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들 사진을 보면 양복을 갖춰입고 말끔하게 찍은 사진이 대부분 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은 왜 그렇게 한껏 멋을 내고 사진을 찍었던 걸까요?
일제 시대에는 일본헌병들에게 즉결처분권이라는게 있었다고 합니다.
즉 길에서 또는 술집에서 어디에서 건 독립운동가를 만나면 조사도 재판도 없이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고 합니다.
독립운동가들은 길을 걷다가도, 술을 마시다가도 언제든 죽을 수 있었다는 겁니다.
말 그대로 언제 죽을 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든 당당하게 죽을 수 있게 양복을 매일같이 입고 다녔다는 독립운동가들…
"의열단원들은 스포티한 멋진 양복을 입었고, 머리를 잘 손질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도 결벽할 정도로 말쑥하게 차려입었다." - 김산 '아리랑' 중
이렇게 죽음을 항상 옆에 두고 투쟁했던 독립운동가들 이었습니다.
열강들에게 좌우되던 그 시절. 그분들의 저항이 없었다면 우리는 일본에게서 독립이 아닌 분리가 되거나, 전쟁에 동원이 된게 아닌 참여한 일본과 같은 전범국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 글에 추천보다 비추가 먼저 달렸다는게 진심 씁쓸함.
온갖 취향과 생각 가진 다수가 모여있는 곳이 유게라곤 하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저당시 독립운동가는 나름 알아주는 부잣집 사람들도 많았음. 그래서 유품같은거 보면 당시에 알아주던 명품도 나오고 그럼.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저 양복핏과 당당한 포즈는 어린 시절 나에게 품격이 뭔지를 알려주었다.
(아래 사진 가운데 앉아계신분)
글 자체는 쌩구라인게.
일본도 나름 사법체계 갖춰진 나라라서 정치범이던 독립운동가던 일단 재판까지는 데려감.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네. 가진게 많으면 오히려 그거 잃는게 두려워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이 더 많을텐데.
다만 즉결처분건 까지는 몰라도
김산의 증언에서 대부분 언제 죽을지 모를 몸이라 사진 찍을 기회만 되면 찍었고
말끔하게 입고 다녔다고 함
그게 마지막일수도 있으니
난 오히려 개소리 못하고 비추만 찍 싸는 쫄보들 보면서 쟤네가 틀렸다고밖에 생각이 안됨
저당시 독립운동가는 나름 알아주는 부잣집 사람들도 많았음. 그래서 유품같은거 보면 당시에 알아주던 명품도 나오고 그럼.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네. 가진게 많으면 오히려 그거 잃는게 두려워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이 더 많을텐데.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저 양복핏과 당당한 포즈는 어린 시절 나에게 품격이 뭔지를 알려주었다.
(아래 사진 가운데 앉아계신분)
이 글에 추천보다 비추가 먼저 달렸다는게 진심 씁쓸함.
온갖 취향과 생각 가진 다수가 모여있는 곳이 유게라곤 하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난 오히려 개소리 못하고 비추만 찍 싸는 쫄보들 보면서 쟤네가 틀렸다고밖에 생각이 안됨
늘 말하지만 뒤틀린 놈들 많음
글 자체는 쌩구라인게.
일본도 나름 사법체계 갖춰진 나라라서 정치범이던 독립운동가던 일단 재판까지는 데려감.
다만 즉결처분건 까지는 몰라도
김산의 증언에서 대부분 언제 죽을지 모를 몸이라 사진 찍을 기회만 되면 찍었고
말끔하게 입고 다녔다고 함
그게 마지막일수도 있으니
ㅇㅇ 온갖 독립운동가중에서 옥사한경우는 많아도 즉결처분됐다는말은 처음들어봄 김상옥처럼 추격전한것도 아니고
그 다음이 문제인거지?
일본 법률상으로 독립운동 그 자체는 불법이 아니라서 안창호나 여운형 같은 분들 조선반도에서 그냥 대놓고 활동함.....치안법이나 소요죄다 뭐다 하면서 다른걸로 걸고 넘어져서 처넣었지.
그러고 보니 진짜 그렇네...
사진 보면 독립 운동의 이유도 있겠지만 멋있고 당당해 보이긴 했는데 ㅠㅠ
장개석이 괜히 독립운동가에게 감명받고 도와준게 아니여
즉 수의를 상시 입고 다니셨다는거네 ㅠㅠ 뭉클하다...
가끔 독립운동 그거 의미없다하는 토착왜구들기어나오는데 장제스가 이토히로부미 저격에 감동받아서 졷질새끼가 독립반대할때 밀어붙여서 조선독립도우는데 큰 영향을 끼침
비추 이유가 궁금하당
즉결처분이란게 6.25 당시 한국도 폐해가 극심해서 얼마 하다가 중단한 건데 일제시대에 즉결처분....? 근거자료 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