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봉평리 신라비.
법흥왕 시기 율령의 반포와 초기 신라의 육부회의의 존재와 왕권의 한계 및 신라의 초기 관료체제를 확인한 수 있는 중요한 비석.
이게 왜 한국사학계를 뒤집었냐면
무령왕릉 발굴 이후에도 잔존했던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자들을 말 그대로 뚝배기를 박살냈기 때문.
덕분에 초기 삼국사기 기록 부실론 내지는 불신론자들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음.
울진 봉평리 신라비.
법흥왕 시기 율령의 반포와 초기 신라의 육부회의의 존재와 왕권의 한계 및 신라의 초기 관료체제를 확인한 수 있는 중요한 비석.
이게 왜 한국사학계를 뒤집었냐면
무령왕릉 발굴 이후에도 잔존했던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자들을 말 그대로 뚝배기를 박살냈기 때문.
덕분에 초기 삼국사기 기록 부실론 내지는 불신론자들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음.
금석문이 ㄹㅇ 사학계에서 중요함. 의심할 여지 없이 당대 기록이니까
공시 7급용이었는데 7급이 한능검으로 대체되면서 존재감이 소멸...
의심을 일순에 개박살내버린 ㅋㅋㅋ
공시 7급용이었는데 7급이 한능검으로 대체되면서 존재감이 소멸...
금석문이 ㄹㅇ 사학계에서 중요함. 의심할 여지 없이 당대 기록이니까
의심을 일순에 개박살내버린 ㅋㅋㅋ
북한산 순수비도 이전에는 뭔질 몰랐다가
추사 김정희 선생이 진흥왕 순수비라는걸 밝히셨지
한국사학계 왜이리 민감함?
자꾸 뒤집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