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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나쁜 외계인, 착한 외계인

인류가 처음 만난 외계인은 나쁜 외계인이었다.

녹색 털이 돋은 새까만 피부, 튀어나온 주둥이와 들쭉날쭉한 이빨, 콧대 없는 콧구멍, 누런 눈동자, 신문지처럼 펄럭이는 귀, 왕방울만 한 손가락, 바닥에 끌리는 꼬리.
그들은 짐승이라도 불러도 될만한 끔찍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기술력은 대단했다. 

[ 복종하거나 멸종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 ]

" 뭐야? 우리 인류를 무시하는 거야?! "

상대는 고작 우주선 하나. 인류는 전 세계의 모든 전력을 총동원하여 맞섰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전투로, 전 세계 인구의 30%를 잃고 항복했다. 

그리고 처참한 시대가 도래했다.
외계인들의 노예가 된 인류는 전 세계에 수만 개의 '돌탑'을 쌓아야 했다. 그들은 종교의식이라는 이유로 도구의 사용을 금지했고, 끝도 없이 높은 돌탑을 쌓길 원했다. 맨손으로 강제 노역에 동원된 인간들은 하루에도 수백 명씩 죽어 나갔다.

또 그들은 마치 레저 스포츠를 즐기듯이 인간을 가지고 놀았는데, 투견처럼 싸움을 붙여서 내기한다거나, 도시를 돌아다니며 인간 사냥놀이를 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런 취급을 받아도 인류는 반항할 수 없었다. 10명이든 100명이든 그냥 죽게 놔두는 게 최선이었다. 만약 무기를 들고 맞서면, 도시 하나가 사라졌다.

인류에게는 어떠한 희망도 없었고, 영원히 외계인의 노예로 살아가야 하는 미래뿐이었다.

한데 10년이 지나고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 이렇게 불쌍한 종족을 괴롭히다니! 정의의 심판을 내려야겠군! ]

다른 외계인의 등장이었다!

정의를 외치는 그 외계인의 말은 인류를 기대케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곧바로 까만 외계인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순백색의 날개를 가진 그 외계인은 아주 거대했는데, 그만큼 강했다. 까만 외계인들의 무시무시한 무기로도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었다.
결국, 지구를 점령하고 있던 외계인들은 모조리 지구를 떠났다. 순백색의 외계인은 생색조차 내지 않고 떠났다.

인류는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 해방이다! 와아아아아-! "

인류가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돌탑을 깨부수는 것이었다.

" 이 빌어먹을 돌탑! "
" 폭탄을 터트려! 다 터트려버려! "

그리고 인류는 순백색 날개를 가진 외계인을 찬양했다.

" 정말 정의롭고 멋진 외계인이야! "
" 그 외계인이 아니었다면, 인류는 영원히 노예로 살아야 했을 거야! " 
" 우주에는 쓰레기 같은 종족만 있는 게 아니었어! 정의로운 외계인도 있었던 거야! "
"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지? "

사람들은 고민했다.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지만, 상대는 외계인이었다.

"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문명의 외계인에게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황금이든 보석이든, 의미가 없을 겁니다. "
" 음. "

누군가 말했다.

" 그럼 그냥 저희의 정성을 표현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의 동상을 세워서 두고두고 기립시다. "
" 오! 그거 좋군요! 혹시라도 그 외계인이 지구를 다시 방문한다면, 분명 우리의 마음이 전해질 겁니다! "

온 인류가 힘을 합쳐 순백색 외계인의 동상을 제작했다. 억지로 돌탑을 세울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성심성의껏 온 정성을 다해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멋들어진 동상을 만들었다. 
동상의 이름은 '정의의 상징'.

순백색 외계인의 외모가 워낙 멋있었기 때문에 캐릭터 자체가 유행했다. 인형부터 시작해서 티셔츠까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류의 생활 속에 녹아든 그는 '우주에서 가장 정의로운 자'라 불리며, 온 인류의 진심 어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가 다시 지구를 방문할 때를 위해서 거대한 동상은 항상 최고로 관리되었다. 그 비용이 천문학적이었지만, 전 세계의 그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그가 인류의 정성을 보고 기뻐해 줄 그날만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 아니 이게 뭐야?? ]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동상 앞에 나타난 그를 보며 인류는 환호했다!
오직 이날을 위해 동상에서 대기 중이던 환영단이 얼른 그를 맞이했다.

" 오오오! 우주에서 가장 정의로운 은인이시여! 저희 인류를 구원해주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은인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보잘것없지만,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매년 인류 해방 기념일마다 이곳에서 은인을 기리고 있습니다! "

전 세계에서 생방송으로 지켜보던 사람들이 그의 기뻐하는 모습을 기대했다. 뿌듯한 마음을 준비했다.
한데?

[ 뭐야? 날 기리기 위해 이 동상을 세웠다고? 이런 씨! ]

외계인이 거칠게 화를 내는 게 아닌가?
인류가 몹시 당황할 때, 외계인이 소리쳤다!

[ 나를 기릴 거면 내 동상을 세웠어야지! ]

" 예? "

소리친 외계인의 근처로, 갑자기 '텔레포트 포탈'이 열렸다!


[ 이건 내가 텔레파시로 조종하는 '노예'라고! 동상을 세울 거면 나를 세웠어야지, 내 노예 동상을 세우면 어떡해?! ]

" ... "

인류는 할 말을 잃었다. 포탈에서 나타난 검은 피부의 외계인을 보면서. 그 옆에서 조종이 풀리자마자 괴롭게 눈물을 흘리는 순백색의 노예를 보면서.

이 동상, '정의의 상징'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9/10 22:39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꼭이요! 저도요! 늘! 내일도!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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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리포터리포터 2017/09/10 23:04

    다 읽고나니 역시나 할 말을 잃은 느낌이라 댓글 달기가 쉽지 않네요
    항상 감사합니다! 복날님도 언제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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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깡선생 2017/09/10 23:09

    그놈이 그놈이란 얘기죠?
    난독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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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tdogun 2017/09/11 00:19

    나와 우리 가족, 친구, 사회가 살면 정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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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요어엉 2017/09/11 01:10

    복날님 싸인받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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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막여우. 2017/09/11 01:23

    도색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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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시엘 2017/09/11 13:51

    안녕하세요 복날님 첫번째 번역문을 공게에 올려놨습니다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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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슬기(24) 2017/09/11 17:44

    마지막의 검은 외계인이 처음 나쁜 외계인인가요? 그럼 왜 부리는 노예한테 진 거져..? 또다른 외계인이 등장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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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유워보이 2017/09/11 20:03

    노예를 시켜서 노예를 해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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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케라 2017/09/11 20:05

    순백의노예가 사실 악마였을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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