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김씨는 가야시절부터 존재하던 왕족의 성씨인데
한반도의 대표 왕조인 신라-고려-조선은
이전 왕조의 왕족들을 멸족하지 않아서 오~래오래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매우 평화롭고 안정적인 독특한 특징임
이걸 영어쓰는 백인 할배에게 듣는게 웃겨서 유머
그리고 다음편에선 백인 할배에게 족보 읽는법을 배운다.
요약:
김씨는 가야시절부터 존재하던 왕족의 성씨인데
한반도의 대표 왕조인 신라-고려-조선은
이전 왕조의 왕족들을 멸족하지 않아서 오~래오래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매우 평화롭고 안정적인 독특한 특징임
이걸 영어쓰는 백인 할배에게 듣는게 웃겨서 유머
그리고 다음편에선 백인 할배에게 족보 읽는법을 배운다.
이성계 : 뭐야 시발 나만 나쁜놈같잖아
왕씨는 씨말이 안당할려고 성씨를 많이들 바꿨지...
왕씨는 많이 죽음.
관향경상남도 김해시
시조김충선 (金忠善)
일본명 : 사야가 (沙也可)
주요 집성촌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전라북도 장수군
경상남도 밀양시
경상북도 청도군
주요 인물김치열, 김정화
인구(2000년)200,012명
심지어 사성김해김씨는 500년만에 20만배로 불어남.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귀화한 김씨 중 가장 많은 것은 여진족에 뿌리를 둔 김씨다. 육진(六鎭) 개척 당시 세종은 귀화한 여진족 수백 명에게 김씨 성을 하사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세조 때 기록에 나타난 귀화 여진족의 이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세종 때- 김거파(金巨波) 김고도개(金古道介) 김구음파(金仇音波) 김권로(金權老) 김대두마(金大豆麻) 김도을온(金道乙溫) 김생아(金生阿) 김소응거(金所應巨) 김속응합(金速應哈) 김시구(金時具) 김아을사(金阿乙沙) 김오광아(金吾光阿) 김자환(金自還) 김파보하(金波寶下) 김파을대(金波乙大) 김희주(金希主) 등.
•세조 때- 김걸도혁(金乞都革) 김공소(金公疎) 김교합(金咬哈) 김다롱합(金多弄哈) 김마상개(金麻尙介) 김우리개(金于里介) 김상미(金尙美) 김아도을치(金阿都乙赤) 김아라(金阿喇) 김아랑합(金阿郞哈) 김아을가(金阿乙加) 김역류(金易留) 김우두(金于豆) 김우허내(金右虛乃) 김유리가(金留里加) 김윤적(金允績) 김이랑합(金伊郞哈) 김인을개(金引乙介) 김입성(金入成) 김주창개(金主昌介) 김지하리(金之下里) 김차독(金箚禿) 김지칭가(金只稱哥) 김자라노(金者羅老).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 때 이전에도 김씨 성을 하사받은 여진족들이 있다. 김고시가물(金高時加勿) 김광수(金光秀) 김대첩목아(金大帖木兒) 김동개(金同介) 등이 그들이다.
귀순 여진족들에게 김씨 성을 내린 것은 12세기 여진족 아골타가 세운 금(金)나라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아골타의 조상은 고려에서 건너간 김함보라고 한다. 어쩌면 여진족들이 귀화하기 이전에 김씨 혹은 그에 해당하는 여진 성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F&nNewsNumb=201306100059
김씨가 많은건 사실이지만 김해김씨가 많은건 아닐텐데..?
김해김씨가 많은건 아니지만 다른 본관의 김씨도 대부분 신라 가야계임.
미안하다 난 중국계다ㅜ
김씨중에서 제일 많은게 김해김씨 아니었음?
김해 김씨 전체 인구의 8.4% 정도.
저 사람이 호들갑을 떨면서 말할 정도는 아님.
나 상주김씨인데 나도 시조는 신라 경순왕에서 갈라져나왔고 이런 경우 많을 거 같은데
그렇게 따지면 프랑스 카페 왕조, 부르봉 왕조, 발루아 왕조도 한 계열로 묶어야 돼.
합스부르크 왕가도 싸그리 하나로 퉁쳐야 되고.
그럼 서유럽도 저 사람이 호들갑 떨 정도로 가문 구성원이 많아진다
유럽 족보는 카를대제부터 시작해서 그 가족과 봉신들로 쭉 내려오는데 문제는 그 성씨와 가문들이 지금 현재까지 쭉 내려오는게 별루 없슴.
당연하지.
김해 김씨가 상주 김씨로 바꾸듯 이름을 바꿔버리니까.
이성계 : 뭐야 시발 나만 나쁜놈같잖아
정확하게는 왕족을 포함한 지배계층을 물갈이하지 않았다고 나옴. 신진사대부들이 그대로 조선의 귀족층이 됐으니 틀린말은 아닐듯...
정몽주:나는 왜!!!!
존나게 개겼으니까
음... 정몽주를 신진사대부로 봐야하나...
왕씨는 희귀해져버렸어
신진사대부의 온건파임 정도전 축출되고나면 오히려 애들을 숭상햇음 의리의 유학자라고. 사림들이 이 온건파를 이어받은거임.
야사에선 숙청 피하려고 왕자가 들거가는 전씨 등을 쓰거나 왕을 상징하는 용씨로 바꿔 살아남았다고 하는데 꽤 그럴싸함
조선후기 대대적인 신분세탁썰은 안나오네
신분세탁 성씨도 구하기 제일 쉬운걸로 했을테니 그당시 가장 많은 성씨로 구했을걸
그렇군
왕씨는 많이 죽음.
그래서 왕씨는 많이 없는건가
옥씨가 왕씨자솜들이라는 이야기가 있지
왕에 점 하나 찍으면 되니까 그럴싸하네
주씨도 그러지않나 한자 장난
옛날에 그냥 옥씨한테 들은거라서... 맞는지는 모르겠음.
나도 한자만 생각해서 그럴싸 했으니까 지금까지 그냥 믿고 있는지도.
주씨는 후레쉬...
... 주씨는 오씨처럼 중국쪽에서 온거 아닌가?
살아남은 왕씨도 전씨나 옥씨처럼 다른 성으로 많이 바꿨다더라.
왕씨는 씨말이 안당할려고 성씨를 많이들 바꿨지...
응 조선이?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 귀화할때 특히 김씨로 많이 귀화해서 김씨는 1000만명이 넘음.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귀화한 김씨 중 가장 많은 것은 여진족에 뿌리를 둔 김씨다. 육진(六鎭) 개척 당시 세종은 귀화한 여진족 수백 명에게 김씨 성을 하사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세조 때 기록에 나타난 귀화 여진족의 이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세종 때- 김거파(金巨波) 김고도개(金古道介) 김구음파(金仇音波) 김권로(金權老) 김대두마(金大豆麻) 김도을온(金道乙溫) 김생아(金生阿) 김소응거(金所應巨) 김속응합(金速應哈) 김시구(金時具) 김아을사(金阿乙沙) 김오광아(金吾光阿) 김자환(金自還) 김파보하(金波寶下) 김파을대(金波乙大) 김희주(金希主) 등.
•세조 때- 김걸도혁(金乞都革) 김공소(金公疎) 김교합(金咬哈) 김다롱합(金多弄哈) 김마상개(金麻尙介) 김우리개(金于里介) 김상미(金尙美) 김아도을치(金阿都乙赤) 김아라(金阿喇) 김아랑합(金阿郞哈) 김아을가(金阿乙加) 김역류(金易留) 김우두(金于豆) 김우허내(金右虛乃) 김유리가(金留里加) 김윤적(金允績) 김이랑합(金伊郞哈) 김인을개(金引乙介) 김입성(金入成) 김주창개(金主昌介) 김지하리(金之下里) 김차독(金箚禿) 김지칭가(金只稱哥) 김자라노(金者羅老).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 때 이전에도 김씨 성을 하사받은 여진족들이 있다. 김고시가물(金高時加勿) 김광수(金光秀) 김대첩목아(金大帖木兒) 김동개(金同介) 등이 그들이다.
귀순 여진족들에게 김씨 성을 내린 것은 12세기 여진족 아골타가 세운 금(金)나라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아골타의 조상은 고려에서 건너간 김함보라고 한다. 어쩌면 여진족들이 귀화하기 이전에 김씨 혹은 그에 해당하는 여진 성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F&nNewsNumb=201306100059
관향경상남도 김해시
시조김충선 (金忠善)
일본명 : 사야가 (沙也可)
주요 집성촌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전라북도 장수군
경상남도 밀양시
경상북도 청도군
주요 인물김치열, 김정화
인구(2000년)200,012명
심지어 사성김해김씨는 500년만에 20만배로 불어남.
애초에 고려는 평화통일로 신라 먹었으니 .
김이 박아서 그래
왕씨가문 : 뭐? 우리는 아닌데?
전쟁이 아닌 평화롭게 해체된 나라에 한해서 왕족이 무사할 뿐...
고씨, 부여씨는 안보이잖아.
고씨 부여씨는 북쪽 가면 있을껀데
북한~중국까지
고씨 요령쪽 집성촌 있다하고 횡성고씨 시조가 고안승이라함
부여씨는 어디 서씨로 이어진다하고
그나저나 평화롭게 흡수된 발해 대씨들은 왜 태씨로 바뀐거지?
대씨도 있지 않은가?
밀양 대씨가 발해 대씨 자손아닌가.
공명첩이냐
외국애들은 본관이라는 개념을 잘 모름
노비들이 그냥 김이박최 가져다 써서 그렘
그 김이박최가 하늘에서 뚝떨어진것도 아닐거니까
왕씨 :뭐 시발?
근데 왜 왕씨는 2만명밖에 안되냐
그래도 조선 이씨왕조가 죽이지는 않았을텐데...
왕씨 조선초에 학살 오졌음
태조때 엄청 죽지 않았나?
조선말에 양반계층이 노예, 천민보다 많지는 않았으나 일제강점기, 6.25거치면서 너도 나도 양반가문하겠다고 족보조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3대 성씨가 증가했다는 의견도 있음.
조선후기에 왜란 호란 겪으면서 족보를 사는등의 일이벌어지면서 그수가 확늘은거아닌가? 물론 저런 관점은 독특하긴한데.. 안정적. 이전 왕조를 죽이지않았다 로는 21퍼센트라는 압도적인 비율이설명안될거같음
아니 실제로 많기도하고 +@가 된 경우임.
김씨 양반이 족보 팔았다고 야 오늘부터 우리 김씨 아니다 할리는 없으니
일단 결과적으로 원래 김씨 + 새로 족보를 산 김씨 해서 김씨는 늘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뭐 한국은 본관도 본관이지만 향렬도 있고....
요즘은 덜하긴 한데...
고려 왕씨 : X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