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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보물은 쓸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

김대리는 정대리가 이상했다. 

자신이 잘 알던 정대리는, 인기도 없고, 잦은 실수로 항상 상사에게 욕을 먹고, 항상 표정이 우울한 친구였다.
그런데 최근, 왜 저렇게 싱글벙글할까?

" 정대리! 요즘 뭐, 좋은 일 있어? "
" 아니~ "
" 그러지 말고, 말해봐. 여자친구라도 생겼어? "
" 아니라니까~ 하하 "
" 아 그럼 뭔데 그래? 장부장한테 그렇게 욕을 먹고도 싱글벙글이야? 별로 잘못한 것도 없이 욕먹었잖아? "
" 장부장? 뭐~ 그럴 수도 있지! 그 양반도 인간인데 스트레스 쌓이는 일 없었겠어? "
" 뭐?? "

당황스러운 김대리는 정대리가 로또에라도 당첨됐나 싶었다. 종일 붙잡고 끈질기게 물어본 결과, 그는 퇴근 후에 정대리의 집으로 초대받았다.

원룸에 들어선 김대리는 의아했다. 도대체 뭘 보여주려고?
정대리는 곧장, 책상에 올려둔 은빛의 원구로 향했다.

" 음? 뭐야 그거? "

머리통보다 조금 큰 쇠구슬은 무척이나 고급스러워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원구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 지구본? 지구본이네? 요즘 지구본은 이렇게 나오나? "

신기해서 만져보려다 손을 잡혀 저지당하는 김대리! 이어진 정대리의 설명은 그를 황당하게 했다.

" 안돼! 만지면 그 지역에 비가 내린다고! "
" 뭐?? 만지는 곳에 비가 내린다고? "
" 그래! 이건, 비의 구슬이야! 너 요즘 뉴스 봤지? 아프리카 가뭄 해결 뉴스! 그거 다 내 작품이야~! "
" ... "

김대리는 짧은 순간, 정대리의 정신상태를 의심했다. 혹은 어리바리한 정대리가 또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했다던가?
그 표정을 읽었는지 곧바로 방의 창문을 여는 정대리.

" 잘 봐! "

정대리의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구슬의 대한민국 쪽을 누르자-,

' 쏴아아아- '

" ?! "

순식간에 창밖으로 비가 쏟아져내렸다! 

" 이, 이, 이?? "

너무 놀라 입이 떡 벌어진 김대리! 
정대리가 손을 떼자마자 창밖의 비가 멈췄다.

" 이렇게 내가 지구 곳곳의 가뭄도 해결해주고,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면 비로 정화도 시키곤 해! 지구를 관리하는 비의 신이라고나 할까? 하하하하 "
" ... "

김대리는 정대리의 최근 자신감이 무엇 때문인지 알게 되었다. 저런 구슬이 있다면 사회생활의 모든 것들이 다 사소하게 보이겠지!


정대리에게서 절대 비밀이라는 말을 듣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김대리의 머릿속은 온통 구슬 생각 뿐이었다.

멍청한 김대리는 한낱 영웅심이나 즐기고 있지만, 자신이라면 다르다. 저런 구슬만 있다면 자신은 떼돈을 벌 자신이 있었다. 어쩌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 구슬을 가지고도 고작 미세먼지나 가라앉히는 데 쓰고 있으니! 자신이 다 답답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아까운 김대리. 무언가를 결심하는 그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
.
.

김대리는 곧장 철물을 제작하는 곳을 수소문했다. 겉모양이 똑같은 가짜를 만들어 바꿔칠 속셈이었다.

그때, 완성된 가짜는 일부러 쪼개놓는다. 쇠구슬이 책상에서 떨어져 부서졌고, 그래서 힘을 잃은 것처럼 하기 위해서였다. 
애초에 원리를 모르는데, 부서져서 능력이 발휘되지 않는다 한들 정대리가 알아챌 수 있겠는가? 게다가 조금 모양이 다르더라도, 원래 신비한 힘이 빠져나가면서 그런가 보다 할 수도 있다.

생각보다 제작에 큰돈이 들었고 시간도 많이 걸렸지만, 김대리는 쇠구슬을 비슷하게 완성했다. 
정대리의 집 열쇠도 몰래 복사하여 기회를 엿보던 김대리는, 회식 날 집에 큰일이 생긴 것처럼 전화를 받고 급히 빠져나갔다.

곧장 정대리의 집으로 향한 김대리는, 준비해간 가방에서 부서진 쇠구슬을 꺼내어 책상 앞에 떨궈놓았다. 그 가방 안에 진짜를 넣고는, 뒤도 보지 않고 방을 빠져나왔다. 

" 흐흐흐...! "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는 김대리의 얼굴은 흥분되어 있었다. 옆에 놓아둔 가방을 힐끔거릴 때마다 절로 웃음이 흘렀다.
세상을 다 가진 이 기분! 정대리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물론, 멍청한 정대리와 자신은 쓰는 법 자체가 다르겠지만! 

보물은, 어울리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보물인 법이다.

.
.
.

" 뭐야 왜 이래...? "

김대리의 얼굴에 당혹감이 가득했다. 집으로 오자마자 화장실에 숨어서 테스트해본 상황이었다. 한데, 아무리 지도 위를 눌러도 창밖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다시 한번 대한민국 위를. 혹시나 싶어 일본, 미국, 온 나라를 어루만지듯이 만져보았지만, 창밖으로 비가 내리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가능성이 오갔다. 무언가 주문 같은 게 있나? 따로 숨겨진 사용법이 있는 걸까? 다른 물건과 세트인가? 정대리의 집에서만 가능한가? 설마...정대리만 가능한가?! 

" 이런 씨! "

이미 가짜 쇠구슬 제작에 들어간 돈만 수백만 원이었다. 이것이 단지 쇳덩어리에 불과하다면?? 
분노한 김대리는 마구잡이로 지도 위를 눌러댔지만, 전혀 변함이 없었다. 

머리를 싸매고 욕을 내뱉던 김대리는, "아!" 당장 화장실을 나섰다.

" 여보! 여보! "

아내에게 시켜볼 생각이었다. 아직 아내에게는 비밀이었지만, 아내는 가능할 수도 있다.

" 뭔데 그래? 아까부터 화장실에서 뭐했어? "

김대리는 소파의 아내에게 다가가서 얼른 지도 위를 손가락으로 누르게 했다.
그러나, 베란다 밖을 뚫어져라 쳐다보아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 이런 젠장할! "
" 뭔데 그래? 이건 또 무슨 지구본이야? 설마 당신 이거 샀어? 얼마 줬는데?! "

비싸 보이는 지구본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는 아내.
김대리의 얼굴은 짜증으로 가득했다. 한데, 

" 음? "

아내가 손을 떼자마자 베란다 밖의 하늘이 변한 걸 확인한 김대리! 

" 자, 잠깐! 다시 한번 손가락 대봐! "
" 뭔데 그래? "
" 아 얼른! "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대한민국 위를 누르는 아내. 그러자-,

" 구름...! 구름이 많아지고 있어! 그래! 구름이 많아지고 있다고! "
" ?? "

창밖에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구름들은 모이는 모습이 보였다! 
김대리는 머릿속으로 판단했다!

" 사람마다 그 힘이 다르구나! "
" 아, 뭐냐니까? "

모든 사정을 설명하는 김대리. 처음에는 믿지 않던 아내도, 창밖을 유심히 관찰하며 테스트해본 결과 사실을 믿게 되었다. 

" 어머 세상에! 그러면? "
" 그래! 이것만 있으면 떼부자가 될 수 있다니까! "
" 어머어머어머! "

두 부부는 호들갑을 떨었지만, 김대리의 표정은 금방 고민에 잠겼다.

" 아~ 근데 힘이 약해..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 게 좋은데 말이야.. 구름만 쌓여서 뭘 하지? 그렇다고 정대리처럼 멍청하게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도 없고... "

비가 내리게 하려면 부부가 아닌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는데, 김대리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

" 여보! 우리 아기도 시켜볼까? "
" 음? 아 그렇지! "

쉬구슬을 들고 얼른 아기방으로 향하는 두 부부.
범퍼 침대 안에 갓난아기가 잠들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아기의 옆에 쇠구슬을 내려놓는 김대리. 

" 여보! 베란다에 가서 비 오나 안 오나 확인해봐! "
" 응! "

아기의 손을 들고 준비하는 김대리는, 아내가 베란다로 가자마자 아기의 손을 대한민국 위에 올렸다. 
한데?

' 쿠르르르르-! '

" 어어어어-? "
" 꺄아악?! "

온 세상이 흔들렸다! 어마어마한 진동, 지진이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는 김대리! 곧바로 책장이 넘어지며 그를 덮쳤다! 

" 커허억! "
" 꺄아아악! 꺄아아악! 꺄아악! "

베란다를 보던 아내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고, 집 안의 온갖 집기가 미친 듯이 흔들리며 떨어져 나갔다! 

" 응애-애~! "

잠에서 깨어 비명을 지르던 아기는 손에 잡히는 쇠구슬을 강하게 움켜쥐고! 지진은 점점 더 거세어져 갔다! 
그러다 한순간, 크게 기우뚱하는 방! 

아파트가 넘어가고 있었다-

" 꺄아아악! 여보! 꺄아악! "
" 으아아아악-! "


김대리는 꿈에도 몰랐다.

정대리가 비 오는 날을 가장 좋아했다는 것을 몰랐고,
자신이 맑은 날을 가장 좋아했다는 것을 몰랐고,
아내가 흐린 날을 좋아했다는 것을 몰랐고,
아기가 지진이 있었던 날에, 그 흔들림이 좋아 방긋방긋 웃었던 것을 몰랐다.

그렇게 자신하던 보물의 사용법을,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몰랐다.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5/03 13:52

    길지 않아도 될 글은 억지로 늘리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번 글이라던가 하하하...
    행복하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yCu1BE)

  • 악즉참 2017/05/03 14:19

    오... 재밌네요 ㅋㅋㅋㅋㅋㅋ

    (yCu1BE)

  • 카프리스 2017/05/03 14:46

    오늘도 창의성이 폭발한 글 잘 보았습니다.
    한군데 오류가 있어서 알려드립니다.
    "멍청한 김대리는 한낱 영웅심이나 즐기고 있지만, 자신이라면 다르다."
    김대리 → 정대리
    오늘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

    (yCu1BE)

  • 불변인 2017/05/03 15:29

    역시 창의력 ㄷㄷㄷㄷㄷ

    (yCu1BE)

  • 그레이스톤 2017/05/03 15:56

    정대리 순수하고 해맑아.... 내 취향이야...♡

    (yCu1BE)

  • 마법의성 2017/05/03 16:18

    장문은 아니지만 복날님 글보면 많은 상상을하게 되서 좋습니다 소재도 여러사람이 여러갈래로 상상할수있는것들도 많고 ..만약 저 지구본이 나손에 들어왔다면 나는 어떻게 쓸까 이런거요ㅋㅋ정말 대단하십니다

    (yCu1BE)

  • 맥스와.나♥ 2017/05/03 17:17

    음... 저는 구름 많은 바람부는 날씨가 되겠네요! 글 넘 좋아요!

    (yCu1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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