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고 차량에는 운전자가 사망한 채 발견되었고, 요금 미터기 분석 결과 탑승객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는 충돌의 충격에 의해 떨어져나간 것으로 보이며, 경찰은 사고 경위를 알아내기 위해 사라진 블랙박스를 수색하는 중입니다. 담당 경찰관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현재 사고 경위를 어떻게 추측하십니까?’
‘사고 지점을 보시면 스키드마크가 2차로부터 1차로까지 이어져있고, 중앙 분리대를 충격한 후 도로 바깥으로 튕겨져나간걸로 보이거든요. 아마 고라니라던가 야생 동물을 피하려다가 사고가 난게 아닌가..’
‘사고 지점을 보시면 스키드마크가 2차로부터 1차로까지 이어져있고, 중앙 분리대를 충격한 후 도로 바깥으로 튕겨져나간걸로 보이거든요. 아마 고라니라던가 야생 동물을 피하려다가 사고가 난게 아닌가..’
“에휴.. 요즘 짝짓기철이라 그런지 고라니 때문에 사고가 많이 나네요. 저도 고라니 때문에 식겁한 적이 많아요. 손님도 운전 하시죠?”
“네..”
“아무튼간에 저도 운전으로 밥벌어먹고 살지만 운전이라는게 한시도 긴장을 풀면 안돼요. 그나저나 이 시간에 뭔일로 이리 먼데를 가신대요?”
“아.. 제가 원래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데 오늘 술을 한잔 해서요.”
“아이구 잘하셨어요. 술은 한방울만 마셔도 절대 운전하면 안돼요. 요즘 연예인이고 뭐고 술마시고 음주운전하다 걸려서 또 조금 있으면 자숙했다 하면서 또 나오고 에휴.. 손님같은 분이 많아야 사고도 안나고 참 좋은데. 백번 잘하셨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말수가 없는 손님인가 보다. 보통 이런 시간대에는 나도 졸음이 올 수 있고 해서 손님과 수다를 떨며 가는게 좋지만, 택시 기사가 너무 말걸면 싫어하는 손님도 있으니 잠자코 있어야겠다 싶어서 더 이상 내쪽에서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렇게 30여분을 달렸을까, 창밖을 가만히 내다 보던 손님이 말을 걸어 왔다.
“혹시 TV같은데서 연쇄살인 뉴스 나오면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연쇄살인이요.”
“아~ 저는 그냥 뭐.. 참 세상 흉흉해졌구나 하죠. 뜨신밥먹고 할짓이 없어서 아무나 그렇게 죽이고 다니나.. 별 미친1놈들이 다 있구나 하죠.”
“그런가요..”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한건지 이 손님은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린 채 말을 이었다.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단순히 싸이코가 아무나 마구 죽이는 경우도 있겠지만, 분명 원한 관계에 의해서 죽이는 경우도 있을거라고..”
“그 많은 사람들한테 다 원한이 있었을라구요?”
나의 반문에 손님은 내 쪽을 잠시 바라보았다가 이내 고개를 다시 창 밖으로 돌렸다.
“제 생각인데요, 만약 아무개시 아무개동의 이발사가 살해당했다고 하면 경찰은 그 사람과 원한 관계가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수사를 할거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만약 다음날 그 옆동네의 이발사가 또 살해당하고, 또 며칠 후 근처에서 또 이발사가 살해당하면 경찰이 누구를 수사할까요?”
“뭐.. 그쯤되면 이발사들한테 원한이 있다거나..”
나의 이런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이 손님은 갑자기 큰 소리로 “그런거죠.” 하고 맞장구를 쳤다. 큰 소리에 깜짝 놀라 룸미러를 보니 무표정했던 손님의 얼굴에 약간의 화색마저 감도는 듯 했다. 손님은 약간 상기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분명 연쇄살인들 중에는 자신이 원한 관계에 의해 사람을 죽였지만, 본인이 용의자가 되는 걸 피하려고 애꿎은 사람들을 죽여서 연쇄살인인 것처럼 만드는 사람이 있을거라는 거죠.”
손님의 말투엔 무언가 확신이 묻어나는 느낌마저 들었다.
“에이.. 설마 그럴라구요. 그정도까지 생각할만한 사람이면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겠죠.”
나의 설득같은 말에 손님은 “역시 그렇겠죠?” 하며 이내 말하는 것을 멈추었다.
다시 캄캄한 길을 달리다보니 나 역시 슬슬 어떠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손님.”
“네.”
“원한 관계에 의해 사람을 죽이고, 또 그걸 덮기 위해 연쇄살인을 한다 하더라도 경찰이 초기 수사때 용의선상에 올려놓은 사람이면 잡힐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말이다. 어쨌든 용의선상에 올랐으면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 아닌가. 나의 반론에 손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을 죽여야겠다 했을 때, 그 사람을 첫 번째 타겟으로 하지 말고 두 번째 타겟으로 하는거죠. 그러면 경찰이 봤을때도 ‘뭐야 또 이발사가 죽은거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테니까요.”
“그것도 그렇네요.”
일리 있는 말이다. 분명 내가 경찰이래도 비슷한 살인 사건이 계속 이어지면 개인적인 원한관계보다는 연쇄살인쪽에 더 무게를 둘 것 같았다. 내가 속으로 수긍하고 있을 때 손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라디오에서 나온 택시 사고 있잖아요.”
“네.”
“그 사고도 혹시 택시 기사 연쇄 살인의 시초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가령 저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택시를 몬다던가..”
“그렇지만 아까 라디오에서는 택시 미터기에 아무 기록도 없어서 탑승객이 없었다고..”
“기사님도 장거리라서 저랑 금액 합의하고 미터기 안찍고 오셨잖아요.”
이쯤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뒷좌석에 깊숙이 몸을 묻고 있는 저 손님이 언제 나를 덮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내 머릿속의 기억을 빠르게 꼼꼼히 되짚어봤다. 그리고 약간은 반 농담조로 떨리는 숨을 진정시키며 말을 꺼냈다.
“하하하.. 제 기억엔 손님을 처음 뵙는거같은데 저는 해당사항이 없겠네요.”
“뭐 꼭 타겟이 두 번째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손님의 자조하는 듯한 대사에 봄날 새벽의 시원한 공기에도 불구하고 이미 등이 축축히 젖는게 느껴졌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나는 언제라도 대처가 가능하도록 룸미러에 신경을 집중한 채 길을 달렸다. 둘 사이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얼마를 달렸을까,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차를 세웠다.
“... 손님... 다 왔습니다.”
손님은 말없이 지갑에서 약속한 금액을 꺼내 내밀며 약간의 술냄새를 풍기며 말을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시는 동안 졸립진 않으셨죠?”
손님이 사라진 골목을 보며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네..”
“아무튼간에 저도 운전으로 밥벌어먹고 살지만 운전이라는게 한시도 긴장을 풀면 안돼요. 그나저나 이 시간에 뭔일로 이리 먼데를 가신대요?”
“아.. 제가 원래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데 오늘 술을 한잔 해서요.”
“아이구 잘하셨어요. 술은 한방울만 마셔도 절대 운전하면 안돼요. 요즘 연예인이고 뭐고 술마시고 음주운전하다 걸려서 또 조금 있으면 자숙했다 하면서 또 나오고 에휴.. 손님같은 분이 많아야 사고도 안나고 참 좋은데. 백번 잘하셨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말수가 없는 손님인가 보다. 보통 이런 시간대에는 나도 졸음이 올 수 있고 해서 손님과 수다를 떨며 가는게 좋지만, 택시 기사가 너무 말걸면 싫어하는 손님도 있으니 잠자코 있어야겠다 싶어서 더 이상 내쪽에서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렇게 30여분을 달렸을까, 창밖을 가만히 내다 보던 손님이 말을 걸어 왔다.
“혹시 TV같은데서 연쇄살인 뉴스 나오면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연쇄살인이요.”
“아~ 저는 그냥 뭐.. 참 세상 흉흉해졌구나 하죠. 뜨신밥먹고 할짓이 없어서 아무나 그렇게 죽이고 다니나.. 별 미친1놈들이 다 있구나 하죠.”
“그런가요..”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한건지 이 손님은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린 채 말을 이었다.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단순히 싸이코가 아무나 마구 죽이는 경우도 있겠지만, 분명 원한 관계에 의해서 죽이는 경우도 있을거라고..”
“그 많은 사람들한테 다 원한이 있었을라구요?”
나의 반문에 손님은 내 쪽을 잠시 바라보았다가 이내 고개를 다시 창 밖으로 돌렸다.
“제 생각인데요, 만약 아무개시 아무개동의 이발사가 살해당했다고 하면 경찰은 그 사람과 원한 관계가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수사를 할거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만약 다음날 그 옆동네의 이발사가 또 살해당하고, 또 며칠 후 근처에서 또 이발사가 살해당하면 경찰이 누구를 수사할까요?”
“뭐.. 그쯤되면 이발사들한테 원한이 있다거나..”
나의 이런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이 손님은 갑자기 큰 소리로 “그런거죠.” 하고 맞장구를 쳤다. 큰 소리에 깜짝 놀라 룸미러를 보니 무표정했던 손님의 얼굴에 약간의 화색마저 감도는 듯 했다. 손님은 약간 상기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분명 연쇄살인들 중에는 자신이 원한 관계에 의해 사람을 죽였지만, 본인이 용의자가 되는 걸 피하려고 애꿎은 사람들을 죽여서 연쇄살인인 것처럼 만드는 사람이 있을거라는 거죠.”
손님의 말투엔 무언가 확신이 묻어나는 느낌마저 들었다.
“에이.. 설마 그럴라구요. 그정도까지 생각할만한 사람이면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겠죠.”
나의 설득같은 말에 손님은 “역시 그렇겠죠?” 하며 이내 말하는 것을 멈추었다.
다시 캄캄한 길을 달리다보니 나 역시 슬슬 어떠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손님.”
“네.”
“원한 관계에 의해 사람을 죽이고, 또 그걸 덮기 위해 연쇄살인을 한다 하더라도 경찰이 초기 수사때 용의선상에 올려놓은 사람이면 잡힐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말이다. 어쨌든 용의선상에 올랐으면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 아닌가. 나의 반론에 손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을 죽여야겠다 했을 때, 그 사람을 첫 번째 타겟으로 하지 말고 두 번째 타겟으로 하는거죠. 그러면 경찰이 봤을때도 ‘뭐야 또 이발사가 죽은거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테니까요.”
“그것도 그렇네요.”
일리 있는 말이다. 분명 내가 경찰이래도 비슷한 살인 사건이 계속 이어지면 개인적인 원한관계보다는 연쇄살인쪽에 더 무게를 둘 것 같았다. 내가 속으로 수긍하고 있을 때 손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라디오에서 나온 택시 사고 있잖아요.”
“네.”
“그 사고도 혹시 택시 기사 연쇄 살인의 시초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가령 저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택시를 몬다던가..”
“그렇지만 아까 라디오에서는 택시 미터기에 아무 기록도 없어서 탑승객이 없었다고..”
“기사님도 장거리라서 저랑 금액 합의하고 미터기 안찍고 오셨잖아요.”
이쯤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뒷좌석에 깊숙이 몸을 묻고 있는 저 손님이 언제 나를 덮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내 머릿속의 기억을 빠르게 꼼꼼히 되짚어봤다. 그리고 약간은 반 농담조로 떨리는 숨을 진정시키며 말을 꺼냈다.
“하하하.. 제 기억엔 손님을 처음 뵙는거같은데 저는 해당사항이 없겠네요.”
“뭐 꼭 타겟이 두 번째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손님의 자조하는 듯한 대사에 봄날 새벽의 시원한 공기에도 불구하고 이미 등이 축축히 젖는게 느껴졌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나는 언제라도 대처가 가능하도록 룸미러에 신경을 집중한 채 길을 달렸다. 둘 사이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얼마를 달렸을까,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차를 세웠다.
“... 손님... 다 왔습니다.”
손님은 말없이 지갑에서 약속한 금액을 꺼내 내밀며 약간의 술냄새를 풍기며 말을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시는 동안 졸립진 않으셨죠?”
손님이 사라진 골목을 보며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재밌네요 잘읽었습니다! 이건 글 보면. 중간에 예를 드는 장면같은거 좀 리얼하게 넣어서 영화로 나오면 좋겠다 싶어요 ㅎㅎ
우와 진짜 재밌어요!!!! 몰입하면서 읽었어요
추천드리고 갑니다 총총
와 저도 택시기시차럼 덩달아 긴장됐어요
글 정말 잘 쓰신듯
애거서 크리스티 ABC살인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오신건가요 아니라면 엄청나게 천재적인 작가가 되실지도!!
개인적으로 저는 서서히 긴장감을 고조시키다가 마지막에 탁! 풀려버리면서도 생각할 여지를 남겨두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운전기사 입장에서는 다행으로 생각했을까 아니며 화가 났을까?
엄청 몰입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