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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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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보면 역사에 관심이 생겨 책을 볼려 하는데 무엇을 봐야 하는지 몰라 잡히는데로 아무거나 읽고 계신 분들이 계십니다. 사실 학문 영역이 아닌 취미 영역에서만 논하자면 무엇을 읽든 상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취미수준에서 조금 더 나가고 싶은 사람, 혹은 취미라 하더라도 조금 더 깊이 있게 역사를 즐기고 싶어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 글은 그런 분들을 위해 작성된 글입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본 글에 대한 몇 가지 사항을 더 언급하고 가겠습니다. 우선 이 글은 기본적으로 주관적인 취향을 반영합니다제 나름대로 명작이라 들었던 책, 역사 이해에 있어서 꽤나 중요한 학설을 담은 책을 추천 목록에 올릴 것이지만 너무나 당연한 명작임에도 올라가지 않는 책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구요. 시대 범위에 있어서도 저는 조선시대사 이전에 해당하는 시기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그 쪽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단지 방향성을 제공하는 정도로만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진짜로 역사를 깊이있게 알고 싶으시다면 강연을 들으시거나 사학과 나온 주변 지인들에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다음으로 이 글은 제가 2년 전 작성했던 몇 개의 글들을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따라서 그 이후에 나온 책들 중 꽤나 괜찮은 책임에도 추천 목록에 없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경우 댓글로 책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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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전공 수준의 발제에서 어떤 주제에 대해 처음 알고자 할 때 살펴보는 책들이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내놓은 한국사( 50) 시리즈나 한국사 시민강좌 같은 것들이 그것이지요. 하지만 오늘날의 고지에서 보았을 때 위의 책들은 너무 낡은 감이 있습니다. 책에 읽기 어려운 한자가 써져 있거나 90년대 나와서 최신 연구 성과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편집도 너무 옛날 방식입니다. 잘 읽힌다는 것이 단순히 문장의 간결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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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민음사에서 기획된 한국사 시리즈는 내용이 깊이가 있으면서도 편집도 깔끔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공자들이 보는 이 분야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한영우 선생님의 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시리즈를 추천하는 이유는 다른 국사 서적과는 다르게 동아시아, 세계사라는 관점에서 조선을 바라보는 측면이 강해 일국사적 관점을 벗어나려고 하는 노력도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19세기까지 나온 것으로 아는데 많은 소장학자들이 참여해서 글에 힘이 넘치고 또 독특한 방식의 서술이 눈에 띕니다. 책을 통해 학계 최신 이론을 접하기는 힘들겠지만 그에 대한 어느 정도 단서를 달아준다는 것도 앞으로의 지식 확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출판사가 전 범위를 다룬다는 초기 기획을 끝까지 말고 나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현재까지는 조선시대사만 출간되었는데 조만간 고려시대사 나아가서 그 이전 시대까지 시리즈가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조선 전기

 

여말선초 - 왕조 교체를 둘러싼 논쟁들

조선 성립을 둘러싸고 나온 여러가지 학자들의 관점이 있는데 주요 포인트는 지속이냐 단절이냐로 갈린다고 보면 됩니다. 지배층의 변화, 친족제도의 변화, 경제 구조의 변화와 같은 굵직굵직한 논쟁이 자리잡고 있는 시기로 비단 국내 학자들뿐만 아니라 해외 한국학 전공자들도 관심 있게 연구하는 시기기도 합니다. 또한 80년대 역사학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선초 신분제 논쟁"의 무대가 되는 시기기도 하니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이 시기 연구에 천착했음은 두 말 할 것도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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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우 / 과거, 출세의 사다리


60년대 한국인 연구자들 중에 여말선초의 변동기를 긍정적으로 파악한 대표적인 연구자가 바로 한영우 선생님입니다. 앞서 언급 했듯이 고시생, 학부생들에게는 라는 스테디 셀러로 알려지신 분이기도 하죠. 서른 살에 처음 서울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이후 정년하신 지금까지도 학교 도서관에서 목격 될 정도로 성실한 연구자시고 그런 만큼 업적 또한 조선을 넘어 한국사 전반에 이를 정도로 광범위 합니다. 그 중에서 여말선초 시기 선생님의 연구 성과라 함은 소위 '주체적, 발전적'관점으로 통칭되는 여말선초 긍정론이 대표적입니다본 책은 신분제, 그 중에서도 양천제를 중심으로 조선의 선비들을 특권 계급이 아닌 능력 중심의 관료 집단으로 파악하고 이를 근거로 선초를 획기적 변화가 일어난 시기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세부 사항에 있어 엄청나게 후드려 까이고 있는 견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힘은 여전하다고 생각합니다. 방법론에 있어서도 귀감이 되는 책이기도 한데 치밀한 사료 분석과 그에 기반하여 조선 전체를 사회사적 관점으로 파악하는 안목은 후대 연구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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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무 / 조선초기 양반연구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신분제 논쟁에서 한영우 선생님과 대척점에 섰던 사람이 바로 이분, 이성무 선생님입니다. 한영우 선생님의 양천제에 반대해 노비 - 양인 - 중인 - 양반이라는 신분 구조를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 연구 성과는 이후 조선 전기 사회사 연구의 초석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후에 이성무 선생님께서는 한 발 물러서서 이러한 신분구조가 16세기에 일어났다고 견해를 수정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이 논의는 조선시대 신분제 이해해 있어서 기념비적인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책은 신분에 있어서 세습의 문제, 사대부의 대농장 경영과 토지 팽창 같은 민감한 주제들에 대한 날카로운 안목도 돋보입니다. 나아가 정치 이념적으로 송의 성리학이 어떻게 조선 초기 사회에 반영되었는지 보여주는 부분도 있으니(이 견해는 이후 철회됨)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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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진 / 한국사회사연구

 

서울대학교에서 조선시대 전공으로 교편 잡은 사람들 중에는 유난히 괴수들이 많은데 이태진 선생님도 앞에서 얘기한 한영우 선생님만큼이나 괴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술한 책들을 시대 범위로 따지면 통일신라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를 정도로 한국사 전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고 정년하신 이후에도 계속 공부를 이어나가서 저 같이 학기 끝나면 모든걸 내팽겨치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 분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 이태진 선생님의 연구 성과는 에 잘 나타나 있는데 부제인 "농업기술 발달과 사회변동"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여말선초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 계시다는 것이 특징적입니다. 특히 이태진 선생님은 조선을 고려와의 연장선으로 파악하고 중세 사회(정확히는 중세 2)로 보고 계시는 바. 이 견해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들은 반드시 읽어보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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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던컨 / 조선 왕조의 기원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20세기 중반 해외의 한국학 연구자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 논의가 심도 깊은 사람이 존 던컨인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한국학 분야에서 브루스 커밍스라는 대가가 있기는 하지만 그 분은 본디 전공이 국제정치라 엄밀한 의미에서는 던컨이 한국학 연구에 있어서는 최고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의 책에서 주장하는 논리는 매우 간단한데 "고려의 지배층이 곧 조선의 지배층이다"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책은 습관처럼 입에 붙어버린 "신흥사대부"라는 용어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고려와 조선의 연속성을 주장합니다.

 

 

훈구와 사림 - 반동인가 개혁인가 

태종과 세종의 시대를 지나 조선 정치는 공신세력이라 불리는 구세력과 사림들이라고 불리는 신세력의 대립이 시작됩니다. 이 과정은 국사 교과서에서도 서술되어 있는 바.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연구 대상이 되는 것은 이들의 정치적 투쟁 그 자체라기 보다는 훈구와 사림의 집권 기간 동안 어떠한 사회, 정치적인 변화가 있었고 이것이 이후의 조선 사회, 특히 임진왜란이라는 환란을 100여년 앞둔 조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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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두환 / 조선시대 정치사 1

 

지두환 선생님은 원래 조선 후기 연구에 있어서 탁월한 업적을 내신 분이지만 조선 전기에서도 괜찮은 글을 쓰셨기에 추천 목록에 올려보았습니다. 본디 세부 전공은 조선 예학과 유교 의례 관련된 전공으로 알고 있고 이후에는 인물사로 더 나아가서 가문들의 가계도를 통해 조선의 정치 가문들을 탐구하시는 연구도 하셨는데 한 명의 역사학자가 사료를 찾고 해석을 하고 그것을 정교화 시키는 작업이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지를 이 책이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선생님의 연구 주제 중 후자에 입각하여 쓰여진 책인데 개인적으로는 조선시대 정치사를 다룬 책들 중에서 이만한 책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읽다보면 생각보다 각 사건별 내용이 소략해서 조금 중구난방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500년 역사를 몇 권의 책에다 담아내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요소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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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티나 도이힐러 / 한국의 유교화 과정

솔직히 해외의 한국학 연구 성과는 아는 것이 별로 없어 함부로 추천 넣기는 힘든 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외국학자들의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첫째, 한국사 연구에 있어서 범할 수 있는 국수주의적인 오류를 교정할 수 있고 둘째, 외국 연구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참신한 견해가 꽤나 큰 지적 자극이 되기 때문입니다. 스위스 연구자인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은 솔직히 추천만 받고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지인들에 의하면 기존의 신유학에 대한 학계의 견해를 답습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견지해서 괜찮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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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희 / 왕조의 얼굴

 

2013 66세라는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정두희 선생님은 서강대의 조선시대 연구사에 있어서 반드시 거론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서강대의 조선시대 라인에 (좋은 의미로)비주류 학설의 성지라는 타이틀을 부여한 것도 이 분의 톡톡 튀는 학설들의 공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사 연구자들 중에서는 이 시기를 부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제가 만난 서강대생 전공자들은 이 시기에 대해 냉소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듯 했습니다.

이라는 다소 교양서스러운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도 그 내용을 보면 조선 왕조의 성립과 초기 정치의 양상을 통해 이후 임난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조선 정부의 미숙함을 비판하고 나아가서는 조선 후기의 여러 사회, 경제, 정치적인 모순 양상들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실 정두희 선생님이 학계에서 일약 대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책은 87년엔가 나온  2001년에 나온 라는 책인데 너무 오래되어서 절판되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책은 지금 읽어도 건져낼 것이 많은 보물이니 혹여 도서관에 있으면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이건 여담이지만 선생님의 서강대 재직 시절 조선시대사 강의는 인터넷에 찾아보시면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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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와그너 / 조선왕조 사회의 성취와 귀속

 

훈구, 사림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논쟁의 초점이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이 둘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국내의 많은 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논문과 책을 썼지만 외국 학계의 훈구, 사림 연구에 대해서 더 소개하는 것이 이후의 독서를 위해서 좋을 것 같아 와그너의 책을 추천 합니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꽤나 도발적인 이론을 제시했다고 느꼈는데 훈구와 사림이 사실상 동류 집단이나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을 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연구가 오래 전부터 한국 학계에서 제기되었고 그에 대한 갑론 을박도 있었지만 외국 학자가 그런 주장을 했다는게 개인적으로 참신하다고 느꼈습니다.

 

 

 

임진왜란 - 한반도 국지 전쟁에서 동아시아 세계 전쟁으로

조선 전기와 후기를 가르는 주된 분기점이 임진왜란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견이 없을거라고 생각 합니다. 워낙에 길고 참혹한 전쟁이었고 이 전쟁 이후로 사실상 조선을 제외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정치적인 변동을 겪었기 때문이지요. 이 시기 연구에 있어서 특징적인 점은 임진왜란을 단순히 조선과 일본의 전재으로 파악하지 않고 국제적인 관점에서 파악하는 견해가 늘어나고 있는 점입니다.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게 이미 동아시아사라는 고등학교 교과 체제에서도 이러한 임진왜란의 관점을 수용하고 있는 정도니 학계에서는 이미 널리 퍼진 견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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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기 /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임진왜란 연구에서 국내 연구자 한 명을 꼽으라면 그 어느 누구도 주저 없이 한명기 선생님을 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학계와 대중 모두에게 친숙한 인물이기도 하고 본인께서도 대중과의 교류에 적극적이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은 임진왜란 당시 조명관계와 이후 선조 ~ 인조 정권의 외교 노선에 관한 단초를 제공해 주는 여러 논의들이 담겨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일독하기를 권합니다.

 


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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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걸 / 정조와 정조시대

 

경성제국대학을 거쳐 해방이후 국립대학이 된 서울대는 두계 이병도 선생님이 60년대까지 교편을 잡으면서 많은 후배 학자들을 배출했습니다. 이병도 선생님 아래에서 공부했던 사람들이 이후 오늘날까지도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의 학맥을 형성하게 되는데 김인걸 선생님이 그런 학맥을 대표하는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분의 업적하면 당연히 조선시대 사회사연구,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향촌사회에 대한 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조선시대 연구에서 향촌 사회연구는 단순히 지방의 양상을 연구하는 분야는 아닙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향촌사회 연구라고 함은 전근대 동아시아 국가들이 농촌의 세수를 국가 재정의 원천으로 삼았고 향촌 출신의 지식인들이 중앙 정계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정치, 경제, 사회, 사상의 전 분야를 망라하는 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인걸 선생님이 정조시대라는 큰 주제로 학술서를 쓸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선생님의 전공분야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조에 대한 의견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당장 대중들도 여러 매체들을 통해서 정조에 대해 익숙하기에 각자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학계에서 정조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전통을 지키면서 부분적 혁신을 주도했던 유교군주" 정도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시대에 있었던 여러 변화들이 오늘날의 고지에서 보았을 때 근대의 맹아로 보일지라도 정조 그 자신은 결국 유교 교육을 받은 보수적 인물이라는 것이지요.

 

 

이행논쟁

앞으로 다룰 세 꼭지는 이른바 이행논쟁이라는 틀 속에 묶을 수 있는 다양한 주제들을 선정해보았습니다. 여기서 이행이라 함은 여러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크게 보아 전근대->근대로의 이행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막스-엥겔스에서 시작해 돕-스위지로 이어지고 (사실상)페리 앤더슨으로 끝나는 일련의 논쟁들이 한국에서 어떤 양상으로 진행되었나라는 점에서 보아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머리 속에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 전근대->근대라는 도식 자체도 학자들이 비판하고 있는 사항이라는 점.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이런 도식 자체도 그저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관해서는 비단 한국사뿐만 아니라 서양사 연구자들도 관련 저서들을 많이 쓴게 있으니 문화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모더니즘" 경제쪽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자본주의 혹은 제국주의" 사상적인 조류를 알고 싶으면 "사학사" 등을 검색어에 때려 넣고 괜찮은 책들을 골라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이토록 세분해서 보는게 의아할수도 있겠지만 조선 후기의 역사적 평가에 있어서 가장 민감한 부분인만큼 이 정도의 비중을 두고 책을 소개하는 것이 차후의 독서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기에 무리해서 비중을 늘렸으니 양해 바랍니다.

 

 

문화 : 진경(眞景)의 시대 

문화의 영역에서 이행 논쟁이라는 것은 자국의 문화적 양상이 중국이나 일본의 양상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왔냐로 파악되고는 합니다. 그리고 이것의 준거로 흔히 거론되는 것이 바로 독창성. , 중화라는 거대한 세계 속에서 조선이 어떻게 문화적인 독자성을 유지하려고 했고 설사 중화사상 속에 들어가 있더라도 그 안에서 얼마나 자주성을 추구하였는지 살펴보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숙종(혹은 영조) 정조 연간에 이르는 진경시대는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한국 문화의 독자성을 드러내는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개념이 가진 민족문화에 대한 국수적 시각이 90년대 전후로 비판받기 시작했고 그것을 대표하는 논쟁이 인접학문인 미술사에서 벌어졌던 소위 "김홍도 풍속화첩 진위 논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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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화사 / 정옥자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 세계역사학계에서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한 문화사 연구는 한국의 사학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적으로 서구의 포스트 모더니즘 물결이 어느 정도 잠잠해진 90년대 중반부터 크게 일기 시작했는데 특히 조선후기 연구에서 두드러졌습니다. 정옥자 선생님은 한국 문화사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이후 국편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던 분입니다. 정옥자 선생님의 연구는 오늘날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우리가 "간송학파"라고 부르는 일군의 학자들이 정옥자 선생님의 학맥으로 분류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조선시대 문화사는 일반적인 개설적 의미의 문화사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조선이 근대로 가는 통로를 열어두었고 그것의 맹아가 문화 분야에서 나타났다는 관점으로 문화사를 개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조선 후기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에는 큰 도움이 되는 저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좀 오래된 학설들도 실려 있다는게 흠이지만 책 한권만 가지고 수 백년에 달하는 긴 시기의 문화사를 온전히 알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책을 보고 흥미가 가면 최근에 나온 다른 책들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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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 / 최완수

 

역사학계에 정옥자 선생님이 진경문화라는 용어를 널리 알리는데 공헌했다면 미술사분야에서는 최완수 선생님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이 분이 간송미술관 소속의 연구소에서 선임 연구원이라고 알고 있는데 학계의 경계 바깥에서 활동하는 사람치고 학계 내부에서 이 정도의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완수 선생님의 논리는 진경시대라는 시대를 조선 후기의 중흥기로 파악하고 이것이 이후의 이행기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행간을 보면 알겠지만 최완수 선생님은 소위 내재론에 대해서도 상당히 긍정적인 입장입니다. 그래서 이후에 학계에서 등장하는 시기 구분론 논쟁에서 19세기 이행론이라는 굵직한 논쟁의 배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 : 식민지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 

현대의 사회, 경제를 지배하는 기본적인 이데올로기가 자본주의인 바, 한국사에서도 이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등장했었습니다. 논란의 초점은 역시나 조선 후기가 자본주의의 '기미'가 보였냐의 문제로 점철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논쟁의 제 1차 전쟁터는 사실 일제강점기입니다.

댓글
  • 려운 2017/05/01 01:27

    좋은글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수업을 듣고있는 정연태 교수님이 이 명단에 있어서 더 뜻깊네요.

    (kaJxIi)

  • aristeo 2017/05/01 13:50

    책장사 그만 하시고 교과서 다시한번 읽어 보세요

    (kaJxIi)

  • 국사선생님 2017/05/03 00:36

    개론서나 분야사 또는 시대사 서적도 좋지만 그 깊이나 두께에 진이 빠지는 분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일단 여러 형태의 교양서로 출판된 삼국사기를 권해 드려요. 역사라는 이야기를 엮어내는 데 쓰이는 사료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생기게 되면 더욱 더 앎에 대한 욕구가 생기지 않을까 해서요. 시중에 나온 삼국사기도 여러 연령층에 맞게 다양하게 나와서 더 좋을 것 같아 말씀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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