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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남의 새벽. 꿈. 새벽.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은 괴롭다.
잠을 잘 잘수 있게 되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는 한번 잠에서 깨면 쉽게 잠들지 못하고 그대로 밤을 지새는 일이 많다.
 
그녀 아니 그년... 그래. 그 망할년의 외도 이후 나에게 생긴 변화 중 하나다.
한번 잠들면 내 옆에서 슬립낫이 공연하더라도 일어나지 않는 수준으로 둔감했다.
잠귀가 어두운 편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다말고 밖에서 개 짖는 소리만 들려도 눈이 뜨여지고, 잠자는 시간도 확 줄어들었다.
또한, 보통 하루에 여섯시간~일곱시간을 자곤 했는데 이제는 하루에 네시간 세시간 정도밖에 잠들지 못한다.
 
그렇게 깨고 나서 서성거리거나 컴퓨터를 하거나... 가끔은 야간시야적응훈련(?)을 하듯 주변의 안보이는 사물이 잘 보일때까지
눈을 뜨고 한 곳을 계속 응시하거나 하는 일 따위를 하고는 하는데, 뭘 하더라도 크게 의미는 없는 것 같다.
 
 
가만히 곰씹어 보건대 나는 또 꿈을 꾸지 않았다. 나는 꿈을 좋아했다. 내 머릿속의 상상이 희미하게나마 실체화되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마음속의 태평양. 꿈을 꾼다는 것... 나는 꿈 속에서 내 마음속의 태평양을 누비는 크루즈의 선장이며
그 위를 날 수 있는 여객기의 기장이기도 했다. 때로는 난기류와 해일에 무섭지만 내 마음은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바다이자 하늘이기에
거침없는 사람처럼 그 모든것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배를 지휘할 수도 비행기를 몰 수도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년의 외도 이후에 나는 모든 상상할 수 있는 원천 중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눈을 감는다.
 
 
 
일을 할 수 있어 좋았다.
꿈을 꿀 수 있어 좋았다.
내가 돈을 모아 그년에게 선사해 줄 미래를 생각하며 나는 때로 그런 장면이 꿈에 나오곤 했다.
아이. 차. 아파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저녁밥 냄새 퍼지는 집안에 들어오고, 하루종일 놀다 지친 아이가
아빠인지 엄마인지 모를 소리를 외치며 달려오고 다롱개 도롱냥이 그 뒤를 달려온다. 앞치마를 두른 그년이 왔어 라고 이야기하며
저녁을 차려주는 그런, 그런데, 그 꿈이, 깨지는, 순간, 나는, 이제, 아무것도, 내가 알던, 꿈꾸던, 세계가, 깨지고, 내가 뭘 잘못, 한거,
 
 
 
바닥이 없는 심연으로 빠져들어간다. 바다속으로 천천히 빨려들어가는데 물고기도 안보이고 빛 한점 보이지 않는다.
물소리도 들을 수 없다. 내가 알던 세계에 살던 모든 소리와 풍경이 멀어져간다. 붉은 눈이 나를 끊임없이 응시한다.
커다랗고 충혈된 그 눈의 눈동자는 붉고, 충혈된 붉은ja위는 역겨운 냄새가 날 정도로 시뻘건 눈물을 뚝 뚝 쏟아내는데
입이 웃고 있어. 더럽고 긴 손톱을 가진 검지손가락이 쉿. 작위적으로 칠해진 립스틱 아무렇게나 칠해진 그 말라비틀어진 입술에
가져다 대 지고는
 
'조용. 조용. 조용. 조용.'
 
코니카필름 삐에로가 웃는다. 날개달린 아기 천사가 다가온다. 눈동자가 없다. 시꺼먼 그 안의 소우주가 나를 금방이라도 빨아들일 것만 같다.
언젠가 서울역 인근에서 봤던 터번비슷한 것을 두른 노숙자가 토할 것 같은 냄새를 풍기며 내 팔을 휘어잡는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악몽의 종착지는 없다. 나는 영원히 이 세계에서 살게 될거야. 투쟁? 그러면 내가 이 세계를?
 
아니야. 지금껏 싸워왔는데, 결말이 그랬어. 그러면 나는 여기서 싸워도 크게 얻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잖아.
최소한!! 이 개같은 것들은 좀 치워 달란 말이야! 그러면! 아무것도 없는 심연이라도 나는 죽은듯이 살아갈 테니까.
 
붉은 눈동자. 충혈된 ja위의 여인이 정갈한 머리를 한 채 한복을 입고 다가온다.
나 알아. 당신을 알아. 어렸을 적 시골 장성에 갔을 때 나는 당신 꿈을 꾸었지. 오늘 당신을 다시 보게 되었어. 왜 내 꿈에 다시 나타난거지?
내 앞에서 사라져 줄 수 없을까? 나는 지금 부탁을 하는게 아니야. 꺼지라고. 코니카 필름 광고 옆에 붙어있던 삐에로는 무서웠어.
그런데 그것도 같이 나타나 왜 쌍으로 날 괴롭혀.
 
'조용. 조용. 조용. 조용.'
 
내가 왜 조용해야 해? 나도 소리지르고 욕하고 지랄하고 싶어. 니가 뭔데 날 조용하라고 강요해?
 
'조용. 조용. 조용. 조용.'
 
 
 
 
눈을 감아 그것들을 보지 않으려 한다.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는다. 눈동자 없는 아기천사들이 다가와 내 팔을 붙잡고 귀를 막지 못하게 팔을 붙잡는다.
눈을 감지 못하게 내 눈을 강제로 띄운다. 공포에 질려 벌벌 떤다. 살려줘. 살려주세요. 부탁해요.
 
 
 
 
 
 
 
 
 
 
 
 
 
 
 
 
 
 
 
 
 
 
 
 
 
13평 남짓하는 방에서 깨어 나는 천장을 바라본다.
내 집. 내가 사는 곳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이성을 되찾았다.
하나 잠이 오지 않는다. 마치 긴 잠을 잔 듯이...
다시 잠들려고 눈을 감지만 역시 잠이 오지 않는다.
 
베란다로 나가, 저녁에 널었던 빨래를 만져보고 아직 안말랐네... 하며 혼자 중얼거린다.
웅웅 거리는 바람소리와 새벽공기 냄새가 익숙하다. 문을 닫고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는다.
 
 
 
나는 담배를 물고 의자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댓글
  • 대한민국민 2017/10/26 04:21

    슬프네요, 정신차리고 인생사세요 하루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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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텐포 2017/10/26 07:01

    괴로움을 이겨내는 가장 빠른 방법은 모든 걸 롤백하는 겁니다. 원래부터 없었던것처럼 내것이 아니였던거처럼 그럼 상실감도 사라지고 고통도 사라지고 외로움도 사라집니다. 약간의 덧없음, 공허함이 가슴속에 솟아 오르겠지만 지금까지의 고통에 비하면 한결 낫습니다. 생각해보면 태어나면서 가졌던 모든건 자기것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왔다가 다시 원래자리로 돌아가는 겁니다. 부모님의 사랑도 그렇고 친구간의 우정도 그렇고 연인 부부간의 사랑도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운명을 타고난거죠. 본인의 생명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듯이 말이죠. 원래 본인 것이 아닌데 본인 것이라고 착각하는데서 모든 고통의 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무한한 상실감에 진저리 치는 거죠. 모든건 사라집니다. 처음 왔던대로 다시 가버립니다. 마지막 남아있는 추억조차도 결국엔 왔던대로 사라져 버립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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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마당근 2017/10/26 07:09

    토닥토닥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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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둠의저편 2017/10/26 07:13

    글을쓰는것으로 치유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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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아빠 2017/10/26 07:56

    술없이 잘수없고, 술잠을자도 3시간 내외이더니
    2년지난 지금은 신생아마냥 잠만자고있습니다.
    차차 나아질겁니다.
    시간이 약이네요..
    너무 미워하지마세요. 님만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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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amyammio 2017/10/26 08:55

    이또한 지나가리~
    윗덧글과 비슷한 덧글 인데 술 취해 자고 술깨려고 커피 쉬취해소음료 먹고 한동안 아니 어쩜 지금도 그시간 있어요 당연한 시간이고 지나가요 언젠가 당신이 다시 향해를 하는 그날 기다리고 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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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라시아 2017/10/26 09:36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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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팩터다 2017/10/26 10:15

    웬지 위험해 보입니다. 어여 행복한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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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후순결 2017/10/26 10:24

    글 잘쓰시네요  계속 글 쓰시면서 허한마음 다독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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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마레따 2017/10/26 10:25

    처절한 상실감이 본인을 잠식하지않게 생각에 집중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건강챙기시고 하루빨리 행복해지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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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도우짜짜 2017/10/26 10:27

    밤잠이 어렵거나 정 힘드시면 병원 가보세요.
    전 가슴이 자꾸 조여와서 짐 병원 왔습니다.
    선입견땜에 좀 그랬는데 살아야겠단 생각에 용기내 봤습니다. 아직 대기중인데 떨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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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맹이이 2017/10/26 10:42

    힘내세요..꼭. 힘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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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니민이 2017/10/26 11:07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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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울방울해2 2017/10/26 11:18

    위에서 너무 웃어서 죄송해요 진지한 글인데,.. ㅠㅠㅠ 근데 작성자님도 한 번 픽 웃었으면 좋겠네요;;;;;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가 악몽이나 가위눌리게 할 수도 있을 거에요.
    무엇보다 건강 잃지 마시고... 술 적당히 드시고 조만간 즐거운 소식 듣게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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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UKASE 2017/10/26 11:24

    싫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어서 계속 미워하는것도
    그 사람에게 집중하는 꼴이라 더욱 힘들거예요.
    오히려 미친 척 하고 용서하면 금방 풀릴거예요.
    복수는 작성자님 손 더럽히지 않아도 세상이 대신 해 줄 거예요.
    그 사람때문에 가지지 못 한 작성자님의 행복에 대한 욕심을 버리시면 맘이 편해질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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