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천국 코하비닷컴
https://cohabe.com/sisa/130110

초강스포) 로건, 미국형 자본주의를 비판하다.

어제 쓴 리뷰가 혹시 억지였을까 싶어 한 번 더 봤습니다. 두 번째 보고나니 이 영화는 강한 사회비판을 골조로 울버린을 차용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제목에서 밝혔듯 스포일러 강합니다. 시나리오 분석에 가까워요.

영화 보시려는 분들께는 읽지 말기를 부탁합니다.










 

유전자 변형 혹은 조작.

영화에선 오랫동안 돌연변이가 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윤을 목적으로 변이를 조작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이 식량공급을 통해 돌연히 탄생하던 변이를 완벽하게 차단했기 때문이죠. 새로 출생한 변이들은 강력한 통제 하에 탄생한 조작된 변이입니다. 유전자 변형이라고도 하고 유전자 조작이라고도 하죠.

 

돌연변이 주인공들과 함께 등장한 유전자 변형은 옥수수입니다. 옥수수는 이제 식품으로서의 가치가 아닌 시럽의 대량생산을 위한 수단입니다. 그 시럽은 노동자들이 지쳤을 때 힘을 내게 해주는 음료의 주성분이죠.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예전엔 힘들면 그냥 쉬었다라는 대사가 나와요. 유전자 변형 옥수수의 목적은 노동자들이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쥐어짜는 달콤한 채찍인 셈입니다. 이 시스템을 다스리는 이들의 목적은 하나, 더 많은 이윤.

 


다국적 기업, 미국형 자본주의.

자국에선 불법인 문제를 피하고자 국경 너머의 공간과 노동자를 택합니다.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무지한 노동자들은 다루기 쉽다는 계산이 포함되어 있어요. 최단기간 최소비용 최대이윤, 그리고 경쟁에서의 승리. 자본의 윤리는 승자의 로비. 매우 단순하지만 악랄한 자본주의 게임 원칙. 멀리 볼 것도 없잖아요, 회사를 위해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에게 달랑 500만 원 던진 삼성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막장 자본주의 체제는 양극화를 계속하여 심화시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두 부류입니다. 악랄한 자본권력에 빌붙어 작은 이익이라도 챙기려는 사람들과 그들의 뜻대로 따르지 않고 주체적 삶을 이꾸려는 사람들. 하지만 로건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보트(안정적 삶의 상징)값이 올라 구매가 요원하고, 로건을 도와주는 농부는 자신의 집을 팔지 않고 유지하려 한다는 이유로 살해 위협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악랄한 자본이 늘 무시무시한 표정만 짓는 것은 아니죠. 물리적 폭력으로 겁 주는 양아치들 위에는 너그럽고 상냥한 언행으로 심신을 옥죄는 놈들이 있습니다.

 


신의 선택과 인간의 선택

역시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영화 초반부의 로건과 프로페서의 대화입니다. ‘돌연변이는 신의 선택일까 신의 실수일까. 탐욕스런 자본은 생명이란 신의 선택을 자신의 선택으로 조작하고 통제하고 폐기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탐욕의 동승자를 선택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러한 탐욕에 맞서 싸웁니다. 그 싸움은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인간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를 지키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본성

영화에서 수차례 언급되는 단어가 본성입니다. 때로는 로건의 입으로, 때로는 악당의 입으로, 때로는 티븨 속 서부영화 대사로.

사회 문화의 전반적 흐름이 다소 악해야만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다면 통상적으로는 그에 쉽게 휘말립니다. 영화 속의 악당 도널드는 칼리반을 고문하며 그러한 자신의 본성을 따르라 하죠. 하지만 칼리반은 안락한 삶의 보장을 포기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합니다. 칼리반과 도널드의 상이한 본성.

 

가족을 가져본 적이 없던 로라는 로건이 프로페서를 안아 들고 이층에 올라가 안락한 침대에 누이는 모습을 보고 아마 가족의 사랑을 느꼈을 겁니다. 그들은 어쩌면 가족이 아니면서도 가족과 같은 존재일 테니까요. 그때까지만 해도 유전적으로는 로라와 로건이 가족이지만 프로페서와 로건이 더욱 가족에 가까운 관계였잖아요. 전통적 가족관계가 해체되고 가족사랑의 의미가 재해석되고 확장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영화 [로건]이 추구하는 애틋한 사랑은 전통적 가족의 의미를 해체하고 넘어서면서도 여전한 가족사랑 이라 할 수 있겠어요. 그것은 또한 인간본성에 충실한 결과일 테고요.

 

로건은 자신이 사람을 해치는 악몽을 꾸고, 로라는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는 악몽을 꿉니다. 평화와 안전과 자신감보다 공포와 두려움과 좌절감을 먼저 배운 아이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펼치지 못한대요. 육아의 기본이론입니다. 꼭 그러한 건 아니겠지만, 로건은 짧게라도 악한 사람보다 선한 사람이 많을 거라고, 뜻을 함께하는 동지가 많을 것이라 보여줬고 함께 싸웠죠. 로라가 얘기합니다. ‘나도 사람을 해쳤다. 로건이 답합니다. ‘그러한 것도 끌어안고 가는 게 삶이라고. 로건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려 했던 것도 그의 본성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것도 그의 본성이었을 겁니다.

 

사람에겐 선악과 같은 상반된 본성이 있고, 세상엔 상반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빠라고 부르는 로라의 손을 움켜잡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로건이 얘기합니다.

 

그들의 뜻대로 살지 마.”

 


에덴, 이상주의

아이들은 에덴을 찾아갑니다. 로건은 프로페서 앞에서 울부짖어요, 아이들이 꿈꾸는 에덴은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프로페서가 답하죠, 아이들은 에덴을 꿈꿔야 한다고.

여기서 에덴은 이상일 겁니다. 존레논이 'imagine'을 통해 꿈꿨던 세상. 애초에 이상은 현실화 될 수 없는 것. 그래서 이상을 지향성으로서의 가치라고 합니다. 범죄 없는 사회가 불가능해도 경찰 공무원이 범죄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 처럼 말이죠. 로건이 '아이들이 꿈꾸는 이상은 현실화 될 수 없기에 어리석다'라고 얘기하자 프로페서가 '이상은 지향성으로서의 가치이고, 아이들은 이상을 꿈꿀 권리가 있다'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요.

 


엑스맨의 세대교체.

엑스맨 시리즈가 계속될지는 모르겠으나, 이 영화는 엑스맨의 세대교체를 예술의 경지에 올렸다고 봅니다. 로건은 세상 사람들의 바람이 투영된 히어로 울버린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과 거리가 먼 환상에서 부럽게 살아가는 히어로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고 아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토록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엑스맨이 세대 교체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영화 로건은 울버린을 우리 바로 옆자리에 앉혀주었고, 현실의 씁쓸한 고통을 함께 껴안았고, 로건은 그렇게 퇴장했습니다.

 

그리고,

로건이 죽어가며 딸에게 했던 얘기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던진 것일지도 모르죠.

 

그들의 뜻대로 살지 마.”

댓글
  • 광명사거리역 2017/03/03 07:46

    바로 옆자리에 앉혀주었다... 엄청 공감되는 문장이네요.
    영화속 대사들이 제게 하는 말 같았어요.
    여러 면에서 제겐 너무 고마운 영화였습니다.

    (angRbo)

  • 호환,마마 2017/03/03 08:01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전작 더 울버린(실버사무라이)이 그저 왜색 판타지에 젖은 그냥저냥 수준의 울버린 양산형 영화라는 수준의 인상이고, 유일하게 그 영화를 보는 의미는 엔딩 크레딧 이후 쿠키영상에 있다라는 평이 있을 정도였는데(보너스 영상이 엑스맨3-더울버린-엑스멘 데이 오브 퓨터 패스트 연결 고리라죠..)
    로건은 이와 대조적으로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듣고있더군요. 어찌보면 더 울버린 편을 만들때 그냥저냥 프로덕션의 요구에 맞춰 고분고분 만들어준 덕에, 로건을 이렇게 멋지게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스포 부분은.. 울버린 마지막편이라 예상했던 부분일수도 있겠네용..

    (angRbo)

  • 趙溫馬亂色氣 2017/03/03 08:05

    아 댓글이 살짝 스포일지도...
    어제 보고왔는데  꽤 묵직하더군요
    지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랄까?
    날렵하게 날아다니던 울버린이 아니라
    나이들고 지친 제임스 하울릿의 모습이 마음이 쓰렸습니다...

    (angRbo)

  • 낡은피아노 2017/03/03 08:13

    시리즈 히어로물 중에서 이렇게 멋진 영화는 처음봅니다.
    코믹스 히어로지만 그 소재를 가지고도 깊은 고민의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스토리는 웬만한 예술영화보다 잘 만들었네요
    액션물 중에서 <아저씨>에 버금가는 또는 더 나은 영화로 치겠습니다. ㅎ

    (angRbo)

  • 천사리아 2017/03/03 08:47

    제가본 로건은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직접 간병하는 자식의 마음도 잘 그렷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농장 가족한테 한치의 망설임 없이 프로페서를 아버지라 소개하죠.
    이때 알게되었죠... 사실 생판 남인 프로페서의 치매 수발을 어째서 한건지...
    정말.... 치매걸린 사람은 간병인의 힘듬을 알아주지도 않고 악에 받쳐 쏟아내는걸 묵묵히 받아내고 보살피는 로건 보면서 정말... 먹먹해지더라고요.
    그리고 아다만 총알의 의미도 그 힘듬을 보여주는 아이템 같더군요.
    뭐랄가.. 더이상 버티기 힘들때 같이 죽으려는 의도의 물건.....

    (angRbo)

  • 집행위원장 2017/03/03 09:55

    배트맨을 소재로 한 '다크나이트'가 있다면,
    울버린을 소재로 한 '로건'이 있다고 말하고 싶음.
    차원을 달리해...

    (angRbo)

  • 소리조각 2017/03/03 11:21

    그들의 뜻대로 살지 마.
    와 소름돋네요. 이렇게 보니까 정말 그러네요. 자본의 뜻대로 살고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 같아요.

    (angRbo)

  • 얪! 2017/03/05 04:53

    저도 전야 개봉하자마자 친구랑 봤는데, 확실히 히어로물 보다는 액션이 가미된 드라마 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지금까지 봐왔던 히어로물(다크나이트제외) 은 특성상 전부 스토리가 흐지부지하고 캐릭터성에 집중했는데 이번에는 스토리의 기승전결에 완성성 그리고 여운남기기까지 완벽했다고 생각합니다.

    (angRbo)

(angR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