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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초한전쟁의 명장 한신의 일생 최대의 성공, '정형 전투'



전에 한번 올린 글인데 갑자기 정형 전투 이야기가 많이 나오길래 생각나서 다시 올려봅니다.






-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과열되는 느낌이 있는데 전 딱히 누가 더 대단하고 나쁘고를 따지려는건 아닙니다. 애당초 상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비교자체가 약간 곤란한 면이 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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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위키에(정확히 말하면 엔하 위키 시절에) '정형 전투' 라는 해당 항목을 제가 맨 처음 작성한 적이 있기에, 전투 부분의 내용 자체는 거의 대부분 유사하고 약간 보충된 부분만 있을 겁니다.

한신은 중국 역사상의 명장으로 유명합니다. 남의 다리 사이를 기어다니던 굴욕의 젊은 시절을 거쳐, 한고조 유방의 밑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지휘관으로서 천하를 호령했고, 천하 통일 후에는 숙청의 대상이 되어서 죽었습니다. 일생 자체가 드라마틱한 부분이 많고 최후까지 비극적이라 인기도 높고, 한신이 전쟁 중 보여준 뛰어난 면모에 대해서도 많이들 이야기가 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것과는 별개로 한신이 전쟁에서 보여준 전술이나 전쟁의 구도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조명, 분석이 덜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무슨무슨 전술을 쓰고 전쟁에서 어떤 구도를 만들어서 이겼는가 하는것보다, 개인적으로 정말 막연한 말이라고 생각하는 '군재' 가 뛰어나서 그냥 이겼다느니 하는 식입니다. 한신과 거의 동시대에 살았던 인물인 카르타코의 '한니발 바르카' 의 전투 수행을 보면서 한니발의 전술 전략을 세세하게 분석하고, 호평하는 동시에 어쩔 수 없는 한계 역시 말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몇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첫번째는 중국 사서에서 전투를 서술하는 방식이 굉장히 담백하고 핵심적인 과정, 결과만을 언급하는 식이라 분석이 어렵다는 겁니다. 두번째는 '소설' 의 영향도 있습니다. 흡사 초한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항우가 전장터에 나서서 한나라군 장수들 일곱명이랑 일기토를 해도 이겼다' 느니 하는 식으로,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소설 '초한지' 영향 탓에 소설의 내용과 역사적 사실을 대중들이 뒤죽박죽으로 기억하고, 소설적 과장이 더해진 탓에 오히려 진정한 면모를 파악하기 어려워진 것도 있습니다.
가령 하나의 예시를 들어보도록 한다면,


인터넷에서 해당 키워드로 검색하니 나온 무슨 제테크 관련 책에 나온 부분입니다. 한신이 120만 대군을 동원하고, 이좌거가 한신을 도와 계책으로 항우를 유인해서, 구리산이라는 곳에서 '십면매복의 계' 를 써서 항우를 끝장냈다는 겁니다. 이 내용은 고우영 초한지에도 나온 내용이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기-회음후 열전이나 한서-한신전에 '구리산' 이라는 지명은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십면매복 같은것도 없구요. 해하 전투에서 한군이 동원한 병력은 120만 같은게 아니라 30만이었고, 이는 해하에 모였던 병력의 전부를 말하는 것이며 전투의 전개 과정상 실제 전투에 나섰던 병력은 더 적습니다.
'한신의 구리산 십면매복' 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언급된 책은 '사기' 나 '한서' 같은 역사책이 아니라 원나라 시대의『전한서평화(前漢書平話)』라는 '이야깃책' 입니다. 이런 '평화' 류 책은 당대에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라는 책이 있습니다. '삼국지연의' 의 전신에 해당하는데 내용은 연의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조악하며, 삼국지연의가 진실 7과 거짓 3을 섞었다면 삼국지평화는 인물 이름만 진실이고 나머지는 99 전부 거짓으로 봐도 좋습니다.
아무튼 가장 유명한 삼국지만 해도 연의와 정사의 내용 구분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대중들에게 전해졌는데, 초한전쟁의 경우는 그런것도 별로 없어서 구분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고, 120만 대군을 동원했다느니 십면매복을 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 때문에 더욱 그런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덜어낸다고 해도, 실제 한신이 대단한 능력을 당대에 보여준 것 자체는 분명 합니다. 
'사기' 에 묘사된 한신의 총 전투 숫자는 모두 9번 입니다. 아마도 기록에 남지 않았을 자잘한 전투는 더 있었을지 모르지만, 여하간에 기록에 남은 전부는 모두 9번 입니다. 그리고 그 9번을 모두 이겼습니다. 9전 9승 승률 100% 인 셈인데, 해당 전투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삼진평정
2. 경색 전투
3. 안읍 전투
4. 연여 전투
5. 정형 전투
6. 초나라의 기습을 물리치며 조나라 평정
7. 역하 전투
8. 유수 전투
9. 해하 전투
굳이 따지자면 팽성 전투를 넣을 수도 있고, 이 경우는 패전이 되겠지만 개인적으로 당시 상황을 보면 한신이 따로 뭘 할 수 있는 상황도, 뭘 했다는 정황도 없으니만큼 넣지는 않겠습니다.
여하간 이 모든 전투들이 약간의 비중 차이는 있을지언정 초한쟁패의 향방을 좌우했던 중요한 전투들 입니다. 그리고 이 9번의 전투 중, 가장 불리한 상황이자 가장 극적으로 이긴 전투가 바로 '정형 전투' 입니다. 지금 말하려고 하는 전투가 바로 이 정형 전투가 되겠습니다.

간략하게 보는 정형 전투.
어떤 전투를 알려면 그 전투가 일어나게 된 배경을 어느정도는 알아야 할 겁니다. 초한전쟁은 유명한 전쟁임으로 대체적인 과정은 많이들 아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모르시는 분이 있을 수 있으니 어느정도 배경을 설명하고 가겠습니다.
항우가 진나라 수도 함양을 장악하고 제후왕으로 군림한 이후, 항우는 천하를 갈라 18제후왕을 각지에 분봉했습니다. 가장 유력한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유방은 멀리 파촉의 왕으로 삼아 서쪽에 가두어버렸는데, 유방은 한신 등을 기용해 힘을 길러 기회를 틈타 관중에서부터 이를 떨치고 중원으로 다시 진출했습니다.
그 무렵 항우는 북방 제나라의 전역에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유방의 동진을 제때 막지 못했고, 중심지인 팽성이 적에게 넘어가는 상황에 놓입니다. 그러나 수 많은 제후군이 모여있어 난잡해져 있던 유방의 군대는 되돌아온 항우에게 기습을 당해 엄청난 패배(팽성 전투)를 당했고, 끊임없이 서쪽으로 다시 밀려나가다 '경색 전투' 에서 항우의 군대를 한번 저지하고, 구강왕 경포를 회유하는데 성공하여 항우와 맞서 싸워 시간을 벌게 하면서 중국을 좌우로 가른 '동서 전쟁' 의 구도로 이를 이끌어 갑니다.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진격하는 한나라와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진격하는 초나라. 이 두 세력이 대치하던 가장 중심지가 형양과 성고 지역 입니다.
그런데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은 분명 동서전쟁이었지만, 이 전쟁에는 제 3자 역시 존재 했습니다. 바로 초, 한 외에 아직 남아있던 별개의 국가들이었습니다.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18제후왕을 분봉 할 당시의 상황. 파촉 지역의 한나라와 중원의 한나라는 서로 다른 나라입니다. 서쪽의 한은 우리가 아는 유방의 한나라, 중원의 한나라는 전국시대 한나라를 부활시킨 나라이자 장량의 고향이었더 국가 입니다.

그리고 항우가 세운 천하가 고작 1년여녀만에 무너진 모습... 그림판으로 편집한거라 조악한 것은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서쪽의 한나라는 기존의 영역외에 '삼진' 즉 옹-새-적 3나라를 병합했습니다. 초나라는 항우에게 반기를 든 구강왕 경포를 내쫒고 그 지역을 병합했습니다. 중원의 한나라와 은나라 지역은 유방이 관중에서 떨치고 나와 팽성으로 가던 사이 장악한 곳으로, 유방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지만 '중국' 의 '중원' 으로서 양군이 치열하게 맞붙는 전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도에는 한나라와 초나라의 판도에 포함되지 않는 국가들 역시 보입니다. 일단 남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임강' 과 '형산' 이 있습니다. 먼저 형산으로 말할 것 같으면 형산왕 오예(吳芮)의 땅입니다. 오예는 본래 항우의 사람이었으나, 초한전쟁 중 뜬금없이 항우가 그 땅을 빼앗으려 들었기에 항우를 버리고 유방에게 붙었던 인물로, 백월(百越)의 이민족을 이끌고 전쟁 중 여러차례 활약 했습니다. 
임강은 임강왕 공오(共敖), 공위(共尉) 부자의 땅입니다. 항우의 18제후왕 분봉 당시 공오가 항우에 의해서 임강왕이 되었고, 그 후 공오가 죽자 공위가 이를 이어 받았습니다. 공위는 최후의 해하 전투에서 항우가 패망한 이후에도 아직 유방의 한나라에 대항하던 세력이었고, 유방이 보낸 부대가 임강을 공격해 공위를 잡아 죽이면서 초한전쟁은 끝이 나게 됩니다.
임강, 형산은 이렇듯 나름대로의 족적을 당대에 보여주긴 했으되, 유방과 항우를 돕거나 하는 식으로 주체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여러모로 두 나라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는 인상인데, 반면 북방의 상황은 훨씬 복잡한 형태였습니다.

항우가 18제후왕을 분봉할 당시만 해도 중국 북방에는 상산, 교동, 제북, 요동 이런 나라들이 난립해 있었지만 딱 1년만에 죄다 풍비박산이 나버렸고, 그 과정까지는 굳이 세세하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여하간, 이 시점에 이르러 중국 북방에 있는 주요 나라는 딱 3개의 나라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연나라, 제나라, 그리고 조나라 입니다. 따로 대나라가 있긴 하지만, 이 나라는 조나라의 위성 국가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습니다. 
이 3개의 나라들 중 특히 조나라와 제나라는 비교적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옛 춘추전국시대 '전국칠웅' 당시 존재했던 제나라와 조나라 왕가의 후예들이 다시 즉위하며 명분적 중심도 제법 탄탄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3개국은 항우의 편도, 유방의 편도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제나라는 항우와 수차례 맞서싸운 나라이긴 했으나, 훗날 항우와 손을 잡고 한신에 대항한 바 있습니다. 조나라의 실권자 진여(陳餘)는 항우의 18제후왕 분봉때 터무니없는 대우를 받았던 사람으로, 이에 불만을 품고 상산왕 장이를 날려버리고 조나라를 세운 사람으로서 따지고 보면 항우가 만든 천하를 뿌리부터 날려버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유방과 협력한 적도 있었지만, 그러나 이후 원수 장이가 한나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나라를 배신하여 항우에게 붙었던 인물입니다. 즉, 이 세 나라는 어디까지나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초한 양국과 별개의 국가였습니다.
여기서 또 중요한 사실은 이겁니다. 최후의 해하 전투를 제외하곤, 초나라의 패왕 항우는 자신이 직접 나선 전투에서 단 한번도 진 적이 없습니다.  이 말인 즉슨, 한나라는 초나라와 전면전을 펼치면 절대로 이길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이게 항우라는 지휘관의 능력때문이건, 반 진나라 전쟁의 초기부터 거병하여 단련된 초나라 군의 강함 때문이건, 초나라와 한나라의 국력차이때문이건간에, 양군의 주력끼리 전면으로 맞붙는 동서전쟁의 중심지, 중원에서부터 한군이 '동쪽끝까지 적을 밑어붙여서 이긴다' 라는 상황은 성립이 불가능했습니다. 다만, 버틸 수는 있었습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한나라가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입니다. 유방이 이끄는 한나라군 본대가 파도처럼 몰아붙이는 항우의 초나라군을 중원(정확히 말하면 형양과 성고)에서 최대한 잡아두며 걸레가 되도록 버티는 동안, 별도의 부대가 제3세력을 집어삼켜서 팽팽한 동서전쟁의 구도를 뿌리부터 깨버리는 셈입니다. 여기서 바로 한신의 북벌이라는 개념이 탄생합니다

중국 드라마 초한전기에 나오는 위표(魏豹)
한신의 북벌이 어떤 필요성에서 나온 대전략인지는 이야기 했고, 이제 이 전략이 실제 현실에서 펼쳐지게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서위왕(西魏王) 위표라는 사람에 이야기 해야 합니다. 서위왕 위표는 항우의 18제후왕 분봉 당시 위나라의 왕이 되었던 사람으로, 위표가 맡았던 위나라 지역은 잠깐 지도를 올려서 다시 확인해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지도상에서 보이듯 위표의 위나라는 파촉의 한나라가 '옹새적' 삼진을 병합하고 동쪽으로 튀쳐나올시, 바로 공격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위치였습니다. 실제로도 그랬구요. 위표는 당시 파죽지세의 한나라군을 맞상대해야만 하자 바로 항복했습니다.
문제는 팽성전투에서 유방이 대패하고 다시 서쪽으로 밀려가던 와중이었습니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 위표는 "어머니가 걱정된다. 병문안을 가야한다." 고 어머니를 팔고는, 유방이 보내주자 그대로 다시 위나라를 장악하고 항우에게 붙어 배신했습니다. 

파죽지세로 서진하는 초나라 군대를 막을 만한 세력이 하나라도 아쉬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어머니 팔아서 구라치고 배신한 위표의 행적은 유방으로서는 괘씸할 수 밖에 없었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위표가 버티는 '서위' 의 위치였습니다. 일단 여기서 다시 지도를 보면...
앞서 동서전쟁의 구도에서 초한 양군이 맞붙는 주요 지점이 바로 중원의 형양, 성고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윗 지도에서는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 입니다. 이 형양과 성고가 최전방의 주요 전선이라고 한다면, 후방의 작전기지로 관중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이 출발하는 곳은 역양(櫟陽)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초한전쟁 당시 유방은 전방의 형양과 성고, 후방의 역양을 끊임없이 오고가며 전투를 치뤘습니다.
헌데 지도를 한번 보십시오. 서위의 위치는 형양-성고와 역양으로 가는 길 정중앙의 약간 북쪽이 아닙니까?
즉 위나라는 마음만 먹으면 역양에서 출발하는 보급을 차단해버릴 수도 있고, 항우의 압력에 짓눌리고 있는 형양과 성고의 뒤를 후려갈길수도 있습니다. 동쪽의 항우와 더불어 가히 기각지세(掎角之勢)를 이룰 만 하니, 유방으로서는 뒤통수가 서늘하여 간담이 오그라들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유방은 휘하의 세객 역이기(酈食其)를 파견하여 위표를 회유하는 동시에, 한신과 조참을 파견해 위표를 치게 했으니, 이것이 바로 '안읍 전투' 입니다.

역양에서 출발하여 북상한 한신군은 위나라의 국경 지대 앞에서 하수(河水) 강가 앞에서 위나라군과 대치했습니다. 위표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자신을 공격하려는 한나라군이 올 것은 예상 했기 때문에, 하수 근처의 포판(蒲坂)의 수비를 강화하여 대치했습니다. 이때가 바로 BC 205년 8월 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당시 한나라는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자치통감' 을 보면, 이 안읍 전투를 다루기 직전의 기록에서
關中大饑,米斛萬錢,人相食。令民就食蜀、漢。 
관중에 큰 기근이 들어서 쌀은 1곡에 무려 1만 전이었고, 사람이 서로 잡아먹었다. 백성들로 하여금 촉, 한에 가서 밥을 먹게 하였다. ─ 자치통감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초한전을 말할때 "관중 지역의 엄청난 물량을 쭉쭉 찍어내 현장으로 보급해준 소하" 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정작 유방이 팽성전투 패배 직후 가장 위험한 상태였던 이때는 관중이 엄청난 기근에 시달렸던 겁니다. 더군다나 패전의 여파로 위표를 비롯한 제후들은 도망치거나 편을 갈아 타고 있고, 최전방의 형양과 성고에서는 항우의 압력이 무지막지한 상황...
따라서 항우를 막는 제 1전선도 아닌 제 2전선의 한신에게 유방이 내줄 수 있는 병력은 분명 많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강 너머에서 막강한 수비벽을 다진 위표에게 그대로 들이박는 건 무모한 싸움이었습니다.
이때 한신은 절묘한 계책을 시행합니다. 하수 강가를 사이에 두고 위표의 본대와 대치하고 있는 군대는 '그대로 두는 척' 하고, 실제로는 저 멀리 북쪽의 하양(夏陽)까지 이동했던 겁니다. 그리고 하수 북쪽에서 강을 건넌 후, 전선으로 군대가 나가 있느라 비어있는 위나라의 수도, 안읍을 향해 그대로 진격했습니다.
하양(夏陽)에서 목앵부로 군대를 건너게 한 뒤 안읍(安邑)을 습격했다. 위왕 표가 놀라서 군사를 이끌고 한신을 맞아 싸웠지만 한신이 표를 사로잡고... - 사기 회음후 열전
위표는 한신의 군대가 갑자기 자기 나라 수도를 공격해오자 기록 그대로 깜짝 놀라서 한신과 맞서 싸웠습니다. 한신이 후방인 안읍을 쳤으니, 한신과 맞서 싸웠다는건 당연하게도 위표가 군사를 이끌고 전선에서 후방으로 물러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당시 참전한 한나라의 장군들 중에서는 한신 뿐만 아니라 조참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조참의 기록을 담은 '조상국 세가' 의 기록을 보면...
魏王豹反, 以仮左丞相別與韓信東攻魏将軍孫遫, 軍東張, 大破之. 因攻安邑, 得魏将王襄. 撃魏王於曲陽, 追至武垣, 生得魏王豹.
위왕 표가 반란을 일으켜 임시 좌승상으로 한신과 별도로 동쪽으로 위나라의 장수 손속(孫遫)의 군대를 동장(東張)에서 공격하여 대파했다. 이어 안읍을 공격하여 위나라의 장수 왕양(王襄)을 포로로 잡았다. 곡양(曲陽)에서 위왕을 공격하여 무원(武垣)까지 뒤쫓아 위왕 표를 산채로 잡았다. - 사기 조상국세가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조참은 동쪽으로 진군하며 위나라의 장수 손속이라는 인물을 무찌르고, 이후 안읍을 공격했다고 나옵니다. 우회군을 이끌고 안읍에서 위표와 직접 맞서 싸운 한신이 안읍에 이르기까지 달리 다른 위나라 부장과 싸운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100% 확실하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추측으로는 한신이 우회군을 이끄는 동안 조참이 본래 포판 근처에서 위군과 대치하는 군대를 이끌고 있었고, 위표가 한신에 놀라 부리나케 달려가며 적의 전력이 약해지자 조참이 그대로 동진해 대치하던 부대를 깨부수고, 안읍으로 진격했다는 그림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건 위표는 한신이 펼친 약간의 우회기동만으로 완전히 무너져 제대로 전투 같은 전투를 해보지도 못하고 꼼짝 없이 포로가 되었고, 위나라는 멸망했습니다. 이로써 한군은 당장의 위협을 제거하면서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북벌을 위한 길이 열렸습니다.
안읍 전투 승리 이후 한신은 유방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습니다.
"원컨대 3만 병사를 더해주시면, 신이 북으로 연(燕)‧조를 잡고, 동으로 제를 치고, 남으로는 초의 보급로를 끊은 후, 서쪽에서 대왕과 형양에서 만나기를 청합니다."(願益兵三萬人,臣請以北舉燕、趙,東擊齊,南絕楚之糧道,西與大王會於滎陽.)
이에 유방은 한신의 제안을 좇아 3만의 병사를 보냈습니다. 비교적 부각이 덜 되는 사실이긴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유방은 항우의 압력을 정면으로 견디고 있는데다, 관중에 든 대기근까지 생각하면 제2 전선에 3만 병력을 내놓은 것은 유방으로서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로써는 상당한 결심을 가지고 용단을 내렸다고 할만 합니다.
한편, 유방은 3만의 병력과 함께 또 다른 선물 하나를 한신에게 전달했습니다. 바로 상산왕 장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상산왕 장이
장이는 당대에 이름 높은 명사이자, 이 무렵에는 나이 역시 상당한 노장이었습니다. 그는 항우의 18제후왕 분봉 당시 '상산왕' 에 임명된 사람이었지만, 한때 친구로 여겼던 진여에게 배신 당해 내쫒겨 한나라에 의탁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장이는 조나라 지역의 상황을 잘 알고 현지에 아는 사람도 많은데다, 진여에 대한 복수심이 큰 만큼 여러모로 유용한 자원으로 쓰일 수 있는 인재였습니다.
3만의 병사와 이를 데리고 온 장이, 그리고 본래 한신의 부장으로 같이 머물고 있던 조참과 더불어 한신은 드디어 북벌에 나서게 됩니다.  

안읍에서부터 고공 비행 하듯 중국의 북방으로 올라가는 한신 일행.

다시 지도를 봅시다.
한신 일행이 북벌을 하면서 처음 만나게 된 나라는 바로 대(代) 나라였습니다. 앞서 북방의 조나라, 제나라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대나라에 관해서는 거의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 이유가 있습니다. 대나라는 사실상 조나라의 위성 국가나 다름 없는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항우의 18제후왕 분봉 당시 본래 조나라의 왕이었던 조헐(趙歇)은 멀쩡한 자기 나라였던 조나라에서 쫒겨나 대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후 조나라 지역에 새롭게 만들어진 '상산'의 왕이었던 장이를 내쫒고 그곳에 조나라를 부활시킨 실권자 진여는, 대나라에서 조헐을 모셔와 다시 조나라의 왕이 되게 하고, 본인은 대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만, 본인은 대왕의 직함만 취하고 실제로는 조나라에 머물며 조헐을 보좌했고, 대신 부하였던 하열(夏說)을 대나라에 보내 통치하게 했습니다.
즉 조나라나 대나라는 같은 나라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당연히 '조나라를 치고 싶으니 길을 비켜 달라' 며 정조가도(征明趙道) 따위를 주장해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겁니다. 
한신의 3만 군대와 하열의 대나라 군은 연여(閼與)라는 곳에서 일대 격전을 펼쳤습니다. 이 전투에 대해서는 기록이 극도로 부실하기에 자세한 전황은 알 수 없습니다. 회음후 열전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한왕(漢王)이 장이(張耳)를 파견해 한신과 함께 병사를 이끌고 동북쪽으로 진격해 조(趙)와 대(代)를 치게 했다. 그 뒤 9월에 그들은 대 군대를 격파하고 연여(閼與)에서 하열(夏說)을 사로잡았다.'
조상국세가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신을 따라 조(趙)나라의 상국(相國) 하열(夏說)의 군대를 오(鄔)나라의 동쪽에서 공격하여 대파하고 하열의 목을 베었다.'
회음후 열전에서는 하열이 '사로잡혔다' 고 나오는데, 조상국세가에서는 '하열을 죽였다' 고 나옵니다. 어쨌거나 전황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좀 뒤의 일이지만, 진여의 참모였던 이좌거(李左車)가 한신의 군대가 온 형세를 설명할때 연여 전투가 한번 더 언급됩니다.  
'들리는 바로는 한의 장군 한신은 서하(西河)를 건너서 위왕 표를 사로잡고, 하열(夏說)을 사로잡아, 연여를 피로 물들였다고 합니다.'
피투성이로 난자되었다는喋血 무시무시한 표현까지 써가며 이 연여 전투를 설명했고, 조상국세가에서 '적을 아주 크게 쳐부셨다大破' 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신 군단과 하열의 대나라군이 펼친 전투는 패전한 대나라 군이 처참할 정도로 도륙된 한신 군단의 완승으로 끝난 듯 합니다. 연여에서 대승리를 거둔 한신 군단은 계속해서 발걸음을 재촉해 조나라로 향했습니다.

연여에서 더 북상하여 태행산맥(太行山脈)의 관문인 정형에 이른 한신 일행. 태행산맥 너머로 크고 넒은 허베이 평야가 광활하게 끝없이 펼쳐져 있다.
한신 군단의 움직임이 지도로 살펴보면 바로 동북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 기묘할 정도로 북쪽으로 쭉 내달린 다음 다시 동쪽으로 가는 모양새가 된 것은 동북으로 바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태행 산맥 때문입니다. 태행 산맥은 남북길이 약 600km, 동서길이 250km에 걸쳐있는 험준한 산맥이며 중국의 그랜드캐년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권중달 자치통감 2권 pp.75의 주석2)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이곳은 정형관으로서, 하북성 정형현 북쪽에 있다. 형이란 산맥이 돌연히 끊겨서 두 산 사이가 아주 좁아 지키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운 하늘이 낸 험지이다. 태행산맥에는 이러한 곳이 8군데가 있는데, 정형은 그 다섯 번재의 험지이다.'
즉 군대의 동진을 막고 있는 태행 산맥의 중간 부분, 갑자기 산맥이 돌연 끊겨 통과가 가능한 지역이 몇몇 곳이 되지 않는데, 정형이 그곳이니만큼 한신 군단은 산맥을 지나가기 위해 이 곳으로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조왕 조헐과 조나라의 성안군(成安君) 진여 역시 한신 군단을 막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정형으로 몰려 왔습니다. 그리고 그 군사의 총 숫자는, 기록되기로는 무려 20만에 육박하는 엄청난 숫자였습니다.
다만, 이것이 실제 20만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에 대한 기록이 호칭(號稱) 20만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사의 전쟁 기록을 살펴볼때 가장 기본적인 개념 중에 하나가 호왈(號曰), 호칭 이라는 식의 표현 입니다. 적의 전력에 대한 첩보가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서, 아군의 전력을 과장하여 적을 겁먹게 하고 아군의 사기를 올리는 행위는 동서양을 통틀어 딱히 드물지 않은, 아니 오히려 그러지 않는게 더 드문 일입니다. 가령 그 유명한 가우가멜라 전투만 해도 기록을 그대로 믿는다면 페르시아는 백만 대군을 동원한 것이 됩니다.
다만 이런식이라면 모든 기록을 믿을 수가 없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런 프로파간다적인 과장을 어느정도 거를 수 있게 하는게 역사가가 이를 기록하며 덧붙인 '호왈 백만' 같은 식의 표현입니다. 즉 '백만이었다' 가 아니라, '백만이라고 불렸다' 는 겁니다. 즉 그렇게 과장을 했다는거죠. 당장 멀리 갈것도 없이 초한전쟁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는 '홍문연의 연회' 때만 해도 이런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보(범증)가 항우에게 패공(유방)을 공격하라고 권했다. 이에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날이 새면 한바탕 싸울 준비를 했다. 이 때 항우의 병력은 40만인데 1백만이라 했고, 패공의 병력은 10만인데 20만이라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 고조본기'
싸우기에 앞서 일단 최소 두배는 부풀리고 보면서 적을 겁먹게 하려는 술책들 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호왈 20만이라고 했으니 당시 조나라군의 규모는 대단찮았을 것이다, 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습니다. 그야 뻥을 친다고 해도 뭐가 있어야 뻥을 칠 수가 있으니까..  한 몇천명 모아놓고 20만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입니다. 실제로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이후 조나라군 내부에서 군사 회의를 할때 "나에게 별동대 3만명만 주면 적을 뒤에서 치겠다." 는 식의 발언도 나오는데, 이 본대에서 조금 떼서 별동대로 주라는 3만명은 한신 군단의 전체 숫자와 맞먹는 규모입니다. 
20만에 근접한 숫자였다라고 하면 말할것도 없고, 최소 두배는 과장했다고 해도 10만 군대면 한신 군단의 세배에 달합니다. 설사 더 확 줄여서 6만, 7만 정도였다고 해도 역시 두배가 넘는 숫자임은 변함이 없습니다. 어차피 대혼란기에 떠도는 농민 보병을 최대한 징집하고 끌어와서 내보내는 식이었던 당대 전투의 흐름에서, 광할한 하베이 대평야 부근에서 바로바로 근처의 정형으로 인적 자원을 밀어넣을 수 있었던 조나라는 먼 곳을 거쳐온 한신 군보다 훨씬 벙력의 우위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한신 군단은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데...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이미 병력 숫자에서 지고 들어가는 한신 군단이었지만, 그 병력이 더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유방
한신이 한참 연여에서 하열을 격파하고 정형으로 진군하려는 찰나, 유방은 사람을 파견해 한신의 군단에서 정예병만 따로 추려내 형양의 전선으로 이동시켰습니다. 
단순히 한신의 입장만 생각하면 황당한 노릇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전황의 관점에서 보자면 유방을 마냥 비난 할 수는 없긴 할 겁니다. 한신의 북벌은 '성공하면 대박인데 실패하면 어쩔 수 없는' 제 2전선이라면, 유방이 버티고 있는 형양과 성고 부근은 '밀리면 바로 전쟁 끝나는' 제 1전선이었으니 말입니다. 사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병사 3만을 빼서 양면전선을 만들었다는 것만 해도 유방 입장에서는 배짱 플레이 였습니다.
그렇다곤 하지만 그런 사정은 '모든 전역을 총괄하는 총사령관' 의 입장에서고, 현장을 이끌고 있는 지휘관 입장에서는 속 타는 일이었을 겁니다. 이미 병력 차이가 월등하게 나는 시점인데 여기서 또다른 이탈이 있었고, 그런데 목표는 그대로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신 군단의 출혈은 또 있었습니다. 

조참
사기 조상국세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한신은 옛 상산왕 장이와 함께 병사를 이끌고 정형(井陘)으로 내려와 성안군(진여)을 공격하는 한편, 조참에게 조(趙)의 별장(別將) 척(戚) 장군의 군대를 오성(鄔城)에서 포위하게 했다. 척 장군의 군대가 달아나자 추격하여 목을 베었다. - 사기 조상국세가'
이 무렵 한신 군단의 주축이 한신-장이-조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축 중에 한명인 조참은 최대의 결전을 앞둔 이 시점에서 오히려 본대에서 이탈하여, 조나라의 별장인 척장군이라는 사람과 대결하고 있던 도중이었습니다. 조참이 참여했던 앞의 '안읍 전투' 나 훗날 다시 한신의 군대에 합류해 초나라의 용저와 싸운 '유수 전투' 등은 전투 후에 '조참이 이런이런 공을 세웠다' 는 기록이 쭉 남아 있는 반면에 정형 전투에 관해서는 저 기록이 다일 뿐이라, 조참이 정형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건 확실해 보입니다.
조나라 척장군의 군대를 가만히 내버려두면, 큰 전투가 될 앞으로의 정형 전투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을까요? 여하간에 한신은 조참에게 일단의 군사를 주어 척장군을 공격하게 했고, 조참은 정형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고 척장군과 싸운 후 남하하여 유방과 다시 합류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한신의 군대는 본래도 3만명으로 호왈 20만을 칭하던 조나라 군대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숫자에 불과하지만, 유방이 정예병을 거느려갔고 조참이 별동대를 꾸려감으로써 실제 전력은 3만명도 되지 않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바로 이때, 진여의 참모였던 광무군(廣武君) 이좌거는 한신 군단의 상황을 살펴보고 계책을 올렸습니다.

"들리는 바로는 한나라의 장군 한신은 서하(西河)를 건너서 위왕 표를 사로잡고, 하열(夏說)을 사로잡아, 연여를 피로 물들였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장이의 도움을 받아 우리 조나라를 항복시키려고 의논하고 있다니, 승세를 타고 고국을 떠나 멀리서 싸우는 그들의 예봉을 막아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신이 듣기로는 천리 밖에서 군량미를 보내면 운송이 곤란하므로 병사들에게 주린 빛이 돈다고 합니다. 더욱이 땔나무를 하고 풀을 베어야 밥을 지을 수 있게 되므로 군사들이 저녁밥을 배불리 먹어도 아침까지 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정형의 길이 좁아서 두 대의 수레가 함께 지나갈 수 없으며, 기병도 줄을 지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야 할 곳이 수백 리나 됩니다. 이렇다면 사세로 보아 군량미는 반드시 그 후방에 있을 것입니다."
"원하건대 족하(足下)께서 신에게 기습 병사 3만 명만 빌려주신다면, 지름길로 가서 그들의 군량미 수송대를 끊어놓겠습니다. 군께서는 물길을 깊이 파고 누벽을 높이 쌓고 진영을 굳게 지켜, 한나라 군대와 어울려 싸우지 마십시오. 이렇게 하면 적군은 전진해서 싸울 수가 없고, 후퇴하고 싶어도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때 우리 기습 병사가 적의 뒤를 끊고 들판에서 적이 약탈할 만한 식량을 치워버리면, 열흘도 못 되어서 적의 두 장군인 한신과 장이의 머리를 휘하에 바칠 수 있습니다. 군께서는 신의 계책에 유의해주십시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적의 두 장군에게 사로잡힐 것입니다."
즉 정형구의 험준함만 믿고 지키면서 결코 적과 맞상대하지 않고, 이좌거가 이끄는 3만 별동대가 지름길을 타고 적의 후방에 이르러 보급을 끊어버린 후, 들판에서는 청야 작전을 전개하며 적을 지치게 하고, 적이 지칠대로 지쳐 버리면 그때 가서 적을 없애버리는 된다는 작전이었습니다. 
만약 이 작전대로 시행할 경우, 한신 군단은 아군보다 숫자가 훨씬 많은데다 심지어 험지에 머물고 있기까지 한 정형구를 돌파하는 것은 대단히 힘들고 설사 가능하다고 한들 몇날 며칠을 싸워야 할지 모르는데, 역양은 말할것도 없고 안읍에서만 해도 수백킬로미터를 올라온 만큼 보급로는 한없이 길어진 상태에서 이를 노리는 적을 막을 방법도 없고, 현지의 물자도 청야작전으로 소개된 만큼 구할 방법이 없기 떄문에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럴 경우 정형구 돌파는 둘째치고, 도망가는것조차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후방에서 움직일 3만 별동대만 해도 한신 군단의 전체 규모와 막상막하 수준이었을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진여는 이좌거의 이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성안군 진여
사기 회음후 열전에서는 진여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해 황당한 이유가 적혀 있습니다. 진여가 유학자라 비겁한 싸움은 하기 싫어했다는 겁니다.
'성안군은 유자(儒者)였다. 그래서 언제나 의로운 군대라고 일컬으면서 속이는 꾀나 기이한 계책을 쓰지 않았다.' (成安君, 儒者也, 常稱義兵不用詐謀奇計)
반고의 한서 한신전에서도 유학자인 진여가 비겁한 싸움은 하기 싫어해서 정당하게 맞서 싸우길 원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정말로 재미있는 것은 사마광의 자치통감에서는 이렇게 쓰여 있다는 것입니다.
'성안군은 일찍이 스스로 의로운 군대라고 하여서 속이는 꾀나 기습하는 계책을 쓰지 않았다.' (成安君嘗自稱義兵,不用詐謀奇計)
사마광이 부분을 쓰면서 참조한 기록이 바로 사기와 한서였을텐데, 원문에서 진여가 '유학자였다' 라고 하는 부분은 지워버렸습니다. 사마광은 말할것도 없이 유학자였기 때문에, 아마도 진여가 유학자를 들먹이며 정당한 싸움을 하겠다고 설치다가 대패하는 것이 유학자 망신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는 어떻게 보면 진여에게 너무한 일일 수 있습니다. 정면 대결을 원하는 진여의 말이 정말 그렇게도 어이 없고 엉터리인 생각이었나? 싶은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여 본인은 전투에 나서려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들으니 병법에 아군이 적군의 열 배가 되면 포위하고, 두 배가 되면 싸우라고 했소. 지금 한신의 병력이 수만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수천에 지나지 않소. 게다가 천리 먼 곳에 와서 우리를 치는 것이니, 역시 벌써 아주 지쳤을 것이오. 지금 이런 적을 피하고 치지 않는다면 나중에 대군이 쳐들어올 때에는 어떻게 싸우겠소? 그렇게 되면 제후들이 우리를 비겁하게 여기고 함부로 쳐들어올 것이오."
유학자라서 정당하게 싸우려 했다고 하는 진여였지만, 정작 말하는 것을 보면 병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진여가 말한 '아군이 적군의 열 배가 되면 포위하고, 두 배가 되면 싸우라' 는 것은 실제로 '손자병법' 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故로 用兵之法은 十則圍之하고 五則攻之하고 倍則分之하고敵則能戰之하고 少則能逃之하고 不若則能避之니라故로 小敵之堅은 大敵之擒也니라. 
"그러므로 전쟁을 하는 방법은 병력이 10배면 포위하고,5배면 공격하고, 2배면 분산시키고, 대적할 만하면 능히 싸우고,병력이 적으면 능히 도피하고, 승산이 없으면 능히 싸움을 피하는 것이다.그러므로 작은 적이 굳게 싸움은 큰 적의 포로가 된다." - 손자병법 모공편
즉 진여는 손자병법을 보면서 병법의 기초 정도는 확실히 체득한 사람이고, 자신의 행동 원리 역시 병법서에서 찾았습니다. 한신의 군대는 수만이라고 하지만 수천에 불과하며(수천까지는 아니었지만, 3만명에서 어느정도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반대로 이쪽은 병력에서 압도적인 우위가 있고, 더구나 적은 먼 곳을 거쳐 오느라 지칠대로 지친 만큼 정면 대결을 펼쳐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지금의 형세가 제후들의 기세 싸움이 치열한 만큼,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결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국가의 위신' 에도 큰 흠집이 날 수 있습니다. 이 위신이라는 것은 단순히 자존심 문제가 아닙니다. 초한쟁패기 제후들의 흥망을 보면 한때의 기세에 따라 우수수 세력이 늘어났다가 무너질때는 모래같이 스르륵 무너지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아직 체계적인 국가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고, 그때그때의 입소문과 세력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이쪽 편을 탔다가 저쪽 편을 타던 시대이니만큼, 이러한 위신은 결코 단순한 자존심 및 허세로 볼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정치적 문제도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누가 보더라도 한군과 조나라의 전력 차이가 월등한 상황이니만큼, 비록 실권자라고 한들 조나라의 왕이 아니었던 진여가 한신의 군대를 질질 끌면서 상대할 경우 그의 정치적 입지에 타격이 갈 수도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청야 작전은 말은 쉽지만, 실제로 이런 작전을 시행할 경우 그 지역의 그 해 농사는 틀림없이 끝장나게 될 것이므로 그 원망은 모두 진여가 받아야 할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리하여 양군의 결전, '정형 전투' 가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현 시짐에서 양군에게 유, 불리한 요소를 따져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병력
한신 군단 : 3만 이하
조나라 : 호왈 20만. 절반으로 잡아도 10만. 

2. 지형
이좌거 : "정형의 길은 좁아서 두 대의 수레가 함께 지나갈 수 없으며, 기병도 줄을 지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야 할 곳이 수백 리나 됩니다."

3. 홈 원정 어드밴티치
진여 : "천리 먼 곳에 와서 우리를 치는 것이니, 벌써 아주 지쳤을 것이다."
이좌거 : " 군량미는 반드시 그 후방에 있을 것입니다."

4. 오합지졸
사기 회음후 열전 : '한신이 위를 항복시키고 대를 격파하자 한왕이 사자를 보내 그의 정예병을 거두어 형양으로 가서 초를 막게 했다.'
한신 : "내가 평소부터 훈련받은 사대부들을 이끌 수 없었으니, 이른바 ‘시장 바닥의 사람들을 몰아다가 싸우게 한 것’ 이오."
즉 한신 군단은 조나라 군단에 비해 병력 숫자에서 열세, 정형구의 험난한 지리적 여건에서 열세, 자국의 문턱을 지키는 조나라군에 비해 먼 곳을 달려온 원정군이라는 상황에서 열세였고, 심지어 병력의 질 마저도 열세였습니다. 물론 조나라 군이라고 해도 엄청난 정예병은 물론 아니었겠지만, 한신의 군단은 '정예병만' 쏙 빠진 상태에다, 대장인 한신 본인 마저 "이들은 시정잡배들이다." 라고 대놓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즉 모든 상황을 통틀어 봐도 단 하나도 유리한 점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든 어쩌든 간에 이제 싸움은 벌어졌습니다. 한신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모든 점에서 불리하지만 첩보만큼은 제대로 들어왔습니다. 한신은 미리 첩자를 파견해 진여가 취하려는 전략을 파악했고, 이에 더해 이좌거가 올린 제안이 묵살 되었다는 사실 역시 전해졌습니다. 
'한신이 첩자를 시켜 염탐하게 했다. 첩자가 광무군의 계책이 채택되지 않은 것을 알고 돌아와 한신에게 보고했다. 한신이 매우 기뻐하며 군대를 이끌고 드디어 정형을 향해 갔다.'
이 기록을 보면 아마도 이좌거의 제안이 실제로 받아들여졌다면, 한신은 정형 부근에서 다시 회군해 싸우지도 않고 대나라 부근으로 물러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쨌거나 한신은 이좌거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대해 크게 기뻐했습니다. 훗날 전투가 끝난 후 이좌거를 만난 한신은 "만약 진여가 그대의 계책을 따랐다면, 나는 틀림없이 포로가 되었을 것이오." 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느정도 이좌거를 띄어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해도, 실제로 이좌거의 제안이 체택되었다면 한신은 정말 갑갑한 상황이 되어버렸을 겁니다.

최소한의 승리 가능성이 생기자 한신은 군사를 이끌고 정형 근처까지 진군했습니다. 정형에서 30리 거리, 즉 10km 안팎까지 다가오자 한신은 일단 이동을 멈추고 그곳에 진영을 꾸렸습니다. 잠시 병사들을 쉬게한 한신은 경기병 2,000명을 밤중에 추려내선 그 2,000명 모두에게 한나라를 상징하는 붉은 색 깃발을 들게 한 후, 샛길로 몰래 산으로 들어가 조나라 군의 진영을 주시하라는 아리송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한신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조나라 군사는 내가 싸우다 달아나는 것을 보면 반드시 성벽을 비우고 나를 쫓을 것이다. 너희들은 그때 재빨리 조의 성벽에 들어가서 조나라의 깃발을 뽑고, 우리 한의 붉은 깃발을 세우라."
그러면서 수하의 비장(裨將)을 시켜 출발하는 병사들이 가벼운 식사를 먹는 와중에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이 다음의 식사는 오늘 조나라를 깨트리고 나서 할 것이다!" (今日破趙會食!)
지금의 상황이 대단히 어렵다는 건 굳이 병법에 밝을 필요도 없이 누가 보더라도 명백했기에, 병사들은 한신의 이런 자신만만한 말을 어이없어하며 믿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묘사가 쓸데없이(...) 조밀한 덕분에 당시 한군 병사들의 심리가 잘 느껴져서 개인적으로는 좀 웃기더군요. 
제장들은 모두 (한신의 말을) 믿지 않고, 그저 건성으로 대답하였다. 諸將皆莫信, 詳應曰:
"예!" 「諾.」
이렇게 부족한 병력에서 2,000명이나 되는 병사를 따로 분리한 한신은, 이제와서 또다시 남은 병력 중에서 1만명을 따로 분리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병력을 현재 진을 치고 있는 군영에서 좀 더 앞으로 보내, 정형구 앞의 면만수(綿曼水)를 등 뒤로 하고 배수진(背水陣)을 치게 했습니다. 

대군을 앞에 두고 남은 힘을 집중시켜도 모자랄 판에 병력을 수차례나 잘개 쪼개는 묘한 운용에다, 병법에서 금기시 되는 행위인 '강을 등뒤로 하는' 배수진을 치는 작전 등 한신의 작전은 당시 사람들의 눈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1만 군대가 강을 건너 면만수 앞에까지 오자 그 모습은 정형의 조나라 군에 눈에도 띄었는데, 그 황당한 모습을 본 조나라 병사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조의 군대가 바라보고서 크게 웃었다(趙軍望見而大笑)
진여가 보고 웃었다거나 조나라 제장들이 보고 웃었다는 말도 아니고, 그냥 병사들 눈으로 봐도 웃긴 수준이었던듯...
그 속내야 둘쨰치고, 만약 따로 1만 명만 먼저 강 너머로 보낸 시점에서 조나라군이 몰려와서 공격해오면 그 1만명은 끝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조나라 군은 공격해오지 않았고, 이는 한신의 예상대로였습니다. 한신은 이를 걱정하는 한 군리(軍吏)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조는 유리한 땅을 차지해 누벽을 구축했다. 또 저들은 우리 대장의 깃발과 북을 보기 전에는 우리의 선봉을 공격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좁고 험한 곳에 부딪쳐 돌아가 버릴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趙已先拠便地為壁, 且彼未見吾大將旗鼓, 未肯撃前行, 恐吾至阻険而還)
즉 지금 조나라 군은 한나라 군 따위야 언제라도 격파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1만명 정도가 움직여도 자기들이 먼저 치면 적이 놀라서 도망가버릴까봐 한신 자신의 대장기가 눈에 보이기 전에는 공격해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장기를 앞세운 한신의 군대가 눈 앞까지 왔을때 쳐야 한신을 잡아 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조나라군은 한나라군을 비웃었지만, 실제로는 한신의 예상대로 그림이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튿날 날이 밝아 왔습니다.

후방에 남아있던 한신은 장이와 함께 남은 병력을 모아 대장 깃발을 세우고, 북을 치며 진격해 왔습니다. 예상대로 한신이 직접 나타나자 그제야 조나라군은 정형구에서 누벽을 떨치고 나와 맞서 싸움을 벌였습니다.
앞서 수차례 말했듯 한신의 군대는 이미 전투에 나서기 전에도 병력이 분할되었었고, 전투에 나선 시점에서도 또 병력이 분할된 상태였으니, 이때 한신이 이끌고 있던 병력의 숫자는 대단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신의 군대는 오랫동안 크게 싸우며(大戦良久) 대항했습니다.
그렇게 잘 싸우던 한신과 장이는 슬슬 부대가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기 직전의 상황에 몰리자, 가지고 온 북과 깃발을 모두 버리고 달아났고, 조군은 그런 한군을 추격했습니다.
급하게 퇴각해 온 한신과 장이를 보고 물가에 진지를 친 병사들은 서둘러 진의 문을 열어 그들을 들어오게 했습니다. 한편 승세를 탔다고 생각한 조나라군은 누벽을 비워놓고 주력군이 한신을 추격했는데, 일단 한신과 장이가 진에 들어서게 되자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던 기세가 크게 둔화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한군의 패색이 짙었으나 도망칠 곳도 없는 만큼, 필사적으로 싸웠으므로 조군은 이를 깨트릴 수 없었습니다.(軍皆殊死戦, 不可敗) 바로 이것이야말로 한신이 배수진을 선택한 이유였는데, 잘 훈련된 군사들이 아니고, 그나마 있던 정예병도 사라진 한신으로서는 시장바닥에 있던 사람들을 쓸어모아 전쟁터로 내모는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엉망인 부대는 조금만 전투가 어려워도 정신없이 달아날 것이 틀림없었고, 이런 상태에서 만약 도망칠 구멍이 있다면 너나 할 것없이 개미처럼 빠져나갔을 것이 자명했습니다. 그렇게 일부라도 흩어져 부대의 전열에 균열이 생기게 되면 그후에 짓이겨지는 것은 금방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신은 완전히 이들을 사지로 몰아버림으로써 치열하게 버틸 수 있게 된 겁니다. 한신은 이 이치에 대해서도 전투 후에 부하들에게 "병법서에 '죽을 곳에 빠진 뒤에야 살게 할 수 있고, 망할 곳에 있어야 생존하게 할 수 있다.' (陥之死地而後生, 置之亡地而後存) 라고 다 나와있는 것이다." 라고 설명하며 모든 것이 자신의 의도대로였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또한 만약 한신의 군이 조나라군과 정신없이 교전하다가 후퇴하던 와중 강을 만나 도주하지 못하고 싸웠다면, 앞서의 패배에 더해 완전히 규율이 무너지고 대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다소 무리해서라도 1만명을 따로 보내 진지를 구축해두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수비력이 준비되어 있던 상태였습니다. 
어쩃거나 배수진으로 버틸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배수진만으로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바로 이때, 한신이 미리 준비해둔 안배가 빛을 발했습니다.

바로 이 무렵, 한신이 미리 준비해두었던 2천여 경기병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병력 수에서 워낙에 한신 군이 밀렸던데다, '어차피 이긴 승부다' 라고 생각한 조나라군은 모두 몰려가 배수진을 친 한나라군을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이 틈을 타 산을 넘어온 2천여 경기병은, 폭풍 같이 정형구 안으로 내달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조나라의 깃발들을 모조리 뽑아 버리고, 가져온 2천여개의 한나라 깃발을 세웠습니다.
조나라군은 이미 거의 전병력이 전장에 나가버렸기 때문에 정형구 안에는 예비대도 부족했고, 설사 약간의 예비대가 있었다고 한들 한없이 유리하기만 했던 상황에서 갑자기 기습을 당한데다, 2천여 경기병이 재빠른 움직임으로 특공(特攻) 작전을 시행하자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무렵, 생각보다 거센 저항에 직면해 쉽게 배수진을 깨지 못한 조나라 군은 물러나기 시작했다가, 정형구 쪽에서 한나라의 붉은 색 깃발이 휘날리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무조건 이겼다고 생각한 전투가, 생각보다 쉽지 않게 흘러가기 시작하다가, 멀쩡하던 아군의 진지에서 갑자기 적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니?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멘붕에 빠진 조나라군 병사들의 심리 상황.
누벽에 모두 한의 붉은 깃발만 세워져 있자 매우 놀랐고 한이 이미 조왕의 장군들을 모두 사로잡았다고 생각하여 어지럽게 달아났다. 조의 장군들이 달아나는 군사를 베어 죽이면서 막으려고 했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이에 한의 군대가 협공해 조의 군대를 크게 깨뜨리고 병사를 사로잡았다. - 사기 회음후 열전
결국 조나라 군은 그 순간 대탈주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조나라 군은 여전히 한나라 군보다 압도적인 숫자 우위를 가지고 있었고, 설사 2천여 병력이 정형구를 장악하고 있다고 한들 재차 전력을 수습해 다시 공격한다면 언제라도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놓인 병사들은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모두 도주하기 시작했고, 조나라 장수들은 어떻게든 병사들을 수습하려 자신들이 직접 달아는 병사를 죽이면서 막으려고 했지만, 대군이 한번 무너지자 일개 장수들 몇명이 아무리 악을 써봐야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때, 한신의 군대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여기서 '협공' 했다는 기록이 인상적입니다. 조나라군 병력이 수습되기 이전 한신은 장이와 함께 몰려나와 이를 쳤고, 정형관 안에 있던 경기병들 역시 움직여 조나라군을 공격했습니다. 결국 조나라군은 압도적인 숫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몇배나 숫자가 적었던 한신 군단에게 '포위섬멸전'을 당하고 말았던 겁니다.
포위 당한 조나라 군사들은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죽어나갔으며, 성안군 진여는 결국 난전 중에 목이 달아났습니다. 적의 실질적인 총대장이 도망조차 하지 못하고 죽어버린 셈입니다.
그리고 이 전투의 성과는 여기서 끝난게 아닙니다.

리델 하트는 저서에서 '승리를 이용하고 완성하는' 추격전을 강조했습니다. 사기 장이진여열전에 따르면, 한나라 군은 도망간 조나라 왕 조헐을 저 멀리 양국(襄國)까지 추격했고, 결국 목을 베어 죽였습니다. 이로써 조나라는 호왈 20만에 일컫던 대군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실권자였던 진여, 명분적 중심이었던 조헐까지 모두 잃어버리게 되었고, 단 한번의 전투 패배로 조나라는 한신의 손아귀에 떨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형 전투의 승리도 승리지만, 이 부분이야말로 '진정한 승리'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초나라의 항우 같은 경우, 제나라 왕 전영과의 싸움에서 완승을 거두며 제나라의 주력군을 깨부셨지만, 제나라의 잔존 병력은 여전히 건재했고, 이를 수습할 전횡 등의 지도부 역시 살아남아 다시 병력을 조직, 저항을 계속하면서 제나라 전역에서 늪처럼 허우적거렸습니다.

댓글
  • 잘모르겠다 2017/10/23 01:09

    [리플수정]갠적으로도 본문글 동의하고 예전에 쓰셨던글도 잘봤습니다
    근데 아래400플가량되는글에 한신이 이긴건 진여가 허접이라 그렇다는 분이 계시네요
    한신이 정형전투에서 이긴건 사실상 무리수를 던졌지만 진여가 허접해서 통했다라고..
    전 본무에 동의합니다 매번 좋은글 감사합니다

    (m7rEUH)

  • 텔레리 2017/10/23 01:11

    역시나 보통 난독증이 아니군요. 사료와 자료를 구분 못하는 건 아님 난독증이 아니고 정말 구분 못하는건가요??

    (m7rEUH)

  • 잘모르겠다 2017/10/23 01:13

    글을 링크까지하면서 보라는데 뭐라하셨더라...
    신불해씨가 사료를 가져왔다면 그 부분을 가져와주세요. 신불해씨 자료가 뭔 전문학자의 논문도 아니고 신불해씨 글 자체로 그런 신뢰성을 가진것은 아닙니다. 그 사료부분이 중요하죠.
    링크글에 사료나와있다고 말씀드렸던거같은데 누가 누구보고 자꾸 난독이라는거지..;에혀
    그래서 이글보고도 진여가 무능했고 한신의 정형전투는 그저 얻어걸린 무리수덩어리라고 보세요?

    (m7rEUH)

  • 텔레리 2017/10/23 01:17

    그 글에서도 어디에도 얻어걸린 무리수덩어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만. 도박수가 지나쳤고 진여는 무능하였으며 이 정형전투 하나만으로 한신을 타 명장들에 비교할 수도 없는 위치로 올릴 수 없다고 하였지요. 대체 남의 댓글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읽으려고 노력은 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이글의 평부분 봤는데 진여가 정형적으로 움직였으며 별 실수를 하지 않았다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m7rEUH)

  • Realdrizzt 2017/10/23 01:2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m7rEUH)

  • 잘모르겠다 2017/10/23 01:21

    텔레리/
    말좀 그만바꾸세요
    http://mlbpark.donga.com/mp/b.php?p=1&b=bullpen&id=201710220010137622&select=&query=&user=&site=&reply=&source=&sig=hgjXGYtYjh6RKfX@hcaXHl-Ahhlq
    그냥링크합니다 님이 무슨주장을 했는지 다른분들도 보면될테니까요
    정형전투는 본문처럼 님이 추앙하는 제갈량보다 더힘든 조건에서 이뤄낸 아트급 전쟁기록인데
    이걸 무리수였고 상대가 무능했으니 높게 평가할수없다 다르게 평가해야된다
    라고 줄곧 주장하신현장이 있는데 뭐요?
    거기다 뭐라했죠? 제가 예전 신불해님 글 링크하면서 한번 읽어보시라고 링크했을때 뭐라하셨죠?
    "신불해씨가 사료를 가져왔다면 그 부분을 가져와주세요. 신불해씨 자료가 뭔 전문학자의 논문도 아니고 신불해씨 글 자체로 그런 신뢰성을 가진것은 아닙니다. 그 사료부분이 중요하죠" 라고하셨죠
    그 링크글에도 본문처럼 여러가지 사료가 포함되어있고 그에 따른 글쓴이의 주장이 첨가된 형태였는데
    마치 사료는 없는마냥 자료가치가 없는마냥 말씀하셔놓고는..
    그래서 지금 본문읽어보시고 어떤데요? 아직도 무리수덩어리라 한신의 정형전투는
    진여가 무능했기에 성공한 전투라고 보십니까?
    그저 진여빨받은 전투요?

    (m7rEUH)

  • 텔레리 2017/10/23 01:27

    잘모르겠다// 당장 이 본문에도 사기나 손자병볍에서 몇자 따오는 것 외에 명확한 글의 사료출처는 명기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왜 학자들처럼 신뢰성을 안 가지나면 당연히 학자들의 지식과 노력 말고도 출처들을 논문이나 서적처럼 다 적지 않았으니 구절을 일일이 찾아 비교하지 않는 이상 정확히 참고가 되었는지 확인이 안되니까요.
    정형에서 과연 한신이 3만군을 이끌고 버티자 진여가 군대를 죄다 투입한 건지 맞는 걸 따지는 거였고 그러면 당연히 그 사료를 가져와야지 출처가 명시되지 않은 글을 가져와서 어찌 신뢰성을 담보합니까..

    (m7rEUH)

  • 잘모르겠다 2017/10/23 01:27

    텔레리/
    정형전투는 20만으로 3만을 상대하면서 2천명의 별동대에게 관이 함락당하는 진여의 기적의 지휘능력이 함께 했다는 것도 있지요. 적어도 그 하후무 조차도 이런 경악스러운 지휘능력을 보여준적은 없습니다.
    텔레리/
    정형은 위에서 말했듯이 진여가 20만 군을 이끌면서 2천명도 관에서 못 막을 정도로 예비대를 운용 안했다는 트롤링이 함께 했기에 가능하였지요.
    솔직히 정형은 아무리 군사령관이 도박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지만 너무 심한 도박이었습니다. 진여가 전군의 100분의 1인 단 2~3천이라도 관에 빼놓았다면 한신은 거기서 죽었죠.
    텔레리/
    반대로 진여같은 바보가 아니면 당하지 않을 전략이라는 것도 되는 거죠.
    여기에 한신이 진여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진여가 그 많은 군대를 꼭 죄다 끌고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심한 도박은 맞습니다.
    텔레리/
    이건 지휘관이 한신이어서도 있다지만 상대가 진여인것도 못지 않았다고 보여집니다.
    텔레리/
    뭘 물타기입니까? 정형이 압도적인 전과였고 이 때문에 비빌수도 없다에 대한 답이죠. 정형은 한신의 능력도 있지만 상대 지휘관의 지독한 무능과 함께 한신은 매우 무모한 전투운용을 보였고 이것 하나만으로 비교불가라 재단할 수는 없다입니다.
    대충 긁어도 님이 한신평가가 이렇네요 정형전투는 진여빨 본인이 뭔소리했는지도 모르십니까?

    (m7rEUH)

  • 잘모르겠다 2017/10/23 01:30

    텔레리/
    역시 거의 들어갈 장군들은 한정됩니다. 거기에 더불어 대체 정형전투에서도 그렇고 한신이니 뛰어나다만 반복하시고 한신이 어떤 점에서 뛰어났다를 말하시지 않는건지요?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정형에서 한신이 어떤 점에서 무리한 운용이 아닌 뛰어난 운용이었다를 말해줘야 토론이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님의 이리플을 보고 제가 정형전투가 왜 대단한전툰지 댓글달기 시작했고 신불해님글까지
    링크해드렸었죠 .. 근데 뭐요? 누가 말을 바꾸고있는데..
    그리고 나쁜버릇이 있으신데요
    본인은 질문만하고 답변을 안하시네요?
    그래서 지금 이본문도 보시고 나서 아직도 진여빨받은 무리수였던 과대평가된 한신의업적이라고 보십니까?
    대답한번하시죠?

    (m7rEUH)

  • 텔레리 2017/10/23 01:31

    [리플수정]네 위에도 적었듯이 정형에서 진여가 한신과 합작해주지 않았으면 한신이 정형관을 돌파 못했으리라고 못 본다고 하였습니다. 한신의 지휘 못지 않게 진여의 무능함이 없었으면 돌파 못했을 거라고요. 가정에서 단순 장합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마속이 이를 합작해주었고 장평에서 백기에게 조괄이 그랬듯이요.

    (m7rEUH)

  • 텔레리 2017/10/23 01:34

    [리플수정]답변을 뭘 안해요. 이미 다 하고 있건만. 이게 답변을 안 주는 거면 본인이야말로 당나라에 연의가 널리 퍼졌다와 제갈량과 관우가 당나라에서 이미 신으로 대접받았다는 거에 대해 답변은 언제 주시련지요?

    (m7rEUH)

  • 잘모르겠다 2017/10/23 01:35

    상대의 그런 방심과 대응을 유도한게 뛰어난 장군의 능력이라고 여러분들이 누누히 말하건만
    그저 상대가 무능했음이라는 반응을 반복하시는게 참...
    제갈량의 상대는 유능했고 한신의 상대는 무능했다 이논리를 만들려고
    억지부리는건 정말 한편으로 대단하네요
    근데 그거아세요? 마속을 인선한건 제갈량인데요? 마속이 잘못해서 1차북벌 가정털리고 실패한건
    마속문제,
    북벌실패하고 후퇴하다가 위군상대로 전투에서 승리한건 제갈량의 군공..
    이 무슨 ㅋㅋ 북한입니까? 잘된건 제갈량능력 못된건 부하탓?
    마속인선 유선이했습니까?

    (m7rEUH)

  • 텔레리 2017/10/23 01:36

    대체 그놈의 가정은 제갈량의 인선 실패라고 몇번을 답변해줘야 합니까? 진짜 삼분지계글부터 기억상실증에 난독에 고의로 의심될 정도네요. 일부러 주장 되풀이하는 거 맞지요?

    (m7rEUH)

  • 잘모르겠다 2017/10/23 01:36

    텔레리//
    당대이야기는 제가 잘못한거라고 그 논쟁있엇던글에 이야기했던거 같은데
    여기서 왜나오죠? 님의 매우 잘못된 토론태도가 그거죠
    지금 한신의 정형관 전투이야긴데 몇주전 그글에서 본인이 시인한 댓글을 여기서 왜또 묻죠?
    저 그글에서 제가 그발언은 잘못한거다 라고 분명히 말했는데요?
    진짜 토론하는 꼴보면 어이고...

    (m7rEUH)

  • 텔레리 2017/10/23 01:38

    제 기억에는 차단하고 무시했던걸로 남아있습니다만. 그리고 몇주 전이 아니라 불과 몇일전으로 아는데요?

    (m7rEUH)

  • 잘모르겠다 2017/10/23 01:39

    텔레리//
    그글에 아직도 리플달려있을테니까 가서보고오세요 그리고 자꾸 주제비틀기 시전하지마시고
    여긴 정형전투이야기 중인데요?

    (m7rEUH)

  • 텔레리 2017/10/23 01:41

    아니 당연히 사료출처가 없으니 사료를 가져와야 근거가 되죠. 이게 무슨 1차 사료도 아니고 참조하여 쓴 글인데다 그 출처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데 신불해씨가 썼으니까가 근거가 되는 겁니까?...

    (m7rEUH)

  • 잘모르겠다 2017/10/23 01:41

    [리플수정]텔레리//
    신불해씨가 썼으니 진리라는게 아니잖아요
    정형관전투에 대해서 개괄적인 설명이 쉽게 되어있어 보기 편하니까
    그글에 사료들도 있는편이고 그러니 링크한거고요
    반론충분히했는데 계속본인말만 하신거 아닙니까
    계속 님이 같은 소리하니까 딴분이 답답해서 옆에서 거들정도로요

    (m7rEUH)

  • 잘모르겠다 2017/10/23 01:42

    텔레리/
    그래서 님은 뭐 대단한 사료가져와서 쓰셧나요? 그리고 본문어떤사료가 어떻게 문제죠?
    여기 뭐 논문심사합니까?
    저정도면 충분히 일반인들이 보기에 도움될만한 사료와 자료구성인데요?
    님글은 무슨 대단한 사료와 출처들이 있죠?

    (m7rEUH)

  • 텔레리 2017/10/23 01:43

    진짜 답답의 극치를 달리는데 님이랑 제가 논한 부분은 정형에서 진여가 한신을 추격할 때 군을 다 이끌고 나온건지 아님 님 주장대로 3만군으로 버티고 버티니 더 몰아가자고 나온건지 따져보자였고 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사료출처를 가져오자고 한 것 아닙니까?
    근데 여기에 왜 사료출처가 적히지 않은 2차 글을 가져와놓고 이게 왜 자료가 안되 하고 있냐고요.

    (m7rEUH)

  • 텔레리 2017/10/23 01:45

    그래서 회음후 열전으로 비교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1차 사료가 정확해요? 아니면 1차 사료에서 한번 퍼오는 글이 1차사료보다 정확해요? 신불해씨 글에 출처가 적혀 있다면 그게 신용되겠다만 안 적혀 있으니 그냥 1차 사료인 회음후 열전으로 보자고 한 것 아닙니까.

    (m7rEUH)

  • 텔레리 2017/10/23 01:48

    신불해씨 글 좋고 잘 씁니다. 그런데 논쟁에서 의견이 갈려서 이 부분이 어떻게 쓰여져 있느냐를 보자고 하는데 대체 1차 사료나 그 출처가 적힌 글을 보지 않고 출처가 적히지 않은 글을 들고 옵니까.
    님은 교수가 사료출처 보자고하면 위키를 들이미실 겁니까?

    (m7rEUH)

  • 잘모르겠다 2017/10/23 01:50

    딴분은 제가했던말 충분히 이해하고 알아듣는데 님혼자 자꾸 같은질문 반복하니
    딴분이 저대신 답플을 달정도였죠
    yuhars님의리플 보셨나요?
    텔레리// 한신이 대등하게 전투를 하여 계속 병력을 투입하게 유도했다고 왜곡한 것은 어찌 된 것입니까?이 왜곡이 아닌것은 님이 직접 회음후 열전을 긁어온 '한조 양군은 회전에 들어가 오랫동안 격전을 벌렸다'에 나오는데요? 이건 왜곡한게 아니라 절대적으로 부족한 병력으로 오랬동안 격전을 벌렸다는것 자체가 한신이 대등하게 전투를 하여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병력을 투입하게 만든 증거죠.
    뭘자꾸 저보고 말꼬리잡고 전력투사 계속했냐고 님이 계속 계속 계속 말꼬리잡으니
    전 계속같은답변하고 저분이 보다못해 님한테 한소리했죠
    진짜 님 토론 너무 최악입니다 말꼬리잡고 주제와 상관없는 곳으로 말돌리고 트집잡기 반복
    설명해도 못들은 마냥 다시 묻고.. 왜그러세요?
    회음후열전에 오랫동안 싸웠다는 기록으로 님에게 충분히 이해될만큼 설명하고 상황설명드렷는데
    님은 그냥또 묻죠.. 와 진짜 토론태도 최악을 달리시네

    (m7rEUH)

  • 텔레리 2017/10/23 01:52

    저사람도 똑같이 난독인게 님은 한신이 3만의 군대로 계속 맞서니 진여가 더 보내면 되겠지 하다가 전 병력을 투입했다고 적어놓았잖습니까. 실제 전투 과정에서는 그리 진행된 것이 아니라 1만 군으로 싸우다 후퇴하니 그걸 전군으로 쫓은 것인데 실제 과정이랑 다르게 묘사하고서 뭔 말꼬리 타령이에요.
    지금 님이 본인 불리해지면 물었던 가정 다시 묻고 예비대 애기하고 있는데 엉뚱한 애기들만 하던것들은 죄다 잊으셨는지요? 가정은 여기서도 또 묻긴 햇네요.

    (m7rEUH)

  • 잘모르겠다 2017/10/23 01:55

    텔레리//
    400플을 달리는 저글에서 님에게 반론한 사람 저포함 못해도 10명이 넘어요
    근데 님 태도 어떻죠? 삼국지를 좋아해서 장판파 시전하지 않으셨던가요?
    남이 자료링크해도 사료를 가져와라
    링크한 자료에 사료있다 가서봐라 하면
    니가 예전에 다른토론에서 이런이야기했었지라고 뻘소리하고
    아니 그 사료가 저기있으니 가서보라하면
    일개불패너가 쓴 사료출처가 없는자료는 신빙성이 있니없니..
    계속버텨서 진여입장에서는 병력을 계속투입할수밖에 없었다라고했더니
    계속투입했다는게 축차투입이라고 우기면서 ( 그런이야기 아무도 한적없는데 )
    계속 같은질문 6~7번반복..보다못한 옆사람이 이렇게 들리는데요?라고 할정도..
    토론태도 왜그러세요?
    지금 여기서도 니가 예전에 삼국지소설이 당나라때 흥했다고 했지!라고 완전 딴소리..
    제가 그글타래에서 아 발언실수했다 제가 잘못한부분이다라고 마무리까지했는데
    여기서 또 묻고... 아니 무슨 님하고는 주제에대한 토론을 할수가 없어요
    본인이 불리하면 답안하고 딴소리 딴소리 반복.. 진짜 최저시네

    (m7rEUH)

  • 텔레리 2017/10/23 01:57

    아니 제대로 반론한 사람이 대체 누가 있었지요? 님처럼 글도 안 읽고 와서 가정 운운한 사람만 4명은 있었네요. 저 글에서 정형정투에 대해 어쨌거나 이야기 한사람은 3명뿐이었습니다만.
    한신이니까 이긴겁니다. 힌신이니까 더 뛰어납니다. 정작 왜 뛰어난지 설명해달라면 한마디도 못하고 도망가는 게 반론인건가요??

    (m7rEUH)

  • 잘모르겠다 2017/10/23 01:59

    텔레리//
    진여입장에서는 한신이 원정에 지쳐있고 병력도 보잘것없고 정예도 빠진 병력이죠
    그럼 한번에 몰아칠만하죠
    그리고 이글 본문에 있듯이 진여는 한신을 본인이 잡고싶어했고 공명심이 생긴거죠
    누가봐도 한신은 큰먹잇감이고 본인이 유리하니까요
    근데 계속해서 님이하시는 말이 이런 진여의심리를 파악하고 정말 기가막히게 유인해서
    정형전투를 승리로 이끈한신에대해서 폄하하면서 진여가 무능해스 그런거임
    한신은 무리한건데 진여가 무능해서 운좋았음 이런 논리잖아요
    진짜 너무 말도안되는 주장아닙니까?
    본인목숨걸고 대장기 세워서 진여나오도록하고 "오랫동안" 절대 열세의 병력을 통솔하고 지휘해서
    붕괴안되고 버티고 버텨서 상대의 전력투사를 계속해서 받아내고 상대는 병력투입을 계속할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별동대로 관을친게 그저 상대가 무능해서얻어걸렸다면 너무 말이 안되는소리죠
    이런 답변 저포함 저글에 10분은 님한테 한거같은데 님 토론태도 어땠죠?
    이 리플 끝으로 님 차단합니다 말을 섞을 가치가 없는 토론태도를 가진 분이세요 님은

    (m7rEUH)

  • 텔레리 2017/10/23 02:00

    그리고 당장 삼분지계글에서만도 반론을 몇번을 들었고 그 당나라 이야기 나온 글에서도 몇명한테 반론듣던 사람이 뭐 남에게 여려멍에게 반론 들으니 이야기를 하지 말아요? 내로남불이신가요?
    거기에 더해 토론태도 운운하려면 몽고글도 그렇거니와 저글에서도 글쓴이에게 대뜸 연의나 읽고 정사 안 읽었죠하고 시비걸고 비아냥만 대던 분이 누구신지도 잊으신겁니까? 아니 왜 이리 내로남불이세요?

    (m7rEUH)

  • 텔레리 2017/10/23 02:02

    뭐 그 당나라 애기 나온글이나 몽고글에서도 그러더니 자기 불리하면 언제나 차단이지요. 자기들이 근거도 없이 비아냥대고 토론태도 운운하는 건 진짜 코미디네요.

    (m7rEUH)

  • 잘모르겠다 2017/10/23 02:17

    텔레리//
    저 차단한다고 말을하지만 쉽게 차단안합니다
    불리하다고 차단하고 그러지 않아요
    차단목록이라도 보여드려요?
    그만큼 벽에대고 말하는듯한 상황이 답답해서 해보는소리일뿐이구요
    지금 님 또 나쁜버릇나오는데
    몽고토론? 이런거 왜나오죠?
    그리고 그토론에서 제가 불리하다고 물러선적이 없는데요? 충분히 상대방의견듣고
    내의견도 말하고 오히려 몽고쪽 승리한다가 훨씬 많았는데요?
    몽골5만기병vs 왜군20만 아녔나요?
    보세요 님 나쁜버릇.. 지금 주제와 아무상관없는 지난이야기를 왜하시는거죠 대체?
    그글에서 토론을 저한테 거시든가요
    제가 유일하게 아 제가 말실수했다 잘못알았던 부분이다 라고 한건 당나라이야긴데
    그거 여기서 님 지금 몇번꺼낸지 아세요?
    토론을 어디서 누구한테배웠길래 그딴 버릇이 있으신건지?
    지금 정형관전투 이야기 아닌가요?
    비아냥은 님이 젤잘하시는거구요
    400플달리는 글에 님지적하시는분이 몇분인거 같은가요?
    정형관전투 한신이 왜 대단한지 진여의 심리까지 파악했기 때문이다라는 요지의 답변이
    못해도 100플은되는데 님은 제대로된 답변이 없다?
    내가 듣고 싶은 답변이 없다라고 하셔야죠 그게 본심 아니신가요?
    지금도 보세요 정형관과 아무관련없는 딴소리 말꼬리잡기 몇주전이야기꺼내기..
    토론스킬 화려합니다 그려
    코미디라 하셨는데 더 웃긴건 뭔지아세요?
    저 400플 토론에도 님이 벽처럼 본인말만하니 차단한다는 사람이 있는데
    님이 거기에 대고 한말이이거죠
    뭐 언제나 이런식이군요. 항상 질문만 하다가 자신에게 불리한 대답은 쏙 빼놓고 대답하지 않다가 지적당하면 엉뚱하게 답하고 다른 주제로 몰이하려고 하고 안되니 저번엔 도망치고 이번엔 차단이군요.
    여기선 저한테 하시는군요 사람들은 이걸 정신승리라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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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즈질유저 2017/10/23 10:17

    왜 좋은 글들에 관련없는걸로 싸우고들 그러세요;;
    하튼 신불해님 글 잘 봤습니다.. 스킵없이 장문의 글 재밌게 잘 읽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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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대문자 2017/10/23 10:37

    잘봤습니다 여기까지 분탕을 치는 "이젠 뭐가뭔지모르겠어 일단 내가 한 주장만큼은 못굽히겠따 으아아아" 하는사람도 보이네요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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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텔레리 2017/10/23 11:17

    불대문자// 뭐 어떻게 해서 한신이 예상했을 것이다가 아닌 그냥 한신이 예상했어 한신이니까 한거야라고 우기기만 한 분 눈에야 뭐가 뭔지 모르겠지요.
    어제도 주장하면서 전투 과정이나 전술 운용에 대해 단 한마디도 못하시던데 아예 알지도 못하면서 ㅋㅋㅋ만 하고 있으면 난 잘 아는 사람으로 보이는줄 아나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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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대문자 2017/10/23 11:31

    텔레리// 측은합니다 그냥 "제가 좀 오바했어요 죄송합니다 제갈량을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너무 나간거같네요" 지금 하셔도 늦지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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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텔레리 2017/10/23 11:37

    [리플수정]불대문자// 역시 되도 않는 비꼬기 밖에 못하는군요. 본인이 아예 알지도 못하는 것으로 너가 틀렸다고 하면서 비꼬는건 얼마나 뻔뻔해야 가능한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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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대문자 2017/10/23 11:53

    텔레리// 뭘 비꼬아요 제가 뭘 비꼬았습니까 그냥 좀 에지간히 하고 인정하고 사과하면 괜찮을일이라고 대놓고이야기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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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대문자 2017/10/23 11:53

    텔레리// 암튼 좀 역겨워서리 차단할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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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텔레리 2017/10/23 12:00

    토론하면서 상대방에게 ㅎㅎ ㅋㅋ 쓰는 사람들은 뭐 죄다 이 정도 수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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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으와하르 2017/10/23 13:03

    저기 좀,
    남의 글에서 수십플, 수백플 달아가며 싸우는 거 좀 심한 비매너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저번 글도 그러더니 이 글에서도 계속 그러시네요. 글쓴 분만 무안하게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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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탄곰 2017/10/23 13:04

    다른글파서 둘이서 싸우세요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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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ung026 2017/10/23 13:53

    불대문자/ 사실 사람'들'에 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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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도숙희 2017/10/23 15:39

    선추천 후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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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A박정수 2017/10/23 16:05

    신불해님 항상 감사합니다.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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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승타타 2017/10/23 16:14

    전투력 대단들 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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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윤RanomA탱율팁] 2017/10/23 18:21

    나무위키의 정형전투 글 읽으면서 '아... 한신이 이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싶었는데, 신불해님이 생각난다 싶더니만, 역시 한신의 대단함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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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말코비치 2017/10/23 18:38

    신불해님 늘 즐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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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마니체 2017/10/23 20:18

    저분은 볼때마다 장판파중이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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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9017984 2017/10/23 20:27

    그런데 신불해님이 보실지 모르겠지만 궁금한 게 있는데요, 유방이 한신의 군대를 강탈한 건 형양 전투 극후반에 형양을 두번째로 빼앗긴 때, 그러니까 정형전투보다 나중의 일로 알고있는데, 제가 틀린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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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불해 2017/10/23 22:23

    389017984/
    정형 전투 직전에 유방은 한신의 군단에서 정예병만 뺴내갔고, 형양 함락 이후에는 잠자던 한신의 인수를 뺏어 군사 지휘권을 얻어냈습니다. 두 사건은 별개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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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드랍더볼 2017/10/24 00:43

    크 명문이네요. 시간가는줄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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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개맞은치킨 2017/10/24 06:30

    신불해님 글은 항상 재밌게 읽고있습니다 볼때마다 정말 감사
    드릴정도로 너무 유익해요 ㅎㅎ 저도 역사좋아해서 실록이나
    많은 사료들을 찾아보는데 신불해님 글은 항상 새롭고 처음보는것들이라 항상 리스펙합니다 저 이런요청 드려서 죄송하지만
    시간나시면 정형전투외 나머지 전투들에 대한 글도 써주시면 안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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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개맞은치킨 2017/10/24 06:44

    텔레리/잘모르겠다/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다 맞든 남들 토론태도가 다 맘에 안들든 님들부터 댓글다는 예의를 지키세요 신불해님이 이 글쓰시는데 정성을 들이고 대부분사람들이 재밌게 읽는데 꼭 여기까지와서 그렇게 싸우셔야되겠어요? 반대로 님들이 이정도글을 썼다고했을때 걸리는시간과 정성을 생각해보세요 누가 님들글에서 싸우고 비아냥거리면 기분이 어떠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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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개맞은치킨 2017/10/24 06:53

    그리고 덧붙이자면 특히 텔레리님은 상대에 대한 예의도 지키셔야될거 같아요 토론태도나 방식도 제가 봤을땐 그리좋아보이지도 않고 특히 신불해님이 힘들게 쓰신글에 사료출처가 되있냐 안되있냐 그래서 토론근거로 쓰기에는 신뢰도가 떨어진다는말까지하시네요 앞으로 신불해님 글이나 또 다른 정보가 많은 글에서는 이런모습좀 안봤으면 좋겠습니다 님이 이정도 글을 한번써보세요 이게 얼마나 힘들고 정성이들어가는지를 역지사지로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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