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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딸) [괴문서] 야구장을 즐기는 하야카와 타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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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 트레센 소속 트레이너들의 연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



 아무래도 초일류 학벌에 높은 경쟁률, 어지간한 국가고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어려운 이론 및 실기 시험을 통과하고 입사한 자들이니만큼,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대우에 걸맞게도 중앙 트레센 소속 트레이너들의 업무량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야근은 기본이거니와 주말, 공휴일도 없다시피 하며, 밤잠을 줄여가면서까지 업무, 업무, 그리고 업무의 연속이다.



 그렇기에 가끔은, 중앙 트레센의 트레이너들이 지방 트레센 소속의 트레이너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야, 아무래도 중앙 트레센의 트레이너들에 비해, 지방 트레센의 트레이너들은 일과 삶의 균형이 적절하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앙 트레센의 트레이너들은 돈은 많은데, 그 돈을 적절한 곳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그들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돈을 쓸 곳을 찾는다.



 일례로, 마루젠스키의 트레이너는 슈퍼카를 구매하는 데에 돈을 쓰고, 에어 샤커의 트레이너는 하이엔드 컴퓨터를 맞추는 데에 돈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또 스페셜 위크의 트레이너는 값비싼 술을 즐기는 데에 돈을 쏟아붓기도 한다.



 그러나 의외로, 중앙 트레센에서 베테랑, 엘리트 트레이너라고 불릴 정도의 트레이너들은 그조차도 못 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아그네스 타키온과 맨하탄 카페를 담당하는 트레이너는, 365일 24시간을 중앙 트레센과 집만을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딱히 뭔가에 돈을 쏟아붓지도 않는다.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풍류를 즐기고 싶다는 그의 소망과는 달리, 중앙 트레센의 과중한 업무에 파묻혀 자주, 사무실에 있는 라O라꾸 침대에서 잠을 잔다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황제의 담당 트레이너 또한 담당 우마무스메만 여섯이다 보니, 휴식은 사치일 정도로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뭔가, 돈을 쓸만한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기에, 담당 우마무스메와의 외출이라는 업무가 있을 때야말로 그들의 풍족한 지갑을 자랑할 시기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트레이너 씨의 위풍당당한 지갑 사정을 한번 자랑해 주세요.”



 한신 타O거즈의 홈구장, 일본 고교 야구의 역사가 함께하는 고시엔의 입구에서, 외야석 입장권을 손에 든 채로 옆에서 히죽거리는 담당 우마무스메였던 이사장 비서에게, 그는 한숨과 함께 그녀에게 조용히 타이르듯 말한다.



 “아니, 담당 우마무스메와 외출이 아니잖아, 타즈나.”



 “어머나, 옛날 생각이 나지 않나요?”



 그렇게 말하는 하야카와 타즈나는, 중앙 트레센에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사복 차림이었다. 그나마 우마미미를 가리고 다닐 생각은 있었는지, 제법 넓은 폭의 모자를 하나 가져오긴 했다.



 그녀를 아는 다른 우마무스메들이나 아키카와 이사장은 그녀의 사복 차림을 본 적이 없겠지만, 토키노 미노루라는 이름의 전설을 담당했던 그로서는 사복 차림의 이 왈가닥 아가씨의 모습은 익숙하다 못해 두려울 정도였다.



 그야, 과거의 토키노 미노루는 외출 때마다 크건 작건 사고를 하나씩 치던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사복 차림을 볼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옛날 생각보다는…PTSD가 올 것 같아.”



 “흐응…정말로 PTSD 오게 만들어 드릴까요?”



 “아니, 제발, 봐줘.”



 하야카와 타즈나의 눈매가 가늘어지자, 그는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뭐, 이사장 비서인 하야카와 타즈나라면 그가 걱정하는 사고를 치진 않겠지만, 토키노 미노루라면 정말로 뭔가 일을 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싯적 한 성깔 하는 퍼펙트의 본성이 어디 도망가진 않았을 테니까.



 “그러면, 오늘은 트레이너 씨가 전부 내시는 걸로요.”



 “……업무니까 법인 카드 사용할 생각인데.”



 “출입까지는 업무지만, 먹고 마시는 건 아니잖아요.”



 히죽히죽 웃으며 뻔뻔할 정도로 들이대는 하야카와 타즈나를 보니, 그 속에 살짝 억누르고 있는 옛 신마, 토키노 미노루의 모습이 얼핏 엿보이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트레이너라는 사람들은 담당 우마무스메에겐 어쩔 수 없이 약해지는 존재이리라. 한숨을 푹 내쉬며, 이사장 비서의 내면에 있는 옛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말한다.



 “그래. 오늘은 내가 사 줄게.”



 “와아―♪”



 성인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이같이, 하야카와 타즈나는 폴짝폴짝 뛰며 좋아한다. 왕년에 레이스를 제패한 신마, 현재는 중앙 트레센 이사장의 비서로 재직 중인 자가 돈이 없겠느냐마는, 금액을 떠나서 트레이너 씨가 오롯이 자신을 위해 지갑을 열어준다는 것이 기분 좋은 것이다.



 “그래도 맥주는 안 돼. 일단은 업무니까.”



 “에에―.”



 “그렇게 봐도 안 돼.”



 볼을 부풀리며 그의 말에 작은 반기를 드는 하야카와 타즈나에게, 그는 딱 잘라 말한다. 어찌 되었건 두 사람은 업무차 현장에 나와 있는 것이고, 업무 시간에 술을 마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딱 한 잔만, 안 되나요?”



 “안 돼.”



 “그러지 말고, 트레이너 씨도 같이 한잔…어떠세요?”



 “타즈나.”



 그녀가 계속해서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유혹하자, 그는 조용히 하야카와 타즈나의 이름을 부른다. 조금 과하게 졸랐을까, 그의 말에 하야카와 타즈나가 살짝 몸을 움츠린다.



 “너무 아이처럼 굴지 마. 너도 다 컸잖아.”



 “우우…그렇긴 하지만요.”



 “어른이면 어른답게 행동해야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반사적으로 토키노 미노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굉장히 오래간만에 느끼는 그 따스한 감촉에, 하야카와 타즈나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고, 이내 그의 손을 피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모자를 푹 눌러써 머리카락과 우마미미를 숨긴다.



 “아……미안.”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아버린 트레이너 씨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하야카와 타즈나에게 사과를 건넨다. 사과할 필요 없는데, 바보 같은 트레이너 씨.



 “괘, 괜찮아요. 그보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씩 트레이너 씨와 하야카와 타즈나에게 향하고 있었다. 주목받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하야카와 타즈나는 재빨리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어낸다.



 그리곤 방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새초롬한 얼굴로, 트레이너 씨의 옆으로 살그머니 다가선다.



 “사람들이 쳐다보는데…빨리, 들어갈까요?”



 “그러자.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네.”



 “그렇네요. 저와 트레이너 씨 둘이서는 처음이죠?”



 “올 일이 없었으니까.”



 “맥퀸 양과는 몇 번 오셨으면서.”



 “그건 걔가 야구에 미쳐서…어쩔 수 없었어.”



 메지로의 유명한 야빠, 메지로 맥퀸을 담당 우마무스메로 두고 있노라면, 부득이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뭐, 누군가는 동경하는 야구장 데이트겠지만, 맥퀸과 같이 야구를 보러 간다면 아무래도 전쟁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후후, 맥퀸 양이라면 오늘도 여기에 있을지 모르죠.”



 “아냐, 걔 오늘은 본가에 내려간다고 했어.”



 “그러면 저희 둘만의 데이트네요.”



 “데이트가 아니라 업무라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한걸요. 저도 어릴 때는 동경했던 야구장 데이트인데.”



 “……그랬었구나.”



 “그랬어요.”



 그렇게 말하며 옛날, 토키노 미노루의 버릇대로 트레이너 씨의 정강이를 툭, 걷어찬다. 그래도 옛날과는 달리, 거의 힘을 주지 않으며 애교부리듯이 건드린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하야카와 타즈나를, 트레이너 씨는 많은 표정이 담긴 얼굴로 잠깐,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돌린다.



 그런 트레이너 씨에게, 하야카와 타즈나는 피식 웃으며 한마디를 던진다. 



 “부끄러워하시긴♪”



 “…….”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트레이너 씨를 보며, 하야카와 타즈나는 트레이너 씨의 팔에 슬그머니 팔짱을 낀다. 평소라면 그 팔을 뿌리치며 조금 거리를 둘 트레이너 씨였겠지만,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분 것인지 그런 하야카와 타즈나를 밀쳐내지 않는다.



 아니, 토키노 미노루이기 때문에 밀쳐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하야카와 타즈나처럼 행동했더라면 분명, 트레이너 씨는 차분하게 타이르며 팔을 뺐을 것이리라.



 그런 하야카와 타즈나의 생각에 확신을 더하듯, 트레이너 씨는 그녀를 보고 웃으며,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입장할까, 미노루.”



 “네……!”



 모자 속에 숨겨진 귀가 쫑긋파닥 움직인다. 괜스레 가슴이 설레는 것이, 마치 옛날의 그 토키노 미노루와 담당 트레이너 씨, 항상 엄했지만, 언제나 마지막에는 토키노 미노루에게 져 주었던 트레이너 씨,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하야카와 타즈나, 토키노 미노루는 트레이너 씨의 팔짱을 낀 채로 입구로 들어간다.



 고시엔의 하늘은 맑음이었다.




 *  *  *  *  *  *  *  *  *  *




 트레이너 씨의 업무는 생각보다 순식간에 끝났다.



 VIP 좌석에 앉았더라면 조금 느긋하게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테지만, 이곳, 고시엔 구장은 다음 주에 메지로 맥퀸이 방문할 곳이며,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곳이다. 그러니 트레이너 씨가 아는 메지로 맥퀸이라면, 열렬히 사랑하는 팀을 목청껏 응원할 수 있는 외야석을 선택하리라는 생각에서, 그는 외야석의 표를 끊은 것이었다.



 물론 본인은 한신 팬이 아니며 응원가도 거의 모르기 때문에, 얌전히 구석에서 구경만 하다가 갈 생각 만만이었다.



 뭐, 그래도 맥퀸 옆에서 들은 거라도 있으니, 응원가 몇 소절 정도는 웅얼거릴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리라.



 아무튼, 구단 관계자들과 미팅을 한 직후, 구장 시설 관계자들과 촬영 허가 및 시설 관련하여 양해와 협조를 구한 것을 마지막으로 그와 하야카와 타즈나의 공식적인 업무는 끝이 났다.



 다행히 도쿄로 돌아갈 스케줄은 내일 오후였기 때문에, 오늘은 더 이상 일을 할 필요도, 잔업도 없었다.



 얼마만의 해방감인가,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남은 시간 오랜만에 야구 경기나 즐겨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야카와 타즈나도 마찬가지였는지, 고시엔을 처음 와보는 것처럼 여기저기 둘러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트레이너 씨, 저기, 저거 봐요…!”



 “……하나 먹을래?”



 야키소바 가게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군침을 흘리는 하야카와 타즈나의 모습에선, 어른의 분위기 어쩌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냥 호기심 많은 꼬맹이잖아, 그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오랜만에 보는 토키노 미노루의 절호조를 옆에서 감상한다.



 물론, 감상은 감상이고 그의 지갑은 이미 토키노 미노루의 손에 넘어가 있었다. 그에게 묻지도 않으며 하야카와 타즈나는 그의 카드로 컵 야키소바 하나를 구매한다. 야구장 물가 더럽게 비싸네, 휴대폰에 찍히는 결제 금액을 보며 속으로 투덜대는 것은 덤이다.



 “저것도 하나 살래요!”



 “그, 그래…….”



 살까요, 라는 의문문조차 아닌…살래요, 라는 일방적이 통보였다. 하야카와 타즈나의 손끝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점보 사이즈의 야키토리. 자연스럽게 야키토리 두 개와 부타쿠시야키 하나를 구매한 하야카와 타즈나는, 야키토리 하나를 트레이너 씨에게 건넨다.



 “자, 이건 트레이너 씨 거예요.”



 “고마워. 그런데 그거…다 먹을 수 있니?”



 “가끔 잊으시는 것 같은데, 은퇴한 지 오래되긴 했지만, 저도 일단 우마무스메라구요?”



 “……그랬지.”



 히토미미 여성이라면 돼지라고 놀릴 수 있겠지만, 우마무스메치고는 이 정도면 적게 먹는 편이다. 오히려 다이어트 중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트레이너 씨의 걱정이 무색하게, 하야카와 타즈나는 근처의 타코야끼 가게로 달려가 타코야끼 12알까지 구매한다. 그래, 그 정도는 먹어야 우마무스메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하야카와 타즈나가 들지 못하고 남은 음식들을 주섬주섬 들어준다.



 그렇게 주전부리를 사고 나서야, 트레이너 씨와 하야카와 타즈나는 외야석으로 이동했다. 아무래도 맨 뒷자리이기 때문일까, 탁 트인 시야와 바로 아래에서는 응원단의 응원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자리 사이사이를 비어걸들이 돌아다니며 맥주를 판매하고 있었다. 확실히, 이런 날씨에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면 그 청량감이 끝내주게 행복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생각을 옆자리의 하야카와 타즈나도 했는지, 슬쩍 트레이너 씨의 눈치를 보더니 조그맣게 속삭이듯 말한다.



 “딱 한 잔만, 어때요?”



 “일단은 우리…업무 중이라니까.”



 “미팅 다 끝났잖아요. 지금은 휴식 시간인걸요.”



 “…….”



 “트으레에이이너어 씨이~.”



 왜 앙탈이지?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트레이너 씨의 기억은 그에겐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된다고 말한다면, 그 토키노 미노루의 성격에 뭔가를 저질러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한 잔만, 딱 한 잔만이라면.”



 “야호―♪ 이래야 제 트레이너 씨죠!”



 “그래…내가 널 어떻게 말리겠니.”



 체념하며, 그는 손짓으로 비어걸을 부른다. 그리고 맥주를 한 잔 주문했지만, 이내 옆에서 하야카와 타즈나가 끼어든다.



 “두 잔 주세요.”



 “한 잔만이라고 했잖아.”



 “한 잔은 트레이너 씨 거예요.”



 “……”



 당연하게도 거부권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하야카와 타즈나가 내주는 맥주잔을 받아든다. 아무리 그래도 빈속에 술을 마시는 건 조금 그러니까, 손에 들고 있던 야키토리를 먼저 한입 베어 물었다.



 그와 동시에 경기가 시작되었고, 투수의 초구 스트라이크를 구경하며, 하야카와 타즈나는 트레이너 씨 쪽으로 맥주잔을 든다.



 “트레이너 씨, 건배♪”



 “……건배.”



 어차피 어울려 주는 거, 굳이 토키노 미노루의 속을 긁을 이유가 없다. 그녀가 하자는 대로 얌전히 건배한 뒤,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킨다.



 시원한 청량감이 목을 타고 내려왔고, 야키토리를 마저 먹으며 두 남녀는 조용히 야구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  *  *  *  *  *  *  *  *  *




 그리고, 사건은 5회 말이 시작할 때 일어났다.



 맥주 한 잔을 거의 다 마신 트레이너 씨와 하야카와 타즈나는 평소와는 달리 긴장이 제법 많이 풀어진 상태로 편안한 자세로 야구를 관람하고 있었다.



 트레이너 씨가 남아있는 야키토리를 마저 먹어 치웠고, 하야카와 타즈나는 컵 야키소바를 다 먹은 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타코야키를 반 정도 먹었을 무렵이었다.



 맥주 한 잔이긴 하지만 알코올이 들어가서였을까, 하야카와 타즈나는 그녀가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대담한 행동을 저질러 버리고야 말았다.



 타코야키 한 알을 집어 들어, 트레이너 씨에게 가져간다. 그러면서,



 “트레이너 씨. 자요, 아―”



 “……야, 타즈나.”



 곤란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트레이너 씨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꿋꿋이 그의 입가에 타코야키를 가져다 댄다. 그런 하야카와 타즈나, 토키노 미노루를 잠시 바라보던 트레이너 씨는, 쓴웃음을 지으며 얌전히 입을 벌린다.



 “헤헤, 헤헤헤♪”



 트레이너 씨의 그런 행동이 귀여워서였을까, 아니면 평소에는 볼 수 없는 트레이너 씨의 일면을 본 것이 좋아서였을까. 하야카와 타즈나는 헤실헤실 웃으며 자기에게도 하나 먹여 달라는 듯이 입을 살짝 벌렸다.



 하지만 그것까지는 차마 하지 못하겠는지, 트레이너 씨는 고개를 돌리며 입 안의 타코야키를 우물거릴 뿐이었다.



 그래도 좋다. 트레이너 씨가 이 정도로 하야카와 타즈나를 받아 준 것은 처음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남은 맥주 한 모금을 입 안에 털어 넣는다.



 알코올의 따뜻함이 속에서부터 올라왔고, 하야카와 타즈나는 살며시 트레이너 씨의 어깨에 기댔다. 오늘이라면 요정도 조금 더 어리광 부리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지금이라면 트레이너 씨의 토키노 미노루로 돌아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하야카와 타즈나의 소망대로, 트레이너 씨는 그런 그녀를 딱히 제지하거나 밀어내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 또한 알코올의 취기로 인해 가드가 제법 많이 느슨해진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전광판이 관객석을 비춘다. 처음에는 1루 쪽의 알프스 석을 비추던 것이, 점점 외야석의 관객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마치 사냥감을 찾는 듯한 중계 카메라의 움직임. 그것을 두 명 모두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중계 카메라가 트레이너 씨, 그리고 그 어깨에 기대어 있는 하야카와 타즈나를 비춘다.



 “……?!”



 “꺅……!”



 처음에는 전혀 모르고 있던 두 사람도, 구장의 전광판에 둘의 모습이 나오자, 화들짝 놀라 서로에게서 떨어진다. 하야카와 타즈나의 얼굴이 괜스레 빨갛게 물들어버린 것과는 반대로, 트레이너 씨는 침착하게 평소의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전광판이 그들을 계속해서 비추고, 주변의 관객들이 손뼉을 치며 뭔가를 기대하는 것이, 하야카와 타즈나도, 그리고 트레이너 씨도 이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트레이너 씨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일본의 야구장에는 이런 문화가 없는 것 아니었던가. 고국의 야구장에서나 볼 수 있던 이벤트가, 왜 일본 야구의 역사를 대변하는 곳에서 갑자기 나온단 말인가.



 그리고 하야카와 타즈나가 이 이벤트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고 넘어갔으면, 하고 바랐지만…당연하게도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귀까지 빨갛게 물든 채, 하야카와 타즈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머뭇거렸다.



 이런 건 처음이니까. 몇 번 이야기만 들었지, 실제로, 그것도 자기 자신이 겪어보는 것은 처음이니까.



 키스 타임.



 연인들을 대상으로 전광판에 그들을 비춰주며, 키스를 유도하는…그런 이벤트.



 트레이너 씨는 모른 척 고개를 돌리고 있지만, 하야카와 타즈나보다 잘 알면 잘 알았지, 그가 모를 리 없는 이벤트다.



 하지만 트레이너 씨의 모습을 보아하니, 트레이너 씨 쪽에서 먼저 키스를 할 리는 없어 보였다. 절대로 없겠지. 애초에 그런 사람이었다면 토키노 미노루가 이를 악물고 유혹했을 때, 이미 넘어왔을 테니까.



 그러니, 여기에서는 토키노 미노루가, 동시에 하야카와 타즈나가 먼저 나서야 하는 것이다.



 “저기, 트레이너 씨.”



 트레이너 씨를 부르며, 살그머니 그의 눈치를 살핀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에도 반응하지 않는 트레이너 씨는, 지금의 이 이벤트가 그냥 아무런 일도 없이 넘어갔으면 하는 속셈이리라.



 물론, 그것을 두고 볼 토키노 미노루가 아니다. 술기운을 핑계로, 슬쩍 트레이너 씨에게 몸을 밀착시킨다. 그리곤 재빨리 그의 어깨를 잡는다. 몸을 일으켜 카메라가 모자에 가려 볼 수 없도록, 토키노 미노루의 얼굴로 트레이너 씨의 얼굴을 가린다.



 “무슨…타즈나! 잠깐―”



 “도망치지 마세요.”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린 트레이너 씨가 당황해서 얼굴을 빼려 했지만,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하야카와 타즈나의 부드러운 입술이 그의 뺨을 간질였다. 트레이너 씨는 당했다는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고, 그런 트레이너 씨의 뺨을 한번 살살 문질러버리며, 하야카와 타즈나는 만족한 표정으로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주변에서 박수 소리가 들린다. 그제야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하야카와 타즈나는 깨닫는다. 구장 한가운데에 있는 전광판에서는, 하야카와 타즈나가 빨갛게 물든 얼굴로 흠흠, 헛기침하고 있었다. 트레이너 씨는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차마 트레이너 씨의 입술에 키스할 용기까지는 없었지만, 수많은 관중 속에서, 공개적으로 뺨에 키스해버린 것이다. 단순한 친애의 표시를 넘어서 버린 것이다. 누구에게도 변명하지 못하는, 명명백백하게 연심을 드러낸 것이다.



 토키노 미노루, 하야카와 타즈나, 그리고 트레이너 씨 둘만이 알고 있던 그 연심을, 불특정 다수가 알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심장이 미칠 듯이 쿵쾅거리고, 호흡이 가빠진다. 도파민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며, 하야카와 타즈나는 그제야 쾌감과 함께 부끄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듯, 그녀의 행동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고시엔의 하늘은 여전히 맑았고, 작은 열기는 금세 거대한 열기 속에 묻혔다.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  *  *  *  *  *  *  *  *  *




 반토막이 난 리모컨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TV를 보던 한 우마무스메가, 손을 부르르 떨며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었다.



 아니, 이빨을 깨문다기보단 바득바득 갈고 있었다. 그 눈에는 강력한 살의, 어지간한 붉은색의 독점력보다 강한 살의가 담겨 있었다.



 야구 따윈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아무리 야구를 좋아하는 그녀라지만, 트레이너 씨보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니까. 스위츠를 먹고 싶은 마음도 싹 사라졌다. 아무리 그래도 트레이너 씨보다 스위츠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기에, TV 속 중계 카메라에 잡힌 화면은, 그녀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못해 과했다.



 그 모습은, 메지로의 영애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괴기스러웠고, 아가씨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가 쥐고 있는 주먹에는, 박살 나버린 리모컨의 파편이 쥐여 있었고, 화를 이기지 못한 그녀는 그 파편마저 TV로 던져버린다.



 메지로 맥퀸은, 분노하고 있었다.



 어째서 이사장 비서인 하야카와 타즈나가 트레이너 씨와 고시엔에 있는 것인가. 아니, 그건 둘째치고서라도, 왜 하야카와 타즈나가 트레이너 씨에게, 키스를, 한, 것인가.



 심지어 중계 카메라로 본 모습으로는, 입술에 키스했는지 다른 곳에 했는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저런 상황에서, 굳이 다른 곳에 할 이유도 없겠지. 당연히 입술에, 아니, 혀와 혀가 섞이는 농밀한 어른의 키스를 했겠지.



 왜, 어째서, 이 메지로의 최고 기대주, 메지로의 명배우를 내버려 두고, 왜 저런 히토미미가.



 “아…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배제해야 한다.



 실성한 듯이 웃어 재끼며, 메지로 맥퀸은 중얼거렸다. 배제해야 한다. 트레이너 씨의 곁에서 저 여우를, 저 암캐를, 배제해야 한다. 용납할 수 없다.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래, 차라리 메지로의 다른 친족이라면―메지로 아르당이 저질렀다면―같은 메지로 일족으로서 평화롭게 해결할 수라도 있었을 텐데, 하야카와 타즈나는 아니다.



 메지로 맥퀸이나 메지로 아르당이나, 그 외의 다른 담당 우마무스메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니까. 그녀들과는 출발선이 다른 사람이니까.



 메지로 맥퀸은 중등부지만, 하야카와 타즈나 이사장 비서는 어른이니까. 성인이니까. 트레이너 씨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이니까 더욱 경계했어야 하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방심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심해버린 틈을 비집고 들어와 버린 것이다.



 혼이 빠진 듯한 멍한 얼굴로, 메지로 맥퀸은 흐느적흐느적 그녀의 장롱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장롱문을 열어, 그 안에서 소중한 보물을 꺼낸다.



 하야카와 타즈나에게 어른의 권위가 있다면, 메지로 맥퀸에게는 소중한 이것이 있다. 양손에 그것을 꽉 쥔 채로, 맥퀸은 웃었다.



 “교육이…필요하겠사와요.”



 광기에 가득 찬 얼굴로, 메지로 맥퀸은 중얼거렸다. 야구 방망이를 붕붕 휘두르며, 당장이라도 날려버리겠다는 듯 홈런 스윙을 내지른다.



 우마무스메의 풀 스윙이다. 나약한 히토미미따위는 한 방에 날아가리라. 



 지금 당장, 효고현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런 다음 하야카와 타즈나를 날려버리고, 트레이너 씨의 옆자리를 차지하리라. 애초에 오늘 본가에 오는 것이 아니었다. 트레이너 씨가 출장 간다는 것을 따라갔어야 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이고,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찾고, 붙잡아, 메지로로 만들 것이다.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 것이다. 오직 맥퀸만이, 메지로의 정당한 후계만이 담당 트레이너 씨를 취할 수 있으리라.



 메지로 중의 맥퀸이 달려 나간다. 스테이어의 넘치는 스태미나를 막을 수 있는 자는, 메지로의 본가에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으리라.



 “함께, 여름을 달려가요…트레이너 씨.”



 중얼거리며, 명가의 이름을 짊어진 각오를 가슴에 품고, 강하고 아름답게 달려 나간다.



 명배우의,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  *  *  *  *  *  *  *  *  *



 메지로 맥퀸의 폭주는 메지로 아르당과 메지로 라모누를 비롯한 일가친척들의 손에 의해 강제로 ‘진정’하고 나서야 그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트레이너 씨와 하야카와 타즈나는 출장에서 돌아온 후, 그런 메지로 맥퀸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변명을 장장 한 시간 동안 해야 했으며, 온갖 노력 끝에 맥퀸을 납득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 피의 맛을 ㅂㅈ 못한 맥퀸의 야구 방망이를 피하고 달래기 위해 트레이너 씨는 다음 주말에 또다시 고시엔에서 맥퀸과 같이 야구 관람을 하게 되었으며, 그날, 한신은 요미우리에게 대패했다.



 담당 우마무스메의 컨디션이 절부조로 급락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트레이너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아껴 두었던 컵케익 두 개를 사용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중앙 트레센의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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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카니에타 2024/06/16 15:18

    루돌프와 아르당도 이 사실을 알게 되면...

  • 이도현 2024/06/16 15:31

    빠따끄...

  • 카니에타 2024/06/16 15:10

    언제나 잘 보고 있습니다. 뇌절이라고 하셔도 보는 입장에서 너무 맛있게 잘 먹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 KaidoHKS 2024/06/16 16:00

    아이고......고시엔으로 부터 시작되는 중마장......은 아니게 되었지만
    이게 또 트리거가 될거 같.....


  • 카니에타
    2024/06/16 15:10

    언제나 잘 보고 있습니다. 뇌절이라고 하셔도 보는 입장에서 너무 맛있게 잘 먹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bNyscx)


  • 카니에타
    2024/06/16 15:18

    루돌프와 아르당도 이 사실을 알게 되면...

    (bNyscx)


  • 이도현
    2024/06/16 15:31

    빠따끄...

    (bNyscx)


  • KaidoHKS
    2024/06/16 16:00

    아이고......고시엔으로 부터 시작되는 중마장......은 아니게 되었지만
    이게 또 트리거가 될거 같.....

    (bNyscx)


  • 파워메탈러 도미누스
    2024/06/16 16:37

    그리고 오늘도 대패하는 한신...

    (bNyscx)


  • 린성신관알타
    2024/06/16 17:48

    ??? : 내 안에 무언가가 빠따퀸이 되라고 속삭이고 있다...!

    (bNys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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