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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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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51권, 세종 13년 3월 29일 계사 2번째기사 1431년 명 선덕(宣德) 6년
신상이 광화문 문밖에 섬돌 쌓기를 건의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
예조 판서 신상이 아뢰기를,
"광화문(光化門) 문밖에 본래 섬돌이 없어서 각품 관리들이 문 지역까지 타고 와서야 말에서 내리오니,
이는 매우 타당치 못한 일입니다.
또 이 문은 명나라 사신이 출입하는 곳으로서 이와 같이 낮고 누추하게 버려두는 것은 부당하오니,
돌을 채취하여 계체(階砌)를 쌓고, 양쪽 곁으로 둘레를 쌓아야 하며,
또 강화(江華) 매도(煤島)의 전석(磚石)을 취해다가 안바닥을 포장하여 한계를 엄중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 바야흐로 농사철에 접어들었는데, 어찌 민력(民力)을 쓰겠는가."
하고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국역원문.원본 보기;
https://sillok.history.go.kr/id/kda_11303029_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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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광화문월대_연합뉴스_김도훈_기자_CUT2.jpg
연합뉴스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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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경복궁내에 일본 식민지 잔재가 남아 있는데
광장 조성 및 월대 복원 사업 예산은 국비 290억 원과 서울시비 738억 원, 합계 1028억 원을 들여서
이걸 했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2020년도 문화재위원회 9차 사적분과위원회 회의록)
더구나, 조선시대 임금과 백성이 만나 소통하던 '월대'라니.......
세종실록 54권, 세종 13년 12월 10일 신축 8번째기사 1431년 명 선덕(宣德) 6년
광화문·영제교의 뜰 등에 부녀자의 출입을 금하게 하다
전지하기를,
"금후로는 광화문(光化門)에 부녀자들의 출입을 금하고, 영제교(永濟橋) 뜰과 근정전(勤政殿)의 뜰에도
또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
하였다.
국역원문.원본 보기;
https://sillok.history.go.kr/id/kda_11312010_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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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_1915_경복궁관리사무소_1.jpg
미군정청 항공촬영, 붉은 원내 건물, 조선총독부 부속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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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_1915_경복궁관리사무소_2.jpg
경복궁 관리사무소로 아직도 사용중인 조선총독부 부속건물, 1915년에 지어졌으니 이것도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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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_1915_경복궁관리사무소.jpg
2023년 4월 촬영분 네이버 거리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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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세종이 명했다 “백성에게 폐가 되니 광화문에 월대를 만들지 말라”
https://www.chosun.com/opinion/2021/06/23/FS24HPXBCNEFTPTR3JTWBINTW4/?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원칙 무시’ 문화재청이 테마공원으로 전락시킨 궁궐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3/03/15/L3X25O2YZVFB7CP6D5IP2OPV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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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_빈청_2.jpg
온갖 비난과 지적을 무시하고 카페로 사용중인 창덕궁 빈청,
빈청은 삼정승과 정 2품 이상의 고위 관료 및 비변사 당상관들이 평상시에, 아니면 임금을 뵙기 전에
잠시 머물면서 회의하던 장소입니다.
그러니까 특정 건물의 고유한 이름이 아니고 당연히 다른 궁궐에도 빈청들이 있었지만 다 사라지고
오직 창덕궁 빈청만 지금까지 남아있는데 이걸 카페로 사용하는 그 몰염치함이 할 말을 잃게 만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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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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