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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일본인들의 보물이던 동의보감과 한국 인삼.jpg


일본 에도시대에 가장 인기있던 의학 서적 중 하나가 


동의보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또, 중국에서 여러차례 출판될 정도로 각광을 받던 책이라는 


사실도 알고 계시는지요?


동의보감은 원래 1596년 선조 임금이 어명을 내려 


1610년 광해군때 만들어진 의학서적입니다. 


편찬을 시작한 계기가 된 사건은 임진 왜란이었는데요.


전쟁으로 인해  다친 사람이 많았고, 돌림병도 만연했습니다. 


의원과 약재가 부족한 현실에서 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손쉽게 의약을 다룰 수 있도록 백과사전 형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동의보감이었지요. 


이 같은 목적은 동의보감 서문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선조 대왕께서) 1596년에 태의(太醫) 허준을 불러 하교하셨다.

 

요즘 중국의 방서(方書)를 보니 모두 베껴 모은 것들이라 자질구레해 볼만한 것이 없었다. 


그대가 여러 학자의 의술을 두루 모아 하나의 책을 편집하도록 하라.

 

사람의 질병은 모두 조섭을 잘하지 못한 데서 생기니, 섭생(攝生)이 먼저이고, 


약석(藥石)은 그 다음이다. 


제가의 의술은 매우 넓고 번잡하니, 모쪼록 긴요한 부분을 가려 모으라.

 

외진 시골에는 의약(醫藥)이 없어 요절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에는 향약(鄕藥)이 많이 생산되는데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으니, 


그대는 약초를 분류하면서 우리말 이름을 함께 적어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라.


- 선조 임금 

 

 

1610년(광해 2년) 에 동의보감이 완성되고


17세기 이후에는 우리나라 한의학이 최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중국에도 동의보감이 수출되었습니다. 


1763년쯤 중국에서 자체적으로 출판되었던 것이죠. 


20여 차례나 반복해서 출간되었을 정도로 인기였습니다. 


중국판 서문에서는 동의보감을 천하가 함께 가져야 할 보물이라고 


칭찬할 정도로 높게 평가했습니다.

 

 

“동의보감은 조선 사람 양평군 허준의 저작이다. 


그는 외딴 외국(조선)에 있으면서 책을 지어 


중국에 자신의 의학을 널리 알리게 했으니, 


학문이란 것은 언제나 전해지게 마련이어서 


땅이 멀다고 해서 가로막히는 것은 아니다...


천하의 보물은 마땅히 천하가 함께 가져야 할 것이다”


 

- 중국판 《동의보감》 서문, 1766




찬사는 중국에서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동의보감은 최첨단 의학지식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임진왜란 직후, 중국으로부터 번진 돌림병은 조선을 거쳐 일본에까지 퍼졌습니다.


새로운 역병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일본은 조선과 중국의 의서를 구해


그 치료법을 알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때, 레이더 망에 걸린 게 출간된 동의보감이었습니다. 


이때가 1650년쯤입니다. 


막부의 명령을 받은 쓰시마번은 조선정부에 동의보감을 보낼달라고 요청을 했지요.


이때 들여온 동의보감은 그야말로 일본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1724년경에는 미나모토 모토미치라는 사람이 


쇼군의 명령을 받아 동의보감을 개정해 정정 동의보감이라는 


일본판 동의보감을 만들기도 했어요. 


미나모토 모토미치는 허준을  일컬어  편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의성이라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조선의 허준은 의성(醫聖) 편공(명의 편작과 창공)이다”
 
“동의보감은 백성을 보호해주는 신선의 경전[丹經]이요,
의가(醫家)에서 가장 소중히 보존되는 책[秘笈]이다.
이 책을 간행하여 소장본이 부족한 의가에 수여하고 
그 진료방법을 되살려 병으로 인한 고통으로 
살아가는 서민들을 구해 삶을 영위하도록 하고자 한다.
의업에 관계된 자가 이 책을 가슴 속에 확실히 간직한다면
치료에 효과를 가져와 백성들의 수명은 길어질 것이다” 


- 일본판 《동의보감》 발문, 1724

[사진] 외국에서 출판된 동의보감. 왼쪽이 중국에서 출판된 중국판 동의보감이고. 오른쪽이 일본에서 출판된 정정 동의보감이다.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그런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동의보감에 쓰인 약재들은 


모두 조선에서 나오는 것들이라서 귀한 약재는 한국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인삼이 그랬습니다. 


동의보감엔 인삼의 효능을 극찬하고 있기에 툭하면 인삼을 쓰라고 할 정도였어요.


당시 상황을 적은 한 자료에서는 



“일본의 풍속에는 어떤 병이든 인삼을 쓰게 되면 효험이 있다고 하여 


값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 다투어 매입하려는 까닭에 


서울에서 70냥이면 사는 인삼이 일본의 에도(江戶)로 들어가면 


300여 냥 정도에 팔린다.”라고 했습니다.


 

『성호사설(星湖僿說)』을 지은 이익(李瀷)도 


“일본인의 풍속에 병이 생기면 반드시 인삼을 쓰니, 


만약 조선과의 무역을 막으면 죽을 각오로 다투어 사단이 일어날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교역을 허락하였다.”고 언급도 하고요.


 

일본 사회가 조선 인삼을 얼마나 열망하였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당시 일본 여인들이 조선의 인삼을 사서 


부친의 병을 고치기 위해 유곽(遊廓)에서 몸을 팔았다는 이야기가 


에도시대 만담이나 연극의 소재로 활용된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귀한 조선 인삼을 사들여 오기 위해 일본에서는 


특별히 인삼대왕고은(人蔘代往古銀)이라는 


순도 80%의 특주은(特鑄銀)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오직 조선을 위해 만든 최고급의 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도권을 쥐고 있던 조선 상인이 순도 낮은 왜은을 거부했기 때문이지요. 


당시 일본 국내에 통용되는 은화의 순도가 30% 내외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조선 인삼을 수입하려는 일본 사람의 각별한 노력과 정성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출처: 이철성, 조선의 거상 상권을 장악하다.)




[사진] 인삼대왕고은(人蔘代王古銀)


일본 동경은행의 화폐박물관에는 ‘인삼대왕고은(人蔘代王古銀)’이라는 특별한 화폐가 있다. 너비 3cm, 길이 10cm, 무게 210g, 순도 80%의 은으로 제작된 이 화폐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최고 인기 상품이었던 조선 인삼을 거래하기 위한 것이다.


은 매장량이 풍부한 일본은 17세기에 화폐로 은화를 통용했다. 초기에는 순도 80%의 ‘게이쵸우(1609~1695년)’이란 고급 은화를 사용했으나 점차 은이 고갈되면서 순도가 64% 정도로 떨어진 ‘겐로쿠은’이 사용되었다.1680년대 당시 일본의 인삼 수입량은 5천 근에 달했고, 막부는 그 비용으로 5톤 가량의 은화를 쓰시마로 보냈다.


하지만 조선 상인들이 순도가 낮은 은을 거부하자 조선 인삼을 구입하기 위해 특별 제조한 은화가 ‘인삼대왕고은(人蔘代王高銀)’이다. 


인삼대왕고은은 일본 내에서는 통용되지 않았고, 오로지 조선인삼 무역에만 사용토록 했다. 일본이 조선인삼 수입에 얼마나 목을 맸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돈은 17, 18세기 동아시아 무역에서 갑질을 하던 조선의 위상을 말해주는 사료다. 조선에서 이 돈은 다른 일본 돈처럼 ‘견설은(犬舌銀)’이라고 불렸다. 마치 개의 혀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편,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은화를 청나라와 교역 결재 수단으로 활용해 조선․중국․일본의 3국 교역은 활발해졌다. 이를 중국의 실크로드에 견주어 ‘진셍로드’라고 부른다. (출처: 한국인삼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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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모은 은을 교토에서 인삼대왕고은으로 


주조한 후 대마도를 거쳐 왜관으로 가져와 조선 인삼과 중국 물건을 교환했습니다.


이런 작업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다고 합니다. 


일본 입장에선 조선의 갑질에 굴욕을 당한 것이고


나라의 자존심이 상하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삼대왕고은의 존재를 알던 사람은 오직 교토의 고관들과 쓰시마 번주, 


은을 제작하던 은관들밖에 없었습니다. 


조선에서 생산된 인삼의 80-90%가 일본으로 들어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18세기 중반까지 우리 나라의 국고를 튼튼히 해준 


일등 공신은 바로 조선 인삼이었습니다.


이처럼 조선의 귀중한 약재인 인삼과 일본의 질 좋은 은화가 


18세기 중반까지도 동아시아 국제 무역 시장을 주도해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조선에서 수입해 가는 인삼이 많아질수록, 


그 대가로 지불되는 일본 은화의 조선 유입량이 증가할 수밖에 없었지요. 


조선은 나날이 부자가 되고, 일본은 가난해져만 간다는 이야기와 똑같습니다. 


당시 일본의 위정자들이 인삼의 수입 대금으로 빠져나가는 


일본 은화의 대량 유출을 염려할 정도로 


조선 인삼에 대한 일본인의 수요는 많았지만 그렇다고 수입을 금지할 수는 없었습니다. 


일본 백성들의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죠. 


에도막부의 고관들은 인삼 국산화 정책을 고려할 만큼


18세기 초반 일본의 사회와 경제에서 수입 인삼의 문제는 정말 심각했습니다. 


(출처: 정성일, 인삼결제용 은화의 특별 주조)


 

한편, 은화는 지금의 달러와 같이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던 국제화폐였기 때문에 


인삼으로 저축한 왜은을 가지고 숙종 임금 시절에는, 


비밀리에 청나라 관리들을 매수해 서양 화포를 수입해 오기도 하고요.

   

일본으로부터 구리를 수입하여 상평통보라는 동전을 주조하기도 했습니다.  


또, 활의 재료가 되는 물소뿔, 화약의 재료가 되는 유황, 왜검 등을 수입해 


북벌에 필요한 공격력을 증강 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정조 임금 시절에는 은 이천 냥으로 '고금도서집성'이라는 백과사전을 


청나라로부터 수입해 수원화성을 지을 수 있는 지적 토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반도체처럼, 고부가 가치를 가진 상품으로써


든든한 재원이 되기도 했던 것이 바로 조선의 인삼이었던 셈입니다. 


여기에는 동의보감의 보이지 않은 파급력이 있었다는 점이


정말 흥미롭지 않습니까? 






[사진] 일본에서 벌어들인 왜은을 가지고 청나라에서 비밀리에 수입하려던 서양화포인 홍이포의 실물. 북경으로 연행을 간 역관 장현이 서양화포 25문을 밀수입하려다가 청나라 국경 경비대장인 봉황 성장에게 적발된 적이 있다. 홍이포는 18세기에 들어서 자체적으로 제작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한국중앙도서관, 동의보감 이야기

이철성, 조선의 거상 상권을 장악하다.

정성일, 인삼결제용 은화의 특별 주조

한국인삼공사, 인삼대왕고은(人蔘代王古銀) 이야기 

권홍우, 조선 인삼의 힘은 어디로? 



댓글
  • 소망의끝 2019/09/04 02:08

    역시 장수찬 님의 글이네요. 동의보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은과 인삼 이야기 모두 새롭습니다. 더구나 상세한 그림까지. 다만 중간에 쓰시마번이 조선 조정에 동의보감을 요청한 시기는 1560년이 아니라 1650년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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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구름별 2019/09/04 02:10

    캬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근데 정말 한해에 은 11만톤이나 벌었을까요
    11톤은 몰라도 11만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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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9/09/04 02:11

    소망의끝// 앗! 소망의 끝님 오랜만이셔요...잘못된 년도 표기를 지적해주신 점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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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felix 2019/09/04 02:12

    추천~~ 동의보감이 중국 일본에서 널리 읽혔다니 새로 알게된 사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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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벳여우 2019/09/04 02:16

    인삼과 은을 바꿨다는건 국사 교과서에도 나올 정도로 후기 조일 무역에서 큰 영향을 끼친것 같더라고요. (국사책이 아닐수도 있는데 고등학생 때 읽은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다가 일본 개항 후 일본에서 은화를 더이상 조선에 반출 안하고 그런 이야기가 있던 것 같았는데 후기 조선 이야기도 쓰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조선 말이 진짜 복잡하고 이야기거리도 많은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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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kkuku 2019/09/04 02:19

    교과서나 역사관련 서적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깨알같은 역사이야기 늘 새롭고 재미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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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9/09/04 02:21

    [리플수정]하늘구름별// 국사편찬위원회에 나온 내용인데요. 제가 다시 다른 곳에 확인해 보니 11만톤이 아니라 1만1천톤 같습니다...지적내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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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9/09/04 02:21

    [리플수정]ffelix// 넵!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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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9/09/04 02:22

    티벳여우// 넵!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는 거 같습니다. 여러가지 찾아서 소개해 보도록 할께용...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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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9/09/04 04:30

    rokkuku//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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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aldo 2019/09/04 08:24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 조선 인삼의 생산량이 국내수요 (왕실에 진상? + 양반가 판매)를 넘어서 해외수출할 정도로 많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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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파티아 2019/09/04 09:05

    오오 재밌는 이야기네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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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칸은여백 2019/09/04 09:14

    동의보감이 요즘으로 따지면 케이팝, 드라마 같은 문화 수출이고..
    이것으로 TV 같은 각종 소비재 같은 역할을 인삼이 한거네요..
    인삼은 거의 독점 하다 시피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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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채원 2019/09/04 09:59

    잘 읽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의문이 있는게, 왜은 유입양이 연간 1.1만톤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17세기 일본의 은 수출은 최대 추정치 200톤을 넘은 적이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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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걷기 2019/09/04 10:22

    조선은 내내 청으로부터 은을 바치라는 요구 때문에 골치를 썩였었음.
    청에서는 조선에 사신으로 가면 몇대가 먹고살 재산을 모을수 있다고 앞 다투어 사신으로 오려했고,
    사신으로 오면 온갖 트집을 잡으며 은을 요구했었는데
    청 사신들이 챙겨가는 은의 량이 나라가 휘청거릴 정도엿음.
    이런 행태가 구한말까지 이어져서 위안스카이가 조선에 왔다 갔을때도
    고종은 은과 조선여자를 갖다 바쳐서 보냈었음.
    이것 때문에 알려진 은광이 있어도 청의 요구가 커질까봐 일부러 개발을 안했고
    대신 청에 바쳐야 할 은을 왜와의 교역으로 충당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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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9/09/04 10:23

    [리플수정]장채원// 넵 저도 이철성 건양대 교수님의 인용자료에서 찾은건데 거기엔 특주은의 유입량이 11 만톤이라 기재되어 있었어요. 계속 논란이 있어서 일단 삭제하고 다시 확인해볼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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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마v 2019/09/04 10:35

    저무거운걸 어떻게 밀수입하려했는지...ㅎ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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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9/09/04 10:42

    [리플수정]waldo// 18세기중반쯤엔 일본에 수출하는 인삼때문에 조선에서 나는 자연삼은 거의 황폐화되고 고갈 됩니다! 영조 임금때엔 도라지로 만든 가짜삼까지 등장했다고 해요... 이것때문에 일본과 마찰도 있었구요. 다음 편엔 머리좋은 정조 임금님이 고갈되는 인삼을 어떤 방식으로 슬기롭게 회복했는지 써볼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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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9/09/04 10:50

    히파티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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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9/09/04 10:54

    [리플수정]한칸은여백// 네 맞습니다! 오늘날 K팝과 K뷰티가 유행하면서 관련된 굿즈나 상품, 관광 등이 덩달아 인기가 올라가는 것과 모양새가 비슷한 거 같아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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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찬 2019/09/04 10:57

    [리플수정]소마v// 화포를 수입하려다 청나라의 추궁을 받자 정부에서는 청나라고관들에게 상당한 은화를 가지고 뇌물로 로비하고 장현을 처벌하겠다는 제스처로 무마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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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짱슈 2019/09/04 11:12

    그때도 저작권이 있었다면 허준은 얼마나 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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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허드슨 2019/09/04 11:15

    잘보았습니다. 정말 좋은 글이네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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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인구 2019/09/04 11:29

    본문 부터 쭉 읽어내려가다가 혹시?? 했더니 역시 작가님였네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이따 다시 한번 더 읽어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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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aldo 2019/09/04 13:22

    답변 감사드립니다.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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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다완 2019/09/04 14:58

    와 재밌게 읽었습니다.
    저는 동의보감 서문 보고 놀랬네요.
    선조에 대해 나쁜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는데
    음식와 약에 대한 혜안, 그리고 주독자가 될 백성들을 위해 우리말을 병기하라는 애민정신.
    정치가로서의 선조는 어떨지 몰라도 백성을 생각하는 군주로서의 모습은 갖추고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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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ajra 2019/09/04 15:31

    오 재미있어요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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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수의견 2019/09/04 15:47

    한의학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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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베쵸 2019/09/04 16:09

    좋은 글 감사합니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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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M]信長 2019/09/04 16:36

    선조는 생각보다 좋은 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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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urveball 2019/09/04 16:58

    조선이야기만 나오면 쓰레기국가라고 외치는 토왜들이 여기는 아직 안왔나보네요.
    일본을 저리 가르쳐놨더만 배은망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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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dobe 2019/09/04 16:58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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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마니체 2019/09/04 17:45

    열하일기만 봐도 조선인삼,부채.청심환에 환장하는 청나라인들을 볼수 있죠..청심환이나 인삼꺼내면 뭐 어디든 프리패스..하나만 줘도 무슨 백만원 수표를 팁으로 받은 사람마냥 굽신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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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륙지터 2019/09/04 17:56

    글 재밌게 잘 쓰셔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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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요뜨 2019/09/04 18:31

    파다완// 한국 역사상 최고의 영웅인 이순신 을 견제했다는 것때문에 밉보인게 좀 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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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뢰성제로 2019/09/04 18:38

    비요뜨// 그저 견제만 한게 아니라 왕으로서의 도량도 보여주지 못하고 한없이 비열하고 찌질하게 대했죠.
    그리고 선조의 문제는 전쟁이전에는 정말 훌륭한 군주라 할만한데 전쟁중에는 암군 그자체였습니다. 의심병에 찌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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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가운햇살 2019/09/04 18:57

    덕분에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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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아블로3 2019/09/04 21:44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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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옌베르데 2019/09/04 22:50

    잘읽었습니다. 추천을 안드릴수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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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훈짱! 2019/09/04 23:18

    늘 유익하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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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로토토 2019/09/04 23:34

    잼나네요..한가지 사족..선조를 대왕이라고 하니까 좀 어색하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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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비 2019/09/05 00:11

    정말 흥미롭게 읽고 갑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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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헤미안용 2019/09/05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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