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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평생 100만원이 나은가, 한 번에 1억이 나은가?

" 연금복권 알지? 매달마다 500만 원씩 돈이 나오는 거 말이야. 너도 다른 의미의 연금복권에 당첨됐다고 생각해. 매달마다 내가 네게 100만 원을 지급할게! "

사내의 친절한 말에도, 청년의 얼굴은 그다지~ 

" 음~ 글쎄요? "

사내는 답답한 모양새로 톤을 높였다.

" 너 그렇게 정의로운 사람이야? 어? 네가 날 신고한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어? 포상금이 나와 뭐가 나와? 매달 100만 원씩 현금이 들어오는 게 더 낫지 않겠냔 말이야!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야 연금이 100만 원이라고! 네가 양학선이야?! 박상영이야?! "
" 음~~ "
" 아 정말! "

사내는 답답했지만, 저자세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재수 없게도, 사내가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을 청년이 동영상으로 찍어버렸기 때문이었다.

" 어휴-! "

생각할수록 사내는 열불이 터졌다. 자신이 전 부인을 살해하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던가?
몇 개월이나 기회를 엿보며 그년의 등산 스케줄을 미행하고, 등산 중에 자연스럽게 일행과 떨어지게 하기 위해서 공작하고, 그러고도 몇 번이나 확실한 기회를 찾다가, 드디어 완벽한 타이밍을 잡고 실족사를 연출해냈는데! 절대 드러나지 않을 알리바이 공작까지 준비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산에서 몰래 똥 싸던 청년한테 들킬 줄이야? 
게다가 요즘 핸드폰 카메라는 왜 이렇게 화질이 좋은지, 빼도 박도 못하고 자신이 살인범이었다.

일을 치르고 얼른 산에서 내려와 숨겨둔 자전거에 올라타려던 그때, 얼마나 깜짝 놀랐던가?

" 아저씨! 사람 죽이셨죠? "
" 허억?! "
" 저 동영상 찍었거든요? "
" 허억!! "

이후로 결국 카페까지 동행해서, 이 모양 이 꼴로 빌고 있는 것이었다.

" 아니~이! 그러니까, 그년은 정말 죽을만했던 년이라니까?! 바람은 지가 피워놓고 가정폭력 조작해서 위자료 받아가고, 재산 빼돌리고! "
" 아무리 그래도, 세상에 죽을만한 사람은 없죠. "
" 이익! "

사내는 참다 참다 폭발했다.

" 얌마! 너 내가 살인범인 거 몰라?! 너 그러다 내가 너까지 죽이면 어쩔래?! 어?! "

그러나 청년은 시종일관 여유롭게,

" 에이~ 내가 죽으면 이 동영상이 온 인터넷에 퍼지게 해놓을 텐데, 그럴 수 있겠어요? '실제 상황! 이혼한 전 부인을 살해한 사내의 모습!' 조회수가 얼마나 나올까요? "
" 너 이 새끼 정말! "

사내는 부들부들 떨었지만, 청년에게 달려들 순 없었다. 
청년은 빙긋 웃으며 원하는 바를 꺼냈다.

" 1억. 1억만 주시면 깨끗이 지워드릴게요. "
" 크윽! "

사내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그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 그냥 100만 원씩 평생 받으라니까?! 네가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 1억을 한 번에 받는 것보다 100만 원씩 평생 받는 게 훨씬 이익이라고! 어?! "
" 아저씨 말대로면 아저씨한텐 1억만 내는 게 더 이익이잖아요? 그냥 1억 받을게요. "
" 아 진짜! "

사내는 테이블을 '퍽!' 내려치며 벌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 나도 1억으로 땡칠 수 있으면 그게 편해! 그게 안 되니까 그러지 임마! "
" 네? "
" 처음엔 1억이겠지! 그걸로 끝이라고 약속하겠지! 하지만 돈이 다 떨어지면? 흥청망청 막 쓰다가 돈이 다 떨어지면, 결국 다시 또 나를 찾아올 것 아냐 임마! "
" 에이~ 저 그렇게 양아치 아니에요~ "
" 내가 널 어떻게 믿어 임마! "
" 음... "
" 아 그러니까, 건실하게 매달 100만 원씩 받아가라는 거 아니야! 한 번에 일확천금을 노리기보단, 꾸준한 수입원을 확보하는 게 네 인생에서 더 현명한 거라고! "
" 에이~ 한 달에 100만 원으로 뭘 해요? 그냥 1억 받을래요. "
" 아니 그래도 이 자식이 진짜?! "

사내는 답답한지 가슴을 치다가 버럭!

" 좋아! 그럼 내가 널 어떻게 믿는데? 어?! 1억 원으로 끝이라는 보장을 어떻게 해줄 거냐고! "
" 음... "

청년은 먼 곳을 바라보며 골몰하다가,

" 아! 그러면 아저씨가 1억 원을 주시면, 저도 제 약점을 아저씨에게 넘겨드릴게요. 세상에 밝혀지면 안 되는 거로다가. "
" ...흠! "

눈썹을 꿈틀하는 사내. 팔짱을 끼고 물었다.

" 그 약점이란 게 뭔데? "

청년은 몸을 앞으로 숙이며 은밀히 속삭였다.

" 사실 저는...게이예요! "
" 뭣?! "
" 제가 게이라는 사실이 주변에 밝혀진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아시잖아요? 우리나라에서 게이를 어떻게 보는지. 거기다 저희 부모님이 아시기라도 하면, 뒷목 잡고 쓰러지실 걸요? 어휴~ "
" 흐음... "

사내는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 그걸로는 약하지 않아? 그리고 그걸 어떤 식으로 약점을 쥐여준다는 건데? "
" 동영상이 있어요. "
" 뭐? "
" 제 남자친구하고 발가벗고 O스한 동영상이요. "
" 뭐얏?! 이런 더러운! "

질색하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내!
청년도 기분 나쁜 얼굴로 투덜댔다.

" 아저씨는 살인범인 주제에 지금 누굴 더럽다는 거예요? "
" 으음... "

할 말이 없어 입맛을 다시는 사내. 따지고 보면 청년의 말이 맞지 않는가?
연인끼리 그런 동영상 찍는 거야 자기들 맘이지만, 자신은 살인 범죄자니까.

" 그 정도면 충분히 약점이죠? 단순히 커밍아웃만이 아닌, 그런 동영상까지 풀린다면...어휴~! "
" 흠... "

사내는 장시간 골몰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 좋아. 1억을 주도록 하지. 하지만 넌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거다! 평생 가는 100만 원짜리 연금을 버리고 1억 원을 선택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그때 가선 후회해도 늦어! "
" 에이~ 아무렴 뭐 어때요? 어차피 꽁돈인데. "
" 끄응.. "

처참하게 얼굴이 일그러지는 사내. 하기야, 청년 입장에서는 산에서 똥 싸다가 1억 원을 주운 셈이니, 청년의 말도 옳았다.

" 1억을 마련하면 연락해줄 테니까! 그때까지 그 동영상 가지고 이상한 짓거리 절대 하지 마! 어?! "
" 네~네~ 연락해주세요~ "

청년을 노려보다 벌떡 일어나 가게를 떠나는 사내. 가슴이 답답했지만, 전부인 목숨값이 1억이라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카페를 나가기 직전, 한소리를 해줘야 직성이 풀릴 것 같긴 했다.

" 너 분명히 후회할 거다! "

청년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
.
.

인적 없는 은밀한 숲에서 다시 마주한 사내와 청년.
사내는 가방을 열어 5만 원권 다발을 보여준 뒤,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

" 확인됐지?! 이제 동영상 보내! "
" 네네~ 잠시만요~ "

핸드폰을 들고 영상을 전송하는 청년. 
얼마 뒤, 사내는 도착한 영상을 확인했다.

" 윽! "

시작부터 등장한 벌거벗은 두 남자의 몸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내. 
한데,

" 응? 뭐야? 이거 얼굴이 다르잖-?

' 퍽!! '

청년이 휘두른 바위에 뒤통수를 맞고 그대로 기절해버리는 사내!

" 휘유~ "

청년은 크게 숨을 한 번 내쉬며, 준비해온 칼을 꺼냈다.

" 이봐요 아저씨! 아저씨 남은 수명이 얼마인지 제가 뻔히 아는데, 한 달에 100만 원씩 받겠어요? 한 번에 1억 받고 말지! 하하하 "

사실 청년의 정체는, 전 부인과 외도남이 고용했던 살인청부업자였다.
그 살인 동영상도, 청년이 기회를 엿보며 사내를 감시하고 있었기에 찍어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 저도 매달 100만 원이 매력적인 건 아는데요~ 아저씨를 죽여야 잔금이 들어오거든요. 혹시라도 나 말고 다른 놈이 아저씨 죽이면 100만 원이고 뭐고 말짱 꽝이고 뭐... 미안하게 됐습니다~ "

청년은 사내를 돌려 눕히고, 칼을 높이 쳐들었다.

" 돈을 받았으니 약속은 지킬게요! 절대 동영상이 유출될 일은 없을 거예요~ "

청년의 농담처럼 가벼운 칼날이 사내의 목으로 떨어져 내렸다.

.
.
.
.
.
.

" ... "

청년은 똥 씹은 얼굴로 카페에 마주 앉은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남자는 유려한 말솜씨로, 넉살 좋게 주절거렸다.

" 아~ 이거이거 흥신소 일도 영~ 할 게 못 된다니까요? 이렇게 의뢰인이 갑자기 살해당해버리면, 잔금도 못 받고 말입니다~ 하하하. 그래도 뭐, 그분은 참 현명하셨네요. 거래 현장을 찍어놓겠다는 그 발상 덕택에, 그나마 이렇게 덜 억울하게 눈을 감으시게 됐으니! "
" ... "

청년은 얼굴을 싸늘히 하며 물었다.

" 원하는 게 뭐예요? 제가 뭐 하는 사람인 줄은 알고 이러시는 거죠? "
" 암요~ 알죠 알죠! 만약에라도 제가 죽게 되면, 실제 살인청부업자가 작업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쫙~ 풀리게 되겠죠! 아시죠? 저희 바닥도 그리 만만한 것들이 구르는 곳은 아니라는 거! 보니까 어머님께서 예전에 심장 수술도 한번 하셨던데~ "
" 이익...! "

일그러진 얼굴로 이를 가는 청년.
남자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 현금 1억! 1억만 주시면 동영상은 깔끔히! 삭제해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다! "
" ... "

청년은 복잡해진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전혀 믿음이 안 가는 그 얼굴을. 
곧, 청년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 매달 100만 원씩 평생 드릴게요. 그게 더 현명한 선택이에요. 올림픽 금메달 연금이 100만 원인 거 아시죠? "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4/03 07:56

    이런 이야기들 보다는, 소름이 돋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걸 아는데... 좋아하시는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어렵네요 흐하하...
    행복하세요!

    (OgPcLE)

  • 높이 2017/04/03 09:29

    어... 어...
    다른 이야기들은 댓글 안 보고도 함축된 의미를 알겠던데
    이번 이야기는 바로 알아차리진 못하겠어요
    자신을 촬영했다는건, 상대도 흥신소가 아닌,
    실제로는 제삼자에게 청년의 목숨을 의뢰받은 살인청부업자일수도 있단 뜻이고
    그렇기 때문에 생명연장을 위해 매달 백만원씩으로 하기로 한건지...

    (OgPcLE)

  • 질풍의라빈 2017/04/03 10:38

    잘봤어요 ^^
    근데, 살인현장을 들켰는데 좀 태평한거 같네요 ㅎㅎ 즉시 달려들어서 증거인멸을 할거같은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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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keItBetter 2017/04/03 12:10

    CCTV: 쟤들 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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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임경찰 2017/04/03 12:44

    에라이 경찰은 뭐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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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haraja82 2017/04/03 15:06

    그냥 청년이 성형하고 잠수타면 끝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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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절미먹어여 2017/04/04 02:27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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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금둥둥섬 2017/04/04 03:02

    "어떻게 믿고 1억을 줘요?!"
    "그럼 내 불륜 동영상을 주지!"
    산에서 만난 두 남자.
    돈을 보여주는 청년
    "됐죠 어서 동영상을 보내세요"
    "알았어"
    "뭐야 이거 얼굴이 다르잖.."
    '퍽-!'
    ...킬셉션 ㅎㅎㅎ
    작가님 포함 독자들도 읽고 생각들었을만해서요..ㅎ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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