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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를 볶다가 친부의 사망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제가 걷기도 전 친부 ( 이렇게 쓰는 것을 이해해주세요 ) 저의 어머니는 이혼하셨습니다.
친부는 저를 맡을 수 없다고 했고 시골에서 5남매의 장녀로 자라며 중학교를 겨우 마치신 (삼촌들 뒷바라지 하시느라) 
저의 어머니는 저를 맡아서 키우셨습니다.

그쯤은 학벌이 변변치 못하고 집안이 좋지 못한 여성이 홀로 아이를 키운다는건 고된 일이셨습니다
( 물론 지금도 당연히 고된일이지요 )

중학교 이전까지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새벽에는 택시기사식당 한켠에 마련된 세차장에서 일하시고
낮과 저녁은 그 식당에서 또 일을 하셨습니다..

저의 외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는 친부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화를 내시곤 했습니다.
학창시절 자기의 본을 알기 어쩌고 하면서 무슨 파의 몇대손 본적.. 을 매 학년 초반마다 
조사하고 숙제로 해가는 것조차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친부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으며 사실 피로 이어져있다고 하나
그 이어진 어떻것도 느낄 수 없었고 한번도 만나보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79년생 39살... 저는 일가를 이뤄 누군가의 남편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밑반찬을 만든다고 멸치를 볶다가 친부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으로 살아온 세월이기에 알 수 없었던 사실이지만 친부는 국가유공자 신분이셨나봅니다.
( 직업군인으로 복무하시다가 다치셔서 전역하신 듯 했습니다.)

왜인지 알수 없지만 국가유공자 수권자 1순위에 제 이름을 적으셨다고 합니다.
재혼을 하셨는지 저보다 나이가 많은 (친부와 어머니는 초혼이셨으니 친부에게 친아들로 가장 연장자는 제가 되어야합니다)
아들이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부양이나 함께 산 세월은 저랑 비할 바가 아니지요.

제가 친부의 사망 소식을 알 게 된것은 이 부분 때문입니다.
"국가유공자 수권자로 인정받기 위해 저보다 나이가 많은 다른 아들분에게 수권자를 포기한다는 합의서를 받아야한다" 라는 것
이 내용이 담긴 서류가 도착했으니까요..

물론 제가 합의를 위해 그분을 찾아가야하고 도장을 받고 서류를 쓰고 해야합니다.
저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물론 한때는 함께 산 친아들이 아니어도 상속권을 가진다는 풍문을 듣고
한편으로 친부가 돈이 많다면 가서 고생한 어머니의 세월이라도 보상받기 위해 상속을 요구할까도 싶었습니다.
물론 어린 시절 잠깐의 억울함에서 나온 생각이었고 지금은 그 어떤 혜택도 받고 싶지 않습니다.

더불어 저는 멸치를 볶다가 그런 황망한 소식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멸치는 잘 볶아 졌지만... 저는 마음이 힘들어졌습니다.
잘 볶아진 멸치를 먹고 싶지 않아졌구요.

그리고 아무렇지 않을 듯 했던 마음과 생각이 그렇지 않아서 더욱 혼란 스럽네요.
저는 어머니에게 소식을 전했습니다.

"40여년전에 이혼한 엄마의 전남편이 돌아가셨다고 소식이 전해져왔어요" 라고...
최대한 담백하게 소식을 전했고.. 전화를 끊은 뒤에 저는 더욱 씁쓸해졌습니다.

멸치를 볶다가 생긴 일 치고는 멘탈이 바스라질 것 같은 상황이라 ...


댓글
  • akclzkgnp 2017/09/01 15:14

    친아버님께서 실질적으로 재혼상태였는지 알 길이 없군요.
    어머님과는 이혼하셨으니, 그 후 다른 분과는 사실혼 상태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군요.
    하튼 정말 착잡하시겠어요. 뜬금없는 소식이 그거라니...
    국립묘지, 호국원에 가실지는 모르겠지만,
    단칼에 자르지는 마시고 여러 여지를 두고 어머님과 한 번 생각해보세요.
    어쨌든 가신 분 명복을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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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다쟁이아짐 2017/09/01 15:21

    에고...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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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홀롤로 2017/09/01 15:43

    재혼이라면 글쓴분이 제일 연장자여야하죠.
    결국 재혼이 아닌 초혼전에 무슨일인가 있었던 거인데요. 그 아들분도 아마 아버님을 부양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결혼도 안한 상태에서 생긴 아들이었으면 님과 같이 얼굴한번 안본사이 일수도 있고요.
    그렇기때문에 그래도 결혼으로 가진 아이였던 글쓴님을 1순위로 한것이 아닌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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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쎄라 2017/09/01 16:17

    글쓴이님과 아주 비슷한 상황의 서른살 사람입니다. 글에 쓰신 것처럼 저도 초등학교 때 키워주시던 외조부모님들에게 제 본적을 차마 물을 수 없어 숙제를 못했갔던 경험이 생각나 잊었던 씁쓸함이 울컥 몰려오네요. 저도 언젠가는 모르는 사람이지만 친부의 죽음을 알게 될텐데 과연 지금 어떤 심정이실지.. 심심한 위로와 공감의 말을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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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지방전멸 2017/09/01 16:19

    저라고 생각하면 어머님 고생과 내 마음고생만 생각해서라도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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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타나타났다 2017/09/01 16:29

    돈은 받으세요. 그동안 못 받은 양육비라 생각하시고.
    저도 그런 마음에 돈이고 뭐고 다 커트했지만, 돈은 돈입니다.
    그리고 법적 책임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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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리가라 2017/09/01 16:31

    저도 어릴때 부모님 이혼으로 한장 남았던 생모의 사진도 내손으로 찢어버리고 존재자체를 잊고 살고있습니다
    7살에 이혼했는데 제가 외동인데도 생모에 대한 정이 원래도 별로 없었지만 이혼하면서 완전 삭제 되버려서
    지금도 살았든 죽었든 관심이 없는데요
    재혼했다는 건 관공서 서류를 통해 알고있는데 이혼당시 생모가 20대후반이었으므로 자식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저도 그 때의 생모의 나이를 넘어 가정을 이뤄 살고 있는데 저는 혹시나 유산이나 남겨줬음 좋겠고 그거아님 죽었단 소리조차 듣고싶지도 않네요
    경제적 사정과 생모의 바람끼로 이혼했는데 커서 보니 각자의 인생이다 싶고 원망같은것도 없네요 아무감정이 없어요
    과거는 과거고 이제 작성자님의 가정이 있으니 행복한 미래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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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나시엘 2017/09/01 16:43

    뭐라 댓글 달기가 조심스러워지네요...
    어디 한산한데에 가셔서 잠시 자기만의(혹은 어머님과) 조용한 시간을 가지시면서 마음 정리라도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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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찍는자 2017/09/01 16:59

    말씀하신 부분처럼 그간 고생한 값으로 받는다 생각하고 받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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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thero 2017/09/01 17:04

    그 돈을 받으면 아버지와의 인연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하고, 지금껏 아무 인연도 없었는데 이제와서 인정하자니 화가 나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 돈을 받고 인연을 끊어버리는거라고 생각하세요.
    지금까지 고생만 시키고 아무것도 주지 않은 아버지에게, 이제 원망도 가지지 말고 훌훌 털어내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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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nceux 2017/09/01 17:06

    포기 합의서를 못 받으면 어떻게 되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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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e 2017/09/01 17:08

    저라면 못 받을 것 같아요.
    용서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다 털어버린다는 게 말이야 쉽겠지만
    마음에 남은 감정의 찌꺼기들이 사라지지 않아요.
    정말 아무 감정이 없다면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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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비v 2017/09/01 17:10

    맘이 어떨까 싶어 이런 글 조심스럽지만......
    돈이던 뭐든 받을수 있으면 받으셨으면 합니다.
    나도 나지만,,,
    어머니가 지금껏 고생하신거에 대한 어느정도의 보상이라고 생각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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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백 2017/09/01 17:11

    글이 참 맛깔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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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이메이린 2017/09/01 17:13

    친부가 굳이 1순위로 글작성자님을 적은 것이 의미하는 것이 있을 겁니다. 서류상 재혼 부인이 데리고 온 아들이
    동거인으로 되어 있다던가 하는 이유 말고도 본인 의지로 생전에 1순위권자를 친자로 정한것의 의미요.
    재혼 가정에서 불행했다던가, 재혼후 살게된 아들과 불화가 있다던가 해서 유산은 현 배우자에게 가더라도
    국가 유공자 수급권은 친자에게 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마음의 빚으로 적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생판 첨보는 사람이랑 만나서 포기 각서 써달라 어째달라 하기가 영 내키지 않으실 수 있으나
    그쪽 사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앞으로 어머님께 도움 될 돈을 일단 포기하고 보기엔 아쉽다
    생각됩니다. 어머님께 드리는 돈으로 생각하고 받으심이 어떨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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