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잠든 깊은 새벽.
이 시간이 바로 '사내'가 일을 할 시간이었다.
도롯가에 서서 벌써 몇십 분째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 사내의 복장은 어두웠다. 얼핏 보면 잘 보이지 않을지도 몰랐다.
깃 높은 롱코트에 챙 깊은 검은 모자, 눈이 비치지 않는 선글라스까지.
그런 사내를 용케도 보았는지, 한적한 도로를 달리던 택시 한 대가 사내의 앞으로 멈춰 섰다.
군더더기 없는 몸짓으로 택시의 뒷자리에 올라탄 사내는 말했다.
" 현대 ㅁㅁ아파트로 가주세요. "
" 네네~ 알겠습니다. "
웃으며 대답한 택시기사는 차를 출발시켰다. 젊어 보이는 외모에 걸맞은 활기찬 목소리 톤이었다.
그는 목소리만큼이나 살가운 성격인지, 곰살맞게 말을 걸었다.
" 집에 가시는 길인가 봐요? "
" 아뇨. 일하러 갑니다. "
" 흠? "
이 새벽에 아파트로 일하러 간다? 기사는 호기심이 동했다. 사실, 그것은 그의 취미이기도 했다.
백미러를 힐끔거리며 조금의 거리를 더 달리다가, 입을 여는 기사.
" 혹시 셜록 홈즈라고 아시나요? "
" 탐정 아닙니까? 읽어 보지는 않았습니다. "
사내의 대답에 빙긋 미소 짓는 기사.
" 아 그렇습니까? 무척 재밌는데 안타깝군요.. 저는 셜록 홈즈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의 특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
" ? "
" 그는 사람을 잠깐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무수한 정보를 읽어들이죠. 가령 직업이 무엇인지, 뭘 하고 오는 길인지, 뭘 하러 가는 길인지. "
" 놀랍군요. "
" 그래서 사실은, 저도 손님들을 관찰하는 게 취미입니다. 물론 홈즈의 발끝에도 못 미치지만 말입니다 하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손님의 직업을 맞춰보아도 괜찮겠습니까? "
기사의 말에 호기심이 동한 듯, 사내의 고개가 그쪽으로 움직였다.
" 제 직업을 맞추시겠단 말입니까? "
" 예. "
" 그거 재미있군요. 한번 맞춰보시죠. "
사내의 허락이 떨어지자, 기사는 신호가 걸렸을 때 아예 뒤돌아 사내를 관찰했다.
구석구석 자세히 뜯어본 뒤, 다시 운전대를 잡은 기사는 차를 출발시키며 말했다.
" 일단, 손님은 프리랜서입니다. "
" 흐음... 어째서 그렇지요? "
사내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기사의 추리를 들어볼 셈이었다.
기사는 조금 신이 난 말투로 이야기를 쏟아냈다.
" 먼저, 이 시간에 일을 하는 직업이 그리 많지는 않죠. "
" 그건 그렇지요. "
" 혹시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는 공장일 수도 있겠지만, 손님의 일을 하러 가신다는 ㅁㅁ아파트 주변은 주택가라 공장이 없습니다. "
" 그렇군요. "
" 게다가 현재 손님은 빈손이시니, 배달이나 출장 AS 같은 직업도 아닙니다. 또 맨몸으로 일한다면 사무직일 확률이 높다고 하겠지만, 손님의 회사가 그곳에 있지는 않을 겁니다. "
" 그건 왜입니까? "
" 회사가 있다는 것은 규칙적인 출퇴근을 해야 한다는 건데, 택시로 출근한다고요? 할증이 붙는 이 시간에? 쉽지 않은 일이죠. 그래서 저는 손님이 그곳에 일회성으로 방문하는 프리랜서라고 추리한 겁니다. "
사내는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 합리적인 추리이군요. "
기사는 기분이 좋아진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 그럼 맨몸으로 가능한 프리랜서의 방문 직업이 무엇이 있을까요? 처음에는 혹시, 술 먹고 들어온 누군가가 집 열쇠를 잃어버려서 손님이 열쇠를 따주러 가는 길인가 생각했습니다. 기술자들은 그 코트 안에 들어갈 만한 간단한 도구로도 문을 딴다고들 하니까요. "
" 흠... "
" 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요? 손님이 탔던 위치에서 아파트까지의 거리는 굉장히 멀잖습니까? 열쇠공을 그 멀리서 일부러 부르진 않겠죠. "
" 그렇네요. "
"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손님 목적지 주변에서는 손님을 대체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손님만이 가진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이죠. "
" 기술이라... "
사내는 그 말을 인정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기술 이긴 기술이었다.
기사는 그 모습을 백미러로 살피며 말했다.
" 하지만 출장 안마사 같은 힘을 쓰는 일은 아닐 겁니다. 실례되는 말이지만, 그런 직업을 가지기엔 손님의 손은 너무 곱고 손톱도 기시더군요. "
"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
사내는 언제 보았냐는 듯 손을 만지작거렸다.
빙긋 웃은 기사는 이번엔 농을 던졌다.
" 깊은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감춘 걸 보아하니, 혹시 가정집을 터는 도둑일까요? 하하하 아니요. 운동화가 아닌 구두로는 그런 일에 적합하지 않죠. "
" 하하 확실히. "
" 아, 말이 나온 김에 말인데.. 모자 한 번만 벗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
" 얼마든지요. "
사내는 흔쾌히 모자를 벗었다. 짧은 스포츠머리가 드러났고, 그것을 확인한 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 출장 호스트도 아니시군요. "
" 하?! "
어이없음이 터진 사내. 기사는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 중학교에 딸린 이용원에서 잘랐을 법한 그 헤어스타일은, 이 시간에 출장까지 부를 만한 호스트의 외모라기엔 무리가 있지요. 손님의 호리호리한 체형을 봐선 짐승남 스타일도 아니고 말입니다. "
" 하하하! "
사내는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웃었다.
기사는 곧 농담기를 접어두고 말했다.
" 그 코트의 눈에 띄는 얼룩을 보아하니, 고객에게 굉장한 격식을 차릴 필욘 없는듯하시고... 코트 안에 차려입은 복장이 가볍지 않으니 몸으로 돈을 버는 운동 강사 종류도 아닌 것 같고... 굳은살 하나 없는 그 손으로 돈을 버는 직업도 아닌 것 같고... 결론은 하난데 말입니다. "
" 그게 무엇입니까? "
사내는 진심으로 흥미롭다는 듯 물었고, 기사는 운전대에서 한 손을 떼어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 결국, 요 입으로 돈을 버는 전문직 프리랜서가 아니겠습니까? "
" 오? "
기사는 백미러로 빠르게 뒤를 힐끔거리며,
" 무슨 컨설팅이나 변호사라기엔 서류가방이 보이질 않고... 정신적인 상담사는 이 새벽에 출장을 가지 않죠. 그런 환자는 당장 물리적인 치료가 급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가수나 성우라기에는 주택가에서 할 일이 없죠. 그럼 무엇이 있을까요? 이 새벽에 ㅁㅁ아파트로 택시를 타고 가서, 입만 털어 돈을 버는 직업은? "
" 그게 무엇입니까?? "
선글라스만 아니었어도 초롱초롱한 눈빛이 보였을 것 같은 사내의 질문에, 기사는 씩 웃으며 뜸을 들였다.
충분히 분위기가 고조되었다고 느꼈을 때, 기사는 말했다.
" 프리랜서 취재 기자 아니십니까? "
" 음! "
사내는 정답을 외치기보다는 되물었다.
" 왜 그렇게 생각을 하셨습니까? "
기사는 백미러로 사내의 눈치를 살피며 설명했다.
" 일단, 주절주절 떠드는 제 이야기에 일일이 리액션을 하시는 것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이야기를 굉장히 잘 들어주신다는 거죠. 항상 질문으로 되묻는 습관도 그렇고 말입니다. "
" 오 그렇습니까? "
" 그리고 특히 오른손에 주먹을 쥐고 계실 때 말입니다.. 유독 검지와 엄지가 항상 붕 떠 있더군요? 항상 메모하느라 볼펜을 오래 잡아 생긴 습관이 아닐까요? "
" 호오. "
" 코트 위로 안주머니를 한 번씩 확인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 안에 단순히 수첩이 들어있는지, 녹음기가 들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꽤나 습관적으로 자주 만지시더군요? 만약 몰래 녹음을 하기 위한 녹음기라면, 버튼을 확인하던 습관이 아닐까요? "
" 와우! "
사내의 놀란 톤에, 기사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 전용 차량 없이 택시를 타시는 걸 보니 소속된 기자는 아니시죠. 그렇다면 남들이 일하지 않는 이 시간에 움직이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거겠죠. "
" 하... "
" 사실 그 복장부터가 그랬습니다. 이 시간에 주택가로 취재를 나간다는 것은 제보자가 은밀함을 요구하는 것일 테니, 손님의 그 비밀스러운 복장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죠. "
" 허허... "
사내가 감탄하는 사이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파트 뒤쪽으로 택시가 정차하고, 기사는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 어떻습니까? 제 추리가 정답입니까? "
기사의 얼굴에는 확신과 기대가 뒤섞여있었다. 그에겐 요금을 받아 돈을 버는 것보다 이걸 맞추는 게 더 중요한 일 같았다.
한데, 사내는 답을 주지 않고 지갑에서 오만원권을 꺼내어 기사에게 건넸다.
" 잔돈은 됐습니다. "
" 네?? "
몇만 원 잔돈을 받지 않겠다는 그 말에 기사의 눈이 커질 때, 사내가 차에서 내려버렸다.
" 자, 잠깐만요 손님! "
기사는 돈보다도 아직 대답을 듣지 못한 것 때문에 출발하지 못했는데, 다행히도 사내는 그냥 가지 않고 앞문 쪽 유리창을 노크했다.
기사가 급히 창문을 내리자, 사내가 선글라스를 내려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 안타깝지만...틀렸습니다 김남우씨. 저는 기자가 아닙니다. "
" 아~ 이런...! "
택시기사 김남우의 얼굴에 강한 실망감이 어렸다. 한데 문득,
" 음? 제 이름은 어떻게? "
빌린 택시였기에, 앞쪽 네임 카드의 이름은 최무정이었다.
김남우가 의문스럽게 쳐다보자, 사내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 그게 제 직업이거든요. "
" 예? "
사내는 코트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만지작거리던 그것을 꺼내어 김남우에게 겨눴다.
" ?! "
곧 사내의 오른손 검지가 당겨지고, 소음기가 달린 총구가 빛을 발했다.
" 그리고 이제, 오늘 제 일은 끝났고 말입니다. "
그의 직업은 살인청부업자였다.
반성하고 성실하게 이야기를 써야 돼! 라는 생각으로, 황급히 밤을 새워 써봤는데... 이건 어떤가요?;
머리가 어지러워서 알 수가 없네요; 으으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는 걸까요?
안녕히 주무세요...!
오늘올리신 세가지의 글은..
용서살인: 복날님 특유의 반전이 있는 스타일
탈모가위: 복날님만의 낙서장 스타일
사내의직업: 반전이 있는 탄탄한 스토리의 추리글 스타일.. 대충 이러하였던것같습니다.
아이디어측면에서 탈모가위가 살짝아쉬웠던점을 빼고는 오늘도 역시 기다린보람이있는 글들이네요~
밤새신거 후회안하셔도 될거같습니다ㅎㅎ
코트 얼룩 = 피
검지손가락 습관 = 권총 손모양
코트 만지작 = 점검
일하러가는길 = 기사 살인
ㄷㄷㄷㄷ
맨 마지막 문장이 꼭 필요했을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항상 질 보고있습니다~
와 님 혹시 혹부리영감님 이세요? 이야기 혹 같은게 달려있나?? ㅎ
처음 댓글 다는데요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팬이에요
재미있고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쓰셨던 글을 모아서 산문집 처럼 내셔도 좋을 거 같아요
그럼 염치불구하고 앞으로도 재미있는 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헉 근데 빌린 택시라는 건 김남우도 최무정한테 무슨 짓을 한 건가요?? ㅠㅠ
택시기사가 청부살인을 당한다는게 약간 의아하네요 현실감이 좀 떨어진다는 느낌? 주택가 주변에서 살인을 한다는것도 쪼~금 아쉬운 느낌이 드는 이유가 앞부분은 택시기사의 합리적인 추리로 수긍하면서 읽었진만큼 마지막 청부살인업자의 행동이 더욱 의아하게 느껴졌네요 그래도 몰입감은 최고였습니다 잘 읽었어요
택시기사의 추리부분이 기가막히네요
공포게인만큼 검은 남자가 저승사자이거나 누군가를 죽이러 가는거라곤 예상 했지만 택시기사를 죽일거라곤 상상 못했네요
잘 봤습니다
늘 추천 열심히 누르면서 글 재밋게 보고있어요
쓰신 글들 하나도 빼먹지 않고 읽고 또 언제올라오나 하며 늘 공게 왔다 갔다해요
좋은 글들 올려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저는 늘 읽으면서 이건 이래서 재밌고 저건 저래서 재밌고 그냥 늘 글이 다 너무너무 재밌고 다다 좋아요!
응원할게요! 감사합니다!
주택가에 대해,
김남우가 교통사고를 냈던 지역이다 = 이건 약~간 촌스러운것 같고..
의뢰인이 원하는 살해장소다 = 이건 설정 추가를 붙이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 것 같고...
어떤 게 더 낫나요?;
아이고 남우야 ㅠㅠㅠㅠ 엑셀을 밞았으면 살았을텐데 ㅠㅠㅠ
잘봣어요! 역시 저는 이런 추리물이 재밋어요ㅎㅎ
빌린택시라는 게 좀 와닫지 않았지만, 추리과정도 남자의 반응도 흥미진진해요
과연 택시를 왜빌렸을까...택시를 빌리는게 가능한가 흠
주택가라는게 이렇게하면 좋은설정이 될수있을것같아요
현대아파트 어디어디라는 점이 씨씨티비가
고장난 부근이라던가
청부업자가 운전석의 시체를 옆으로 치우고
다시택시를 타고 가면
택시기사는 손님을내려준뒤 유유히 목적지를 떠나는
알리바이가 생성되지않을까 합니다
음ㅠ 전 워낙에 추리물을 좋아하고 즐겨봐서인지 첫 부분부터 남자의 직업을 맞춰버리는 바람에 반전이 반전이 아니었네요ㅠ 아깝... 택시기사가 추리하는 부분은 흥미진진하게 읽었어요! 다만 넘 신나게 떠드는게 아 곧 죽겠구나 싶더라고요ㅠ
저는 살인자가 현대 아파트로 죽이러 가는 길인 줄 알았습니다 ㅎㅎㅎㅎㅎ
오늘도 재밌네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김남우는 죽었군요!!!!!(희열)
댓글을 죽 보니 내용이 약간 바뀌었나봅니다.
전에 내용이 어떻게 달랐는지 모르지만 저는 이번 이야기도 그냥 최고였습니다!
왜 권총이 아니라 손톱따위를 본거야 ㅜㅜㅜ 이 바보야! 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