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한건 삼궤구고두례 한번절하고 3번 머리를 조아리는것 근데 피가났다는건 거짓
이 행위는 청나라에서 신하가 황제를 만날때 하는행동이니 청나라측의 배려임 왜 배려냐고?
원래 중국에서 항복하는 군주는 아래의행동을함
손을 결박하고
입에 구슬을 물리고
긴줄을 목에걸고
뒤로넘겨
붙잡게하고 예비군가서 하는 포송줄..
손에 잡은 줄을 관에 연결하여 관을 끌고 상대군주한테 가야하는데
이 의미는 죄인으로써 내가 죽으면 담아질 관을가지고 왔으니 죽여도 할말없다 그정도?
이걸 함벽여츤이라함
원래 인조는 이걸로 남한산성(성남)에서 삼전도(서울)까지 가야했는데
용골대가 샤바샤바해서 넘어가줌
적당히 쪽을 줘야 말을 듣지 저런식이면 결사항전이지 뭐
저건 입담으로 내려 온거고 사실 그냥 불러다가 아우하면서 모피도주고 차도 대접 해다더라...
용골대라기 보다는 최명길이 열일했던 것
남한산성에 군량이 부족했던건 비리 문제가 아니라... 군량 창고를 산성 밑에 만들어 놔서 그렇슴.
당시 청군도 질병이 창궐하고 조선내에 출몰예정인 근왕군(의병)들이 지롤할까봐 서둘러 마무리하느라 그랬다능
인조도 참 재수없는게 두 턴 견딜 식량이 없어서 항복했다는게 억울할뿐이지 그 한겨울만 버텼어도 강화조약수준까지도 내릴만했는데
그놈의 부패때문에 곳간이 텅텅비어서리... 이게 임란겪고도 정신 못차린 업보임
인조 저랬다간 더 일찍 죽었겠다
적당히 쪽을 줘야 말을 듣지 저런식이면 결사항전이지 뭐
존심에는 더 해로웠겠지만
다시 보니 청타이지는 저꼴당하고도 자비 쩔었네
그래도 치욕적인건 달라지진않네ㅠ
용골대라기 보다는 최명길이 열일했던 것
삼전도도 그렇게 치욕 스러워 앳는데 저렇게 하라고 햇으면 진짜 끝까지 싸웟다
인조 저 ㅄ은 진짜 인재 보는눈도 ㅄ이라 ㅋㅋ 병자호란이 그렇게 끝날 전쟁이 아닌데 ㅄ ㅋㅋ
인재보는 눈이 ㅂㅅ까진 아니었음. 인조 ㅡ 현종 초기의 유능한 신하들은 인조가 발탁한 경우라
어떻게 끝났을까 궁금하네 정조였다면....하
개인적으로 보는눈 없다고 봄 무능력한새끼들 끝까지 쳐 안고간것만 봐도 끝임
정조였으면 적어도 대가리는 안박았겠지
저건 입담으로 내려 온거고 사실 그냥 불러다가 아우하면서 모피도주고 차도 대접 해다더라...
당시 청군도 질병이 창궐하고 조선내에 출몰예정인 근왕군(의병)들이 지롤할까봐 서둘러 마무리하느라 그랬다능
인조도 참 재수없는게 두 턴 견딜 식량이 없어서 항복했다는게 억울할뿐이지 그 한겨울만 버텼어도 강화조약수준까지도 내릴만했는데
그놈의 부패때문에 곳간이 텅텅비어서리... 이게 임란겪고도 정신 못차린 업보임
부패도 그렇지만, 중국인 일본인들이 말하길 조선인들은 많이 먹는다고 했음
남한산성에 군량이 부족했던건 비리 문제가 아니라... 군량 창고를 산성 밑에 만들어 놔서 그렇슴.
위댓글처럼 남한산성 군량 부족은 부패때문이 아님 그리고 조선 항복한건 강화도 떨어졌지 근왕군 대패했지 김자점은 움직이지 않지 절망적인 소식들만 계속 오는 가운데 내부도 식량부족 거기다 겨울임 그러다 보니 항전하기 쉽지않은게 사실
그리고 이전에 이괄의 난으로 함경도 정예병력들이 어느정도 증발한것도 있고
당연한게 청태종이 요구한건. 내 신하가 되라였지. 조선이랑 청나라의 병합을 요구한게 아니었응께.
예방전쟁이라면서 여진족 짓밟고 불태우고 학살하고 못크게 죽여놓더니
그런 여진족에게 패배해서 굴욕을 겪은 부분
자업자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