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사레 모리. 이탈리아의 前 시장, 경찰, 그리고 원로원
한참 이탈리아에서 파시스트가 발기하고, 마피아가 깽판치던 이 시절. 다른 경찰들이 파시스트의 불법적인 행위를 묵인한 그 시절에 체사레 모리는 파시스트든, 빨갱이든, 마피아든 공평하게 족치고 있었다
결국 이런 행위는 파시스트 당에도 눈에 찍혀 물러나게 된다. 허나, 1920년대. 일 두체가 시칠리아에 방문했을 당시, 전투기, 전함, 카라비니에리 등의 병력을 대동하고도 마피아에게 털려 개망신을 당했다. 이에 자존심이 꺾인 두체는, 민심도 얻을 겸 마피아 소탕작전을 계획하게 된다. 허나, 이탈리아 정치인과 경찰들도 이미 한패인지 오래. 적임자를 고심히 찾던 두체는 모두를 공평하게 조진 전직 경찰관 모리를 부른다.
두체는 그에게 백지 명령서를 주며, 원하면 이탈리아 헌법을 대놓고 무시하고 어겨도 되며 필요하면 그 자리에서 법률을 만들어서 집행해도 된다는 무소불위의 권력과 권한을 얻었다. 끼얏호우를 외친 체사레 모리는 파시스트에 충성하게 된다.
그렇게 그는 시칠리아에 부임해 모든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가혹하고 억압적인 철권 통치로 수천~수만명의 용의자를 가두어 범죄율을 10% 미만대로 낮춘다. 이에 기세등등하던 이탈리아 마피아들은 꺾여 버리고, 살아남은 이들은 미국으로 도주하거나 파시스트에 협력하며 고개를 숙였다.
어느정도 안정화가 될 무렵, 체사레 모리는 뿌리까지 뽑기 위해 더 강력하고 억압적인 통치를 이어가려 했으나 두체는 그만하면 됐다며 그에게 원로원직을 하사했다. 이는 대단한 명예로 보이나, 그뿐이었다. 반강제로 로마에 가게된 그는 본거지인 시칠리아에의 권한이 닿지 않았으며, 간접적으로밖에 지시를 할 수 없었다. 물론, 체사레 모리 원로원은 계속해서 소탕작전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파시스트는 선넘지 마라며 일갈했다.
실제로, 그가 시칠리아를 떠난 뒤 범죄율은 다시 늘었으나 파시스트는 이를 고의적으로 축소, 은폐했다. 마피아들은 파시스트와 결탁했고, 시칠리아는 다시 범죄와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물론, 그가 잘한 것만은 아니다. 체사레 모리가 부임하던 시절,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들이 억울하게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받았으며, 범죄율이 줄어든 것 또한 사람들을 죄다 감빵에 처넣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학자들의 평가가 있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업적은 범죄수사학, 정치학 등에서 다방면으로 연구되고, 평가되고, 까이고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공격은 프랑스 산악사단에 의해 막혔다.
川島瑞樹
2024/06/07 02:34
파스타 놈들은 포로일때가 제일 위험하지
근쳐 처자들 그리고 아군의 여군을 노린다니까?
그리고 성공률이 매우 높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