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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성실한 스타의 일탈

현시대 최고 인기배우 김남우.

연예기획사 입장에서 보자면 김남우는 가장 이상적인 배우였다.
그는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고, 단 한시도 쉰 적이 없었다.
회사에서 가장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자기계발을 했다. 운동을 하거나,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배우거나. 만약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면, 굳이 무료 이벤트나 팬 사인회를 자처하고 나섰다. 술담배도 하지 않았고, 여자관계도 전무. SNS로 구설수를 만드는 일도 없었다.
그야말로, 기획사 입장에서는 꿈의 연예인이었다. 오히려 이젠, 너무나 완벽해서 걱정할 지경으로.

" 남우야...이건 회사 대표 입장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형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넌 정말 그렇게 사는 게 재밌냐? "
" 뭐가? "
" 성실한 것도 좋지만, 너무 욕망을 다 참고 사는 게 아니냔 말이다. 너는 그런 생활이 괜찮냐? 뭐든 간에 너도 이젠 좀 풀어줄 때가 되지 않았어? 여행을 가든 여자를 소개해달라고 하든..뭐라도 좋으니 한번 말해봐라. "

대표는 회사를 이렇게까지 키워준 김남우가 고마웠고, 어떤 무리한 요구를 하든 무조건 들어줄 생각이었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김남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형 말이 맞네. 내가 너무 빡빡하게 산 것 같아. 한 번쯤은 욕망에 충실할 때도 됐지.. "
" 그래! 잘 생각했어! "
" 그럼 있잖아 형... 'TV는 사랑을 싣고'가능해? "
" 뭐? "
" 첫사랑을 찾고 싶어서 말이야. "

대표는 잠깐 놀랐지만,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 그래! 너도 여자에게 관심이 있긴 있었구나!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PD들 만나서 상의 좀 해보고, 안 되면 회사 차원에서 개인방송을... 아니다, 그냥 내가 사람을 써서라도 찾아주마! "
" 아니. 그냥은 찾을 수 없을 거야. "

고개를 흔든 김남우는, 아련한 얼굴로 옛 기억을 꺼냈다.

" 중학교 때 가족 휴가로 해운대 해수욕장에 놀러 간 적이 있었어. 그 첫날에, 해변 어딘가에서 날아온 야구공을 맞고 여동생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게 된 거야. 부모님이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일어난 일이라 나는 어쩔 줄을 몰라 울고만 있었는데, 그때 그 아이가 나타났어. "

[ 괜찮아! 내가 방금 공중전화로 119 신고하고 왔으니까! ]

" 처음 보는 아이였는데, 그 아이 덕분에 나는 진정할 수 있었어. 다음날 나는 다시 해변에서 그 아이를 찾아다녔고, 휴가 내내 그 아이와 어울렸어. 그리고 휴가가 끝나면서 그냥 헤어지게 됐는데...나중에 계속 후회했지. 살면서 그 아이 이후로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어. 꼭 한번은 다시 만나고 싶어. "
" 오~ 완전 방송용 스토리인데? "

이야기를 들은 대표는 미소를 짓는 한편, 걱정스럽게 물었다.

" 그런데..찾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학교 동창도 아니고 휴가지에서 만난 아이를.. 이름은 기억나? "
"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어쩌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일단 나와 동갑이었고, 부산 사투리를 썼어. 결정적으로...한쪽 귀가 없었어. "
" 뭐? 귀가? "
"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한쪽 귀가 없어서 그걸 창피해하던 모습이 기억나. 흔치 않은 경우잖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 흠... "

대표는 고민하다가, 밝게 웃었다.

" 네가 처음으로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일인데, 어떻게든 해봐야지! 그리고 만약 찾게 되면 그림이 꽤 좋을 것 같네. "
" 그래? 그럼 부탁해 형. "

김남우의 얼굴이 기대감으로 상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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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우의 첫사랑 찾기는 주말 대표 예능의 한회 특집으로 편성되었다. 

[ 돌아온 'TV는 사랑을 싣고!' 김남우의 첫사랑 찾기! 4주 뒤, 김남우는 과연 첫사랑과 재회할 수 있을까요? ]

사람들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인기스타 김남우가 첫사랑을 찾는다는 사실도 그렇고, 그 첫사랑을 찾을 수 있을지가 미지수라는 점도 그랬다.

최고 시청률이 보장된 4주 뒤의 본방송. 김남우는 긴장한 얼굴로 스튜디오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 남우야. ]
[ 그 귀는...! 맞아! 그래, 기억나! ]

김남우의 첫사랑 찾기는 성공했다. 김남우가 그녀를 안으면서 방송에서 환호가 터졌고, TV를 보던 사람들도 소리를 질렀다.
방송이 끝난 이후로도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개중에는 러브스토리를 그리는 이들도 있었다.

" 이대로 잘되면 이거 완전 영화다! 첫사랑을 못 잊고 평생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던 인기스타에, 귀에 콤플렉스가 있는 여주까지! "
" 이러다가 그 여자랑 결혼까지 하면 진짜 대박! "
" 지금도 혹시 어디 좋은 곳에 가서 데이트하고 있는 거 아니야? "

한데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김남우의 사정은 복잡했다. 방송 녹화가 끝나자마자 대표가 김남우를 불러내어 물었던 것이다.

" 남우야.. 그 여자가 정말로 맞아? 사실은 말이야. PD가 그러는데.. 자신이 첫사랑이라고 연락해온 여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단다. "

대표는 불안한 얼굴로 물었지만, 김남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 상관없어 형. "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귓속말을 속삭이는 김남우.

" 사실은...귀가 잘린 첫사랑 같은 건 없어. 거짓말이었거든. "
" 뭐?? "

" 나랑 동갑에다가 한쪽 귀가 잘려있는 여자들이, 갑자기 어디서 이렇게 많이 나타났을까? 어때 형? 상상해보면, 짜릿하지 않아? "
" ... "

그의 얼굴은 즐겁게 상기되어 있었다. 잠자리 날개를 떼어내던 순수한 아이의 얼굴처럼.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6/03 22:13

    이야기 쓰기를 며칠이나 멈췄다고, 감을 잃은 느낌이...! 흐하하하
    행복하세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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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와왕왕 2017/06/03 22:18

    와 자기 귀를 잘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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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accato 2017/06/03 22:33

    헐....고흐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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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장이텅~장 2017/06/03 23:46

    읽기전 선댓글 남우죽나염?ㅋㄱㄱㄱ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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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햄슽어 2017/06/03 23:49

    헐.. 댓글들 보기전에는 스스로 귀를 잘랐을꺼라는 생각은 못했는데..... 오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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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까지 2017/06/04 00:12

    김강우인가? 하면서 진짠줄 알았음. 소설 엄지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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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요어엉 2017/06/04 01:06

    소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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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붙여놔 2017/06/04 01:18

    여자뿐 아니라 사랑 자체에 아예 관심이 없고 저런 식으로 욕망을 실현하네요. 소름 엄지척

    (eFYHaU)

  • mastermind 2017/06/04 03:07

    소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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