기쁜 것은 아주 분명한 기쁨의 부분이다

올곧이, 여실히, 제대로 기쁨을 느끼며

그간 나에게 술과 고기를 잔뜩 먹인 친구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알렸다.

그날 우리는 또 술과 고기를 잔뜩 먹었다.

기쁜 일이다.




이것저것 쓰며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

현대인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 필요하다는 칼럼을 본 적이 있는데

난 어느결에 거기에 다가가고 있는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나 가볍게 운동을 하고, 유튜브를 보며 두어 시간 동안 식사를 하고, 두어 시간 정도 일을 하고

게임을 하거나 술을 마신다

고양이와 논다


고양이와 더 자주 놀아줘야겠다. 원고료를 받아 레이저 포인트를 샀다.




그런 것은 수정할 수 있는 픽션에 불과하다.

친구가 읽는 책은 나에게 옮는다. 친구의 철학이 옮는 것처럼.

나는 많은 것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나를 잘 잃지 않는다

여간해서는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가끔 고양이에게 빽 소리를 지를 때가 있다

생각해보니 꽤 빈번했던 것 같다

반성할 일이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소설이 팔린다

다음달에는 카카오페이지에서 아마도 제법 큰 금액을 보내줄 것 같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 좀 더 많을 것도 같고

그 때도 아무렇지 않다면

혹은 아무렇더라도

또 어떨 것인가

밥 지어 먹고 고양이와 노닥거리며 글을 쓸 수밖에

달리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글이 영원히 팔리지 않았더라도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뭐 대수랴




이렇든 저렇든

삶은 참 예쁘다

글이 팔려서 예쁜 게 아니라

원래 예뻤다.

하지만 돈이 좀 생기니까

더 예뻐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식의 착각이 종종 든다

착각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댓글
  • 레콜이 2017/10/27 01:48

    너무 좋은 담담함. 근 몇 년간 이렇게 즐거운 기분 드는 글이 있었나싶을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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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인석 2017/10/27 05:37

    쓰신 글 알려 주시면 안되나요?
    꼭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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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메넬 2017/10/27 07:40

    전쟁이 계획대로 풀리면 승리가 당연하듯
    인생이 문제없이 풀리면 그만한 게 없는 법이죠
    앞으로도 문제만 없이 개선만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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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울성게 2017/10/27 10:21

    추천 잘 안 쓰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두 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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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울성게 2017/10/27 10:21

    물론 선의의 거짓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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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기노루 2017/10/27 11:30

    축하드려요!! 넘 멋지시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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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늉뮹늉뮹 2017/10/27 13:28

    수필 한 편 읽은 느낌이네요.
    하시는 일 잘 풀리셨다니 다행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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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elody♪ 2017/10/27 13:45

    읽는 사람까지도 흐뭇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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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레멘음악대 2017/10/27 13:46

    소설이 왜 팔리는지 알 것 같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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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블리오 2017/10/27 13:47

    뭔가 잔잔한 미소가지어지네요^^ 혹시 쓰시는 글 제목을알수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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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맞아아니야 2017/10/27 13:47

    담담한 기쁨 잘 읽었습니다.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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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우꽃등심 2017/10/27 13:53

    축하드려요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그나저나 어떤 작품인지 넘 궁금해여 힌트라도 좀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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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소소 2017/10/27 14:01

    노란페이지에서 좀 될거 같다 싶으면 조건 잘 잡아서 데려간다 하더라구요. 모 소설사이트에서도 그렇게 연재처 옮기는 분들이 있으니.
    한길만 가시는 꾸준함이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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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졸리다힝 2017/10/27 14:03

    우스운 말이지만 마인드부터 이미 성공하셨네요. 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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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타쿠메이커 2017/10/27 14:16

    헐 최근 읽은 장문중 제일 빠져들어 읽었네요
    와이프가 무협 판타지 소설들은 책방에 있는건 다읽은 사람이라 와이프 추천해주게 제목좀 알려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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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되아니고돼 2017/10/27 14:17

    진짜 재밌다..... 원래부터 이 글은 재밌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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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사요 2017/10/27 14:27

    고양이(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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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늘봄이어라 2017/10/27 14:28

    뜻밖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구절이 참 와닿네요.
    저도 간절히 바라고 염원하던 일들이 이루어졌을 때
    오히려 마음은 담담하고 자연스러운 일인 양 느껴지더라구요.
    앞으로 좋은 글 많이 쓰시며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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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당히하자 2017/10/27 14:28

    레이져포인틐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을 새겨 내려가는게 범상치 않으십니다.
    허세나 작위가 아닌 뇌리에 스르륵 하고
    들어오는 느낌이네요...!
    성향도 타고나신것 같아요...소설 뭔지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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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 2017/10/27 14:33

    돈벌어서 소고기 사묵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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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미솜이 2017/10/27 14:33

    저도 카카페에서 연재중이에요 동지님ㅎㅎ 원고료 받아서 즐거운 시간 보내셔요 +_+// 저는 돈 받을람 아직 한달이나 더 기다려야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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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유목민 2017/10/27 14:38

    너무나 가슴에 닿는 글이네요. 저에게도 일상을 보낼 에너지를 주네요. 언제든 꺼내볼 수 있게 개인적으로 소장해도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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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맹이이 2017/10/27 14:38

    더 잘 되실거예요. 영감이 떠오르는 일도, 삶에 아주 쬐금 조미료가 되어 줄 원고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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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즈질러 2017/10/27 14:43

    우왕 난 언제 이렇게 담백하게 써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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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마닥 2017/10/27 14:56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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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고양이 2017/10/27 14:58

    글쓴님의 소설 읽어보고 싶어요.
    제목 알려주시면 안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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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제숨결 2017/10/27 14:59

    아이코 어제 새벽에 반쯤 취기에 쓴 글인데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장해주시면 영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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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법사 2017/10/27 15:06

    1층에 둥지를 튼 사람입니다.
    꿈은 5층 쯤에 있는 듯 했지만 나름 탄탄하고 안정적인 1층 생활인지라 불만은 없습니다.
    남이 만들어 준 글을 소비만 하는 인생으로 10년을 살았는데,
    이 생활도 크게 나쁘지 않은 거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지 못한 길을 걷는 분들은 항상 응원하고 싶습니다.
    화이팅입니다. 돈 많이 버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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