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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부정부패가 극심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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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수백년의 역사를 함축하는 주제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포괄적인 결론은 "스페인이 남긴 봉건적 사회의 유산이 발전을 저해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수 있다.

 

코르테즈의 아즈텍 정복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아즈텍 제국은 이미 종교에 기반한 봉건적 사회체계를 구축하여, 

 

왕-사제-전사-농민으로 이어지는 계급사회를 구축하였으며 아즈텍 사회는 종교적 권위에 기반하여 절대적으로 군림하는 왕이 다른 지방의 더 약한 왕들을 통치하는 사회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스페인 제국은 유럽에서도 봉건제라는 이름으로 천년가까이 이어진 이 익숙한 체제를 그대로 수용했다.

 

각 지역의 왕과 사제들은 스페인 총독과 귀족들로 바뀌고, 그들을 정당화하는 권위는 카톨릭으로 바뀌었을뿐 아즈텍 제국의 봉건적 질서는 그대로 차용되어 나머지 중남미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단지 차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봉건체계의 상부에는 스페인 인들이 하부에는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부려먹기 위한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대량으로 수입되어 위아래로 확장되기도 했다.

 

즉 멕시코와 중남미 사회는 거대한 봉건사회로서, 종교적 권위에 기반한 지배계급이 방대한 토지와 농노들을 거느리는 곳이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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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미국은 어떠했는가? 사실 처음엔 영국도 똑같이 스페인 제국의 모델을 따르려고 했다.

 

근데 문제는 영국이 정착한 땅은 인구밀도가 낮은 방대한 땅에 원주민 부족들이 반유목민으로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즉, 북미에는 아즈텍과 다르게 영국이 강탈할 봉건적 질서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주인 없는(어디까지나 영국인이 볼때는) 땅이 너무 많았다. 그 결과로 영국정부가 스페인식 식민화 모델을 강제하려고 할때마다, 정착민들은 그냥 식민당국의 권력이 닿지않는 다른데로 도망쳐서 자기 농장을 세워버리고는 했다.

 

결국 영국은 정착민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타협과 협상을 통해 통치할수 밖에 없었다. 

 

어느정도로 본국이 무력했냐면 영국 왕이 영국 본토의 한 공작에게 땅을 하사하자, 식민지인들은 그냥 자기들끼리 모여서 "우린 왕의 식민지임! 그러니 그 공작새끼는 우리하고 상관 없다!"라고 선언해버리고 공작을 개무시하였다.(그 땅을 지금은 그 불쌍한 공작의 이름을 따서 볼티모어라고 부른다)

 

그리고 멕시코와 나머지 중남미와 다르게, 북미는 남부 노예주를 제외하면 땅이나 자산을 소유한 자유민들의 사회로 진화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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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사회적 차이는 독립의 과정과 그 사회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독립은 자유민들의 대표자들에 의해 주도되어, 공화국을 세우자는 계몽주의적 사상의 실험이였다.

 

반면에 멕시코와 다른 중남미 국가들의 독립은 주로 스페인 제국의 봉건제 하의 상위계층을 이루는 엘리트들을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역설적이게도 부분적으로는 나폴레옹 전쟁 도중과 그 이후 노예제와 봉건적 특권을 폐지하려는 스페인 본국에 식민지 엘리트들이 반발하였기 때문이였다.

 

그랬기 때문에 미국과 다르게 멕시코의 독립과정에서는 독립을 주도하는 봉건 엘리트 계급들에 대항한 하층민들의 반란이 수반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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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체로 봉건적인 사회질서는 독립 이후에도 19세기 내내 제한된 숫자의 엘리트들이 서로 친인척 관계로 끈끈히 유착하면서, 일반시민들을 배제하고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권력을 독점하는 형태로 존속되었다.

 

이로 인해 19세기 동안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동안,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에서는 엘리트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반시민들의 경제적 참여를 차단하고 대신에 돈되는 산업들을 엘리트들 내부에서 나눠먹는 행태가 지속된다.

 

19세기 말에 다다르면 이러한 엘리트들은 이러한 지위를 유지하기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부정부패와 전횡을 일삼는데, 

 

 

은행이 엘리트들에 의해 독점되어 이너서클에 있지 않은 일반시민들이 새로운 사업을 하려고하면 대출을 해주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파산을 유도하였으며,

 

멕시코 정부와 군대는 토지를 몰수하고 농부들을 이름만 다른 노예로 전락시켜 정글 플랜테이션에 밀어넣었으며(특히 원주민이나 메스티소들이 크게 피해를 입었다),

 

죄수뿐만 아니라 무고한 시민도 그냥 아무나 길거리에서 잡아와서 인프라 건설에 투입하거나 엘리트들이 보유한 공장에 노예나 다름없는 노동자로 밀어넣는 행태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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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자본이 중남미를 잠식하게된 경위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멕시코와 중남미는 엘리트들이 경제적으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시민들이 새롭게 경제활동을 벌이는 것을 막아놓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방대한 양의 지하자원과 농토들이 개발되지 않은채로 남아있었고, 

 

시민들이 자본을 은행에서 자유롭게 차입할수 있는 미국에서 투자를 시작하자 속수무책으로 중남미의 경제개발이 미국의 자본에 종속되는 꼴이 되버리고 만것.

 

물론 가뭄에 콩나듯이 진지하게 개혁을 시도하는 지도자가 나오더라도, 이미 부정부패 구조에 깊숙히 동화된 미국자본을 보호하기 위하여 미국정부가 군대를 보내 뒤엎어버린것도 당연히 치명적이였다.

 

멕시코 혁명 당시에 미국 정부는 몇번이나 혁명에 개입하여 앞서 말한 부패한 엘리트계층의 반동 쿠데타를 지원하려고 했다가 실패했으며, 

 

그외에 라틴 아메리카의 미국 과일회사들의 바나나 플랜테이션(사실상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노예 플랜테이션과 다를바가 없는 곳들)의 이권을 보호하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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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종식 이후에 많이 나아지고 있지만 멕시코는 여전히 "제한된 숫자의 엘리트들이 국가 산업을 나눠먹고, 지나치게 비대한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가지면서 이를 유지하기 위해 부정부패를 일삼는." 행태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의 저 사람은 유게에서 가끔씩 민영화의 실패사례로 들고오는 카를로스 슬림인데, 이 사람은 멕시코의 통신산업이 민영화될때 자본을 차입해서 지분을 늘리지 않고, '일단 지분을 받고, 회사에서 난 수익으로 나중에 돈을 내셈~"하는 말도 안되는 개족보식 민영화로 멕시코의 모든 통신산업을 독점하였다.

 

이 과정에서 엘리트들끼리 얼마나 뇌물이 오갔을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카를로스 슬림은 나중에 미국에 사업을 확장하면서 멕시코에서 한것처럼 뇌물과 부정부패가 난무하는 사업수법을 쓰려다가, 소송을 처맞고 막대한 금액을 벌금을 내면서 실패한다.

 

1990년대 후반에 제도혁명당이 실각하고 멕시코에도 다당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면서 나아지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엘리트들 간의 유착관계와 그로 인한 부정부패는 관성처럼 남아 멕시코를 계속 괴롭히고 있는것.

 

댓글

  • 저는 님친구입니다
    2021/09/05 15:01

    스페인도 솔까 미국의 소려 견제용 지원이랑 eu빨 아니었음 멕시코 꼬라지였을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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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바이드로끌려간NCR말년병장
    2021/09/05 15:03

    출처 들어가보면, 스페인에 대한 설명도 있음 ㅇㅇ. 근데 거의 4시간 짜리 내용이라 넘어간거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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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각사지성탑
    2021/09/05 15:05

    우리나라의 족벌 기업들이 떠오르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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