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93년생으로 현재 나이 29세.
나의 오랜기억 속에서 가장 처음 에반게리온을 접했던게 아직 초등학교도 안들어간 코찔찔이 때였다.
그때 용돈 받으면 동네 문방구로 달려가 싸구려 조립 로봇을 사서 조립하곤 했는데
그중에 보라색 길쭉길쭉 뾰족뾰족한 엄청 멋진 로봇이 프린팅된 상자가 있어서
500원 주고 구입후 집에와서 조립한 기억이아직까지 남아있다.
그때까진 그게 에반게리온 인지도 몰랐고 (그떈 영어 자체를 몰랐다.)
초호기인지 알지도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11살 초등학교 5학년때
어디의 채널이었나 투니버스였나 아니면 다른 채널이었나
밤에 신세기 에반게리온 TV시리즈 를 방영해 줬고
그냥 그날 따라 아무이유 없이 늦게 자고싶었던 나는 우연치 않게 에반게리온 TV시리즈 1화를 목도하게 되었다.
초반의 장엄하다가 갑자기 빠른 팝핀으로 바뀌는 오프닝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내용은 애들이 보기엔 어렵고 자극 적이었지만
"쉬벌 이게 전투지" 라는 말이 나올정도의 폭주 액션과 화려한 효과는
어린 아이를 타오르는 낭만을 가진 약속된 덕후의 길로 가게 만들기 충분한 경험이었다.
내용은 복잡했지만 그 애니메이션 자체의 분위기와 갈등을 조성하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어릴때 부터 괴수영화를 좋아해서 그런지 작품에 나오는 사도들도 굉장히 좋아했다.
그땐 어려서 그런지 TVA 시리즈의 엔딩도 무난하게 받아들였다.
쌈박질 끝나고 지하철타고 나와서 갑자기 박수갈채 이어지길래
"고생했다 신지야, 이제 들어가라" 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시간은 좀더 지나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에반게리온의 주인공 이카리 신지와 같은 나이.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
중학교 시절엔 한창 베르세르크에 빠져있었고 그때부터 조금씩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헤일로 시리즈, 워해머 시리즈, 에일리언 시리즈, 베르세르크, 에반게리온, 꼭두각시 서커스
위 작품들은 내 삶의 성서와 마찬가지일 정도로 애정이 깊고 굿즈도 사서모으고 지금도 아끼는 작품들이다.
이야기가 조금 옆으로 샜다. 중학교 2학년 여기저기 커뮤니티를 돌다가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이라는 TVA 총집편 극장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같이 그림그리며 놀던 친구랑 에반게리온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 형이 가지고있다는 말을 했고.
자기도 봤는데 그냥 잔인하고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는 말만했다.
흔쾌히 빌려주겠다는 말을 듣고 다음날 EOE을 빌려 봤다.
.
.
.
당연히 멘탈이 붕괴됬고 그 후유증은 두달조금 넘게 갔던거 같다.
뿅뿅.
보여준 친구한테 "이건 사람볼께 아닌거같고 감독도 뭔가 좀 미친거 같은데"
라고 했더니 "사도신생인가 그것도 있는데 볼래?" 라고 말했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있던 상황이 아니라 패스했다. 물론 나중에 보긴 봤다.
EOE의 여파는 내 정신에 큰 흠집을 내기에 충분했고.
베르세르크의 피와 내장이 낭자하는 폭력과는 전혀다른.
그리고 더 불쾌한
심리적인 충격과 고통을 선사해 줬었다.
거짓말 안하고 몇번씩 악몽도 꿨다. 조까튼 양산형 시리즈.
(웃긴게 반에 얘 닮은 애가 있었다.)
이때부터 안노 욕을 입에 달고 살았던거 같다.
여기저기 찾아보면 안노 감독도 에바를 만들면서 많은 고난과 심리적 고통을 겪은거 같은데
감독의 심리는 작품에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는가.
어쩌면 난 안노 감독의 고통을 그의 작품을 통해 조금이나마 공감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지만 그래도 심했다 뿅뿅.
이때부터 나의 작품 세계관이 뒤틀린 것 같았다.
그러던중 중3때 덕후 아닌척 일코하고 다니던 나에게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소식이 전해졌다. 사실 별 기대는 없었다. 이 당시엔 워해머와 헤일로 덕질한다고 바빴다.
그리고 EOE에서 겪었던 정신적 고통과 충격은 가끔식 아프간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의 PTSD마냥
간간히 찾아와 날 괴롭혔으니까.
그래도 에반게리온 시리즈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으니까
"옛날 생각나네 한번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관에 가서 관람을 하게 되었는데...
"와...미쳤다."
그당시 애니메이션은 거의 안보던 때라서 그렇게 까지 작화와 CG 기술이 발달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OST도 미쳤었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은 모든 면에서 TVA 시리즈나 조까튼 EOE보다 더 나아갔으며
그당시 나에겐 완벽했다.
우타다 히카루의 Beautiful World 는 지금도 듣고 있을 정도며 극장판의 여러 OST들도 유튭으로 리스트로 만들어 듣고있을 정도니까.
극장에서 난 애니메이션의 신세계를 경험했었고.
이미 TVA시리즈를 몇번이나 재탕했으니 내용도 알던 것 이었지만
내가 알던 에반게리온과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심리적인 묘사도 주인공인 신지 한테 좀더 공감이 갔고.
같은 사춘기라 그런지
경험하진 못했지만 그 답답함을 알 수 있을 것 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지금당장 내가 신지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저럴 수 있을까?
마냥 찐따인것 같았던 신지는 사실 약자를 연기하는 기회주의자가 아닐까?
기타 등등의 잡생각을 다양하게 해보게 되었다.
좀더 어렸던 시절의 시청했던 에반게리온 시리즈와
한창 사춘기 중3 시절의 내게 와닿은 에반게리온 시리즈는 같은 감독의 같은 작품이지만
좀더 다체롭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후 집에가서 다시 TVA시리즈를 봤고
그전엔 주인공의 폭주와 액션 위주로 봤던 내용이
주인공과 각 등장인물들의 성격 묘사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상황이 그들을 몰고가는지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압박감 속에서 어떻게 자신들을 옥죄어 오는지 등의 심리적 측면으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극장판이 더더욱 기대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고1 실업계 고등학교를 들어가 기술을 배우지만
그림 그리는게 더좋아서 수업시간에 연습장에 수도없이 그림만 그리던 그림쟁이 시절이었다.
잊고 있던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파" 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신극장판 "서" 에서 느꼈던 감동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기대감으로 겨울이 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대망의 개봉일에 떨리는 마음으로 극장으로가 화장실갈 시간도 아까워 음료수는 안사고 팝콘만 사고
황금자리의 좌석에 앉아 광고를 보며 도키도키한 마음을 추스렸다.
"혹시 내가 전편에 너무 기대해서 실망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안노 감독님 정신차린거 같으니까 절대 실패하지 않을꺼야" 라는 생각으로 관람에 들어갔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파"는 모든 에반게리온의 정점이었다.
그냥 미쳤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잘만들었지?"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적잘하게 잘섞인 3D작화, 거기에 잘 리메이크된 사도의 디자인에 개쩌는 OST, 파격적이며 뒤틀린 전개
화룡점정으로 마지막 신지의 각성씬은 뿅뿅 EOE의 PTSD를 치료해준 최고의 처방제 였다.
에반게리온 "파"는 감동이었다.
에반게리온 "파"를 본후 나는 씹덕 친구들에게 에반게리온 시리즈 영업을 하기 시작했고.
마음에 안드는 놈한텐 EOE를 같이 추천해줬다.
파의 마지막 장면은 TVA를 기억하고 EOE로 두들겨 맞았던 나에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우주대폭발 같은 충격이었고 동시에 방사능 낙진처럼 남아있던 EOE의 고통을 날려주었으며
"우리 신지 이제 고통받지 않아 ㅠㅜ" 라는 안도감도 함께 주었다.
신극장판 시리즈는 이대로가면 절대 망하지 않는다!
망할 수가 없다! 이 기대를 그저 그대로 유지하기만 하면된다!
가자 안노 감독! 힘내라 울트라빠돌이! 이렇게 기대감 올렸는데 다음 작품은 망칠 수가 읎지 ㅋㅋㅋㅋ
근데 그걸 그 새키가 해냈따.
에반게리온에 종말이 도래하였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긴 했는데 그게 EOE로 가는 가프의 문이었다.
이걸 내가 군대에서 휴가나오고 봤는데.
첫번째에 내용 이해를 못해서 친구랑 한번 더 봤는데 그때도 잘 못했다.
그래서 "내가 극장판 시리즈 한개 더 나온걸 모르고 있는건가 지금?" 이라는 생각에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역시 서,파,Q 뿐이었다.
파와 Q 사이엔 다른게 없었다. 그런데도 난 이해를 잘 못해서 휴가복귀 전에 한번 더봤고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다. 라기 보다는 사실 상황을 받아들이기 조금 그래서 이해한척 했다.
아마 파의 마지막 초호기 각성 후 니어 서드 임팩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겠지...
그래 그래도 당신들이 신지에게 그런식으로 대했으면 안되는거지...하는 식으로 신지의 편에서
미사토와 뷜레 일행을 질타했던거 같다. 신지는 잠들어 있었다 해도 아직 정신도 육체도 14살의 여린 소년이었다.
상황 판단을 하기도 전에 그를 몰아 붙이고 죄인으로 낙인 찍어 버리는 건
내가 봤을땐 이지메와 다를게 없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함께 믿고 의지하고 지지했던 동료들이 각성하고 아야나미 구했으니까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지?
했던 신지에게 전후사정 설명도 없이 지랄떠는건 뭔 짓인가 싶었다. 그리고 사실 작중에 나오는 기체들의 디자인도 뭔가 마음에 안들었다.
사다모토 요시유키 그 십새키의 안그래도 개짜증났는데 Q의 기체들은 뭔가... 에바가 아닌듯 하면서도 이질적이었다
물론 작품의 분위기상 그런 이질적인 느낌이 서드 임팩트로 인한 종말의 세계와 변질된 상호관계를
잘 표현했다는 느낌도 받았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 그런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부감을 느낀거 같다.
신극장판 Q는 초반 내용 전개를 시작으로
"에반게리온 = 범우주적 이카리 신지 괴롭히기 프로젝트" 로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난 실망감과 소프트한 데미지를 입고 이번엔
아무런 기대도 하지않은체 마지막 극장판을 기다렸다.
팬으로써 적어도 끝은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어떤식으로 내용이 전개되어도.
실망은 할지언정 에반게리온 이라는 작품을 버릴 순 없었다.
2021년 8월 14일
서두가 길었지만 오늘 하루동안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시리즈를 연달아서 전부 봤다.
매년 마다 신극장판 시리즈를 정주행 했는데
올해 부턴 드디어 염원하던 서,파,Q,다카포 정주행을 할 수 있게되었다.
평소라면 신극장판 시리즈를 보면서 항상 재미와 감동을 느끼고 Q에서 다시 당혹감을 느끼고 끝이났지만
이번엔 9년을 기다린 마지막 극장판이 드디어 아마존 프라임으로 공개되었기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보게되었고
시청이 끝났다.
나 개인의 느낌으론 뭐라고 해야할까
"에반게리온 다운 느낌으로 끝났다."
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내용은 Q를 보완하는 느낌이었고 생각보다 담담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기억도 흐릿할 코찔찔이 꼬맹이 시절의 내가 있었고
이제 곧 나이 30이 되는 29세 젊은 청년인 내가 있었다.
작품의 주인공 이카리 신지 도 몇십년을 14세의 사춘기 소년으로 살았고
그런 신지도 드디어 어른이 되었다.
어떤 작품이던 항상 팬들이 원하는 엔딩으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감독이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반감없이 혹은 감독이 의도한 반감을 포함해서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가는
감독의 재량이며 거기서 오는 피드백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또한 감독의 몫이니까.
이번 마지막 신극장판은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내용이다. 그건 확실하다.
안노 감독을 옹호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쯤되면 에바를 다른사람한테 넘겼음 좋겠다.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난 개인적으로 좋았다.
등장인물 모두가 각자의 길을 가는 엔딩이었다.
그후의 일은 그들의 몫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열린 해피엔딩(?) 이라고 생각한다.
에반게리온 답다 생각했다.
막상 엔딩 크레딧 까지 다 보고 나니 약간의 쓸쓸함과 섭섭함이 밀려왔다.
어릴적 부터 함께했던 친구를 더이상 만나지 못한다는 그런 종류의 느낌 같았다.
물론 그것보단 좀더 소프트 하지만.
다보고 나면
에반게리온 = 이카리 겐도의 가정폭력 연대기 같기도 하다.
소시오패스 개뿅뿅 로맨티스트가 조직과 권력을 꿰차면 어떻게 되는가 = 이카리 겐도 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 들은 제각기 고난을 겪고 그것을 서로 다른 자신의 형태로 극복하고
결국 스스로의 행복과 소원을 이루기 위해 떠난다.
신지는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해 행동하고 이제 더이상 남이 등떠미는 것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 남자다워졌다.
미사토는 Q에서의 행동이 다카포에서 어느정도 이해가 갈 수있게끔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그래도 전개를 좀 더 잘 풀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식을 위해 어머니로써의 길을 사전에 끊어버린 선택은 좀 슬펐다.
아스카는 외로움에서 오는 시기와 질투를 인정하고 애정을 원하는 자신을 받아들였다.
이카리 겐도는 소심하고 사람을 대하기 어려운 자신의 나약한 반사회적 모습을 마주하기 거부하고 주변을 배제하는 것을 방어기제로 삼았으나
이카리 유이와 자신의 아들과 제대로 마주 함으로써 자신의 나약함을 받아 들이게 되었다.
작품의 인물들은 서로 다른 형태로 각자 스스로의 길을 떠났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시리즈는 그렇게 담담하게 끝을 맞이했지만
왠지 "그래 이정도면 충분하지" 라는 생각에 엔딩을 억지로 받아 들이고 있는 듯한 느낌도 없잖아 있다.
"이정도면 이제 충분하잖아?" 같은 느낌.
끝난 이야기 속에 나만이 남겨진 듯한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함께하고 팬으로써 그들의 이야기를 쭉 봐라봐온 심정으로 오늘은
달콤씁쓸한 기분이 드는 날이었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작품팬으로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다모토 이 개씹새키가 유일한 오점이고 시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에반게리온 시리즈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나올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에반게리온 덕질을 한다.
크시 2021/08/15 03:33
좋은 감상평 잘 봤습니다
루리웹-4209371694 2021/08/15 03:33
신장판이 저런 흐름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감독 에고가 너무 쎄다고 해야하나
겁나게 기분파인거 같음. 자신이 지금 느낀 감정과 느낌에 휘둘리는 타입인거 같기도 함..
Maximo 2021/08/15 03:36
뭔가 보면서 나만 이런 감상이었던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네요. 특히 파에서의 감동은 격렬하게 공감합니다. 레이가 드디어 구원받는구나. 가랏!! 신지! 하고 통렬하게 외치던 그때가 어제 같은데 어느덧 전 30대 중반 아저씨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다카포를 보고나서 마음 한켠 어딘가에서 뭔가 마무리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어제 오늘 참 홀가분 한 기분입니다. 안노에겐 감사를 해야겠죠. 무책임하게 집어던지지 않고 그래도 완성이라도 어떻게든 해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