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팬더가 뭔지 알면 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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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마가 틀딱애니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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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진 : VHS 비디오 시절에 최고의 주가였던 회사였어요. 항상 1위였던 회사였죠.
문체부등록 제 58호(대영비디오프로덕션), 192호(명보시네마)
1980~90년대 동양비디오(55), 삼부프로덕숀(47)과 함께 어린이용 비디오 시장을 제패한 시대의 풍운아 회사.
대영팬더의 전신인 대영비디오프로덕션으로 활동한 80년대 초반부터 90년대 말까지 출시한 어린이용 비디오가 너무 많아서
정리가 안될 지경이다. 아래 출시한 비디오 외에도 더 많고 명보시네마 제작에 타 업체를 통해 출시한 비디오도 있다.
1983년 임종구 창업주가 '대영비디오프로덕션'을 세워 한국 극장판 만화, 일본 만화 및 국내/외국 영화들을 비디오로 출시하였고,
1988년에는 국내 최초의 비디오 영화 <산머루(감독 김영한)>를 제작한 바 있다. 1989년 '대영팬더' 브랜드를 탄생시켜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을 수입하여 히트시키면서 연이어 수많은 어린이용 비디오를 출시했다.
대영팬더로 이름을 바꾼 뒤에는 애니 및 어린이용 비디오 영화 업체로 방향을 틀어서 외화 및 국내 개봉 영화들은 출시하지 않았다.
1980년대생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어미 팬더와 아기 팬더, 호환, 마마, 전쟁보다 무서운 불법비디오를 알려주는 꽃가족이 나오는 비디오다.
참고로 김환진 성우의 인터뷰에 따르면, 더빙료를 현찰로 당일 직접 줘서 대영팬더 더빙을 굉장히 반겼다고 한다.
당시는 계좌이체로 급여 지급을 하는 개념이 거의 없었으니 급여 자체를 현금으로 받는걸 강조했다기보다는,
성우로서의 평소 수입 외에 따로 들어오는 부수입으로 짭짤하게 많이 줬다는 점을 돌려 말한 것으로 추측된다.
거기에 녹음 "당일" 바로 지급한다는 점이 몹시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당시는 사실상 현금사회였기 때문에, 열심히 녹음해놨더니 돈은 다음에 준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2017년에 성우 김환진이 더빙의 신에 출연해서 회고하길 당시 VHS 비디오 업계 중 으뜸가는 회사였다고 하며,
워낙 잘나가서 90년대에 후뢰시맨 하나 가지고 무려 40억이나 벌었다고 한다.
당시 성우들의 출연료는 일했다는 증명서를 받아 총무과로 찾아가 돈봉투로 바꾸는 방식이 널리 쓰였는데,
대영팬더는 업계에서 유일하게 당일 현금으로 줬을 정도라고 한다.
대영제국 시절 만든거임ㅇㅇ
우욱 할아버지 쉰내
이미 위에 등판했네
와! 대영팬더! 후뢰시맨!
큿
대영제국 시절 만든거임ㅇㅇ
김환진 : VHS 비디오 시절에 최고의 주가였던 회사였어요. 항상 1위였던 회사였죠.
문체부등록 제 58호(대영비디오프로덕션), 192호(명보시네마)
1980~90년대 동양비디오(55), 삼부프로덕숀(47)과 함께 어린이용 비디오 시장을 제패한 시대의 풍운아 회사.
대영팬더의 전신인 대영비디오프로덕션으로 활동한 80년대 초반부터 90년대 말까지 출시한 어린이용 비디오가 너무 많아서
정리가 안될 지경이다. 아래 출시한 비디오 외에도 더 많고 명보시네마 제작에 타 업체를 통해 출시한 비디오도 있다.
1983년 임종구 창업주가 '대영비디오프로덕션'을 세워 한국 극장판 만화, 일본 만화 및 국내/외국 영화들을 비디오로 출시하였고,
1988년에는 국내 최초의 비디오 영화 <산머루(감독 김영한)>를 제작한 바 있다. 1989년 '대영팬더' 브랜드를 탄생시켜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을 수입하여 히트시키면서 연이어 수많은 어린이용 비디오를 출시했다.
대영팬더로 이름을 바꾼 뒤에는 애니 및 어린이용 비디오 영화 업체로 방향을 틀어서 외화 및 국내 개봉 영화들은 출시하지 않았다.
1980년대생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어미 팬더와 아기 팬더, 호환, 마마, 전쟁보다 무서운 불법비디오를 알려주는 꽃가족이 나오는 비디오다.
참고로 김환진 성우의 인터뷰에 따르면, 더빙료를 현찰로 당일 직접 줘서 대영팬더 더빙을 굉장히 반겼다고 한다.
당시는 계좌이체로 급여 지급을 하는 개념이 거의 없었으니 급여 자체를 현금으로 받는걸 강조했다기보다는,
성우로서의 평소 수입 외에 따로 들어오는 부수입으로 짭짤하게 많이 줬다는 점을 돌려 말한 것으로 추측된다.
거기에 녹음 "당일" 바로 지급한다는 점이 몹시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당시는 사실상 현금사회였기 때문에, 열심히 녹음해놨더니 돈은 다음에 준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2017년에 성우 김환진이 더빙의 신에 출연해서 회고하길 당시 VHS 비디오 업계 중 으뜸가는 회사였다고 하며,
워낙 잘나가서 90년대에 후뢰시맨 하나 가지고 무려 40억이나 벌었다고 한다.
당시 성우들의 출연료는 일했다는 증명서를 받아 총무과로 찾아가 돈봉투로 바꾸는 방식이 널리 쓰였는데,
대영팬더는 업계에서 유일하게 당일 현금으로 줬을 정도라고 한다.
https://youtu.be/biOSSFMGqpQ
우욱 할아버지 쉰내
아카네짤 바뀐거 왜이리 웃기지ㅋㅋ
내가 알던 골라이온이랑 다른데 완전 옛날거인가보네
뭐야 왜 쳐부숴라 골라이온 아니에요
유게 터줏대감인 영감탱이가 슬퍼하자나.팩폭은 이정도로.ㅋㅋ
이미 위에 등판했네
대형팬더
대형팬더 같은거 본적도 들은적도 없어!
할아뷰지다
대여한걸 왜 가지고 있음???
예전에 비디오 가게가 망해서 저런거 파는 곳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