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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볶음밥 인간

[ 마지막으로 초능력을 쓰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의 이별 선물은 아주 특별했다.

[ 손가락으로 '이곳'과 '이곳'을 동시에 누르고, '변신!'이라고 외치시면 됩니다. 그러면 부디, 영혼의 짝을 만날 그날을... ]

사람들은 곧 외계인이 알려준 방법을 실행해보았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세상에! " 
" 꺅?! "

변신을 외친 사람들이 순간, 살아있는 '음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볶음밥, 라자냐, 삼계탕, 샥스핀, 치즈, 양꼬치, 족발, 라면 등등. 세상에 존재하는 음식 중 하나로 변했다.
하지만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인간의 형상을 유지한 상태에서 건더기나 국물이 흩어지지 않았고, 자유롭게 걷고 움직이며 생활할 수도 있었다.
변신은 10분 정도 뒤에 자동으로 풀렸는데, 언제든 다시 변신할 수 있었다. 다만, 음식은 고정이었다. 새우 볶음밥으로 변신할 수 있는 사람은, 다시 변신해도 새우 볶음밥이었다. 즉, 각자 고유의 음식이 있다는 것.

이 특이한 초능력은 지구를 꽤 시끌벅적하게 했는데, 모두가 가장 궁금해하던 생각은 하나였다.

" 음식으로 변했을 때 먹히면 어떻게 되는 거야 이거? "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빨리 퍼졌다.

[ 음식일 때 손을 먹히더라도 다시 인간으로 돌아갔을 땐 원래대로다. 다만 극도의 허기짐과 피로, 심할 경우엔 기절까지도 유발한다. 그래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 ]

지구상에 누가 최초로, 어떤 의도로 왜 실험해봤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결과는 나돌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먹어보기'를 시작했다.

" 와 너 손가락 진짜 족발 맛이야! 아니, 최상급 족발 맛이야! "
" 볶음밥 불맛 나는 것 좀 봐라! 와! "
" 세상에, 네 변신 초능력이 치즈 버터 랍스터야? 사랑한다 친구야! 한 입만! "

처음에는 손가락 하나 정도로 실험해보다가, 다시 인간이 되어도 멀쩡한 걸 확인하게 되면 좀 더 과감하게 시도했다. 공통된 의견은, 음식의 질이 너무나도 신선하고 최상급이라는 것. 
먹는 사람이든 먹히는 사람이든 신기하고 재밌어했다. 물론 행위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이 특이한 초능력을 즐겼다.

" 야! 내 변신 호빵이야! 호빵맨이 머리 떼주는 거 알지? 내가 해볼게! 흐흐 "
" 와 페레레로쉐 초콜릿 내가 제일 좋아하는데! 너랑 결혼하면 평생 먹을 수 있겠네? "
" 아~ 이게 불도장이라는 거야? 나 불도장 처음 봐! 고급음식이라 좋겠다 너~ "

재밌는 것은, 음식에는 등급이 있단 점이었다. 누구는 뻥튀기인데 누구는 참치 대뱃살이면? 아무래도 그 차이가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재미에 가까웠던 이 변신 초능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가지 사회 현상을 일으켰다.


가령 기업의 면접에서, 어떤 취업 준비생은 어디서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 제 초능력은 한우 꽃등심 스테이크입니다. '변신! "
" 오오오~! "
" 저 친구 무조건 뽑아야겠는데? "

어떤 맞선 자리에서는 요구 스펙 하나가 추가되었다.

" 실례지만, 초능력이 어떻게 되시는지? "
" 아! 그것이...계피사탕인데요... "
" 계피사탕이요? 으음..솔직히 말해서 아쉽군요. 다른 좋은 인연을 찾아보시길. "
" 뭐예요?! 당신은 뭐길래! "
" 저는 양갈비 프랜치랙 급입니다. "
" ... "

어떤 학교 폭력에서는,

" 야! 피자 셔틀! 배고프니까 빨리 변신해! "
" 아, 알았어...근데 나 너무 어지러우니까 조금만 먹으면 안 될까...? "
" 이게 어디서 확! 그냥! 맞기 싫으면 변신이나 해! "
" 어, 어! 할게! 때리지 마! '변신!' "
" (우물우물) 이번에 신입생 중에 탕수육 들어왔다며? "
" (우물우물) 잘됐네. 근데 느끼한 거 먹으니까 칼칼한 거 땡기지 않냐? 김치찌개 옆반에 누구였지? "

어떤 아파트 단지에서는,

" 어때요? 이웃끼리 음식 나누기 계를 하는 거! 좋은 아이디어 아니에요? "
" 아 좋죠! 근데, 102호네는 음식 질이 너무 별로던데...솔직히 번데기 같은 거 징그럽기만 하고. "
" 음~ 그럼, 일단 최소 참가자격을 합의해볼까요? " 

어떤 불우이웃돕기에서는,

" 어머 세상에! 소고기 육회세요? VIP이시네! 아이고 이렇게 도움 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 아, 콩 볶음 이시라고요?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

어떤 방송국에서는,

" 저희가 이번에 데뷔시킬 신인 걸그룹은 모두 최고급 식단으로 짜여져있습니다! 게스트로 불러주시면 어디든 고급 출장뷔페가 간다고 생각해주셔도~ 하하 "


이렇듯, 초능력이 일종의 등급을 나누는 현상들이 일어났다.
경제적으로도 커다란 충격을 주었는데, 음식 문화의 몰락이라고도 할 만했다. 요리사도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 하나하나가 '개인 식당' 그 자체였으니까. 초능력이 고급인 사람은 평생 놀아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 아빠'란 말보다도 가장 먼저 가르치는 단어가 '변신'이었다. 

" 여보! 우리 애 변신 초능력이 철갑상어 알 요리야! "
" 진짜?! 대박! 걔는 우리 집안을 일으킬 복덩이야! "

변신 초능력은 점점 인류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한도가 있는 법이다.

[ '변신 쇼크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신체를 소모했을 경우,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갔을 때 쇼크로 사망하게 되는 일인데요. 현재 알려진 바로는, 신체의 50% 이상은 절대 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10~20%만을 떼어내기를 권장합니다. ]

인간이 사는 세상에 다 좋은 일만 있을 순 없었다. 범죄의 대상이 인간의 신체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일들, 인신매매를 통한 사육 같은 것 말이다.

" 제발 집에 보내주세요...! "
" 닥치고 빨리 사료나 처먹어! 빨리 회복하지 않으면 죽는 건 너야! "
" 제발요! "
" 원망하려거든 네 변신 능력을 원망하던가. "

치안이 좋지 않은 나라에서는 이런 식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또한, 가난한 국가에서는 국민들의 신체 자체를 수출품으로 써야만 했다. 그것이 암시장이라면, 통째로 인간을 파는 경우까지도 발생했다.

부유한 사람은 즐거웠다.
초능력으로 변신했을 때의 요리는, 그야말로 극상의 맛과 질을 유지했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
부자들은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집에 '인간'을 많이 쌓아두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부의 과시가 되기도 했다.
가령 누군가를 집에 초대한다면, 인간의 '이름'이 적힌 메뉴판을 보여주는 거다. 그 목록이 길면 길수록 주인의 어깨는 올라갔다.

" 자,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얼마든지 골라보게. "
" 흠흠..자네 컬렉션이 꽤 늘었군. 그럼 일단 간단하게 송로버섯 수프로 시작해볼까? 푸아그라 스테이크도 좋겠군. "

그러면 주인은 일부러 인간의 이름을 불러 주문했다. 재미를 위한 악취미라고나 할까.

" 그거 좋지. 잠시만 기다리게. '카를로스! 짜오밍! 내 방으로 올라와!' "

어떤 부자는 건강을 위해서 균형 잡힌 식단을 짜놓고 만족하기도 했다. 채소, 해산물, 육류 인간을 균형 있게 짜서 로테이션을 돌렸다.

" 어~ 난 소고기 등심이잖아. 그 회장님 식단이 정확해서 월요일이랑 금요일만 근무하면 돼. "
" 부럽다. 나는 잡곡밥이라서 주 7일 근무인데.. "


정말 이상한 세상이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외계인이었다. 
외계인은 도대체 왜 인간에게 이런 초능력을 알려준 것일까? 마지막에 말했던 '영혼의 짝'이라는 건 무슨 뜻일까?

그 궁금증은 몇 년 뒤에 자연스럽게 풀렸다.
파란 피부의 외계인들이 단체로 지구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초능력을 알려준 것에 감사를 표하고 환영해야 하는지, 혹은 경계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수백만의 외계인들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우주선에서 내렸다. 
그날 지구를 떠났던, 그들의 대표가 나서서 인류에게 양팔을 벌렸다.

[ 반갑습니다 지구인 여러분. 여러분과 저희는 영혼의 짝입니다. ]

" ? "
" 그게 무슨 말입니까?! "

지켜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궁금증이 떠오를 때, 외계인들은 설명보다는 행동으로 알려주었다.

[ 변신! ]

" ?! "

수백만의 외계인들이 일제히 변신했다. 

숟가락, 젓가락, 접시, 포크, 나이프, 국자, 그릇, 티스푼-. . . 수많은 식기로.

그리고 하늘 위로 불투명한 거대한 '손'들이 나타나, 식기들을 쥐었다. 

인류는 떨었다. 이 불안한 상상이 제발 맞지 않기를...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9/27 21:36

    출판 계약을 하고 나니까 마음이 너무 들뜨네요. 이 이야기도 제가 어떤 정신으로 쓴 건지 모르겠습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엉망진창 멋대로 나온 것 같은데...
    진짜 제가 감히 책을 낼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신기하고 또 감사합니다.
    가끔 댓글을 보면 저에게 감사하다고 남겨주시는데, 보시다시피 감사해야하는 건 무조건 접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참...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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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쵸 2017/09/27 21:43

    제 변신은 피자면 좋겟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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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빛태양 2017/09/27 22:06

    축하드려요~~항상 잼나게 보고있는 사람중 한명으로 책이 나온다니 제가 다 기쁘네요^^
    항상 좋은일만 있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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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코아의꿈 2017/09/27 22:17

    헉 출판 축하드려요!! 언제나 재밌게 읽고 있었는데 제가 다 기쁘네요!!
    여담이지만 저는 제가 변했을때 간장치킨이면 좋겠어요 요새 치킨 값이 많이 비싸져서...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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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이내린미모 2017/09/27 22:41

    오!!! 드디어 출판하시는군요!! 종이책인가요? 저도 다 두근거립니다!!!! 참, 저는 해물찜으로 변신하고 싶어요 매일매일 내가 먹게... 우걱우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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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상괴담 2017/09/27 22:47

    재밌게 읽었습니다~ 동화적인 상상력을 유지하면서 그 안에 사회적인 풍자도 녹아있는 것이 즐거운 글이에요.
    읽는 즐거움이란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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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지기-마님 2017/09/27 22:49

    님글 읽으면서 항상 감탄사만 연발하는 사람이에요..
    정말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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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라도! 2017/09/27 23:27

    외계인 시리즈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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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감함니다 2017/09/27 23:56

    제목좀요
    꼭 소장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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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치열 2017/09/27 23:58

    드디어 책이...!! 축하드립니다!
    제 닉네임을 보시다시피 팬 중 한 사람으로서 매우 기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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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시기리NO 2017/09/28 00:30

    우와 축하드려요 ㅎㅎㅎ 잡곡밥이여섶7일근무 이부분에서 웃겻어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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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니까닥쳐줘 2017/09/28 01:00

    항상 기대되는 마음으로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출간되자마자 꼭 알려주세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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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매검 2017/09/28 01:01

    항상 재미있는 글 감사드려요^^
    출판 너무 축하드려용!!
    복날님이 누구보다 행복하시길 빌게요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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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날은간다 2017/09/28 01:05

    감사합니다! 제목은 아직 안 정해졌지만, 소식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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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창깎던노인 2017/09/28 01:38

    볶음밥 인간이라는 제목, 출처의 볶음밥 머리 그리고 꼬릿말에 냠냠냠냠까지 너무 귀여워요 ㅋㅋㅋㅋ 출판 축하드리며 언제나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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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묻어가자 2017/09/28 03:18

    축하드립니다.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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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고프ㄷr 2017/09/28 03:19

    꼭 구매해야겠어요! 대박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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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당당 2017/09/28 03:32

    축하드려요!!항상재밌게보고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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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지개솔로처 2017/09/28 04:23

    '이곳' 과 '이곳'이 어디걸까요...? (쓸데없는데 궁금증) 책 기대하고 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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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핑구신 2017/09/28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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