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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커도 부모가 보기엔 아직 아기.

어제 늦게 친정 부모님이 오셨어요. 죽을 한냄비 들고 오셨더라구요.
무슨 죽이길래 이 오밤중에 그리 먼길을 이렇게 달려왔냐고 했더니 몸에 좋은거니까 그냥 먹으래요.
한술 떠서 입에 넣으려는데 제게는 역한 고기냄새가 확 올라오더라구요.
이거 닭죽아냐? 나 고기 안먹는거 알면서 왜이래? 아부지도 고기 안먹으면서 이런걸 왜 가져와? 하고는 숟가락을 내려놨습니다.
아부지도 저도 페스코베지테리안이라서 가끔 생선 먹는걸 빼고는 고기를 거의 먹지 않아요. 저는 고기를 싫어해서 잘 안먹고 아부지는 집에서 동물을 많이 키우다보니 자연스레 안먹게 된거죠.
아니 집에 수타크랑 꼬꼬들 키우면서 어떻게 닭죽을 끓여와? 글고 이걸 왜 오밤중에 들고 와? 가깝지도 않은곳을.
엄마가 버럭 화를 내시며 아부지가 힘들게 구한거니까 잔말말고 먹기나 하랍니다.
아 싫어! 싫다고 버릴거야! 하고는 냄비째로 들어올리는데 아부지가 가만히 손을 잡습니다.
음슴아 나도 수타크랑 꼬꼬들 보는데 야를 삶는거 힘들었다. 근데 이게 암에 글케 좋다는데 우짜겠너. 내 아무리 집에 자슥들 이쁘다 이쁘다 해도 내새끼만큼 이쁘겠나. ㅇㅇ네도 이거 댓마리 묵고 고칫다고 안카나. 한숟갈만 먹그라. 부탁이다.
무슨 닭이 암치료제도 아니고...
아부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숟가락을 제 앞에 떠밉니다.
야가 뱀닭이라고 카드라. 뱀구데기 먹고 자란 놈이라서 암도 쪼까낸다고 안하나. ㅁㅁ사는 아제가 야들 키우는데 니 아프다꼬 이비싼걸 두마리나 보내줬다 아이가. 한숟가락만 묵자.
이번엔 냄새가 아니라 목이 메어 잘 안너머갑니다. 구역질을 참고 한술 넘겼습니다.
아이고 잘했다. 한숟가락만 더 묵자. 니 사돌라는거 다 사줄테니까 한숟가락만 더묵자.
나이 36에 아부지가 떠주시는 죽을 한그릇 먹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한그릇을 한숟가락씩 다 떠먹여 주시고서야  집으로 돌아가셨어요.
36 아기는 아부지가 떠나고 나서야 웁니다.
댓글
  • 지리하다 2017/07/04 09:45

    ㅠㅠ 얼른 나으시길 바랄게요 ㅠㅠ 사랑하는 엄마 아부지와 건강하게 꽃길 걸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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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hnGandy 2017/07/04 10:55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나이가 든다고 해서 변하겠습니까.
    애틋하고 애절한 부모님 마음에 눈물나네요.ㅠㅠ
    글쓴님도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요즘은 암이라고해도 그저 치료과정이 힘들 뿐, 완치되시는 분들도 많으니 가족들 생각하시며 힘내셔서 얼른 나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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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기씨 2017/07/04 11:41

    아우 눈물나요...
    부모님 마음에 눈물이 나구
    글쓴이 마음에도 눈물이 나구 ...
    얼른 완치되어서 부모님과 함께 즐거운 때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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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켈로그포스트 2017/07/04 12:22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이 너무 이해되고 슬퍼서 눈물이 나네요...
    꼭 완치되서 건강해지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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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아람 2017/07/04 12:33

    글만 봤는데 다큐멘터리 본거같애
    글쓴이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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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둡장수 2017/07/04 12:43

    꼭꼭 완치하셔서 부모님과 웃는일만 생기시길 바래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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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졸리조이 2017/07/04 12:44

    맞아요 뱀닭이 암에 엄청좋대요
    그리고 무지무지 비싸다고 티비 나온거 봤어요
    그거 드셨으니 다 나으실거예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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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핑크픽 2017/07/04 12:47

    어서 쾌차하시길 기도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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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리제인 2017/07/04 12:52

    엉엉 울었어요... 얼른 쾌차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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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몬샴푸 2017/07/04 12:52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들 사진이랑 같이 이만큼 컸어도 부모눈에는 아기네요 하는 글일줄 알고 들어왔다가 ㅠㅠ
    꼭.. 꼬옥 나으시길 기도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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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잎이슬 2017/07/04 12:55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울컥했어요
    쾌차하실 거에요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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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훈 2017/07/04 12:55

    암일수록 잘 먹어야 낫습니다. 어느 치료 단계이신지는 모르겠지만.. 항암치료 주기적으로 받다보면 이게 정말 사람 기를 빨아먹어요. 하고나면 입맛도 없고 축처지고 저희 아버지는 한 삼일은 계속 잠만 자고 잘 안드시더라고요ㅜ 몸에 쓴 약이다 생각하고 드셨으면 좋겠네요. 완쾌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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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트성애자 2017/07/04 12:55

    이제 쾌차할 일만 남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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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rrusula 2017/07/04 12:58

    죽이 아니라 부모님 사랑을 녹여낸 약이었네요. 그 사랑의 힘으로 분명 완치되실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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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촌팔뚝고모 2017/07/04 12:58

    꼭 쾌차하실 겁니다.
    부모님과 작성자님 가족 모두 더 건강해지고 더 행복해지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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