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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진실은?


댓글
  • 기쁜우리사랑은 2017/07/10 08:54

    누군가는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유시민이가 이야기를 하네...
    가본 사람들이면 알거임...
    3천명이 떨어져 죽었을 공간도 높이도 아님을...
    우스갯 소리로 마지막 3천번째 여자가 뛰어내릴려고 할땐 오히려 아래가 아니라
    위로 뛰어내려야할판... ㅋㅋㅋ
    더불어 물에 빠져 죽는게 아니라 압사야...ㅋㅋㅋ
    맨 마지막 죽은이는 어케 설명이 안되고... ㅋㅋㅋ

  • 싸피엔스 2017/07/10 09:52

    역사전공잡니다.ㅋㅋㅋ시호인 의자 만봐도 좋은 왕이었어요. 의로울 의 자애로울 자 거든요. 시호는 후손들이 지어주는거구요.
    의자는 초반에 강했어요. 대야성 및 40여성 공취하구요. 대야성 성주 죽였는데 성주가 김춘추 사위였고, 딸도 죽었습니다.
    근데 문제가 있었어요. 백제는 내부 정치상황이 귀족들이 너무 쌨어요.
    한성도읍기에 왕비족인 진씨 해씨 비롯해서 웅진시절 들어온 토착귀족들까지....정치가 어려웠죠.
    왜 영화 황산벌에서 초반에 귀족들이 군사안내주려한것도 그이유였죠...지들살려고...충신 흥수 성충도 아마 의자왕이 ㄲㅈ 했던게아니라 귀족들이 탄압한걸로보이구요.
    삼천궁녀는 명백히 일제의 식민사관 입니다. 일제가 너희역사는 미개해 왕이 3000명 이나 여자끼고 놀고말야. 그니까 우리가 너희 지배하는건 당근이야. 이러기위해서입니다. 결정적으로3,000명 이야기가 퍼지고 나오기시작한게 일제시대들어서라는 얘기도 있어요. 그외에도 3000명이란 숫자가 사비성 인구에 비췄을때 말도안되는 숫자라는통계도 있습니다.
    그리고, 의자왕이 마지막에 사비성버리고 튄것도 사실 전략이란분석이있어요. 애초에 탄현 , 백강에서 못막으면 사비가 위태롭다는 충신들의 전략이 무너지자 의자왕은 마지막수단 쓴거에요.
    당시 사비성을 지역적으로 둘러싸듯 있던 3개정도의 성이있었다고 해요. 의자는 이중 한곳으로 튀고 나머지 두성과 힘을 합쳐 사비에들어온 적군을 둘러싸고. 일거에 총공격하려는 의도였다고 보기도 한답니다.

  • 36기통 2017/07/11 08:56

    역사왜곡.
    쪽발이들

  • 기쁜우리사랑은 2017/07/12 08:54

    누군가는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유시민이가 이야기를 하네...
    가본 사람들이면 알거임...
    3천명이 떨어져 죽었을 공간도 높이도 아님을...
    우스갯 소리로 마지막 3천번째 여자가 뛰어내릴려고 할땐 오히려 아래가 아니라
    위로 뛰어내려야할판... ㅋㅋㅋ
    더불어 물에 빠져 죽는게 아니라 압사야...ㅋㅋㅋ
    맨 마지막 죽은이는 어케 설명이 안되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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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기통 2017/07/12 08:56

    역사왜곡.
    쪽발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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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M525V물려받음 2017/07/12 09:25

    사실 저건 쪽박이가 아니라 짱깨들이 왜곡을 한거죠...
    씁쓸하기는 매나 마찬가지 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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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서사시 2017/07/13 09:00

    누군가 나서서 역사 바로잡기를 해야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었네..--;;
    역사란 모름지기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데
    그 대화가 단절되어 있었어.
    유작가가 적당한 시점에 정당한 이의제기를 잘해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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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민두 2017/07/13 09:19

    요즘 저 프로 보는재미로 삼ㅋㅋ 아침에 모닝똥때리고 몇개가 떠오르나 보기도하면서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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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델모델 2017/07/13 09:27

    신라가 원흉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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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정실 2017/07/13 10:16

    원래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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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댕이 2017/07/14 09:27

    20년 전 고등학교 선생님이 한 말과 똑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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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기배돌이 2017/07/14 09:32

    우리 아들이 요즘 읽고있는 삼국유사.사기에도 3천궁녀가 자결했다고 나오던데...
    뜯어 고칠데가 한두군데가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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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우디가최고 2017/07/14 09:34

    ㅎㅎㅎ 혹. 이름이 삼천이 아닐까요? 궁녀이름 삼천.
    그러니 삼천 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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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마니드림 2017/07/14 09:55

    가능성 있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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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빠는싸다 2017/07/15 09:39

    역시 그때나 이때나 찌라시 글쟁이들이 있었네요~~~~
    아시죠?? 야당때문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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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원시장 2017/07/15 09:44

    정왕동에 삼천궁녀 함 가봤는데....생각보다 별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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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싸피엔스 2017/07/15 09:52

    역사전공잡니다.ㅋㅋㅋ시호인 의자 만봐도 좋은 왕이었어요. 의로울 의 자애로울 자 거든요. 시호는 후손들이 지어주는거구요.
    의자는 초반에 강했어요. 대야성 및 40여성 공취하구요. 대야성 성주 죽였는데 성주가 김춘추 사위였고, 딸도 죽었습니다.
    근데 문제가 있었어요. 백제는 내부 정치상황이 귀족들이 너무 쌨어요.
    한성도읍기에 왕비족인 진씨 해씨 비롯해서 웅진시절 들어온 토착귀족들까지....정치가 어려웠죠.
    왜 영화 황산벌에서 초반에 귀족들이 군사안내주려한것도 그이유였죠...지들살려고...충신 흥수 성충도 아마 의자왕이 ㄲㅈ 했던게아니라 귀족들이 탄압한걸로보이구요.
    삼천궁녀는 명백히 일제의 식민사관 입니다. 일제가 너희역사는 미개해 왕이 3000명 이나 여자끼고 놀고말야. 그니까 우리가 너희 지배하는건 당근이야. 이러기위해서입니다. 결정적으로3,000명 이야기가 퍼지고 나오기시작한게 일제시대들어서라는 얘기도 있어요. 그외에도 3000명이란 숫자가 사비성 인구에 비췄을때 말도안되는 숫자라는통계도 있습니다.
    그리고, 의자왕이 마지막에 사비성버리고 튄것도 사실 전략이란분석이있어요. 애초에 탄현 , 백강에서 못막으면 사비가 위태롭다는 충신들의 전략이 무너지자 의자왕은 마지막수단 쓴거에요.
    당시 사비성을 지역적으로 둘러싸듯 있던 3개정도의 성이있었다고 해요. 의자는 이중 한곳으로 튀고 나머지 두성과 힘을 합쳐 사비에들어온 적군을 둘러싸고. 일거에 총공격하려는 의도였다고 보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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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마니드림 2017/07/15 10:04

    역사 전공하셨다니 일반인들보다 잘 아시겠네요. 당시 백제의 군사력이 나당연합군을 상대하기에는 너무 적지 않았나요??
    기벌포와 황산벌 두곳에 병력을 나눠야하고..
    유명한 황산벌 전투도 5만 신라병력에 5천결사대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사실 10배의 병력을 넓은 평야에서 맞서 싸운다는 것도 사실 좀 이해가안되구요.
    저라면 평야인 논산이 아니라 산이 많은 금산쪽에서 전술을 펼치면 그래도 상대해볼 만 하지만 수성전도 아니고 전투자체가 너무 무의미한 전투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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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싸피엔스 2017/07/15 10:26

    @아주마니드림
    아.. 황산벌에서 싸울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어요. 이유는 바로 "조온나~ 대비가 늦어서 이다" 입니다.
    애초에 김춘추가 당에가서 군사 요청한고 이런거 백제도 알고 있었고 쳐들어올줄 알았죠.
    그래서 백제의 충신인 성충 과 흥수가 이렇게 주장을합니다.
    "무릇 백제를 방어함에 과거부터 육지는 탄현을 넘지 못하게 하고, 수군은 백강을 넘지 못하게 한다면 능히 막을 수 있습니다. 그곳 방어를 집중 하셔야 합니다" 하구요.
    근데 말씀드렸다시피 백제는 귀족들이 자기 이익땜에 성충이랑 흥수를 정치적으로 탄압을 해버려요. 왜냐하면 거기 방어하려면 귀족들이 군사를 내야 했구요. 귀족들이 자기 군사 굴려서 그지역 하면 힘들구, 자기 군사들 소모되구요. 그래서 귀족들이 야 설마 쳐들어오겠냐. 고구려 먼저 쳐들어가지! 고구려 어떻게 되나 보고 판단하자고~ ! 왜, 고구려는 수나라도 2차례나 막고 당나라 태종의 공격도 막았자너~ 그넘들이 또 막겠지 뭐~ 연개소문 그자식 군사적으로 쎄다매? 이래 버린겁니다.
    그래서 흥수와 성충이 옥에가고, 대비가 안되있던거죠.
    그래서 정작 쳐들어왔을때 백강에서 무너지고, 탄현을 넘어서 쳐들어오기 시작을 해버립니다. 그상황에서 급하게 의자왕은 막아야 했고, 급하게 끌어모은게 5천이었던거죠. 그리고 그걸 죽음을 걸고 이끈게 바로 계백이구요.
    계백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 넓은 평야에서 5천가지고 신라 5만을 어캐 이기냐 이건 전쟁에 뼈가 굵은 계백도 속으론 알고 있었을거에요. 그래서 계백이 자기 부인이랑 자식 죽이고 갔자나요. 신라가 나를 잡아 죽이면 내 마누라도 겁탈해 욕보이고, 자식들은 노예가 될것이다. 라구요.
    아마, 계백의 목적은 어차필 질 전투이지만, 죽을을 각오하더라고, 의자왕에게 '시간을 벌어주기'위한 방법이었을거에요. 이미 초기단계에서 대비가 안되었으니, 자기가 황산벌에서 목숨걸고 막는 동안 의자왕이 재정비해서 2차적으로 잘 막아 주십쇼 하는 충정이었을 겁니다. 이건 제의견이 아니라 합리적인 의견이고 내용이에요. 저도 그렇게 배웠구요. 그래서 계백이 충신이고 용맹한 장수였던 겁니다. 가슴이 울컥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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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싸피엔스 2017/07/15 10:30

    @아주마니드림
    그리고 어차피 신라 5만 끌고가던 김유신은 넓은 평야로만 갔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일 겁니다.
    왜냐하면 당시 신라는 당나라의 식량을 가지고 육지로 몇월 몇일 까지 사비로 가겠다고 약속(조건)을 했기 때문이죠. 많은 쌀을 실은 수레들을 이끌고 산쪽으로 갈 확률이 적었고, 당시 교통로나 지역적인, 군사적인 이동경로를 봤을때 황산벌이 그나마 신라군이 자날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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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확천금 2017/07/1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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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악근혜 2017/07/16 09:58

    신라는 나라팔아먹고 통일할때부터 개색기들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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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렌지색이호박색 2017/07/16 10:05

    '옛날 고려적때 (고리짝 내지 고려쩍 이라고도 함) 하던 이야기'라며
    무시하는 것 있죠? 그게 고려를 망하게 하고 세운 나라에서 일부러 퍼트린
    비유라고 합니다.
    그게 아직까지 내려오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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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중해님 2017/07/16 10:05

    안내방송이 아주 개 지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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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싸피엔스 2017/07/16 10:12

    사실, 신라를 나쁘게 볼 수 도 있어요. ㅋㅋㅋㅋ 근데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말한 e.h. carr 의 말처럼 현재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라가 통일하면서 고구려 영토도 잃고, 무엇보다 외세인 당을 끌어들였다는 한계가 있으니까요.(교과서에도 그렇게 기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내가 8세기에 신라 정치인이었다는 감정이입적 생각을 해보면요. 어쩔수 없었다는 생각도 가질 필요가 있어요. 당시 신라는 외부적으론 백제가 공격해서 서쪽(대야성) 40여성도 뺏기구요, 한강유역도 고구려에 의해서 미친듯이 공격을 받습니다(바보 온달 이야기 아시죠? 평강공주와 온달 이야기요. 거기 나오느 온달 장군이 엄청 공격했죠)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구세력과 신세력이 정치싸움합니다. 선덕여왕, 진덕여왕 이후로 성골 남자 후계가 끊기는 시점에서 누가 왕이 되느냐 문제가 공공연하게 정치싸움이 되었구요. 우리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봤든 알천을 비롯한 구세력과 김춘추-김유신의 신세력이 정치적 갈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라는 무쟈게 사면초가 였던게지요. 자기를 도와주는 편이 없었습니다. 김춘추는 내부적 정치적 입지도 약하고, 대야성에서는 자기 사위랑 딸도 전사하고, 그래서 위기 극복하려고 고구려를 찾아갑니다.ㅋㅋ 도와 주십셔 하고 연개소문에게 가서 말한거죠. 근데 연개소문이 이래요 " 야, 니네 한강유역 우리한테 내놔 그럼 생각좀 해보지" 하자 김춘추는 그건 안되는데요. 이랬다가 갇히죠.
    여기서 김춘추가 도망친 유명한 설화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입니다. 간을 육지에 두고왔다고 뻥카친 일화를 고구려 관리에게서 들은 김춘추는 "네 내놓을께요" 하고 구라치고 고구려에서 도망친뒤 당나라가서 도와주십셔 해버린겁니다.
    고구려에서 배운 교훈으로 당에서 뻥카 ㅈㄴ 치죠. 당황제가 너희 왕이 여자인데 내가 믿을 수 있니? 내가 얻는 건 뭐니? 이럽니다. 김춘추는 그러자 이렇게 말해요. "아 어차피 다음왕은 제가 될거같은데 도와만 주면 내가 왕이되서 당에게 고개숙이죠 뭐"라고 뻥카를 칩니다. 여튼 그래서 당을 끌여들여서 신라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살고자 한것이죠.
    신라가 무조건 ㅈ같다고 는 할 수 없는게 이런 겁니다. 내가 신라인이었다면 이위기를...어떻게 ??라는 의문이 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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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크뷰 2017/07/16 10:14

    고향이 논산이라 낙화암 자주갔었는데 여기서 어떻게 삼천명이 빠져죽냐 생각했엇다...잘못됀건 바로잡자...의자왕도 주색에 빠진왕이 아니라 정치를 잘했지만 썩은 관료들땜에 나라가 망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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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싸피엔스 2017/07/16 10:18

    글구요. 요새는 신라의 통일의 한계인 "고구려 영토를 잃었다"는 측면에서 신라가 통일한 시대를 통일신라시대 라고 지칭 안합니다.
    바로 "남북국시대"로 지칭합니다. 즉, 고구려를 잃은 발해와 신라가 남북으로 나뉘어 형세를 이루어 우리민족을 이어왔다는 관점인거죠. 발해는 명백히 고구려 계승이니까요. 그렇게 보면 우리 한반도는, 우리 민족은 만주지역과 요동지역을 아우르는 거대한 영토를 잃은 적이 없던 겁니다.
    사실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에요. 고려시대에는 그지역에 살던 여진족애들이 빌빌 기었었구요. 조선시대에도 세종이 김종서 장군 시켜서 4군 개척 하면서 여진애들 다뤘구요.
    무엇보다 조선 숙종때는 청나라랑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요. 이게 조선의 영토는 압록강부터 '토문강'까지이다. 라고 합의를 보는데요. 지금 동북공정의 이슈 중 하나가 바로 '토문강'에 대한 해석이죠.
    우리는 토문강이 요서 지방에 있는 강이다 라고 말하는 반면, 중국놈들은 토문강이 두만강의 옛이름이다라고 빡빡우기죠.
    근데 토문강이 두만강이라는 얘기가 말이 안되는게요. 조선 숙종때 그렇게 정계비를 세우고나서 우리 북방에살던 조상들은 간도지역으로 참 많이 이주를 하십니다. 거기서도 자연스럽게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서 잘살구요. 중국측도 조선측도 막질 않습니다. 당연히 조선 땅이었기 때문이죠.
    본의아니게 댓글이 길어졌는데요. 길어서 안읽으시는 분도 있겠지만, 화장실서 똥누다가 한번 읽어봐주셔도 좋을 것같아요.
    역사적으로 참답답한 마음이 많아요. 일제의 역사왜곡도, 중국의 동북공정도 우리가 이겨내고 밝혀내가야됩니다. 역사는 우리 나라의 역사이고 우리나라의 역사는 그곳에 살고 있는 우리의 정체성과 연관되어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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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꽃남자k 2017/07/16 10:43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삼국시대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 알려면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런지요.
    무겁지 않은 책으로 추천좀 해 주실수 없을까요?
    싸피엔스님 글을 읽으니 너무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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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싸피엔스 2017/07/16 11:15

    @불꽃남자k 솔직히 일반교양서적중에는 어떤게 좋을지 잘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비전공자들이 쉽게 접할만한 좋은 미디어는 아는데요.
    유투브에서 '지식채널 e'라고. 쳐보세요. EBS에서 5분정도 동영상으로 제작한 영상들이 많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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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킹보초 2017/07/17 10:18

    우리 역사는 쪽빠리들 족쳐가지고 알아내야한다
    그놈들이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짱개색기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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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윽한눈빛 2017/07/17 10:54

    광개토대왕 장수왕 문자왕까지라도 집권때 신라 멸하였으면 동북3성인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은 백의민족 영토였을텐데 실리에 입각한 신라와 짱깨들이 지들 싸움에 눈 먼 나머지 점령하고나서 이민족들 처후를 제대로 못해서 거란,여진,몽골,훗날 만주족한테 중국 반이상 혹은 전영토 뺏겨서 오래도록 오랑캐라 불리던 무리들한테 식민지 생활했었지. 땅크다고 중국이 동방의 강자는 절대 아님. 만에하나 고구려가 끝까지 살아 남았더라면 세계 5위권 안에드는 강국이 되었을 지도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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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의별개잡종 2017/07/17 11:06

    고구려,백제,신라....... 그 당시엔 다 다른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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