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귀들의 낙원이자 웃음이 끊이지 않는 환상의 나라, 라만차랜드.
처음 이 곳이 세워질 적에는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 꿈과 야망을 기둥삼아 쌓아 올려졌으나
이들이 분수에 맞지 않는 희망을 품었음을 자각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 많은 나날을 지세워 온 끝에, 그들은 마침내 이 모든 것에 이골이 나버렸다.
그들이 바랬던 것은, 그저 아이들의 웃음 소리 뿐이었는데.
그 뿐이었는데.
"금느흐으흘... 그틍읍느드...!"
...설마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말을 안 들어먹을 줄은 몰랐지.
"자, 어린이 친구들! 신부님 얼굴을 잡아당기면서 놀면 못 써요! 다들 기억하죠? 괴롭혀도 되는 건..."
"못된 혈귀들--!!!"
이발사의 호령 하에, 이 곳 저 곳을 들쑤시며 흙먼지를 일으키던 아이들이 합심하여 씩씩하게 외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항상 활기차게 웃으며 반겨주는 이발사, 니콜리나였다.
"...고맙습니다, 니콜리나."
"됐어, 새삼스레 왜 그래."
그러나 이발사의 그 쾌활함도 어느새 바닥을 보이는 듯 했다.
어트렉션 기획, 의상 제작, 무대 정비, 나레이션 녹음...
실제로 그녀에게 맡겨진 업무는 가히 혹사에 가까울 정도의 강행군이었으니까.
거기에 천진난만하게 달라붙어오는 아이들에게 실시간으로 기를 빨리고 있었으니, 제아무리 그녀가 강대한 혈귀라고 할 지라도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 쉬어도 되지, 쿠리암브로?"
"...그러시지요. 상당히 지친 모양이군요."
"말도 마. 어제도 갑자기 돌시네아 님께서 찾아와서는, 의상을 고쳐달라고 따져드는 바람에..."
"...돌시네아 님께서 말입니까?"
"알아. 보통은 내가 만든 의상에 불만 사항을 늘어놓으실 분은 아니지. 이번에는 조금 예외였어."
"예외라고요?"
"...살이 쪘다나봐. 혈액바를 너무 먹어서."
"..."
둘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그러고보니, 오늘 혈액바는 드셨습니까."
"아, 그거 말이지? 그 귀하다는 A- 형 혈액을 첨가했다던... 맛있었어. 나쁘지 않더라."
"...생 피를 드시던 시절이 그립지는 않으십니까."
"그립지. 그래도 어떡하겠어. 눈 코 뜰 새도 없이 바쁜데. 게다가 생 피를 마시고 있는 걸 아이들이 보면 금방 겁 먹고 울음을 터뜨려 버리니까... 그러니까 모두 그걸로 대충 때우는 거지."
"..."
"최근에 했던 가족 식사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네."
라만차랜드가 이상할 정도의 성공가도를 달리며 승승장구하고, 공급되는 신선한 혈액은 이 곳의 혈귀 전원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을 정도로 차고 넘치게 되었지만...
정작 이들에게 풍요를 즐길 시간과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해가 뜨면 개장, 해가 지면 폐장.
밤에는 정리, 새벽에는 준비.
라만차랜드의 입구를 오고 가는 아이들의 미소에는 조금의 흠결조차 남기는 것이 허용되지 않기에, 이 곳의 혈귀들은 자신을 서서히 깎아내면서까지 이 환상의 나라를 지켜내기로 했다.
"그래도..."
"...응?"
"...확실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기분입니다."
그럼에도 괴롭거나, 고통스럽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이들에게 있어 라만차랜드에서 일하는 것은 희생이 아닌 거래였기에.
"무슨 말인지 대충 알 것 같네. 아이들이 웃으면서 이 곳을 떠날 때..."
"차오르지요. 많은 것들이."
"...응."
아이들의 기쁨과 환희는 그들 자신의 사치와 향락과도 기꺼이 맞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값진 것이었기에.
이 곳에 있는 그 누구도 후회하지 않는다.
"...연습은 잘 되어가고 있니."
연보랏빛의 양산에 덮인, 창백한 피부와 짙은 꽃 향내가 특징적인 여인이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라만차랜드의 자타공인 최고 미인이자 퍼레이드의 공주, 돌시네아였다.
"...돌시네아 님! 정말 이 아이들로 되겠어요? 다들 정말 귀엽기는 한데, 조금만 한 눈을 팔아도 금방 사고를 쳐버리니까..."
"어버이께서 원하신 것이니, 별 수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어린 애들을 퍼레이드의 하이라이트에 등장시키다니요! 이러다가 망쳐버리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그래도..."
돌시네아가 자세를 낮추어 아이들과 눈을 맞춘다.
그녀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와 신비한 분위기 덕택에, 소란스레 떠들던 아이들이 금방 조용해진다.
"나쁜 아이들은 아닌 것 같네."
아이들 중 한 명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천천히 쓸어넘긴다.
"잘 할 수 있겠니?"
기대와 격려가 담긴 눈빛.
라만차랜드에 방문한 이들이 처음 돌시네아를 마주하면, 그녀가 차갑고 도도하며 다가서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쉬이 넘겨짚고는 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이 곳에 속해있으며, 직접 도맡아 라만차랜드의 얼굴이 되고자 했던 인물.
아이들을 향한 마음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돌시네아 님, 여기까지는 어쩐 일로 오신 거에요? 연습은 저와 쿠리암브로가 전담하겠다고..."
"연습이 잘 되어가는지 보러 온 것도 있지만, 부탁할 일이 있어서 왔어."
"네? 설마, 또 의상을 바꿔달라고요?"
"그래. 내가 생각하기에는, 허리 쪽의 품이 조금 더 컸으면 좋겠어. 그래야 퍼레이드에서 의상이 휘날리면 보다 더 우아하게..."
"또 쪘어요?"
"아니야."
"쪘네요."
"아니."
...물론, 맛있는 혈액에 대한 열망도 뒤지지 않는다.
본인은 이제 조금이나마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이제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갑자기 이러시면 어떡해요, 정말! 내가 못 살아!"
"나는 널 믿어, 니콜리나."
"그렇게 비장하게 말씀하셔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니까요?! 차라리 지금이라도 혈액바 줄이고 살을 빼시면..."
"...널 믿어, 니콜리나."
"으아아아아악---!!!"
드디어 임계점에 달해 맥없이 끊겨버린 니콜리나의 정신줄.
절규에 가까운 단말마와 함께 이발사가 바닥에 널부러진다.
"이 또한 감내해야 할 고통입니..."
"캬아아아악-!"
"..."
마치 30년 굶은 혈귀나 할 법한 혼신의 하악질.
무언가 첨언하려던 신부도 이내 입을 다물어버린다.
혈귀 전쟁에서 어버이와 전장을 누비며 수 많은 적들을 무너뜨린 제 3권속 혈귀 니콜리나를 마침내 무릎 꿇린 것은, 애석하게도 피로와 과로였다.
"언니, 힘들어...?"
연습하던 아이 중 한 명이 그녀에게로 조심스레 다가간다.
세상 순진무구한 얼굴로 울상을 지으며 걱정해주는 아이.
니콜리나는 어쩌면 진작에 힘이 다했지만, 그런 아이들의 순수함이 그녀를 지금껏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야, 나 괜찮아. 정말로..."
"저기... 쓰러지면 안 돼! 언니는 나쁜 혈귀들 혼내줘야 하니까... 그러니까 끝까지 포기하면 안 돼!"
간절하게 호소하는 아이의 마음.
니콜리나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혈액을 맛본 듯이,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일어선다.
"...고마워."
"이거, 선물이야. 먹고 힘내!"
아이가 들고 있던 가방 속에서 혈액팩을 하나 꺼낸다.
"이거... 설마..."
"응! 언니 주려고 가져왔어!"
니콜리나가 눈가에 고인 눈물을 슬쩍 훔치고는, 혈액팩을 받아든다.
간만에 맛보는 생 피의 맛.
그것은 아이의 진심어린 응원과 함께였기에 더욱 각별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는 훌쩍거리며 혈액팩을 뜯어 빨아먹는 니콜리나.
그녀가 이 시점에서 깨달은 두 가지의 사실이 있다면, 첫 째로는 자신의 꾸준한 노력과 헌신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보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푸흡-------!!!"
...식용색소를 탄 물은 제 3권속 혈귀조차 능히 속여넘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맹렬한 기세로 이발사의 입에서 뿜어져나온 검붉은 물안개는 이내 돌시네아의 얼굴에 직격.
의도치 않은 패륜에 얼이 빠진 돌시네아는 결국,
"큰일이다! 공주님께서 또 쓰러지셨다!"
"야, 빨리 옮겨 빨리!"
...어디선가 튀어나온 혈귀들에 의해 어떻게든 수습되었다.
그 난장판을 보고는 까르륵거리며 무리로 돌아가는 아이.
"순수하다" 라는 말의 뜻에는, 순수한 선의만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니콜리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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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퍼레이드 당일.
언제나처럼 라만차랜드의 행진은 신나고 흥겨운 음악으로 시작된다.
이어서 무용수와, 화려한 퍼레이드 차량, 불꽃놀이, 사방에 흩날리는 형형색색의 색지...
많은 관중들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행렬에 매혹되었지만, 지켜보는 사람들 중에는 한껏 긴장한 듯이 수근거리는 이들이 있었다.
"정말 괜찮을까요, 산초 님?"
"어버이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니콜리나."
"역시, 그래도 돈키호테 님을 끝까지 믿어주시는 건...!"
"...사고가 나도 알아서 수습하시겠지. 난 이제 포기했어."
"..."
말은 그렇게 했어도, 남 모르게 마음을 졸이고 있을 산초였다.
이번 퍼레이드의 피날레는 전적으로 돈키호테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설계된 것이지만...
그 아이디어는 철저한 계획이나 깊은 숙고가 아닌,
항상 들어왔던 그 불길한 문장 딱 하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산초야. 나, 좋은 생각이 났다.'
"대뜸 들어오셔서는 역시 퍼레이드의 마지막에는 자신이 등장해야 한다고 하시더니... 어떻게든 되겠지."
퍼레이드가 무르익고, 마침내 행렬의 선두가 목적지인 대관람차 앞에 멈춰섰을 때.
돌시네아의 춤사위가 끝을 맺자 하늘이 불길한 어둠으로 뒤덮힌다.
이어서 울려퍼지는 천둥 소리, 사악한 웃음 소리.
그리고 먹구름으로 가려진 하늘이 열리며, 백발의 사내가 붉게 물든 창을 들고서 천천히 내려온다.
"축제는 즐거웠나? 하찮은 미물들이여."
웅성거리며 고개를 치켜드는 관중들.
만면에 조소를 띈 채로 그들을 내려다보는 이는, 짙은 피안개를 뿜어대며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 때. 라만차랜드의 왕자, 카세티가 군중 속에서 나와 힘껏 외치기 시작한다.
"오오, 저것은... 라만차랜드를 호시탐탐 노리는 못된 혈귀들의 왕이 아니던가! 오랜 예언대로 하늘이 열리고 붉은 창을 든 마왕이 내려왔으니! 우리의 운명이 경각에 달했구나!"
"...그렇다! 나는 사악한 혈귀들의 왕이다! 내게 감히 맞설 자가 없다면, 이 곳의 모든 피를 나의 것으로 삼아주겠다!"
"...저기, 산초 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유치하지 않아요?"
니콜리나가 산초 옆으로 다가와 조심스레 속닥거린다.
"그래도, 대본 없이 하시는 것 치고는 잘 하시네."
"대본이 없다고요?! 아니 그럼, 지금 저게 전부..."
"...애드리브야. 대본은 반 쯤 쓰다가 질린다면서 집어 던지셨어."
"..."
"그리고, 누가 그러던데."
"...네?"
"...유치할수록 재밌는 법이라고."
"거기까지다, 마왕!"
모두가 불안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 볼 때,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 무리의 아이들이 광장으로 일제히 뛰쳐나온다.
휘황찬란한 의상을 걸치고, 카드보드지로 만든 칼을 든 12명의 아이들.
"라만차랜드는, 아이들의 꿈은! 우리가 지켜낼거야!"
이들이 용맹하게 맞서려는 듯 자세를 취하자, 백발의 사내는 창을 겨누며 미소짓는다.
"나는... 키호테."
"돈, 키호테! 이 창으로 너희들의 허황되고 유치한 꿈, 이 라만차랜드를 끝내주겠다!"
정각을 알리는 시계탑의 종소리와 함께, 하얗고 커다란 달 만이 비추던 밤하늘을 가득 메우는 오색찬란한 불꽃놀이.
선두에 서있던 아이의 장난감 칼과 돈키호테의 창 끝이 격돌하고,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결투가 시작되었다.
라만차랜드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사악한 악당이자 못된 혈귀들의 왕, 돈키호테.
하지만 어쩐 일인지, 결투에 참여하고 또한 지켜보는 이들 중에서 눈을 가장 찬란하게 빛내고 있던 사람은 그였다.
희망과 환희에 찬, 절대 꺼지지 않을 별과도 같이 밝게 빛나는 눈.
방금까지만 해도 퍼레이드의 하이라이트를 불안하게 지켜보던 혈귀들은 어느새 한 마음이 되어 염원하고 있었다.
저 별이... 더 환하게 빛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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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와 감탄이 터져나오며 퍼레이드가 막을 내린다.
행렬을 이루던 혈귀들과 돌시네아는 관중을 향해 정중히 인사하고,
결투에서 패배한 사악한 마왕, 돈키호테는 라만차랜드의 기사가 되어 영원한 공존과 평화를 지킬 것을 약속하며 아이들 앞에 무릎 꿇고 맹세한다.
비록 그가 결투에서 패배한 것은 전에 없던 일이지만, 돈키호테는 조금의 아쉬움도 내비치지 않는다.
오히려 후련한 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면서 웃음짓는 아이들을 올려다본다.
음악 소리가 잦아들자, 돌시네아와 돈키호테는 군중 속에서 자신들을 지켜보던 가족들에게로 향한다.
"산초야, 어떠냐! 나 꽤 잘 해내지 않았더냐!"
"으앗, 너무 달라붙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전부 쳐다보지 않습니까!"
"어버이가 자식을 껴안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이냐! 조금 더 안아보자꾸나!"
"..."
"...산초야?"
"...잘 해내셨습니다. 진심으로 자랑스럽습니다."
"그래. 고맙구나, 산초야."
산초, 돌시네아, 쿠리암브로, 니콜리나...
그리고 셀 수도 없이 많은 라만차랜드의 가족들.
처음에는 그저 한 명의 허황되고 유치한 꿈에 휘말렸을 뿐이었지만, 이제는 모두가 같은 꿈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언제나 엉뚱한 발상을 이야기하고, 정의와 로망을 노래하며, 때론 무모하다 할 정도로 낙관적인 라만차랜드의 별.
이 눈이 부셔올 정도로 밝게 타오르는 별빛이 없으면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는 이 곳의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산초야. 나, 좋은 생각이 났다."
"...큰 일 벌이신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러시는 겁니까."
"모험을 떠나고 싶구나! 라만차랜드 바깥의 인간들을 직접 만나고 싶다. 그들이 찾아오는 것을 기다릴게 아니라... 내가 직접 찾아가서,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지."
"모험... 말입니까?"
산초는 언제나 돈키호테의 "좋은 생각" 을 듣고 나면 이런 표정을 짓곤 했다.
황당해 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멋쩍게 웃는 표정.
비록 갑작스럽고, 허황되고, 기가 차지만...
...지금 모든 이들의 꿈이자 삶이 되어버린 라만차랜드 역시, 그의 "좋은 생각" 에서 시작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언제 떠나실 생각이십니까?"
"네가 좋다면 언제든 상관 없다! 바로 지금이라도 좋으니!"
"...저도 가는 거였습니까?"
"그러면 나의 충실한 종자를 여기에 홀로 두고 떠나라는 말이냐?"
"그건 아니지만..."
돈키호테는 과장된 몸짓을 하며 산초 앞에 선다.
"밤이 서둘러 다가온다고 해도."
"이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
그를 지켜보던 가족들은, 하나같이 말리기는 커녕 헤실헤실 미소를 짓고 있다.
"괜찮아요! 큰 행사도 끝났으니까, 당분간 그렇게 바쁘지도 않을테고!"
"이 또한, 어버이께서 짚어주신 새로운 길이겠지요."
"...부디, 조심히 다녀오시길."
돈키호테는 그런 그들을 향해 말한다.
"...세상에 둘도 없는 가족의 축복과 친절한 허락을 받으며."
"모든 위험한 것들을 물리치고, 행복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니."
"의심할 여지 없이."
"오늘 나에게 일어날 모험 또한..."
"기가... 막히겠... 구나."
힘겹게 중얼거리는 속삭임.
검붉은 색채와 황금색 광휘로 점칠된 방 안에서, 금방이라도 꺼져들어갈 듯한 목소리가 울린다.
가슴에 박힌 황금빛의 가지는 잠깐의 쉴 새도 없이 눈 앞에 꿈을 비춰왔다.
이것이 정말 꿈인지, 아니면 가능성인지.
무엇이 되었던 간에 시야를 어지러히 흩어놓는다.
...괴롭다.
고통스럽다.
쾌활하게 웃으며 아이들을 안아 들어올리는 니콜리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퍼레이드의 행렬을 이끌며 기쁜 듯이 춤추는 돌시네아의 짙은 꽃 향기가 코를 찌른다.
힘들고 지친 이들을 격려하며 따스한 햇살 아래 기도하는 쿠리암브로의 목소리가 귓청을 때린다.
이렇게나 생생하고 아련한 감각들이, 허황된 꿈을 꾸었던 나 자신을 질책하고 있는 것 같기에.
이루어질 리 없는 꿈... 아니, 허상으로 나를 조롱하고 기만하는 듯 하여 더없이 괴롭다.
...오랜 시간 굳게 닫혀있던 문이 서서히 열린다.
짙은 혈향과 황금빛 섬광이 문 틈 새로 새어나간다.
가족들이 나를 받아들여 주기로 한 걸까.
그 오랜 증오와 원망을 넘어, 다시 가족 모두가 함께할 수 있을까.
...헛되다.
헛된 희망이다.
나는 이미 문 너머의 방문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돌아왔구나, 나의 산초.
와라챠
2024/10/29 10:28
아니 스벌 혈액바가 맛있다길래 라만차랜드 성공하는 if 인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