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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 프로젝트 4 월드 그레이트 게임 (40)


두번째 동영상
방 입구에는
제대로 옷도 못 갖춰입고 달려온
후루야 레이
회의실 안에는
구석에 모여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와
이가, 코가 닌자 일족 인사들
그리고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고 싶어서
다급하게 달려온
키세가와 키레이와
스즈노네 료코,
그리고
안인을 대표해서
지금 이 곳에 있던
코즈키 시오네와
안인 책임자인
지라이보 주젠을 필두로
회의실 입구 쪽에는
사쿠라바 잇토키와 바이츠만 국장이 서 있고,
카멜리아는
여전히 주저앉아 있는 기묘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쿠도 신이치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쿠도 신이치(올림푸스)의 지시에 따라
투덜이 스머프마냥
툴툴거리면서
이리듐 위성 휴대전화를 꺼낸
키리가야 카즈토(콜로서스)가
밀러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본이 자정에 가까워진 시간이라면,
워싱턴 DC는
오전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밀러 국장이 잠들어 있을 시간은 아니었다.
짧은 신호음이 들리고
바로 전화가 연결되었다.
-말해....?
아....아니
......말씀하십시오......
전화기 너머에서
습관적으로
하급 직원에게 하는 투의 말투로
말을 하다가
전화기에 뜬 번호를 보고
순식간에
그 전화가 누구에게서 걸려온 것을 알고는
곧바로
두려움에 떠는
밀러 국장의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키리가야 카즈토(콜로서스)는
쿠도 신이치(올림푸스)에게 전화기를 넘겼다.
전화기를 넘겨받은
쿠도 신이치는
스피커폰 모드로 전환하고는
손에 들었다.
“이스라엘의 이번 작전을 승인한 것이
밀러 국장,
너야?”
쿠도 신이치가
평소의 공손한 태도와
상대를 공경하는 식의 공손한 존대말을 쓰면서
에즈라라고
자신의 퍼스트 네임을 불러주는 경우와는 다르게
삐딱한 모습과 말투로
에즈라 국장의 성으로 부르면서
대놓고 반말로 물었다.
-아니요.
그림을 그린 것은 앤드류 로이즈...입...니다.
전화기에서
두려움에 벌벌 떠는
밀러 국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COO,
수석작전요원이야.”
키리가야 카즈토(콜로서스)가
쿠도 신이치(올림푸스)에게 작은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여기 이스라엘 사람이 와 있어.”
-바이츠만.
이름은 다비드 바이츠만입니다.
신 베트 대외협력사업국장.
밀러 국장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바이츠만의 얼굴에 놀람이 떠올랐다.
“이 친구가
나와
내가 아끼는 제자에게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하던데.
진짜 책임을 져줄까?
그 뒤에
어떤 일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벌어질 지
한 번 상상을 해 보는 것이 좋을 걸.
아마
너의 상상을 능가하는 사태가
양국을 휩쓸게 될 거야.”
(하마스 이스라엘 전쟁)
쿠도 신이치가
바이츠만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이쪽에서 수습하겠습니다.
밀러 국장이
그런 신이치의 협박(?)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상상이 된다는 듯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백악관에 메일 한 통이 갔을 거야.”
쿠도 신이치가 말했다.
-좀 전에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 일 때문에
화가 나셨다면
제발.....
진노와 노여움을 풀어달라고
필사적으로 부탁드린다고.......
그렇게 저에게 전해달라고
간청하셨습니다.
바이츠만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밀러 국장이 말하는 ‘자기’가
누구를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미국 대통령을 말하는 것이다.
조금 전
쿠도 신이치가 말한
‘백악관’이라는 단어가 없었다고 해도
바이츠만은 알 수 있었다.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아니
나도 몰랐는데
이런 식으로
쿠도 신이치에게 질책을 받는 것에 대해서
억울하다는 의미였다.
백악관의 지시가 아닌
자기 멋대로 일을 꾸민
앤드류 로이즈가 버림받았다는 의미였다.
물론 바이츠만 자신도.
“이자를 이대로 돌려보내고 싶지 않은데.”
바이츠만은
눈을 주시하며 말하는
화가 단단히 난 듯한 쿠도 신이치를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구워먹든 삶아먹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밀러의 대답이었다.
“이스라엘은?”
-우리가 이야기하겠습니다.
아니
그 전에
이스라엘 쪽에서
먼저 연락이 갈 겁니다.
밀러 국장이 말했다.
“알았어.”
바이츠만에게 현실을 알려 준
쿠도 신이치가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때
전화기 너머에서
다시 밀러 국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화하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십니다.
“말해.”
쿠도 신이치가 말했다.
-윌리스 웨버라고 하오.
아니
.....합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새로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월이 잔뜩 묻어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 상원 정보위원회 위원장이자
기밀보호위원장이야.”
키라가야 카즈토(콜로서스)가 설명해 주었다.
4년 임기를
최대 두 번밖에 이행할 수 없는 대통령과 비교했을 때,
재선의 제한이 없는
6년 임기를
여러 번 반복할 수 있는 상원의원의 경우
대통령보다
더 오랜 기간
워싱턴 DC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아홉 번이나 상원에 당선된
웨스트 버지니아 상원의원 로버트 버드의 의정 활동 기간은 56년에 이르렀다.
그리고
하와이 주 상원의원이었던
대니얼 이노우에 상원의원도
아홉 번의 당선에
의정 활동도
거의 50년(49년 349일)이었으니.......
그 말은
상원의원의
정치적인 힘이 적지 않다는 의미였다.
하물며
상원의회의 핵심 위원회 중 하나인
정보위원회 겸 기밀보호위원회의 수장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말해.”
쿠도 신이치가 말했다.
-일단 우리 쪽에서
의도치 않게
귀하와
귀하의 친구분에게 피해를 끼친 부분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시하고 싶습니다.
그것도
그.....
레이먼드 올리버 해빌렌드 대사님의 손자분이시기도 한
귀하에게 말입니다.
윌리스 웨버가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다비드 바이츠만 국장과
후루야 레이의 등에는
자신들도 모르게 식은땀이 확 올라왔으니......
다비드 바이츠만은
말 그대로
2차 대전 이후
이스라엘의 건국에 가장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 것도 모자라서
지금 자신이 동원한
에이펙
(AIPAC, 미국 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
그리고
미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민간 로비 단체.)
을 만들어낸
냉전 시절의 세계정세를 요리한
전설의 그 인물의 손자가
저 소년이란 말인가 에 대한 놀라움 때문에
후루야 레이는
2차대전 이후
전 세계의 국제정치 자체를 말 그대로
체스판의 말처럼 움직여온
국제 정치, 정보계의 신화를 능가하는
총참모장, 대군주전하
아니
그것을 능가하는
올림푸스의 전대 주인의 손자가
저 쿠도 신이치였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유감.....?
뭐........신경 쓰지 않아도 돼.
다만
매우 기분이 상했다는 것만 알려주지.
사실
솔직한 심정으로 이야기하자면
미국의 잘난 상원의원 대가리에는
총알이 안 박히는지 궁금해지니까.
예전에
존. F. 케네디도
그렇게 건방진 모습을 보여서
결국
달라스 길거리에서
머리가 박살나는 비명횡사를 당했으니까.
그리고
로버트 케네디는
호텔 주방 바닥에서 배때기에 총을 맞고
생을 마감하기도 했고 말이지.”
쿠도 신이치가
진짜 자신들의 일을 방해하겠다면
상원의원이든 백악관이든
다 쓸어버리겠다는 투로
단단히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염치없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일이 커지는 것은 막고 싶은 것이 솔직한 생각입니다.
미 상원
정보위원회 위원장 겸 기밀보호위원장의 말이었다.
백악관에 전달된 메일이
다른 곳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았으면 한다는 의미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고맙습니다.
나중에 차를 한잔 대접할 기회를 주면 좋겠습니다만.
“기회가 된다면.”
쿠도 신이치는
그렇게 말하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키리가야 카즈토(콜로서스)에게
이리듐 위성 전화기를 다시 돌려주었다.
지금
쿠도 신이치(올림푸스)의 전화 통화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사쿠라바 잇토키뿐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 아는 만큼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잇토키는
쿠도 신이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스승이자
절친한 친우가
또 무언가를 준비해 놓았구나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준비한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쿠도 신이치가
이번 일을 마무리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얼굴에 핏기 하나 없는
바이츠만 국장은
초점 없는 눈으로
쿠도 신이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도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완벽하게 파악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방금 전에
자신이 들은 내용이 맞다면
그리고
저기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일본인 소년이
그......의 손자가 맞다면
지금 자신이 벼랑 끝에 몰렸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거기에
그를 완전히 절망으로 떨어트리는 전화가
곧바로 걸려왔으니.....
초첨 없는 눈으로
사쿠라바 잇토키와
쿠도 신이치를 바라보던
바이즈만 국장의 핸드폰이
말 그래도
성난 것처럼 울리자
곧바로
핸드폰을 든 바이즈만 국장은
그 전화가
자신의 직속 상관이자
현재 이스라엘 총리인
베냐민 "비비" 네타냐후 라는 것을 알고는
떨리는 손으로
통화버튼을 누르고
곧바로
그의 귀에는
네탸냐후 총리의 저주섞인 욕설이 울려퍼졌으니......
"너....너.....
이 미친 개새끼야!
도대체........
일본까지 가서
뭔 미친 짓거리를 한거야?!
당장 텔아비브로 복귀.......
아니
지금 너가 심기를 거스린
그 분에게
용서를 받기 전까지는
텔아비브에 복귀할 생각은
아예 버려!!!
지금 니놈이
건방지게 무시하던
그 분 때문에
지금 이스라엘 전체가
완전히
발칵 뒤집혔어!!!!!
그것도
야훼바트 그 분이
직접 나와
모사드 최고 책임자인
야콥 드브로 장군에게 전화하셔서
감히 야훼가 사랑하시는 성자를 모욕했다고
길길히 날뛰고 계시단 말이야!!!!!
그래서
지금
이스라엘 내각과
모사드 전체가
완전히 벌집 쑤셔놓은 꼴이 되었단 말이야!
그 야훼바트께서
직접 나에게 전화를 거셔서는
지금 니 놈을
직접 잡아온 뒤에
이스라엘을 팔아먹은 매국노에 대한 징벌 차원에서
자신이 직접
야훼의 신녀인 야훼바트의 권한으로
당장 즉결처분을 해 버리겠라고
길길이 날뛰고 계시고,
지금 나와
드브로 장군이
같이
자네가 건방지게 군
그 분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잘못을 빌기 위해서
지금 나와 같이
그 쪽으로 날아가고 있단 말이다!
거기에
주일 미군 쪽에서도
델타포스부터
주일 미군의 모든 특수전 부대 애들이
지금 너희들의 멱을 따겠다고
지금 그리고 가고 있어!
너..너 지금
우리 모사드...
아..아니
이스라엘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유태인들의 씨를 말리려고 환장한 거야?!
너....너?
죽고 싶지?
죽고 싶어서 미치겠지?
그것도
니놈 몸뚱이의 살가죽을 산 채로 벗기는 것을 시작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고통을 맛보면서
아주 천천히 죽고 싶은 거지?!
그렇게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오냐!!!
일본에 도착하는 즉시
당장 그곳으로 가서
내가 보는 앞에서
모사드 국장인
야콥 드브로 장군 손으로
직접
니놈 살가죽을
그런 식으로 산채로 벗겨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마지막은
니놈 심장을 꺼내서
니놈 눈 앞에서 멈추는 것을 보게 하고 난 뒤에
내 손으로
니놈 몸뚱이를 갈기갈기 찢어서
개밥으로 만들어버리겠다!!!!"
그런
베냐민 "비비"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저주 저리가라급의 폭언에
바이즈만 국장의 맨탈은
완전히 박살나버리고
지금 상황을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간신히
쿠도 신이치의 사촌형과
사쿠라바 잇토키가 저지른 난장판을
대충이나마 정리하고
그곳 근처에 있는
호텔로
퇴근하고
호텔에 누워 티브이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달려온
후루야 레이 었다.
미국-이스라엘 관계(쿠도 신이치가 말하는 에이펙[AIPAC])
United States of America
ארצות הברית של אמריקה
이스라엘
יִשְׂרָאֵל
Israel
1. 개요
2. 관계의 배경
2.1. 아랍의 반미 정책에 대한 미국-이스라엘의 공조
2.2. 혜택의 다른 배경(민주당): 이스라엘 로비
2.3. 또 다른 배경(공화당): 복음주의 개신교
3. 미국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지원
4. 미국-이스라엘 관계의 붕괴 위기
4.1. 미국의 대중동 외교 붕괴의 만악의 근원
4.2. 중동의 반미 감정 심화
4.3. 미국 내 반 이스라엘 감정의 심화
5. 미국의 대 이스라엘 정책 변경
6. 교통 교류
7. 관련 문서
8.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미합중국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가리킨다.
이스라엘은 과거부터 이미 널리 알려진 친미, 친서방 국가이며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 갤럽에서는 2020년 2월 3~16일 동안 여러 국가들의 호감도 조사를 실시했는데 미국인들은 이스라엘을 74%가 긍정적으로 보고 25%만이 부정적으로 본다는 다소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1]
즉 둘의 관계는 좋게 말하면 절친, 나쁘게 말하면 갑을관계라고 요약할 수 있다. 미국이 을, 이스라엘이 갑이다.[2]
2. 관계의 배경[편집]
2.1. 아랍의 반미 정책에 대한 미국-이스라엘의 공조[편집]
아랍 세계에서 발생한 반미(反美)에 대항해서 미국-이스라엘의 공조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1967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과 이스라엘을 묶어주었던 이해 관계는 분명하고도 실질적이었다. 따라서 1991년 소련의 해체 이래로 양국 관계의 기초가 상당히 불확실해졌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1948년 미국은 이스라엘의 건국을 승인했다.[3] 하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두 나라는 어떤 측면에서도 결코 동맹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비록 미국이 언제나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미국의 정책이 실제로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1948년에 미국의 주된 관심사는 소련의 팽창을 억제하는 것이었으며, 주로 터키와 그리스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리스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또한 그리스와 터키 모두 외부적으로 소련에게 위협을 받고 있었다. 미국이 볼 때 이 지역의 요충지는 터키였다. 소련의 흑해 함대가 지중해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방법은 이스탄불의 좁은 해협, 즉 보스포루스 해협 뿐이었다. 만약 소련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얻게된다면, 소련은 미국의 힘에 도전하며 남유럽까지 위협할 수 있게 된다. 중동에서의 미국의 봉쇄 전략에 대한 주요 장애물은 영국과 프랑스가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이 지역에서 누렸던 영향력을 재구축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소련은 아랍 세계와 좀 더 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유럽의 책략에 대한 아랍 세계의 적대감을 이용하고자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그리고 이집트의 나세르가 정권을 잡고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1956년에 사태가 악화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통제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당시 프랑스는 알제리에서 반(反) 식민주의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전투 중이었고, 레바논과 시리아에서는 자신의 영향력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스라엘도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통제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1956년 이들 세 나라는 이스라엘의 이집트 침공을 위한 음모를 꾸몄다. 일단 이스라엘 군대가 운하에 도달하면, 영국과 프랑스 군대가 개입하여 이스라엘의 침입 및 이집트와의 잠재적인 충돌로부터 운하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그곳을 장악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술을 거나하게 마신 뒤 냅킨에 그렸을 때나 그럴듯해 보이는 발상이었다.
미국이 볼 때 그 모험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를 소련 진영으로 떠밀어 그들이 강력한 전략 동맹을 맺게 할 수 있었다. 소련의 영향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허용할 수 없었던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결국 수에즈 음모를 중단시키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를 철수시키고 이스라엘을 1948년 당시의 전선으로 후퇴시켰다. 이처럼 1950년대 말 까지만 해도 미국과 이스라엘은 그다지 특별한 관계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전략적 문제는 자국의 산업적, 군사적 기반으로는 국가 안보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소련은 말할 것도 없고 이집트와 시리아, 그리고 잠재적으로는 요르단 같은 국가들의 위협에 직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자국을 방어하는 데 필요한 무기를 생산할 수 없었다. 지속적으로 무기 공급을 받기 위해 이스라엘은 강력한 후원국이 필요했다.
이스라엘의 첫번째 후원국은 소련이었다. 소련은 이스라엘이 영국에 반대하며, 나아가 자신들과 동맹을 맺을 수도 있는 국가라고 보았다.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를 통해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했지만 이 관계는 곧 무너졌다. 이어서 알제리에서 여전히 전투를 수행하고 있던 프랑스가 소련을 대신해 이스라엘의 원조국으로 나섰다. 아랍 국가들이 알제리 반군을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의 관심사는 반대편에 서 있는 이스라엘을 강력한 우방으로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프랑스는 이스라엘에 항공기와 전차, 그리고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기초 기술을 제공했다.
이 때까지도 미국은 중동 지역에 대한 폭넓은 전략 목표에서 이스라엘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간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에즈 운하 문제가 발생한 뒤 자신의 전략적 관계들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집트를 대신해 수에즈 문제에 개입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랍 사회주의 노선을 내걸고 있던 이집트의 나세르 정권은 친소 노선을 취했다. 특히 나세르 정권이 오랫동안 중동을 좌지우지하던 영국과 프랑스의 군사적 압력을 견뎌내고 수에즈 운하 국유화에 성공하자, 아랍민족주의, 아랍사회주의를 내건 나세르 노선이 아랍인들 사이에서 엄청난 열풍을 불러왔다. 프랑스와 영국이 남겨둔 시리아와 이라크의 정권들은 정통성이 취약했으며, 대중과 지식인들은 군사력에 의한 아랍민족주의를 추구하는 나세르 독트린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시리아는 이미 1956년부터 소련 진영으로 넘어가기 시작했고, 1958년에는 이집트와 아랍 연합 공화국이라는 국가연합을 형성하였다. 1963년에 나세르 노선을 추종하는 바트당의 쿠데타가 일어난 뒤로는 그와 같은 노선이 더욱 강화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이라크에서도 역시 바트당의 쿠데타가 발생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자 아랍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점점 더 회의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식량이 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랍 세계는 단호하게 반미(反美)로 돌아섰다. 반천년(半千年) 내내 외세의 지배로 지샌 아랍인들은 미국을 영국과 프랑스를 대신하여 등장한 새로운 외세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소련은 미국과는 달리 여러가지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랍 사회주의자들은 소련이라는 모델을 매력적인 것으로 보았다. 미국은 한동안 거리를 유지하면서 프랑스가 이스라엘과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수준에서만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이 중동의 반(反) 소련 정권들에게 방공 무기 체계를 공급하기 시작했을 때, 이스라엘도 그 명단에 포함되었다.
1967년에 샤를 드골은 알제리 전쟁을 종결하고 프랑스와 아랍 세계의 관계를 회복하는 방안을 추구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주변국들을 공격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그의 요구를 무시하고 6일 전쟁을 개시하자 프랑스도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중단했다.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이웃 아랍 국가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자 미국에서는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이라는 수렁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여서 이스라엘이 미국인들에게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신속하고 결정적인 승리의 모델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스라엘은 그런 정서를 활용하여 미국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베트남 전쟁과 날로 악화되는 여론에 시달리던 린든 존슨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군사적 승리에 대한 미국 대중들의 열광이 두 가지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첫째, 어떤 전쟁에 대한 지지를 보내는 세대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지지를 강화시켜줄 것이다. 둘째, 이스라엘의 승리는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시켰고, 이는 이스라엘을 미국의 유용한 동맹국으로 만들고 있다.
미국-이스라엘의 관계를 위한 전략적 기초가 출현한 것이다. 소련은 1960년대 중반에 시리아와 이라크에 진출했으며, 이미 양국(兩國)의 군대를 양성하고 있었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소련을 포위하자 이에 대응하는 소련의 전략은 그들의 배후에 있는 나라들을 동맹으로 끌어들인 뒤 그들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압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전략적 사고에서 언제나 중심에 서있던 터키는 소련에게도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1967년 이전에 일어난 시리아와 이라크의 쿠데타는 미국의 전략적 문제를 심화시켰다. 터키는 북쪽으로는 강력한 소련과 남쪽으로는 소련에 의지하는 두 국가들 사이에 끼어있는 상태가 되었다. 소련이 이라크와 시리아에 군대를 배치했다면 터키는 곤경에 처했을 것이며, 동시에 소련을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전반적인 전략도 그러했을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미국이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전략적 자산이 되었다. 미국은 이라크의 군사력을 억제하기 위해 팔레비 왕조가 통치하고 있던 친미 국가 이란을 무장시켰다. 게다가 이란은 소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중요했다. 이스라엘은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는 않았지만, 시리아와 접해있다. 친미 성향의 이스라엘은 시리아를 억제하는 한편, 시리아에 대한 소련의 군사적 전개를 더욱 복잡하고 위험하게 했다. 또한 이스라엘은 이집트와도 대립하고 있었다. 소련은 이집트군을 무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항구를 해군 기지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이는 지중해에 있는 미군 6함대에 대한 위협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일단 이집트와 시리아가 소련 쪽으로 돌아서자 이스라엘을 무장시키는 것이 이집트와 시리아를 억제함과 동시에 이들 국가에서 소련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드는 저비용 해법으로 등장했다. 이것은 미국이 지중해를 장악하고 터키가 받는 압박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바로 이 시점부터 전략적인 이유로 미국은 이스라엘에 많은 지원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전략은 효과를 발휘했다. 나세르의 사망 이후 권력을 승계한 이집트의 사다트 정권은 시리아와 함께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에서 한때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하지만 소련의 군수지원은 대단히 미흡했고, 결국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군의 반격으로 다시 후퇴해야 했다. 전쟁이 사실상 무승부로 종결된 뒤에 어정쩡한 소련의 태도로 절호의 기회를 날린 것에 실망한 사다트 정권은 전격적으로 소련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친미 노선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1978년에는 미국의 카터 대통령의 중재하에 이스라엘과의 평화 조약에 서명했다.[4] 비록 시리아가 친소(親蘇) 진영으로 남아있기는 했지만, 이집트가 소련과의 관계를 단절한 것만으로도 지중해에서의 소련의 위협은 둔화되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또 다른 위협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팔레스타인의 테러리즘이었다.
PLO는 나세르에 의해 아라비아 반도의 군주국들과의 투쟁을 확장하기 위한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각국의 왕족들을 쓰러뜨리고 그 국가들을 자신의 통일 아랍 공화국으로 통합시키고자 했다. 아라비아 반도의 불안정을 가중시켜 미국을 약화시키길 원했던 소련 정보 당국자들이 PLO 요원을 훈련시키고 실전에 투입시켰다. 1970년 9월 PLO의 야세르 아라파트가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자 이스라엘의 비밀 동맹국인 요르단의 지배 세력인 하심 가문에 대한 봉기를 시도하자 상황은 위기로 치달았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시리아는 기갑 부대를 남쪽으로 이동시켜 요르단에 진입했다. 이것은 분명 요르단의 혼란을 이용해 요르단에 대한 시리아의 권리를 주장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러자 이스라엘 공군이 개입하여 시리아를 저지했고, 미국은 파키스탄 병력을 공수해 요르단을 지원했다. 이 전투에서 약 1000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사망했고, 아라파트는 결국 레바논으로 도주하고 말았다.
이 분쟁은 검은 9월단으로 알려진 테러 집단의 기원이 되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에 대한 테러를 감행했다. 검은 9월단은 아라파트의 파타(Fatah)에 속한 비밀 무장 단체였지만, 유럽에서 소련의 이익을 위해 활동함으로써 특별히 더 중요해졌다. 1970년대 동안 소련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 등 여러 국가에서 극좌 테러리스트 집단[5]을 지원하고, 아일랜드공화국군(IRA) 같은 조직을 지원하면서 불안정화 전략을 추진해왔다.
팔레스타인은 이 '테러리스트 인터내셔널'에서 주요 세력으로 부상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졌다. 나토의 불안정화를 막기 위해 미국은 소련의 지원을 받는 테러 조직들을 분쇄하려고 했다. 이스라엘도 나름대로 팔레스타인의 비밀 작전 능력을 파괴하고 싶어했다. CIA와 이스라엘의 정보 기관 모사드는 이후 20년 동안 테러리스트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소련이 서구에 대해 유화 정책을 펼치게 되는 1980년대 중반까지도 약화되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CIA와 모사드는 또한 소련과 PLO의 공작으로부터 아라비아 반도를 지키기 위해 협력했다.
1990년대 소련의 붕괴는 이런 역학 관계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터키는 더 이상 소련, 러시아의 위험에 처해 있지 않다. 이집트는 힘없이 쇠퇴하는 국가로 전락해서 더 이상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이 상황은 하마스에게도 꽤나 불리했다. 1987년에 창설된 하마스는 이집트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의 정권을 위협하던 무슬림 형제단에서 파생된 단체였다. 시리아는 고립된 채 레바논에만 집중했다. 여러 측면에서 요르단은 이제 이스라엘의 보호국이라 할 수 있다.
PLO를 구성하고, 유럽에서의 테러리스트 활동을 지원해왔던 세속적인 사회주의 팔레스타인 운동의 위협은 크게 감소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원조가 꾸준히 지속되는 동안 이스라엘의 경제는 팽창했다. 이스라엘로 유입되기 시작했던 막대한 미국의 원조는 1974년 당시 이스라엘 GDP(국내 총생산)의 21퍼센트에 이르렀다. 미 의회 조사국에 따르면 오늘날은 약 1.4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2.2. 혜택의 다른 배경(민주당): 이스라엘 로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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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미국-이스라엘 관계의 배경에는 유대계 자본가들의 로비가 존재하였다.
미국 내 유대인들은 현재 650만 정도로 전체의 2% 수준이지만 유대인들이 창업했거나 경영하는 세계적인 대기업은 부지기수다. 페이스북, 구글, 제너럴 일렉트릭, 엑손모빌,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스타벅스 등등, 인물은 스티븐 스필버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전의장 앨런 그린스펀과 벤 버냉키, 오바마 정권의 재무장관 티머시 가이트너 등이 유명한 유대인이며 보통 상원에서 10명(정원 100명), 하원에서 30명(정원 435명) 정도의 유대계 의원을 배출한다. 세계 4대 통신사인 AP, AFP, 로이터, UPI와 신문사인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방송사인 NBC, ABC, CBS 등이 모두 유대인들이 세웠거나 유대인들과 유대 자본이 소유한 언론사다. 여기에 할리우드의 5대 메이저 영화사는 거의 유대계 자본이 세웠으며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직간접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미국과 전 세계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미디어매체의 상당수가 유대계 자본과 연관되어 있다. 물론 이들이 무작정 이스라엘만을 편든다고는 하기는 뭐하지만 과거 오랜 세월 유대계가 당해왔던 박해를 계속 강조하면서 현재 이스라엘의 어두운 점에서는 침묵하는 방식으로 친이스라엘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6] 현실적으로 미국의 교육, 의료, 금융, 그리고 문화계까지 유대인의 영향이 끼치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이다. 즉 미국의 핵심동력에 유대인들이 존재하는 셈.
거기다 이런 유대인들의 지원을 받는 AIPAC(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는 회원만 10만 명에 막강한 자금력으로 미국 정치판을 좌지우지하여 신(神)의 조직이라 불리는 미국 최대의 로비 단체다. 미국 선거자금의 60%가 유대인 호주머니에서 나온다는 말이 공공연한 사실이 된지가 오래다. 매년 5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AIPAC 연례총회 행사에서는 대통령이 개막연설을 하는 것이 관례이며 여야의 거물급 정치가들이 대거 참석해 비위를 맞추느라 여념이 없다. 심지어 대통령 출마 선언하면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양쪽 후보들은 다 총회에 들러서 정말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비위를 맞추는 연설을 한다. 하지만 AIPAC은 큰 영향력을 지닌 단체라 해도 워낙 내부 의견이 맞지 않아 지들끼리도 안에서 치고받고 싸운다.
유대인이 미국의 자본과 언론을 장악하고 미국 최대의 로비 단체까지 가지고 있으니 미국 재계 정계 인사들은 물론 대통령이라도 유대인들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심지어 뉴욕 같은 지역은 주지사나 시장 당선이 되기 위해서는 유대인의 표심을 얻지 않으면 언감생심이다. 실제로도 주지사 또는 시장으로 출마한 후보들이 가장 먼저 챙기는 게 바로 지역구의 유대계 유권자들이다. 실제로 공화당 하원의원 폴 핀들리와 상원의원 찰스 퍼시, 민주당 상원의원이자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조지 맥거번과 얼 힐리아드 의원 등은 반(反)이스라엘 발언을 했다가 선거에서 패해 의정활동을 접어야 했다. 그러다보니 "서방세계에서 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할 수 있는 정치인은 이스라엘 의원뿐" 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멜 깁슨의 경우[7]와 팀 로빈스의 경우[8]에서 보듯 정치인이 아니라도 예외는 없다. 심지어는 먼나라 이웃나라조차도.[9]
2013년 11월 25일 이스라엘 방송 우브다에 나온 전설적인 유대계 미국인 영화 제작자 아넌 밀천(Arnon Milchan)[10]은 1970년대 할리우드에서 이스라엘과 긴밀한 교류를 맺고 친이스라엘 정책을 취하며 반이스라엘적인 인물을 할리우드에서 축출하는 등 온갖 더러운 일이 벌어졌다는 고백을 할 정도이다. 밀천의 고백에 의하면 심지어 70년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취하던 남아공에서 이스라엘인 이민도 받아들이고 친미, 친이스라엘 정책을 취하면 할리우드 영화를 통하여 남아공을 좋게 꾸며주겠다는 더러운 거래가 시도되었다고 한다! 뭐 남아공 기득권을 가진 보어 및 백인계들이 거부한 탓에 빡돈 할리우드에서 남아공 백인층과 아파르트헤이트를 까는 영화를 마구 제작하며 복수했지만.[11] 이에 대하여 이스라엘에선 밀천이 제작한 최신작인 노예 12년을 홍보하고자 저런 것이라는 비난까지 나왔다.
존 미어샤이머와 스티븐 월트가 2006년 출간한 이스라엘 로비(원제 : The Israel Lobby and U.S. Foreign Policy)에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 로비스트에게 가장 잘 휘둘린 게 조지 W. 부시고 그에 반대되는 게 버락 오바마라 나온다. 실제로도 오바마는 집권 초반 이스라엘의 양보를 촉구하는 발언을 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경색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오바마조차도 재선을 앞두고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미국은 안보에 관한 한 언제나 이스라엘을 지지할 것이다."라고 말했고 이란 핵문제에 대해 외교적 해법만 주장해 이스라엘과 갈등을 빚던 이전과 달리 군사적 대응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AIPAC 연례총회 첫날 연설에서는 "이스라엘 안보는 너무나 신성해서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영향을 덜 받는데 이 정도면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참고로 클린턴이나 부시도 비슷한 연설을 했다. 그때마다 언론은 "대통령의 충성서약"이라 비꼬았다. 물론 오바마는 저렇게 립서비스 해놓고 이스라엘이 가장 불편해 하던 이란 핵협상을 타결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미국 내 유대인의 로비력은 정말 넘사벽이므로 앞으로도 이스라엘과 미국의 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다만 아랍에 불고 있는 민주화 열풍이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미국과 이스라엘은 아랍권 독재자들과 손을 잡음으로써 미국, 이스라엘은 안정을 얻고 독재자들은 권력을 유지하는 윈윈 게임을 했다.
위와 같이 미국내 유대인들의 영향력이 강력한건 사실이지만 이들도 사람인 만큼 같은 생각을 하고 살아가지 않으며 이스라엘을 어느정도 지지해야 하는지, 또한 조국인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정도로 이스라엘을 지원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심하게 갈린다. 미국인으로서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이 가장 중요하다고 배우며 자라온 이들은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인권침해 행위에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해 어느정도까지 묵인해 줄 수 있는지에 인식의 차이가 있을뿐 거의 대부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이스라엘의 존재가 위협을 받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이스라엘이 독자적으로 생존이 가능해진 만큼 "살아남기 위해 뭐든 해도 된다"는 논리는 약해져 가고 있고 국제법 준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또한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세대들이 사망하고 이들과 교류가 제한된 젊은층에서는[12] 이스라엘의 불법행위에 대한 환멸감이 더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를 이유로 유대인들의 입김이 강한 민주당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2.3. 또 다른 배경(공화당): 복음주의 개신교[편집]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내 백성을 해가 뜨는 땅과 해가 지는 땅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주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진리와 공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슥 8:7-8)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25-27)
유대인의 로비만으로는 유대인의 참여가 저조한 공화당의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미국내에서 성공한 사람들 중에 유대인들이 많은건 사실이나 이들이 조직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유대인 본인들도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므로 누가 유대인인지, 어떤게 유대인 문화인 것인지 정해져 있지 않다. 종교적으로 Reform과 Orthodox는 같은 유대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민족적으로 아슈케나짐(독일계)-세파르딤(스페인계)-부하라(중앙아시아)-미즈라힘(아랍국가)으로 순위를 매기는 인종차별도 존재한다. 한국계 이민자들이 유대인들과 사업을 하면서 생각처럼 되지 않으니 유대인들이 상권을 장악했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1. 미국 문화를 오해해서 발생했거나 2. 어딜 가도 존재하는 텃세로 인해 고생하거나 3. 한국계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LA 지역 유대인들이 타지역에 비해 폐쇄적으로 장사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이들은 대부분 IT, 언론, 문화 산업에 종사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이다.[13][14][15]
공화당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이유는 복음주의 개신교 유권자들의 입김이 강하기 때문인데 이들은 다수가 이스라엘을 통해 예수가 재림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16] 이들은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이 성경 예언의 실현이라고 생각하고 이스라엘이 주변국과 겪은 전쟁이 이스라엘이 적들로 둘러싸일 것이라는 예언의 실현이라고 믿으며 이를 지원하는 것이 신이 미국에 내린 의무라고 생각한다.[17]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국가적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이들에게 표를 얻어야 하는 의원들은 이스라엘에 부정적인 발언을 한마디도 꺼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막상 재미있는 점은 이스라엘이 4차례 중동전쟁에서 연전연승했을 때에는 이스라엘에서 좌파세력이 막강했을 때였다는 것인데 복음주의 기독교 세력에서는 이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종교 때문에 한 나라의 주요 외교정책이 이렇게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점이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 많겠지만 미국 내 복음주의 개신교도들은 1억명에 달하며 이들의 일부는 창조론을 맹신해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에 항의하고 극단적으로는 과학을 신에 대한 반란으로 생각해 배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광신도들을 바보라고 비난하겠지만,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이들의 믿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낸 단체가 상기에 말한 AIPAC이다. 상술했던 바와 같이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지는 초당적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AIPAC이 조직적으로 움직여서 반유대주의자, 나치옹호자, 더 나아가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어 버린다. 따라서 이스라엘 정책은 본인이 유대인이 아닌 이상 사실 본인이 유대인이어도 건드리기 힘든 주제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자성하는 유대인이 있는 민주당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이 최근 들어 나오기 시작했지만 유대인 참여가 저조한 공화당에서는 그마저도 전혀 없는 상태이다.
3. 미국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지원[편집]
미국은 이스라엘을 무조건적으로 지원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것들을 나열해보면 미국이 이스라엘의 하수인 내지는 식민지가 아닌가 의문이 드는 수준이다. 무기 거래만 봐도 절대적인 액수 자체도 크지만 똑같은 무기라도 이스라엘에게는 더 빨리, 더 싸게 판매해준다. 다른 나라들은 돈이 있어도 미국이 팔지 않겠다고 해서 손가락만 빨고 있을 때 이스라엘은 미국이 준 돈으로, 그것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싼 값에 사서 이미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미국 무기를 살 때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다운그레이드 논란도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전략자산이 아닌 이상 그런 거 없다.[18][19] 이스라엘이 필요가 없거나 돈을 아끼려거나 자국 기술 활용 목적으로 구입 안하면 모를까 사고 싶은 데 안 파는 군사 관련 장비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물론 예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핵무기(...)라든가 랩터라든가 항공모함 같은 거. 항모는 줘도 운용 못할텐데 미군의 강력한 무기들은 이스라엘이 팔아달라고 사정해도 절대 팔지 않는다.
글로벌 호크 등의 예를 들어 정찰 자산들도 안 팔았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사실과 조금 다르다. 이스라엘은 현재도 사실상 전쟁 중인 국가인 만큼 독자적인 정보 전력 확보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어 그 기술력은 미국 다음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높다. 또 이스라엘 경제에서 방산 업체들의 무기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 이는 자신들이 만들기에 경제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분야가 아니면 대개는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이를 세계에 팔기 때문이다.[20] 즉, 미국이 안 팔았다기 보다는 축적된 독자 기술 활용과 세계 시장 판매를 위해 스스로 만들었다고 보는 쪽이 맞다.[21] 이스라엘은 자체 제작한 위성발사체로 자체 제작한 첩보위성을 날린다. 단 외국과 같이 할 때가 있는데, 그건 물주가 외국일 때 또는 물물교환성격이 있을 때이다. 파트너는 주로 독일, 이탈리아, 미국 등이다.
2016년에 와서는 한국도 사고자 하면 웬만한 건 다 살 수 있다. 글로벌 호크도 원래는 구입을 요청했는데 그때는 난색을 표했음에도 지금에 와서는 팔 수 있다고 나온 것이 이 때문이다. 어떻게 봐도 이스라엘은 한국이 부러움을 느낄 만큼 미국에게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이스라엘의 힘은 다른 나라까지도 영향을 받는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에 원유 공급 문제까지 들먹여가면서 판매를 요구해 겨우 F-15 전투기를 구입했는데 레이더와 전자전 기능이 다운그레이드되었고 추가 연료를 담을 CFT(Conformal Fuel Tank)도 영공방어용으로만 쓰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겨우 받았다. 이 모든 조치가 오로지 이스라엘을 위협할까봐 이루어진 것이었고 이후로도 사우디는 F-15를 몇 번 추가 구매했는데 그때마다 이스라엘 눈치보기는 계속되었다. 딱 이스라엘을 위협하지 않겠다 싶은 정도의 성능으로만 판매를 했던 것이다. 가장 최신 도입분인 F-15SA의 경우도 하드웨어 자체는 F-15들 중에서 제일 최신사양이지만, 사용 무장들이 최신사양보다 한단계 낮거나 공대지 순항미사일 같은 전략적 성격이 짙은 무장은 아예 장착이 불가능한 상태로 판매되었다.[22]
사우디말고도 중동권내 친미 국가로 거론되는 카타르와 쿠웨이트의 경우도 있다. 2014~15년 경에 이들이 각기 F-15SE와 F/A-18E/F 슈퍼호넷을 구입하려하자, 이스라엘은 미국에 우려라고 쓰고 항의라고 읽는다를 표했고, 2016년 4월 시점에서 미국 정부는 이 판매건에 대한 승인을 보류하고 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이들 국가들은 각기 라팔과 유로파이터 타이푼의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23]
이스라엘이 우방국인 미국의 경쟁 상대인 중국에 군사 기술들, 그것도 미국의 지원으로 얻은 기술들을 기술 협력이라는 이름하에 중국에 팔아먹고 있는 것은 아주 유명하다. 천안문 사태 이후 미국과 유럽의 무기 금수 조치로 서방 첨단 군사 기술에 목말라하는 중국에 있어 이스라엘은 중국 인민해방군 천빙더(陳炳德) 총참모장이 직접 방문할 정도로 대단히 중요한 파트너인 것이다. 중국이 최초의 자국산 전투기라 자랑하는 J-10에 이스라엘이 완성 직전 중단한 라비 전투기의 기술이 들어갔다는 것은 상식으로 통할 정도다. 물론 미국도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은 아니라서 압력을 가해 팔기로 계약한 물건을 못 팔게 한다.[24]
외교적으로도 미국은 무조건 이스라엘 편만 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UN에서 팔레스타인의 국가 승인이나 이스라엘의 과도한 군사 행위에 대한 제재안에 대해 언제나 반대표만 던져서 '미국이야말로 현재 세계 평화의 적'이라는 비난, 비아냥, 욕까지 듣고 있는 판국이다. 실제로 미국이 중동 문제와 관련해 UN 안보리 회의에서 이스라엘에 불리한 결의안 채택을 막기 위해 행사한 거부권은 2012년 3월까지 무려 32회에 달한다. 특히 이스라엘이 UN을 공격한것도 항상 감싸준다. 이렇다 보니 미국의 외교전문 사이트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의 이언 윌리엄스는 양국 관계를 두고 "미국은 이스라엘의 위성국가"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스라엘과 관련된 사안이면 거의 이스라엘 편만 들면서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려 드니 국제 사회가 미국의 공정성을 불신하게 되고 이는 미국의 위상마저 크게 흔들고 있다.
아랍권 무슬림들의 반미 여론은 대단히 높은데 그 원인이야 한둘이 아니지만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적용되는 이중잣대 문제다. 이스라엘은 선수방어라는 논리로 주변 아랍국을 침공하고 팔레스타인 이슬람을 쥐 잡듯이 몰아붙인다. 그런데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사방팔방 안 끼는 데가 없던 미국이 이스라엘과 관련된 일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오히려 돕기까지 하는 모습을 바로 코 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아랍인들은 당연히 미국에 극도의 불신을 가지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미국을 서구 기독교 문명이 아랍 이슬람에 가하는 억압의 상징으로 여기게 되어버렸다. 미국의 이스라엘 편애가 아랍 무슬림들에게 미국이 알라의 적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어 기꺼이 지하드를 외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알 카에다의 9.11 테러는 그것을 보다 분명하고 과격하게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미국이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손해만 보는데도 불구하고 둘의 관계가 유지되며 오히려 대통령까지 나서서 더 잘해주려 드는 것은 누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그렇다보니 미국의 대이스라엘 외교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대학의 정치외교학 수업에서 이스라엘이 미국의 아랍 진출 교두보라든지 중동을 억제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이니 하고 가르친 적도 있었다. 물론 이런 주장들은 미국 내 유대인 파워와 그들의 막강한 로비력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쑥 들어갔다.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서 양국이 같이 유네스코를 탈퇴했다. #
4. 미국-이스라엘 관계의 붕괴 위기[편집]
4.1. 미국의 대중동 외교 붕괴의 만악의 근원[편집]
(김수형 기자) (똑같은 잘못을 했는데 선생님이 누구는 때리고 누구는 오히려 아무 말 안하는 그런 상황인 거네요.)
그게 미국의 중동 정책이 망가진 중요한 배경 중에 하나라고 많은 사람들이 분석을 하죠. 결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편파성 때문에 아랍 22개 나라와 57개 이슬람권 국가들을 다 적대시한 건데 아무도 미국이 불편부당(不偏不黨)하다고 안 믿는 상황을 만들어버리니 이스라엘 문제에 있어서 너무 편파적이니까 이거는 좀 고쳐야 되지 않느냐는 내부적인 문제가 많고 지금 말슴하신 이 이슈도 그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죠.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비디오머그 [김수형의 글로벌 인사이트])
유대인 계열 미국인들은 미국 정계나 기업계열에 스포츠 등 이미 자리를 잡았고 영향력도 있기에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정계에 입김이 어느정도 있는데다가 유대인의 나라를 만든 이스라엘을 제2의 나라로 인식하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관계를 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렇다보니 미국은 이스라엘을 감싸는 구도가 되어 자연스럽게 아랍과 관계는 험악해졌다. 설상가상으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강제로 밀어버리고 유대인 정착촌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가만히 있는 아랍 국가들을 자극하는 등 미국이 좀 아랍과 관계개선을 하려고 하면 이 짓을 해버리니 미국으로는 말썽쟁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네타냐후 정권 이전까지는 그래도 미국 눈치를 보면서 아랍 국가들을 덜 자극했는데 초강경파이자 극우인 네타냐후 집권 이후로는 미국의 제지에도 제멋대로 행동하니 미국에서도 반 유대인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어떻게든 이스라엘이라는 부담을 덜기 위해 친미국가인 쿠웨이트나 빈살만 집권 이전 사우디와도 관계를 주선해가며 협력을 중개해주는 등 노력했으나 네타냐후의 이스라엘은 미국 엿 먹어보라는 듯 주변국을 자극하는 외교행위로 파탄을 내버리는 중이다.
4.2. 중동의 반미 감정 심화[편집]
이집트에서 무바라크 몰락 이후 집권한 세력은 반미-반유대주의 성향을 드러내고 있어 미국과 이스라엘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시리아를 비롯해 다른 나라들 역시 비슷한 길을 갈 가능성이 높은데 이렇게 될 경우 독재자들과 손을 잡고 쉽게 목표를 달성했던 기존의 방법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가 집권 초기 이스라엘에 쓴소리를 쏟아낸 것도 지금까지의 중동 정책으로는 안되겠다는 정략적 판단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비타협성, 폭력성은 미국이 봐도 심해서 원인 제공을 한다는 것을 알기에 양보 좀 하며 조용히 지내라고 한 것이다. 특히 팔레스타인에게 최소한 자치라도 보장해주었다면 팔레스타인의 성격을 극단적으로 만들지 않는데 자치도 허용하지 않다보니 문제를 더 키운다.
이대로 간다면 미국은 아랍권 내의 영향력을 빠르게 상실할 것이고 이스라엘은 각종 내부 문제가 터져나와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될 것이다. 이집트를 비롯한 이스라엘 주변국들이 모두 이스라엘을 적대시하면 설사 미국의 지원을 받는다 해도 이스라엘의 국력으로 이를 극복하기는 대단히 힘들고 설사 가능하다 해도 막대한 희생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1978년 이집트와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의 국방비 지출은 GDP 대비 22~25%에 달했으나 협정 이후 7~9%까지 낮출 수 있었으며 군에 매여있던 젊은 노동 가능 인력도 대거 사회로 복귀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스스로가 초래한 인종차별과 식민통치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레바논 헤즈볼라와의 전쟁, 갈수록 증가하는 테러로 인해 국방비가 더 늘어나기만 하여 이는 이스라엘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것이 협정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이스라엘의 성장 동력은 사실상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면 미국이 더 많이 퍼주겠다고는 하지만, 미국이 계속 지원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장에 한국만 해도 지원해주다 나중엔 알아서 하라고 하듯이 이스라엘도 똑같이 할거 뻔하다. 이미 하레디와 국방비만으로도 이스라엘의 부담은 심각하게 과중하다. 자세한 내용은 하레디 참조. 하레디만으로도 암울한데 국방비마저 더 늘어난다면 미국이 퍼줘도 성장동력은 없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인구포화와 수자원고갈로 인한 문제가 하레디만큼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에서도 반이스라엘 여론이 커지는데다 불경기와 자국의 군사비 부담 때문에 이젠 퍼주기도 자기 코가 석자다. 까딱하다 소탐대실 꼴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4.3. 미국 내 반 이스라엘 감정의 심화[편집]
여기다 미국 내에서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반이스라엘 여론도 변수다. 미어샤이머와 월트는 이스라엘 로비에서 유대인의 로비가 미국의 국익을 훼손한다 주장하였고 최근엔 유력 신문, 금융계 큰손, 명문대 석학, 유명 칼럼니스트가 잇따라 이스라엘 로비의 역효과를 경고하며 "미국은 유대인 로비에서 벗어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실 미국이 절대 패권을 구가하며 세계를 이끌던 시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아랍권 이슬람의 미국에 대한 반감과 그로 인한 테러 위협에 시달리면서 더 이상 이스라엘 때문에 발목 잡혀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유대인 로비에 대한 반발은 아직까지는 미국 내 유대인 파워에 비해 미약한 목소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 비슷한 시늉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볍게 여길 일이 결코 아니다. 게다가 이 반이스라엘 여론에 미국의 젊은 유대인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미국 친 이스라엘계 유대인 파워의 미래가 어떨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미국 내에서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문제만 빼고 나머지 모든 이슈에서는 진보 성향의 민주당의 표밭이었다. 이런 성향이 이라크 전쟁 이후 반전이 베트남 전쟁 이후 다시 미국 진보 진영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동시에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해놓은 짓이 더욱 더 세상에 알려지며, 게다가 부모 세대처럼 맹목적인 이스라엘에 대한 충성심 또한 약화되니 적지 않은 수가 이스라엘과 미국 내 진보주의라는 양자를 두고 후자로 넘어가는 것이다. 애초에 지식인들로 치면 노먼 핑컬스타인, 하워드 진, 놈 촘스키 등 냉전 시기부터 꾸준히 친팔레스타인 진영의 몇 안 되는 미국 내 옹호의 목소리 역할을 했던 반시온주의 지식인들 중 다수가 본인들이 유대인들이었으며 마찬가지로 유대인이란 자신의 혈통적 정체성보다 매카시즘 이후 전멸했던 미국 내의 마지막 남은 진보 좌파의 목소리로서 사회적 정체성을 택한 경우였다. 유대인 청년층의 이탈은 이들의 행보를 뒤늦게 따라가는 셈이다.
즉 미국인들은 이스라엘 자체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게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책에 대한 분노와 이스라엘 우익정부가 지향하는 가치관이 싫은 것에 기반하며 이는 인권과 국제법을 강조하는 원칙적인 세계관에 배경이 있다.## 때문에 친이스라엘 단체나 인사들이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것에 반유대주의, 친이슬람을 주장한들 소용이 없는 것이다. 중국을 예시로 보면 명확한데 중국, 중국인 자체를 싫어하는 혐중과 중국의 인권 탄압 정책들과 국제법을 위반하는 외교 행보로 인해 중국에 반감을 가지는 반중의 차이인 것이다.
전직 중앙정보국장 마이클 F. 슈어(Michael F. Scheuer)[25]는 아예 대놓고 "미국-이스라엘 관계는 미국에게 독(Toxic)이다."라고 거리낌없이 깠다. 그것도 미국 주류방송 CNN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미국의 중동 외교가 이스라엘 편애 외교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다만 중동 국가들이 서로 대립하거나 내부 문제 때문에 이런저런 골칫덩어리를 앓아 상대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해 신경을 덜 쓰게 되었기 때문에 그 시기가 좀 더 늦춰졌을 뿐이다.
이스라엘은 중국 또한 친이스라엘로 만들려고 노력은 하지만 이게 통할 게 아니다.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가 조상이 중국에 살던 유대인이라고 자랑(?)하며 중국가서 중국에도 유대인이 많다

댓글

  • 컨트리볼매니아
    2024/06/17 07:21

    이스라엘... 미국을 조종하는 술사라고 저는 봅니다.

    (8z0N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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