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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오늘 박경리선생님 이야기가 나와서 귀천하신 이모님 생각

 

몇년 전에 귀천하신 이모님이 박경리선생, 천경자화백과 가까운 사이셨어요.

어머니쪽으로 촌수 계산도 어려울 정도로 먼 친척, 아마 법적으로는 남이라고 해야 맞을 사이죠.

1920년대 생이신데 그 시절 태생으로는 흔하지 않은 많이 배우고 세련된 이모님이셨죠.

부친 작고하시고 이모님의 어머님이 신촌에서 하숙을 치면서 외동딸을 숙명여고-이화여대 이렇게 공부를 시키셨는데

그 시절 연대생이던 이모부가 일본 유학 떠나시면서 나 돌아올 때까지 결혼 안했으면 나랑 결혼하는 겁니다..를 시전하시고

돌아오셔서 변호사 되시고 결혼하신 경우.

그래서 그 시절 인텔리답게 일어 완전 능통에 영문과 출신이라 영어도 상당히 잘하시던 이모님.

제가 본 그 세대 여성 중에 가장 아름답고 세련된 분이셨어요.




제가 국민학교 다닐 당시에 티비에서 드라마로 '토지'를 방영했었습니다.

너무나 재밌게 본 저는 이모님댁 서재에서 박경리선생님의 걸작 '토지'를 탐독했었죠.

당시 이모님은 돈암동 거주, 박경리선생은 정릉4동에 거주.

친분의 유래는 못 들었으나 박경리선생이 종종 이모님댁에 오셔서 차를 드실 정도의 사이였습니다.

그 때 이모님이 내 먼 친척뻘 조카가 국민학생인데 당신책을 그렇게 좋아한다고 하셨더니 무려 박경리선생님이 제가 이모님댁 서재에서 읽던 책에 사인을 남겨주시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에 이모님이 저에게 당시 3부까지 나왔던 '토지'-바로 박경리선생님이 저를 위해 사인을 해주신 책을 몽땅 저에게 주셨습니다.

지금도 부모님 댁에 고이 모셔놓은 제 보물단지입니다.

어찌나 여러번 읽었던지 책 상태가 안 좋은데, 당시 너무 가난해서 새로 한질 사서 읽고 그 책을 잘 보관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입죠.

이모 말씀으로는 박경리선생이 항상 사위인 김지하시인과 그 아내인 딸 걱정을 많이 하곤 하셨었다고 해요.




천경자화백의 경우는 개인사로 홍대교수를 그만두고 나서 생계를 위해 70년대에 돈암동 이모님댁 근처에서 화실을 열고 미술지도를 하며 생활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예술에 조예가 깊던 이모님은 개인지도를 받으면서 선생님 도와드린다고 천화백 그림을 정말 많이도 구입하여 소장하셨었어요.

그래서 이모님 댁에 가서 저는 어린 나이에 천경자화백 그림 정말 많이도 봤었습니다.

워낙에 예술을 사랑했던 이모님은 친구 남편이던 장욱진화백의 그림도 역시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역시 다수 구입하여 소장하셨기에 저는 또 역시 어린 나이에 장욱진화백의 그림도 참 많이도 봤었네요.

이모님 방에서 보물처럼 구경하던 대원군의 난초며 추사의 글씨며가 종종 생각이 납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이 자녀들이 다 자라 어린 저를 예뻐해주신 덕에 이모님 따라 화랑이며 골동품상 다니며 가난한 제 집안 형편과는 무관하게 감수성형성기에 고급예술을 정말 많이 접했었습니다.

거기에 이모님댁 그 넓은 2층 서재에서 맘껏 책을 보게 해주셨고 종종 책을 많이도 주셨었습니다.

그리고 이모님에게 듣던 그 식민지시대의 이야기며 여러 명사들 이야기가 정말 재미나서 자라면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기도 했었죠.

어린시절의 독서이력 덕에 국문학과 졸업하고 비록 꿈꾸던 작가는 못 되었지만 문학을 가르치며 밥벌이를 하고 있는 것에는 이모님의 지분이 매우 크다고 늘 생각합니다.




사실상 남이나 다름없이 먼 친척이었으나 거리낌없이 사랑해주시고 소중하고 빛나는 체험을 많이도 하게 해주신 이모님이 저 세상에서도 좋아하시는 책 많이 읽으시고 아름다운 그림 많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나 언젠가 제가 소설을 쓰는 날이 온다면 이모님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댓글
  • ㄷㅅwruㄴ 2017/06/03 01:18

    박경리 싸인 ㄷㄷㄷ;;;
    부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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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tSimple 2017/06/03 01:18

    와. 그 이모님이 진짜 인텔리여성이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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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7/06/03 01:19

    ㄷㅅwruㄴ// 네..비록 보관상태가 나쁘지만 제 마음 속엔 어린시절 처음 받았던 때만큼 반짝이는 추억이고 소중한 영혼의 자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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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주스마일 2017/06/03 01:19

    평소 님 글을 읽을 때 따뜻함이 있던데 꼭 글 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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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7/06/03 01:19

    NOtSimple// 네, 게다가 엄청난 미인이셔서 어머니와 제가 늘 부러워하고 흠모했죠.
    그 연세에 키도 165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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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샹들리에 2017/06/03 01:20

    우와 그 천화백 그림들은 다 어떻게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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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7/06/03 01:20

    가주스마일// 에휴..글솜씨가 허접해서 꿈일 뿐입니다.
    죽기 전에 졸작이라도 한 권 쓰고 죽고 싶은 꿈은 여전하지만서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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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레타 2017/06/03 01:21

    샹들리에// 3남1녀에게 고루 상속되었을 겁니다.
    이모님이 작은 것 한 점 저 주신다고(너는 그림을 정말 사랑하니까..라고) 하셨는데 불시에 쓰러지시는 바람에 받지는 못했지만 어린 시절에 실컷 본 것만으로도 이모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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