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4월 37사단 훈련소에 입소하여 5월경 훈련도중 무릎 전후방십자인대 부분파열 부상을 입었으나
완전파열이 아니라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채 군생활을 하다가 2000년 전방십자인대 완전파열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아 의병전역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2015년 국가유공자 신청을하였는데 장애등급은 나왔으나
훈련소에서 훈련도중 부상을 당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국가유공자요건 비해당 결정을 받았습니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훈련소에서 10년이 지난 자료를 모두 파기 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외진을 갔었던 국군대전병원 역시 자료를 모두 파기한 상태라고 합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니가 어디서 처음 다쳤는지를 알 수 없으니 국가유공자는 못해줘"
이런 상황입니다.
현재 행정소송중이구요.
소송에서 증인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99년 4월에 37사단에서 훈련받은 동기들을 찾습니다.
특히 훈련소에서 부상을 당했을때 의무대에서 같이 입실했었던 '허성웅'을 애타게 찾습니다.
79년생으로 기억하고 있으나 80년생 일 수 도 있습니다.
37사단 훈련소가 아니더라도 99년~2001년 부평 6보급창에 근무하셨던 분들도 찾습니다.
자세하게 작성하자면 글이 너무 길기에 여기까지만 작성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이준표'이며 도움을 주실분 들께서는 [email protected]/* */ 이쪽으로 메일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필 이런 글을 올리는 날이 제 생일이네요.
도움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런 글을 이제야 봤네..
늦게 봐서 죄송합니다 추천했어요
너무 좋지 않았던 군대 기억이기에 다 잊으려고 노력했고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혼자서 술한잔 하다보니 전우들 생각이 다시 또렷하게 기억이 나네요.
-계급은 제가 이등병때 기준으로 작성하겠습니다 -
후임 아프다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했던 세상에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던 정재우 일병(77년생)
신입이라고 기대했었는데 아픈놈이 와서 실망은 했지만 걱정도 많이 해주고 치료받는데 도움주려고 노력 많이 했었던
홍윤호 병장(77~76년생)
같은동네(삼전동) 산다고 특별히 챙겨주었던 허민상병(78년생)
키크고 느끼했었던 동기 김용운 (78년생)
몇개월 후임이었는데 선임(저)이 부실해서 은근 무시했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많이 챙겨줬었던 송수근(79년생)
독하게 신병 교육을 시켰었던 똘아이 같았던 윤창화일병(78년생)
여기까지는 같은 내무반 전우들이고
훈련소 동기이자 같은 6보급창 경비중대에서 근무했었던 540도 돌려차기로 휴가 많이 받았던 김창겸(78년생)
술한잔 마시면서 잠깐 생각했는데 이정도 생각나네요.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자살까지 생각했었던 군생활 이었던지라 의병전역이후 다시는 군대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었는데
한명 한명 기억이 떠오르네요...
국가유공자 신청 건이 잘 풀리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어휴.....자료를 자기들이 가지고 있어야지 왜 피해자 보고 증명하라고 하나요...말인지 똥인지....제발 잘 풀리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저도 군생활 잘못하다가 한때 몸 거의 만신창이 될 뻔한 사람으로서 이 놈의 시스템 정말 치가 떨립니다.
저 ㅅㄲ들 진짜 악질 입니다 ..
기록도 없는 병을 가지고 군의관이 왜 그렇게 쓴건지 알수없느 수년전이란 표기 하나로 기존부터 있던 병이라고 5년을 질질 끌었고.
그 군의관 면담요청하니 전역자라 정보를 줄수없다 , 증인으로 출석 요청해도 거부하고..
결국 승소는 했지만.. 장애등급이 나오지 않아 국가유공자는 될수가 없었던데 ..
꼭 승소하시길 바랍니다.
끌고 올 땐 국가의 아들
다치면 느그 아들
ㅈ같은 국방부 개새들 진짜
화력지원합니다. 꼭 찾으시길
운전대 마크 부대군요.
저도 37사 나왔어요.
안타깝네요.
부디 좋은 결과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