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모습은 너른 광야에서 새벽 별을 지붕 삼아 천막을 치고 사는 유랑 민족일겁니다, 그런데 이게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문제라는 사실은 다들 간과하시는 부분들이 있더군요,
아메리카 대륙은 중앙 아메리카, 남 아메리카, 북 아메리카를 통틀어 3백개가 넘는 언어가 사용되었고 추정 인구수만 수천만에서 1억 가까이 되는 인구가 제각기 문명을 꽃피우던 땅입니다,
당연히 광야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별반 많지 않다고 보셔야되는게 이 양반들도 사람이라 해안가나 목초지, 광산 인근 등 사람 살기 좋은 땅을 제각기 차지하고 살아갔으며 전쟁과 외교로 문명을 지탱해나갔습니다,
물론 천막만 짓고 살고 그런 것만 생각하면 안되는게 남 아메리카 원주민들만 집짓고 사는거 알았던게 아닙니다,
가령 유타, 콜로라도, 뉴 멕시코, 애리조나 일대에는 아나사지 문명이 있습니다, 이른바 오아시스 아메리카 문명권의 하나로써 수십년에 걸친 가뭄을 동반한 기상 재해와 자원 고갈 등으로 괴멸하기 이전까지는 터키옥 등 귀금속과 구리를 채굴하여 중앙 및 남 아메리카 일대에 가공 수출하는 산업으로 번성한 문명이었지요, 이 들은 여관 및 대형 종교 시설 포함한 최대 5층 높이의 수천 평방 미터의 복합 주거 단지를 백여개 가량 건축하였으며 도로에 가로등을 설치 운영하였고 각 주거 단지를 연결하는 1백 km에 달하는 도로망과 농업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관계 수로망을 유지 하고 있었습니다,
이 들 문명은 괴멸후에도 많은 곳에서 문명의 이기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가령 콜로라도 메사버드에서는 절벽 아래에 4층 높이의 종교 복합 주거 단지인 이른바 절벽 궁전을 지었고, 그 외에도 스퀘어 타워 하우스, 롱 하우스 등으로 지칭되는 다양한 복합 주거 단지를 건설하였고 현재도 아코마 푸엘리코 등에서 그 문명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물론 북아메리카에서 이 사람들만 집짓고 산건 아닙니다,
미시시피 및 오하이오 강 유역을 통틀어 미 동부를 향유했던 흙 둔덕 문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약 기원전 1만년 부터 5,500여년 전 까지 그 성립시기에 이견이 제시되나 아무튼 Archaic 시대 , Adena 문화, Ho-pewell 문화, Baytown 문화, Coles Creek 문화, Mississippian 문화, Fort Ancient 문화, Plaquemine 문화 등을 거치며 번성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유럽인들과의 조우 당시에도 문명이 잔존해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네 봉분과도 비슷한 흙 무덤/피라미드를 쌓거나 흙/돌 등으로 대형 조형물을 만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흙 무덤/피라미드 위에 그 위에 제사장 등의 거처나 종교 시설을 건축한 것으로 추정되는 특이한 문명 양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 흙 둔덕 문명은 가장 근래에 가까웠던 시기를 놓고 문화권을 나누어 본다면 다시금 오하이오 강과 그 주변의 알곤퀸 부족 및 이로쿼이 연합들과 남쪽의 미시시피 강 계곡 등에서 살았던 메트로폴리스 카오키아로 나누어볼수 있습니다,
알곤퀸 부족 및 이로쿼이 연합의 인디언들은 흔히 고분 건설자라는 이명으로 알려진 이들로서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 사회 계층을 나누어 놓은 정치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으며 옥수수 등 농업을 바탕으로 성장했고 북아메리카 동부를 섬렵하는 거대한 무역망을 운영함으로서 크게 번성한 문명이었습니다,
아 물론 같은 문명이라고 사이 좋은건 아닙니다, 왜 언어가 같다고 말이 통하는건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알곤퀸 부족에 대항하여 그들로 부터 생존을 도모 위해 또 보다 살기 좋은 내일과 부족의 번성을 위해 모호크, 오네이다, 오논다가, 카유가, 세네가 등 다섯 개의 부족은 15세기 무렵 각 부족의 부족장 49명이 의회를 구성하고, 기존 전통을 타파하여 모계 중심의 사회 체제를 재 구축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기존 연합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조례를 신설하는 등 굳건한 연맹체를 재구성합니다,
이러한 연맹체는 이후 유럽인들의 도래 이후에도 도리어 그 들을 패퇴시키는 등 나름 나름 잔존하게 되었는데 그 건 다른 글에서 이야기 하도록 하고 이 들 알곤퀸 부족 및 이로쿼이 연합이 건설한 문명권은 흙 둔덕 문명권이 성립된 이래 유지되어 오다가 12세기 초엽 부터 알수 없는 이유로 쇠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 메트로폴리스 카오키아를 건설했던 이 들은 중앙 아메리카의 영향을 받은 이들로서 돌과 흙으로 테라스 형식의 사원과 대형 거주시설들을 건설하였으며 태양을 숭배하였으며 죽음을 경배했습니다, 또한 메트로폴리스라는 말 그대로 자치권이 일부 보장된 여러 도시들이 하나의 생활권역으로 밀집한 거대한 도시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8세기 무렵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래에 16세기 즈음 부터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쇠퇴라는 것은 가령 카오키아는 체로키 인디언 등의 문화권으로 이어지는 것에서 볼수 있듯 단순한 소멸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님은 잘 아실테니 넘어가고 예컨데 그렇습니다, 매스미디어 등에서 곧잘 나오는 인디언의 모습은 어느 정도는 허상이라는 겁니다,
물론 그러한 매스미디어 등에서 비춰지듯 수렵으로 사는 부족들도 있으나 이 들은 문명과 부족 등에 따라 관계 수로를 파고 도로망을 구축하고 대형 건축물을 건설할줄 알았습니다, 현재의 주와 같은 개념의 도시간 자치권을 보장하는 거대 도시 연맹 국가를 건설하거나 작금의 EURO와 같은 연맹 국가를 건설할줄도 아는등 정치 사회 체제적으로도 결코 뒤떨어지는 이들은 아니었지요,
거기에 대륙을 관통하는 거대한 무역망이 존재하고 있었고 토테미즘, 애니미즘을 넘어 피라미드와 같은 분묘를 건설할 정도로 지역간, 부족간에 종교적으로 이질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광야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문명과 부족등에 따라 절대 다수의 이들은 보다 살기 좋은 땅, 부유한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치루어야 했고 생존을 위한 치열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진짜 역병때문에 피해가 컸다는게 이제야 좀 믿기네여.
저렇게 도시크기로 모여 살았으니.
어느 평행세계에서는 백인들이 유색인종에게 지배받았던 역사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런 놀랍고 흥미로운 이야기 완전 좋습니다^^
땅에 대한 소유개념이 없고 사냥터 문제도 부족 원로들의 구두 약속(공존)이 다였던 네이티브 아메리칸 북미인디언 부족 분포도 (확증이 아닌 추정지도)
1492년 콜럼부스가 자신이 도착한 신대륙이 인도( India )인 것으로 착각하고
그 신대륙의 주민들을 인디언 ( Indian )이라 부른 이후
유럽인들에 의해 미국의 원주민 ( Native American )을 인디언( Indian )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1492년 당시 미국에는 1500 만명 ~ 2000 만명의 원주민(인디언)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당시 인디언들은 2000 개가 넘는 소규모의 부족 집단 단위로 나뉘어져 생활하고 있었는데,
그들 서로 간의 생활 양식이 서로 달랐으며,
말도 차이가 심해서 다른 부족과의 의사 소통이 되지 않는 부족들도 많았다.]
북 아메리카의 2000개가 넘는 문화가 조금씩 서로 다른 부족들이 살았음에도 사냥용 무기 이외엔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들거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제국 패권주의 천하통일 같은 타부족 침략 전쟁기록도 없으며 식민지 같은 개념은 아예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풍부한 사냥감과 비옥한 토지가 광활해서 그럴수도 잇겟지만 (토지가 광활해도 지배론적인 제국들의 악의 흑역사를 생각해보면)
선교사를 앞세워 들어간 유럽인들이
괜히 땅뺐기 구실로 미개인 이라고 주장한거 같습니다
기독교로 개종시키지않아도 이미 타부족의 여자나 남자를 만나면 서로 형제 자매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우주와 영적인 직관에 뛰어나고 자연을 잘 이해 했으며
자연과 인간.동물.식물들과의 조화로운 공존의 삶을(그린피스환경운동.웰빙 등등 주장하지않아도 그자체였던) 중시했다고 가설로 전해집니다
옥수수를 수확하면 하늘에,대지에 감사 기도를 하고 부족들이 나눠먹던 아름다운 전통에
굳이 유럽의 종교가 들어갈 필요도 이유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사료를 남기지 않고 구전으로 전해주던 북미 인디언 전통때문에 (중남미 피라미드 제국의 인디오들 과는 다른 )
오늘날 현대인들이 이해하는 인디언부족들의 역사적 사료들은
백인들의 시각에서 쓰여진 가설(추정에 의한 기록)이라는 맹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문명과 부족등에 따라 절대 다수의 이들은 보다 살기 좋은 땅, 부유한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치루어야 했고 생존을 위한 치열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부분이 왜 백인시각이라고 말할수 있는가 하면
동시대의 중국춘추전국시대에 천하통일 전쟁을 하는 역사가 있지만
단 한번도 통일된 연방국가를 만든적이 없었던 부족사회형 인디언들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던 백인의 시각에서 추정으로 기록한 가설이 됩니다
몇몇 인디언부족은 백인으로부터 흑인노예를 사다가 대농장을 운영하기도 했다고 ㅎㄷㄷ
저 뱀 사진..
제가 어렸을땐 뱀을 형상화한거라고 책에서 봐서 지금도 그렇게 불리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아마 잉카문명에서 만든거라고 본 거 같은데 사실인가요?
이런 개념을 쉽게 이해하려면 지금 많은 몽골인들이 유목생활을 하지만 한때 대제국을 세웠고
지금은 중국 변방의 소수민족인 유목민족 위구르족도 한때는 위구르 제국을 세워 정착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밖에도 보통 유목민족들은 대부분 정착했던 적이 있는데, 지리 환경적 조건으로 인해 유목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인간의 문명이란 것이 어느정도 발전하다 보면 정착을 선호하는 안정지향적 경향이 강한게 사람이라 생각해요.
지금의 부락중심의 수렵생활을 하는 원주민의 이미지는 아마도 양놈들이 침략의 정당성을 갖기 위해 덮어씌운 의도가 다분하다 보여집니다
저 아나사지 문명에 대해 좀 더 설명을 드리자면, 차코캐니언을 중심으로 계곡과 그 너머의 넓은 지역에 존재했습니다. 단순히 '살고 있다' 수준이 아니라, '대도시를 먹여 살리기 위해 위성도시를 형성하여 식량을 운반했다' 수준의 문명입니다. 남미의 가장 유명한 아즈텍과 같은 대제국을 꾸리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만, 마야의 도시국가 급 혹은 그 이상 되는 규모를 가졌죠. 근데 왜 망했냐구요? 유럽인들이 조졌냐구요?
놉, 아나사지의 몰락은 땅이 수용하기 벅찬 수준의 과성장입니다. 비대해진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주요 자원(나무)가 급격히 소모되었고, 이로 인해 연쇄적으로 식량 생산력이 줄어들게 되죠. 이 사이클에 가뭄이 끼얹어지면서... 우리가 알거나 미처 알지 못하는 문명들의 상당수가 그러하듯 몰락해버렸습니다. 물론 절멸하진 않고, 소수의 생존자는 근처의 뭐 다른 원주민 세력에게 합류했죠.
아, 한 가지 재미있는 건 북미 원주민들은 서로 간의 교역이 잦다고 합니다. 얼마나 교역이 활발했냐면, 오래 전 캐나다 동쪽 해안에 상륙했던 '그린란드인'의 유물이 뜬금없이 멀리 떨어진 북미 원주민 유적지에서 발견되었을 정도죠. 물론 그린란드인과 북미 원주민간의 사이는 썩 좋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린란드 바이킹 양반네들의 기록에서 '아우 ㅆㅂ 포도도 나고 나무도 넘쳐나는 꿀빠는 땅을 발견했는데 왠 썩을놈들 때문에 누리질 못하네'라고 나오거든요. 이게 바로 그 빈란드 사가입니다.
와우! 여기 알쓸신잡 오유버젼인가요? 원글님과 댓글님들 유용한 자료감사합니다 다시 차근차근 읽어봐야지!!
Lemonade님 감사합니다!!
이래서 오유가 좋아요!!
다양한 관심사와 지식들, 노하우, 레시피 등을 서로 공유하고, 불의를 고발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민주주의를 고민하고 함께 격려하며, 이니를 응원하고, 고민을 나누고 참치캔을 나눔하고...
작성자님과 댓글분들 토론을 보니 알쓸신잡에 유희열 기분을 알겠어요ㅋㅋㅋ 재밌는 정보 감사합니다. 내일 낮에 다시한번더 읽어봐야지ㅎㅎ
사실 미국 원주민들 "자연과 친화적이고 평화로운 야만인들..." 이런 이미지도 고정관념때문에 싫어한다고 들었습니다. 자기들도 다른 문명들과 마찬가지로 싸우고 경쟁하고 발전하고 이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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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 1권을 보시면 첫장부터 인디언 학살이 시작되죠. 쓰니님이 언급하신 인디언문명들이 1492년 신대륙 발견 후 어떻게 멸망했는가 보여줍니다. 읽고서 미국 원주민들이 수천만명이었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