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은 사람이 참 좋다.
그의 주변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박계장이야 말로 호인 중의 호인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가령 그의 친척들의 경우에는,
" 올해는 검사가 빡빡하다던데, 기초생활지원금 타 먹을 수 있을까? "
" 아이고 그럼요~! 명의 이전 다 하셨죠? 저만 믿으세요~ "
" 역시 박계장! 네가 우리 가문의 자랑이다~! "
그의 이웃들의 경우에는,
" 준이 아버님~! 이번 달 정부지원 쌀 있잖아요~, 저도 그거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이번에 떡 만드는 기계를 사서, 떡 좀 해보려는데 말이에요~ "
" 아~ 떡 좋죠! 어차피 이 쌀이 싸구려라, 밥으로 먹기에는 맛이 영~! 떡으로나 쪄먹어야지 하하. 한 번 들르세요. 아니다, 애들 시켜서 배달해드릴게요. "
" 어머~ 고마워요~! 제가 떡 많이 해서 준이 엄마한테 보낼게요~! "
그의 친구들의 경우에는,
" 이번에 봉사단체에서 인테리어 지원 나왔다면서? 우리 집 수리 안 한 지 벌써 몇 년이다~ "
" 아, 그래? 내가 말해놓을 테니까 미리 좀 더럽고 후지게 만들어 놔. "
" 알았어! 역~시 너밖에 없다! "
그의 아버지 친구의 경우에는,
" 아 박계장아! 아니 글쎄, 다음 달부터 난 생계급여가 안 나온다고 하네?! 내가 국가 보훈 수당을 따로 받고 있다고, 중복으로 줄 수가 없다는 거야!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이래도 되는 거냐?! "
" 이런! 걱정하지 마세요 삼촌!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국가유공자의 자식을 당연히 대우해줘야지, 참~나! "
" 그래그래, 박계장아 나는 너만 믿고 있는다~ "
이렇듯 박계장을 아는 지인들은 행복하게 웃었다.
반면, 박계장을 모르는 몇몇 사람들은 울어야 했다.
그들은 왜 가난한 자신들이 기초생활자에서 탈락되어야 하는지 궁금했다. 왜 이번 달에는 쌀과 김치가 도착하지 않는지도 궁금했다. 왜 잘사는 집의 보수가 먼저 이루어지는지도 궁금했고, 왜 돈 많은 사람들이 지원금을 더 많이 가져가는지도 궁금했다.
그들은 정말 눈물 나게 궁금했지만, 그 이유를 몰랐다.
사실, 박계장도 그들의 눈물을 몰랐다. 박계장은 그저, 주변인들을 웃게 만드는 법을 잘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한데, 그런 박계장에게도 어려운 문제가 나타나고 말았다.
" 뭐? 인공지능 봉사 로봇? "
정부에서 미래복지 시범사업으로 인공지능 봉사 로봇을 지급하기로 했다.
자가용 값보다 비싼 인공지능 로봇을 무상 지급해준다니? 이건 박계장이 절대 놓칠 수 없는 혜택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시범사업인지라 보는 눈이 많았다.
박계장의 구역에 배정된 로봇은 고작 10대. 1대라도 부정수급이 이루어지면 들킬 게 뻔했다.
박계장은 이 어려운 문제를 두고 골몰했다. 어떻게 이 로봇을 타갈까?
" 아 그렇지! "
박계장은 봉사 로봇의 특성에서 해법을 찾았다.
봉사 로봇의 사용자 등록은 가족 단위로 여럿이 동시에 가능하다. 그렇다면 수급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동시등록을 하면 어떨까?
일단 함께 등록해놓고, 당분간은 수급자가 로봇을 사용하도록 놔둔다. 그리고는 훗날 빼돌리던가, 수리를 핑계로 회수해와도 된다.
공장에서 출하된 신품 로봇은, 최초 등록자를 무조건 '우선'하기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언제든 국가에서 감사가 나오면, 로봇을 수급자네 집에 다시 가져다 놓으면 되고 말이다!
" 완벽해! "
계획을 세운 박계장은 바쁘게 움직였다.
우선, 정부의 최우선 지원 대상자는 거동이 불편한 독거자였다. 이 구역의 후보만 수백 명. 박계장은 그들의 서류를 몽땅 살폈다. 박계장이 찾는 조건이 있었다.
가족친지가 없는 완벽한 독거노인. 주변에 이웃도 없고, 거동이 불편하면 더 좋고.
핑계도 완벽하지 않은가?
" 이렇게 돌봐줄 사람 하나 없고, 건강이 위험한 노인분에게 절실한 것이 봉사 로봇입니다! "
박계장은 10명의 후보를 선정했다. 누구도 태클을 걸 수 없을 만큼, 복지대상 1순위자였다.
그들을 추천하며, 박계장은 짐짓 눈물을 글썽거렸다.
" 세상천지에 가족친지 한 명, 돌봐줄 이웃 한 명 없으신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아니라면, 그 누가 있어 봉사 로봇을 타가야 한단 말입니까? 나라 발전의 시기에 태어나 국가를 위해 한 몸 다 바친 그분들을, 이제는 우리가 보살펴드려야 할 때입니다. "
박계장의 강력한 추천과 명분, 또 그의 입김이 닿는 자들의 지원에 힘입어, 10명의 독거노인이 선정되었다.
책임감을 내세운 박계장은, 현장까지 손수 나서서 로봇을 지급하기로 했다. 계획대로였다.
그리고 박계장은, 자신을 포함해 10명을 모았다
아버지, 마누라, 아들, 친척, 친구, 접대할 상사들까지.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엄지를 치켜세웠다.
" 역~시 박계장이야! "
박계장은 호인처럼 웃으며, 그들과 함께 '봉사활동'의 현장으로 나섰다.
로봇을 운반해주고, 사용법을 알려주고, 등록하는 방법까지 알려주는 봉사활동을 말이다.
10명의 독거노인은 눈물로 감사 인사를 했고, 10명의 봉사자들은 손을 저으며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하기도 하여라!
그들은 집 밖을 나서며, 최초등록의 우선 명령을 테스트해보았다.
" 집 밖으로 나와서 작별인사를 해. "
그러면 로봇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밖으로 나와 예의 바르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 안녕히 가십시오- ]
" 그래그래! 조만간 다시 보자! "
흡족한 확인이 이루어진 뒤, 로봇들은 독거노인에게 돌아가 봉사했다. 그리 길지 않았다. 정부의 감시가 느슨해지자, 로봇들은 문제를 일으켰다.
" 네? 로봇이 집을 나가요? 허~참! 제가 찾아볼 테니, 이 박계장만 믿으세요 할아버지! "
" 아~ 이거 고장 났나 본데요? 수리해야겠네요. 아, 수리비는 걱정하지 마세요! 이 박계장이 누굽니까? 하하 "
" 네-에?! 로봇이, 할머님을 폭행했다고요?! 이런 이런! 제게 맡기세요! 감히 기계 주제에! "
이런저런 사정들로, 로봇들은 어느새 독거노인의 집을 떠나 있었다.
그 로봇들은 박계장과 주변인들에게 봉사하고 있었다.
" 청소, 빨래, 요리, 마사지, 게임, 과외, 심부름.. 신형 로봇이라 그런지 정말 완벽하군! "
정말 비싼 값을 하는 로봇이었다.
그들은 노인들 대신 마음껏 로봇을 부리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 어차피 다 세금으로 만들어진 거 아니야! 나도 세금을 내는데, 혜택받을 권리는 똑같지! 안 그래 박계장? "
" 당연한 말씀이지요! 저희가 그 노인들보다 세금도 더 많이 내지 않습니까? 하하 "
그들은 오히려, 정부가 세금을 쓸데없이 복지에 낭비한다며 혀를 찼다. 그래서 더욱 거리낌 없이 복지 혜택들을 가로챘다. 안 받으면 손해고, 멍청한 거니까.
그러던 어느 날, 박계장이 급하게 연락을 돌렸다.
" 정부에서 현장 시찰을 나온답니다! 모두 당분간 로봇을 노인들에게 돌려놓으세요! "
그들은 역시 박계장이 일 처리가 철저하다며 안심했다. 부정수급이 들키기라도 했다면 큰일 날 뻔하지 않았는가?
로봇들은 노인들에게 돌아갔고, 얼마간 노인들에게 봉사했다.
그 모습을 보고, 박계장과 주변인들은 아까워하며 혀를 찼다.
" 에잉! 뭣 하러 저렇게 세금을 낭비하는 건지 모르겠네! 오늘내일하는 노인들한테 저런 비싼 지원이 왜 필요해? 그 돈을 나한테 줬으면 몇 배는 굴려서 이익을 내겠구만! "
" 내 말이! 도대체 정부는 경제를 살릴 생각은 안 하고, 무슨 정책을 펼치고 있는 건지 원~ "
한데, 정부에 대해 그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있었다.
정부에서 직접 파견한 현장 시찰단들은, 로봇을 타간 독거인들에게 로봇사용에 관한 팁들을 전해주었는데, 그중에는 한 가지 특별한 팁이 있었다.
" 할아버지... 이 로봇에게는 '안락사' 기능이 있어요. 몸이 너무 아프고 힘드시고, 언제라도 편하게 쉬고 싶으실 때 이용하시면 돼요. "
" ... "
그런 기능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꼭 노인들에게 몹쓸 짓인 것만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죽음이 선물인 경우도 있었다.
다만, 정부의 의도에 대해서는 글쎄? 물음표를 띄우기로 하겠다. 배려의 의도인지, 어떤 것인지...
시찰단이 돌아가고, 10명의 노인은 버튼에 대해 고민했다.
노인들은 모두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고, 가족친지 하나없이 외롭고 힘들었다.
박계장이 일부러 그렇게 10명을 선정했으니 당연했다.
고민 끝에, 꽤 많은 노인이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로봇은 언제나 그랬듯, 최초 등록자를 우선했다.
정부의 쓸데없는 복지정책을 욕하던 그들은-, 가치 없는 노인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아까워하던 그들은-, 일찍 돌아온 로봇들의 모습을 보고 반가워 웃었다.
" 오! 벌써 돌아왔어? 하하하 "
로봇의 기술력은 가히 안락하여, 그들의 그 웃음을 잃지 않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박계장과 주변인들은 늘 그랬듯이 웃으며, 눈을 감았다.
로봇은 예의 바르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 안녕히 가십시오- ]
최근 몇 개를 너무 고민 없이 쓴 것 같아서, 이번에는 골돌히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흐하..
못난 이야기, 별로인 이야기, 모두 항상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저도요.
언제나 몰입하여 술술 읽히는 단편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쌤통이다!!!! 나쁜 놈들!!!!!
역~시 박계장이야 마지막 까지 확실하게 보내주네 그래!
깔끔한 문장
재미있는 글 볼수 있는
복 많은 날들 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실적....
항상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의 욕심은 어디서나 이렇군요~~ 자알~~ 읽었습니다.
혹시 단편집 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ㅠㅠㅠㅜㅠㅠ수집욕구가 솟아난다...
잘읽고갑니다~
박계장 지인 10명 중에 김남우가 있었겠죠? 그렇다고 해주세요!!!
잌ㅋㅋㅋㅋㅋㅋㅋㅋ자업자득이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로봇에 있는 그 기능 덕분에 스토리가 완성되었네요.
가끔 느끼는 건데 중장편에 적합한 스토리를 갖다가 단편에 눌러넣으신 느낌?
역~시 박계장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