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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 리월의 '도'를 아십니까?(feat. 현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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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원신 스토리에
철학을 끼얹는 빌런이다.
이번에는 몬드에 이어
리월 편을 들고 왔음.
각설하고, 나는 원신 스토리를
'둘의 구조'로써 해설하는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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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 구속이 뒤따르고,
지혜는 무지에서 비롯되듯이,
우리가 원신에서 접한
각종 덕목마다 모순점이 있어
이를 바탕으로 서사를 해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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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덕목과 모순점의 관계를
현대철학에서는 이항대립이라 하며,
못 알아먹겠다면 순순히
위 게시글을 보고 오는 걸 권함.
자, 리월 하면 누가 봐도
도가 사상과 도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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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소를 타고
서쪽으로 가는 모습.)


도교 신앙은 약 5세기 경부터
도가 사상과 딱히 구별을 안 뒀다니
이하 도교라고 통칭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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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월의 모티브는 이름부터 봐도
근대까지의 중국임을 알 테고,
깎아지른 석림 지대, 카르스트 지형인
절운간에 가면 곧장 신선놀음이 떠오름.
아, 내가 본 리월의 이항대립은
앞서 봤듯이 [불변]과 [마모]인데,
역시 왜 '계약'이 아니냐고 묻겠지?
내 생각은 이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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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왕제군과 리월의 지향점이

'계약'이긴 하지만, 본질은 '일관성'이며,
이는 불변의 생명, 즉 불로장생까지도
포괄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하기에
보다 직관적으로 [불변]이라 봤음.
무엇보다, 그 모순점이
[마모]이기에 더욱 그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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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팔선의 초상.
이 중 정양진인 종리권이

암왕제군의 모티브가 됐다.)


자, 그럼 이게 리월에서
어떻게 구현됐는지 알기 위해,
먼저 도교에 대해 알아보자.
도교의 시작은 노장 사상,
즉 노자와 장자의 말씀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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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개념은 바로 도(道).
이는 세상만물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왜 허물어져서 흩어지는지,
그리고 다시 형성을 거듭해
순환을 이루는지에 대한 개념임.
저런 법칙들이 만물을 이루고,
인간들 역시 도를 깨우치기 위해
정진해야 한다고 봤음.
왜냐?
도의 길을 걷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보편타당한
삶의 방식이라고 봤기 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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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가장 숭상한 것이 '물(水)'.
그 자연스러운 흐름이야말로
도로서 가장 적합한 원리로 여겼다고 함.
노자는 이를 *상선약수라고도 했지.
(*上善若水 :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순리를 따르듯
질서정연한 '겸허(謙虛)',
충돌을 비켜 지나가 유유히 흘러
싸움을 피하는 미덕의 '부쟁(不爭)',
그리고 '무위자연(無爲自然)'도
말할 필요없이 유명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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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팔선의 또다른 삽화.)


인위성을 일절 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바로
도교의 무위자연 사상임.
어떤 교만도 품어서는 안 됨.
왜냐?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도는 하지 않으나,
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까.
인간이 작위를 가하지 않더라도
세상은 생성과 변화를 반복하며,
그 오묘함을 인간은 깨우치기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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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의 근본 경전, 도덕경.)


하늘과 땅, 신과 마,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그리고 생명과 죽음.
보통 '나쁜 쪽'만을 취하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이 파멸에 치닫고,
'좋은 쪽'만을 취하려 한다고 해도
이항대립과 같은 역설로 인해
이 역시 결국 불가능함을 알게 됨.
즉, 인위성이 담긴 교만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원칙을
취사선택하는 편법은 안 먹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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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알아야 할 게
장자의 제물론(齊物論).
'도의 관점에서는 규정이나
선악, 자타, 그리고 시비 등
각종 구별이 무의미하므로,
세상만물을 차별하지 않고
하나의 도로서 깨우치는
높은 정신적 경지에 다다라야 한다.'
-라고 대략 정리할 수 있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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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나비가 되는 꿈을 꾸고
정말 나비로 거듭난 것인지,
스스로가 원래 나비였는지도
분간을 제대로 못하는데,
만물까지 구별할 이유는 또 뭐냐고?
몬드에서 결정론이나 구속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버둥치던
드발린과 가짜 스탠리, 기억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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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종려가 추잡하게
마모를 거스르지도 못하면서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했으면,
리월 앞바다에서 오셀이 간만에
얼굴도장 한번 찍고 가는 걸로
사태가 끝날 수 있었을까?
아마 라이덴보다 먼저
민폐신으로 낙인 찍혔을 걸?
그러니 빨리 깨우치는 게 상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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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도를 도라고 칭할 수 있다면
이는 영원한 도라고 할 수 없고,
이름을 이름이라고 불러주면
이는 영원한 이름이라 할 수 없음.
규정과 구분, 그리고 구별마저
그 자체로 인위적인 교만이란 소리.
그리고 상황은 언제든 바뀌지만
진정한 도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
..쓰다 보니 길어졌네.
슬슬 본론에 들어갈까?
난 리월의 [불변]을 불로장생에,
[마모]를 겁운설에 놓고 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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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불로장생으로 본 것은
다름 아닌 백출이 실마리였음.
이 패션 테러리스트는 다 늙어서
무려 배꼽티 입는 것만큼이나
변태같은 짓을 또 저지르는데,
바로 불변의 삶, 불로장생을
집정관인 암왕제군이나 선인보다
더 모독적인 방식으로 갈구하는 것.
도가 사상에서 파생된 수행법 중
양생론(養生論)이라는 게 있음.
이거 어디서 본 적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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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백출의 캐릭터 출시 때
옆에 붙어 있던 부제였지.
바로 '양생의 도(道)'.
불로장생까지는 몰라도,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한 요법,
수련법 등을 양생법이라고 하며,
뭐.. 부적도 갖다 붙이고,
하여튼 별 짓을 다 함.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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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그 율곡 이이까지도
여기에 관심을 보인 바 있는데,
수명 장단의 분수는 하늘에 달렸으나
보양의 기틀은 사람에게 달렸다며
본인의 저서 율곡전서에 글을 남김.
건강관리하는 소망까지 막는 건
어차피 불가능하고, 뭐라도 해낸다면
기가 약한 사람 역시 장수를
어느정도는 기대할 수 있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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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의서 필사본)


그래도 장생불사하는 도(道)와
*선태환골(蟬蛻換骨)하는 기술 같은 게
어떻게 있을 수 있냐는 말로 맺으며,
불로장생은 한사코 불가능하다고 함.
(*매미가 번데기에서 변태하듯이,
의태를 완전히 뒤바꾸는 행위)
근데 백출은 어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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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뻔히 알면서도 무시하며
자신의 생명을 갈아넣고는,
누가 봐도 한계가 명확한 일로
삶의 괴로움의 한 축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했음.
물론 백출의 의도는 선량해서
아직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그의 선임자들 말로도 다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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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실수를
수메르에서도 볼 예정.)


혹시 그거 알고 있음?
리월에서 본 석림(카르스트) 지형은
전혀 [불변]의 광경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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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쿤밍의 석림지대.
틈새가 녹슬고 무너진 곳이 보인다.)


원래 저런 모습이던 게 아니라,
본디 석회암 암반지대이던 곳이
물에 녹아내려서 마모한 거지.
우린 리월에 발 들이며
온갖 [불변]의 절경이라 생각한
[마모]의 흔적을 보고 있던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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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의 전설임무 2막 중 일부.
야타용왕의 봉인에 대한 소담.)


그럼 리월의 [마모]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난 이걸 '겁운설'로 봤다고 했지?
겁운설(劫運說)은 도교의
시간론적 교리로 등장하는데,
세상이 4단계를 거쳐 순환하며
생성과 파괴를 거듭하지만
그럼에도 도(道)만큼은
매 겁(시대)마다 출현한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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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주, 괴, 그리고 공.
(*成, 住, 壞, 空)
성겁에서 세상이 창조되고,
주겁에서 생명이 안착하며,
괴겁에서 천지가 파멸하고,
공겁에서 만물은 다시금
공허로 되돌아감.
그리고는 다시 성겁부터 반복!
요런 식으로 순환하는 게
도교의 시간론적 세계관인 겁운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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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거 소의 운명의 자리에도
등장하는 단어들이었다?
주겁만 빼고 나머지 3개가 있었지.
(소가 업장에 묶여 고통받으니,
이 점에 착안해 일부러 주겁만
쏙 뺀 것 같다는 느낌이 듦.)
본론으로 돌아와, 그 와중에도
어쨋든 도를 추구해야 하기에
이를 도울 구원 사상이 있으니,
바로 개겁도인(*開劫度人)이라 함.
(*겁을 열어 인간을 구원하다.
사실 불교에서 파생한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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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천존의 동상.)


이를 성선(成仙)이라 부르며,

성선을 이루려면 득도를 하고,

이어서 선인이 돼야 한다나?
이를 도교의 최고신인
원시천존을 통해서 이룬다 함.

리월항에서는 역시
암왕제군이 이를 대신했지.
리월에서 해마다
청신의례를 통해
한 해의 경영 방침 등을
일일이 알려주고 갔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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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과도 같던 야타용왕도
마모 때문에 계약을 따라 봉인되어
다시 어둠에 갇히고 말았다.)


이외에도 계약으로써

득도의 길을 함께 걸은

존재들도 여럿 있었지.


하지만 그 종려마저
겁운설의 순리는 거스르지 못해
결국 시간의 마모에 굴복하여,
리월을 수호하는 불변의 계약을
얼음여왕과의 계약으로 덮어쓰고
편법적으로 종료시켜야만 했음.
덕분에 인간시대를 열어
다시금 물길을 트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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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 전설임무 1막에 나온 완연,
이름의 뜻은 '만연한 연기'.
그녀의 무너진 마음에 신앙은 없고,
훌리야의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그래, [마모]가 뭔지는 이제 알겠어,
그럼 '구원'은 어떻게 할까?
[마모]가 있는 건 알겠는데
이걸 이겨내야 할 거 아냐?
이건 종려와 평 할머니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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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할머니가 류운진군을 상대로
응광과 칠성을 옹호하는 모습.)


두 선인의 공통점은
귀종과의 이별을 기념하면서
대의를 잊지 않고 속세를 보살피며
인간시대의 개창을 독려한 점.
여기서 귀종의 이름이 중요한데,
성어 만류귀종(萬流歸宗)에서 나왔음.
뜻은 '모든 물결의 흐름은 결국
바다로 돌아와 끝맺는다' 정도.
이 중 귀종이 '돌아와 끝맺는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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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종의 유품인 척진령(斥塵玲)을
제군에게서 넘겨 받는 가진낭시진군.
척진령은 먼지를 털어내고
속세에의 미련을 지우는 종을 의미.)


즉, 귀종의 최후는 만류,
곧 모든 존재자의 귀결을 묘사함.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에
종려와 선인들 역시 그 뜻을 따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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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귀종이 관장한 '먼지'는
곧 속세를 의미하면서도,
동시에 불변이 허상임을 암시함.
먼지가 되어 덧없이 흩날리는 거지.
선인도 결국 [불변]이면서
동시에 [마모]의 존재이던 셈.
하지만 겁운설의 겁이 끝나면
그걸로 끝이던가? 아니지..
새로운 성겁이 열리며 시대를 개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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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종이 죽고는 리월을 건국했고,
암왕제군이 암살을 가장한 뒤에는
인간시대를 개창했잖아?
평 할머니, 아니, 가진낭시진군도
이름의 뜻이 꽤나 중요한 편인데,
가진(歌塵)은 '속세를 노래하다'이고
낭시(浪市)는 '저잣거리에 물결치다',
즉, 사람 많은 시장 바닥을 쏘다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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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귀종과 산수를 누비고 다녔다.)


딱 평 할머니 하던 행동 그대로지?
덧붙여 가진의 '진(塵, 尘)'은
귀종의 권능인 먼지와도
똑같은 한자로 쓰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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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선계를 등지는 가진낭시진군.)

평 할머니는 여전히 귀종이 그리워
그녀를 기념하며 노래를 부른다는
중의적인 의미가 담긴 셈.
결국 암왕제군과 평 할머니 모두
리월의 세간을 보호하면서도,
동시에 귀종을 추억하며
신분의 엄중함까지 내려놓고
속세에 젖어 함께 부유한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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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생각난 철학자가 있는데,
바로 현상학을 만든 후설의
제자였으면서 많은 현대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마르틴 하이데거.
..쉽게 할 테니까 도망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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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는 후설의 현상학을 이어
'돌봄(Sorge, Cura)' 개념으로
타인을 보살피는 관계로써
스스로의 존재, 즉 실존 역시
인간 본성을 완성한다고 봤음.
(이를 실존적 현상학이라고도 함.)
한마디로, 보호자로서의 양육이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주체의 의미를,
사랑으로 타인을 보듬는 일이
'스스로'의 존재를 떠받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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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긷는 하이데거의 모습.)


..내가 많이 갔다고 할 수 있는데,
농담 아니고 하이데거는 직접
도덕경의 번역 작업을 하기도 했고,
그가 도교의 *무용지용 사상에
깊이 영향 받았다는 연구도 있음.
(*無用之用, 언뜻 쓰임새가
없어 보여도 실은 크게 쓰이다.

관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짐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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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의 스승이자,
현상학의 창시자 에드문트 후설.)


애초에 현상학이라는 학문 자체도
도교랑 맥락이 비슷한 편인데,
그 연구 목적이 '객관적 본질'을
파악하기에 몰두한 학문임.
(단지, 이성보다는 직관을 통해서.)
즉, 객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연구한 학문이라는 소리.
도교의 도(道)랑 썩 비슷하지?
(*비전공자의 사견에 불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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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의 '수호'의 방식 역시 바뀌게 됐다.)

그래서 하이데거의 '돌봄'이
종려와 평 할머니의 '수호'랑
썩 겹쳐 보이기도 했으며,
'나'의 실존을 추구해나가는 점도
속세에 녹아들어 스스로의
만족감과 자존감을 충족시키기에
역시 맥락이 겹쳐 보였음.
[마모]의 최대 문제점이 뭐지?
바로 불가역성이란 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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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는 누구도 거스르지 못하고,
원신에서는 거스를 수 있긴 하나
막대한 대가를 요구하기에
마냥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님.
우연찮게도 이런 시간론에 대해
같은 현상학자 중 레비나스 역시
'시간의 수동성' 극복을 연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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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레비나스.)


그는 '나'의 시간적 유한성에 주목했고,
'남'과 관계를 맺어 윤리적 책임을
이행하면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함.
말이 너무 어렵다면
귀종, 라이덴 마코토, 그리고
위대한 룩카데바타의 희생이
그 백성들에게 얼마의 시간을
벌어줬는지 한명씩 따져보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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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해되지?
심지어 마코토는 1000년이나
시간을 역행시키기도 했다고?
'내'가 있기에 '남'이 있는 게 아니라,
'남'이 있기에 '내'가 있을 수 있는 셈.
남과의 관계가 있어야 윤리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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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진정한 '나'를
'생각하는 나'로 규정하던가?
레비나스는 '윤리적인 나'가
논의의 중심이라고 본 셈.

하이데거 역시 타인과의 관계에서
'돌봄'으로써 '터(Ort)'를 잡고
'거주(Wohnen)'한다고 표현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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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월절 PV 영상 중 일부.)


..그냥 서로 둥기둥기하며
사이좋게 잘 산다는 소리야..
되게 별 거 없지?
(아니야, 아니야..)
이게 바로 내가 본
[마모]의 극복에 대해
리월이 내놓은 답이었음.
타인과 교류하며 공덕을 베풀고,
그 안에서 다시 스스로의 존재를
회복시키고 함께 성장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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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별은 미래의 언젠가
다시 만나기 위한 것이야.")


[불변]이 [마모]한들,
순환은 이뤄지기에 우리가 사서
걱정이나 할 이유가 없다는 소리지.
이게 리월의 진짜 교훈이 아니었을까?


오늘은 이 질문으로 글을 마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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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멋드러지길래 한 컷.)
..전보다 내용이 무거워졌나..?

반응 보고 이나즈마 편의
초안을 좀 많이 손볼 수도 있겠네..
다음에도 이렇게 갈 예정이라서..ㅋㅋㅋ

댓글
  • 돌아온고릴라 2023/09/05 13:02

    으음 그렇군 이해했어!(전혀 이해하지 못함)


  • 돌아온고릴라
    2023/09/05 13:02

    으음 그렇군 이해했어!(전혀 이해하지 못함)

    (OqPS3a)


  • 羽沼마코토
    2023/09/05 13:02

    와..완벽하게 이해 못했어!

    (OqPS3a)


  • 둥근안경
    2023/09/05 13:10

    완벽히 이해했어!

    (OqPS3a)


  • 마시쩡우유
    2023/09/05 13:22

    그러니까 도는 함부로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삶을 추구한다는 거구나.

    (OqPS3a)

(OqPS3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