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미국 라이프 잡지사에서 1947년 6월, 제2차 미소공위가 재개되었을 당시 촬영한 사진입니다.
여운형 선생이 암살당하기 딱 1달전 사진이자, 당시 나이 61세때이죠.
사진촬영한 장소는 중구 소곡동에 있는 원구단입니다.
라이프 잡지에서는 이렇게 설명되어있습니다.
Described as the "silver axe," Lyuh Woon Heung sitting in front of building, had government well organized when others arr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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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을 해보면
"은도끼"라고 불려지는, 여운형이 빌딩 앞에 앉아있다. 그는 미소군(others)이 도착했을 때, 이전에 잘 조직된 정부를 갖고있었다.
ps - 1920~30년대生 어르신들하고 해방정국(1945~1948년)시기 얘기를 나눠보면, 어르신들이 한결같이 여운형에 대해서는 키가 훤칠했고(실제 키가 182cm 된다고함), 잘생겼다라고 증언하시더군요. 심지어 극우성향이 강한 어르신들조차도 그런증언할 정도..
만일 건준이 제대로 정착했으면 남북 분단도 없었을 테죠
참고로 역사의 아이러니인데 광복 후 귀국한 임정은 친일파 청산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지침을 이야기하지 않죠
반면 건준은 친일파 청산을 이야기하죠
이 두 세력의 싸움으로 이득을 본 건 슬프게도 이승만과 그 패거리죠
아, 처음 보는 사진이네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이런건 대체 왜 국사시간에 제대로 배운기억이 없는지 ..
여론조사에서 1대 대통령 1위를 했던 분, 그의 삶이 궁금했던 분들에게는 '여운형 평전'을 추천합니다.
지금 저 장소가 조선호텔 아닌가요?0
안타깝지만저 시절 저 분이 활약하려면 우남 이상의 교활함(?)이 필요했어야 했는데, 그러면 몽양이 아니게 되어버리니.....뭐, 다른 신생 독립국가들의 독립 직후 혼란상과 저 시절 한국을 비교한다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