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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 살면서 경험한 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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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드림을 우연한 계기에 알게되어 글을 본지 삼일째입니다.


저는 평생 공부만 하고 지냈습니다. 저와 다른 삶을 사신 분들의 이야기를 접하니 참 즐겁고 새로웠습니다.


저 또한 다른분들에게 흥미로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써볼까 합니다.


(참고로 현재는 대학병원을 떠나 병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12시쯤 일어나려했었는데 생각보다 피곤해서 2시에 일어나 해장국 하나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전 그저 몇년전 일을 후향적으로 더듬어가며 최대한 담백하게 쓰려했는데 판타지 소설처럼 재밌다고 해주시니 한편으론 제 인턴삶이 판타지처럼 말도 안되긴 했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은 주 88시간 제도로 인턴들이 예전만큼 힘들게 일하진 않습니다만 제가 경험한 인턴생활은 이러했기에 지금이랑은 맞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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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ㅈㅅㅇ 간호사와의 진전


우리는 여전히 수술방에서 마주쳤다. 전날 밤까지 메세지를 주고 받다가 아침에 수술방에서 만나는 순간은 꽤나 짜릿했다.

둘만 금기시 되는 연애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ㅈㅅㅇ 간호사는 수술방에서 가장 계급이 낮은 간호사 나는 이 병원에서 가장 계급이 낮은 인턴이었다. 최하층 노예계급의 남녀가 몰래 썸을 탄다는건 지금 생각하면 참 귀여운 일이었다.

다행이라면 우리둘 모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이따금 새어나오는 웃음도 자연스레 가릴수 있었다. 그녀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랬다. 인턴 1년을 하면서 병원에서 웃는적은 아마 처음이었던것 같다.

 

인턴의 한달 스케줄은 수술방 앞에 프린트되어 붙여져있었다. 내일부터 당분간은 다른조로 편성되어 병동과 빽 (수술방을 준비하는 조들에 문제가 생기거나 긴급 수술이 잡히면 투입)을 할 예정이었다.

당분간은 수술방에서 그녀를 못볼거라 생각하니 아쉬웠다. 내가 번호를 받은 이후 며칠동안은 사실상 펜팔과 다를바 없는 관계를 유지했다. 메시지로 주고받은 내용에 비해 정작 만나서 나눈 대화는 합쳐도 5분이 되질 않았다. 어쩔수 없었다. 스크럽 간호사 역시 나처럼 교육중이었고 매일 수간호사에게 까이며 힘든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오프날 저녁이라도 먹자고 제안하는거 자체가 얼마나 힘든인일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 인턴의 마지막 


2월이 절반이 지났다. 인턴으로서의 생활도 2주남았다. 나는 그사이 군에 지원했다. 군에 지원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학병원에 인턴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의무사관후보생 서약서를 써야한다. 이 서약서가 의미하는 바는 대학병원에 위탁되어 교육을 받는 대신 나중에 전문의가 되어 의무장교로 복무할때까지 입영연기를 허가해준다는것이었다.

그러나 나처럼 전공의를 지원하지 않을경우 서약서의 내용에 따라 바로 군입대를 해야했다. 그래서 군에 지원한것이다.

대개 떨턴들의 경우 군의관으로 끌려간다. 

(떨턴 ; 전공의에 지원했지만 떨어져 어쩔수 없이 군대에 가게 된 인턴 나부랭이)

물론 낮은 확률로 민간 병원의 공중보건의로 가기도 한다. 나같이 픽스턴을 돌지 않는 KIM Doctor (KIM은 군대를 가지 않은 미필 의사 반대로 NON KIM은 군대를 다녀온 군필의사를 의미함)들의 주요 화두는 공중보건의로 갈수 있을까 하는것이었다.


발표날이 되었다. 나는 군의관이나 공보의나 딱히 생각이 없었다. 그저 심신이 지쳐 차라리 군대에 가서 쉬고 싶었다. 

KIM들 중 하나둘씩 군의관으로 선발되었고 나는 일과가 끝난다음 아무런 생각없이 접속한 병무청 사이트에서 공중보건의로 편입되었다는 알림을 보았다. KIM들 사이에서 나는 부러움에 대상이 되었지만 나는 무덤덤했다. 떨턴 공중보건의사는 시골의 낙후된 병원의 인턴 생활을 다시 할게 뻔했기 떄문이다. 인턴이 싫어서 탈출했는데 또 인턴 생활을 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3. ㅈㅅㅇ와의 첫만남



바쁜 인턴 생활중에도 ㅈㅅㅇ 간호사와의 연락은 계속 됐다. 당직실 침대에 누워 오늘은 수간호사가 괴롭히지 않았냐 수술하는 내내 힘들지 않았냐는 같은 대화만 반복해도 즐거웠다. 

나는 인턴 생활이 1주 남았고 대략 3주뒤쯤에면 논산훈련소에 들어가야했다.

더이상 늦어지면 안될것 같아 이번주 주말에 시간있냐고 물었더니 다행히 토요일 오후에 시간이 된다 하여 공식적인 첫만남의 성사되었다. 토요일 오후 약속이었음에도 금요일 저녁 칼퇴근을 하여 몸관리에 들어갔다. 1년간 썩어버린 육신을 하루동안의 노력으로 바꾸어 놓아야만 했다. (될리가 없다) 목욕탕을 갔다 밤늦게 피부관리실에 갔고 다음날 오전에는 그동안 쓰지못해 쌓여버린 월급을 가지고 백화점에서 옷을 사입었다. 그리고 예약해 둔 레스토랑에 도착해 앉았다.


내키가 그리 작지 않음에도 수술방에서 본 그녀의 눈높이는 거의 나와 같았다. 내심 걱정되기 시작했다. 

'혹시 나보다 키가 크면 어떡하지?'  기다리는동안 두근거리는 심장박동 때문에 테이블의 물잔까지 흔들리는것 같았다. 


"또각" "또각" "또각"

 

구두소리가 들렸다. 나는 단박에 남자 구두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남자의 그것보다 더 크고 날카로웠다.

멀리서 본 그녀의 얼굴은 내가 수술방에서 본 모습보다 몇갑절 예뻤다. 그녀도 오랜만에 꾸미고 나와서인지 스스로 꾸민모습이 살짝 어색해보였다. 하지만 남자들은 알 것이다. 그런 모습이 더 사랑스럽다는것을....

다행히 내 얼굴을 알아보고 테이블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 안녕하세요"


분명 매일 메시지 나누던 사람이었는데 마치 처음 만나는 소개팅녀 같았다. 이 순간은 의과대학 합격 순간보다도 더 떨렸던 것 같다. 인턴의 첫 마음다짐처럼 당황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당당하게 행동했지만 이따금씩 새어나오는 긴장성 행동에 간호사는 눈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래도 메시지로 나눈 대화가 있어서인지 긴장감은 시간이 갈수록 풀렸다. 파스타가 코로 넘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모를정도로 그녀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선생님 그때 식당에서 어떻게 저를 알고 옆에 오신거에요?"


사실대로 얘기하기로 했다.


"인턴을 돌면서 많은 간호사과 일했는데 처음 뵙는분이 막 혼나고 있어서 나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마치 거울에 비친 나같은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다가갔어요"


"선생님은 좋은 의사선생님이 되실것 같아요"


"왜요?"


"정말 아픈 환자는 의사선생님에게 찾아갈 힘도 정신도 없거든요. 근데 선생님은 아파하고 있는 환자를 멀리서 바라보고 직감으로 찾아내신거잖아요?"


"아.. 네 .. 감사합니다"


난 단지 배가 고파서 식당에 갔을뿐이고 우연히 내 눈앞에 그 간호사쌤이 있었을뿐이고 본능적 행동에 따라 가서 작업을 건것 뿐이었는데 좋은 행동으로 비춰지니 나로선 1석3조였다.

그분도 내게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분은 나보다 2살 어렸고 출신 지역을 멀리 떠나 혼자 거주중이었다. 매일 교육으로 바빠 친구하나 사귈 기회가 없었는데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나를 알게되어 기쁘다고 했다. 


대화가 마무리되고 계산하며 나오는 사이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2월의 중순이었지만 봄의 느낌보다 겨울의 묵직함이 더 느껴지던 날들이었다. 눈이 살짝 쌓인 길가를 걷는 내 구두와 간호사의 구두소리가 번갈아가며 들렸다. 그 구두소리는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대학병원으로부터 1시간정도 떨어진곳에서 만났다. 최하 계층간의 만남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병원 사람 누구에게라도 발각된다면 다음날 둘다 곤란해질게 뻔했다. 사실 나보다 간호사가 더 조심스러웠다. 그런 간호사 문화를 알기에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았다.

그녀의 오피스텔 앞까지 같이 택시를 타고가기로 했다.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이따금씩 느껴지는 간호사의 심장 두근거림 그리고 온기에 다시한번 설레기 시작했다. 어쩔수 없이 나란히 앉아 쳐다본 간호사의 모습은 더더욱 아름다웠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택시가 도착하고 내렸다. 마주보고 섰다. 그녀는 역시 키가 컸지만 다행히 나보다 크진 않은것 같았다. 수줍어하는 그녀의 모습에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로 마음 먹었다.


"쌤 다음 오프는 언제에요?"

"아 제가 3월부터는 다른 수술방으로 가서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오프날 생기면 꼭 저한테 먼저 알려주세요"

"네?"

"저는 쌤한테 제 오프를 먼저 쓸거거든요"


마음은 당당한데 내 눈만큼은 파르르 떨려 긴장하고 있음을 보이고 말았다. 그녀도 싫지 않은듯 피식 웃으며 알겠다고 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커피라도 한잔 더하고 싶어요......' 라는 말이 목구녕까지 나왔지만 그녀의 상황을 알기에 참았다.


비밀번호를 누르며 들어가던 그녀가 다시 한번 나를 쳐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자동으로 켜진 라이트에 그녀의 스타킹이 반사되어 섹시하게 보였다. 멀리서 본 그녀의 모습 중 아직도 기억나는건 그 환한 미소와 검은 스타킹이다.

댓글
  • FinalD 2019/12/21 18:03

    풋풋한게 너무 좋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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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갬성폭발 2019/12/21 18:04

    달달하네요 본격적인 연애보다 이런 썸이 더 설레이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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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바티나 2019/12/21 18:04

    빨리 담편요...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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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봉의전설 2019/12/21 18:05

    그렇게 그는 검스 매니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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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도방탄좋아 2019/12/21 18:06

    쌤!
    너무 재밌어요~^^
    메디컬 로맨스 또 기다릴게용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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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새우깡 2019/12/21 18:06

    선추천 후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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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폭전설 2019/12/21 18:08

    F5 F5 F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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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개끼 2019/12/21 18:09

    잘세워간호사..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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