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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신해철 5주기 공연 후기 : 그가 남긴 많은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어감을 느끼며

 



2014년 10월 27일 신해철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5년 후, 2019년 10월 27일. 

서울 한강대교의 노들섬의 라이브하우스에서 그의 5주기를 추모하는 공연이 열렸습니다.


1박 2일의 서울 나들이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이야기들은 여기서 굳이 소개할 이유가 없을 거 같고

그냥 바로 공연을 보러 간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공연 시작 30분 전인 4시 30분이 되자 공연 입장이 시작되었고, 저는 제 자리에 앉았습니다.

뒤늦게 예매를 했던 탓인지 제 자리는 맨 뒷자리에서 두번째 줄이었습니다. 

다행히 공연장이 작았고, 그래도 가운데 자리라서 무대는 잘 보였습니다.

제 몸은 어젯밤의 피로가 남아있었고, 남은 시간 배경음처럼 흘러나오는 신해철의 음악을 들으며 졸았습니다.

하나같이 너무나 잘 아는 음악들이었죠.



그리고 5시가 되자 공연 1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인트로 음악이 특이하게도 넥스트 1집의 '인형의 기사 Part.1'이었습니다.

이 음악은 넥스트 1집을 소장하는 분들이 아니라면 들을 일이 없는 음악인데 이게 나오니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넥스트 5집의 서곡인 '현세지옥'이 연결되어 나오더라구요. 

보통 오프닝에 쓰지 않을 인트로라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신해철이 사망한 후 홀로 남은 넥스트의 보컬 이현섭씨가 등장해서 라젠카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중인격자까지 쫙 달렸습니다. 첫판부터 장난아닌 분위기였습니다.

그 수많은 팬들이 1년간 이날을 기다려왔을 것이고, 그걸 한번에 푸는 것이죠.

그리고 '안녕'까지.


이후에 보컬이 에메랄드캐슬의 지우씨로 교체되고, '해에게서 소년에게'와 'Growing Up'이 나왔습니다.

두 곡 모두 기존 넥스트 공연에서 자주 연주되는 음악들이죠.

그러고보니 지우씨도 추모공연에 꾸준히 오시는군요.


추모 공연이고, 신해철이라는 보컬의 부재가 있다보니 여러 보컬들이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플라워의 고유진씨가 처음으로 참여했습니다.

본인 스스로 자기는 잔잔한 발라드 전문이라고 하며 '슬픈 표정 하지말아요'를 불렀습니다.

물론 좀 신나는 거 부른다고 '재즈 카페'도 선곡했구요.


그 다음엔 역시 공연의 단골인 크래쉬의 안흥찬씨가 나왔구요.

아시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안흥찬이면 당연히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머야.'죠.

그리고 1부가 끝났습니다.



2부가 시작하기 전에 공연 소개 겸 진행으로 가수 홍경민씨가 나왔습니다.

매번 추모공연을 할 때마다 홍경민씨가 많이 도와주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항상 고맙습니다.

2부의 시작은 무한궤도의 '여름이야기', 그리고 1집의 '연극속에서'입니다.

그리고 1부에 나온 고유진씨가 다시 나와서 본인 스타일에 맞게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를 불렀습니다.


그 다음 곡은 '일상으로의 초대.'

이 곡은 따로 설명을 하고 싶네요.

한 때 이곡은 제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꼭 신부에게 불러주고 싶은 곡이었습니다.

물론 이제 결혼따위...... 포기지만.

하지만, 신해철의 죽음 후, 첫번째 추모 공연에서 저는 꿋꿋이 즐기다가 결국 이 곡에서 무너졌고

그후로 저에게 '일상으로의 초대'는 어떤 순간, 그의 부재를 실감하게 되는 먹먹한 곡이 되었습니다.


세월은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잊게 되는 것은 기억만이 아닙니다. 감정도 그만큼 흐려지는 것이죠.

5년이 지나니, 이 곡을 듣고도 이젠 큰 동요없이 들을 수 있게 되더군요.

물론, 이 곡이 나오니 아직도 그 슬픔을 다 잊지 못한 분들이 공연장 곳곳에서 남아있는 슬픔을 드러내시더군요.



그 다음은 '나에게 쓰는 편지'였습니다.

'일상으로의 초대'는 무덤덤하게 넘겼었는데, 이번에는 참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이 음악을 부르다가 나도 모르게 한번 더 무너지게 되더라구요.

나도 모르게 그 가사를 부르다가, 가사가 참 제 가슴 속에 들어오더군요.

그전까지 그의 음악의 가사는 내가 멋있게 우러러볼 수 있는 사람의 메시지였다면

이 가사에 이르러서 저는 비로소 그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할까요.



그가 죽은 후 5년간 저에게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돈을 번지 5년이 넘었고, 저는 이제 햇병아리 사회인이 아니라, 여전히 몰라도 어느 정도 아는 척해야하는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30년은 가까이 갚아야하지만 집도 하나 생겼고, 아버지에게 얻은 29만km를 달린 중고 자동차도 하나 생겼습니다.

5년 전의 저에게는 없었던 사회인의 고민들이 지금의 저에겐 생겼고

저도 모르게 그 고민들의 무게에 스스로 짓눌려 있었습니다.

요즈음 제가 하는 고민들은 모두 돈, 집, 자동차, 사회인으로의 나 이런 것들 뿐이었습니다.


분명 '나에게 쓰는 편지'를 처음 들었던 어린 나는 '나도 물질적인 것만 신경쓰지 말고 이 노래 가사처럼 멋있게 살아야지' 했건만

지금의 나는 그 가사를 보며 되지 말아야지 했던 그 모습으로 변해있었는데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 나는 바뀌었구나. 바뀌었다는 느낌조차 자각하지 못하게 바뀌어있었구나.

그 느낌이 들어오는 순간, 제가 어떻게 무너지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요.



2부의 마지막은 '아주 오랜 후에야'와 '길 위에서'였습니다.

홍경민씨가 열심히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3부에 빡세게 놀거니까, 이 곡들 들으면서 체력 비축해두라고 우스갯소리를 해줬습니다.




2부가 끝나고 10분간 쉬는 시간이 있었고

항상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안좋은 습관이 있는 저는, 제 옆자리에 앉은 분께 말을 걸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있어보이는 여성분이었는데, 역시 팬이 되신건 20년 정도 되었다고 하시더군요.

고스트스테이션 라디오 하던 시절부터 좋아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2008년 초부터 좋아했다고 했고, 제가 그를 좋아하게 되었던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옆자리의 또 다른 분에게 물어보니 그분은 신해철의 죽음 후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놀랍게도 저보다 2살이 어렸습니다.

신해철의 활동 시기상, 대체로 40대 이상이 주축인 곳에서 저도 젊은 쪽인데

저보다도 더 어린 팬이 있었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한편으론, 그가 남긴 삶의 흔적은 정말 길게 이어져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한궤도부터, 솔로시절부터, 넥스트부터, 라디오 DJ시절부터, 그리고 그가 사망한 후에도

비록 시기는 다르지만, 그를 좋아하고 기억하는 분들이 이 한공간에 모여있었습니다.


뮤지션 본인의 삶은 비록 창작의 고통에서 살아야했겠지만

그가 남긴 유산들은 만들어진 그 순간 그 순간 박제되어 우리에게 끝까지 남겨질 수 있으니

남은 우리에게는 더없이 소중합니다.



3부는 예고했던대로 빡센 곡이었습니다.

넥스트 2집의 인트로로 시작되어 껍질의 파괴-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코메리칸 블루스로 이어졌습니다.

왜 2부 끝날 때 체력 비충하라고 했는지 알겠더군요.

그리고 홍경민씨의 농담. 

예전에 추모공연에서 랩퍼 김진표씨가 코메리칸 블루스의 랩을 담당했었는데 하는 말이

'랩 하는 사람들은 가사를 이렇게 안써'

하긴 따라부르기 드럽게 힘든 곡입니다.



그 다음은 다시 한번 잔잔하게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그리고 Money. 여기도 랩이 나오는데 홍경민씨 정말 잘 부릅니다.

단순히 연습해서 나온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귀에 꽂고 계속 따라불러야 나오는 그런 느낌 말이죠.

그는 정말 신해철의 팬이었고, 지금도 그의 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곡으로 The Dreamer가 나왔고, 

그 후엔 특별게스트로 박완규씨가 나왔습니다.

박완규씨는 Hope를 불렀고, 신해철과의 인연도 이야기해줬습니다.

부활을 배신때리고 솔로 활동을 했는데 하필 자기도 배신을 당해서 활동을 못하던 시기에

해철이 형이 자기를 부르길래 근사한 바 같은 곳인지 알았는데 백숙 먹으러 가자고 부른거였다고 ㅎㅎㅎㅎ

그 때 백숙먹으면서 형이 도와줄게 하면서 도움을 줬는데, 결국 문제가 해결은 안되었지만 그게 고마웠는지 말하면서 울컥하시더군요.

3부 마지막 곡으로는 '도시인'이었습니다.




공연 가본 분들은 알겠지만, 마지막 곡을 부른다고 진짜 공연이 끝나지 않죠.

홍경민씨와 이현섭씨가 다시 나와서 만담을 하다가 이 곡은 관객들이 같이 불러야할 곡 같다며

'민물장어의 꿈'을 불렀습니다.

그렇죠. '민물장어의 꿈.' 

2014년 6월, 그가 몇년간 휴식을 가지다 몇년만에 돌아온 컴백 쇼케이스에서 우린 이 곡을 무반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곡이 끝나고 환호하는 우리 사이에서 그가 외쳤죠. "다시는 떨어지지 맙시다"

그리고 9월 넥스트 복귀 공연에서도 우리는 이 곡을 무반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1달 후, 그의 말이 무색하게 그는 세상을 떠났죠.

그는 못지킬 약속도 꽤나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보다 더 원망스러운 건 없네요.



그 다음 곡은 '날아라 병아리'인데, 안타깝게도 제가 예매한 버스 시간 때문에

이 곡부터는 아쉽게도 더이상 듣지 못하고 나와야했습니다.

나가면서 스탭에게 물어봤는데 '날아라 병아리' 뒤엔 진짜 마무리 곡으로 역시 '그대에게'가 있었다네요.





5주기 공연을 참석하며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좀 정리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두서없이 글을 적다보니 이미 위에 다 적어버렸네요.

5년전 저는 그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지금 저는, 5년 전보다 그의 죽음을 덜 슬퍼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그가 남긴 많은 이야기가 제 이야기가 되어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어떤 분이 남긴 추모 멘트가 생각나는군요.

신해철의 음악을 듣는 소년은 어른이 되고, 그의 음악을 듣는 어른은 소년이 된다.

그가 떠난지 5년 후, 저는 소년까지는 아니었지만 지금보다는 더 젊고 야심이 있고 정열에 불타고 있던 그 때로부터

그가 떠난 시간만큼이나 떨어져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했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어감을 느끼며 이렇게 다시 생각합니다.


내가 어릴 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졌던 그 생각, 마음들이 

그저 철없던 시절의 일부라 생각하지 않고 그 자체로 나에게는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그리고 그 때와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 때의 나는 아직 내 마음 깊은 곳의 당신처럼 남아있었다고.



댓글
  • 엘릭 2019/10/29 01:09

    고스트네이션 들으며 혼자 낄낄대고 웃던때가 그립네요
    삼태기메들리 다시 틀어줘 마왕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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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29 01:10

    제가 공연에 참석한 듯한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아... 해철 형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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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사자들 2019/10/29 06:48

    잘 들었(?)습니다. 멀리 있어 가지 못했는데 이렇게 간접 경험을 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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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현이2 2019/10/29 08:56

    리뷰 잘 봤네요
    대박 재미있었겠네요
    우와
    참 볼때마다 느끼지만 천재에요
    음악이 진짜 저렇게...대단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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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종표 2019/10/29 20:22

    [리플수정]홍경민하고 마왕하고 접점이 있었나보네요 처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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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트겐 2019/10/29 21:20

    글 잘봤습니다. 공연한다는걸 알았는데 왜 안갔을까하는 후회가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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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입가경 2019/10/29 21:23

    생생한 리뷰 감사합니다. 저도 지난주 고등학교친구들하고 노래방을 갔다 내마음깊은곳의 너를 고르게 되더군요. 그의 기일이 가깝기도했고 검은 수트핏의 유재석을 티비에서 본 영향인거 같기도 하고.
    그 많은 곡들을 쓴것도 대단하지만 그런가사를 써내려간것 역시 20대 신해철.
    열정과 창작력이 다 죽은줄 알았던 40대 중반에 리붓 앨범을 내놔서 다시 내마음도 설레게 했던 신해철..
    다시 플레이리스트를 켜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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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xholic 2019/10/29 22:05

    신해철의 음악을 듣는 소년은 어른이 되고, 그의 음악을 듣는 어른은 소년이 된다.
    와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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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백 2019/10/29 23:19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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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on라이트 2019/10/29 23:28

    나에게 쓰는 편지는 나이 먹으면서 들을때마다 느낌이 다르더라구요...다음 공연에는 절망에 관하여도 해줬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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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디니 2019/10/29 23:29

    가끔씩 술한잔하면 나에게 쓰는 편지 무한 반복해 놓고 잡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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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극괭이 2019/10/29 23:39

    중학교때 마이셀프 2집의 충격이란. 그 가사대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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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구! 2019/10/30 00:11

    지난주 일요일 0시 부터 노래방에서 해철형님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르고 왔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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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두목과V4 2019/10/30 01:14

    저도 어릴때는 아버지와 나라는 곡이 하나도 안 와닿았는 크면 클수록 그렇게 와닿을수가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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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그래서 2019/10/30 01:16

    마치 공연을 다 보고 노래를 다 들은 것 같네요. 노래를 다 알고 있으니 그런거겠죠..내일은 무한궤도,솔로1집 노래 들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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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ndrix 2019/10/30 01:20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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