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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며칠 전 제주여행에서 들른 곳 몇 군데

1. 4・3 평화공원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위령공원과 4・3사건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는 전시관이 있습니다. 전시관이 관련 유물과 정보를 지루하게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보의 전달과 함께 감정의 울림도 느낄 수 있도록  대단히 훌륭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6~12세 정도의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학습관도 따로 있어서 어린 자녀들과 함께 여행하는 젊은 부부들에게 자녀교육의 기회로도 좋을 것 같습니다.




2. 사려니 숲길

인터넷의 관련 정보가 하나같이 좋다는 말뿐인데 막상 가보면 실망하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정말 좋더군요. 숲길을 걸을 때 들리는 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소리가 좋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거나 좋은 사람과 함께 걸으며 마음속 생각들을 조용히 나누기에 좋은 곳 같습니다.







3. 너븐숭이 4・3 기념관

북촌에 위치한 이 기념관은 규모는 작지만, 4・3 당시 단일사건으로는 가장 큰 규모의 학살이 일어난 북촌리 주민 대학살 사건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현기영 선생님의 소설 ‘순이삼촌’의 배경이 북촌리입니다). 사건 당시 어른들의 시신은 다른 곳에 안장되었지만 어린아이들의 시신은 임시매장한 상태 그대로 지금까지 기념관 건물 앞에 남아 있습니다. 기념관 주변의 바다경치가 아름답고, 관련 유적을 답사할 수 있는 루트도 기념관 앞에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해서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4. 채식카페 작은 부엌

이곳은 주변에 있는 낙선동4・3유적지를 가기 전에 채식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어서 밥먹으러 별 생각없이 갔는데, 제주여행 때 방문한 곳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되었습니다. 작은 체구의 마음씨 좋은 여사장님 혼자서 운영하고 있는 비건채식 카페인데, 창고를 테이블 2개가 있는 작은 카페로 꾸민 소박하고 예쁜 곳입니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참 흔하고 값싼 느낌을 주는 말이 되버린 것 같은데, 다녀간 이들이 남긴 노트를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진정한 ‘힐링’을 체험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의 경험이 특별했던 건 사장님과 채식 등 공통관심사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제주4・3과 관련된 사장님 집안의 가족사를 들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장님의 아버님께서 제주 4・3의 생존자이신데 그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아버님과 사장님을 포함한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4・3의 영향을 직접 겪으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었네요.


사장님의 아버님을 어느 대안학교의 선생님들께서 방문해 아버님의 경험을 채록한 후 그것을 시로 정리해서 들려드린 적이 있다고 합니다. 4・3 생존자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작업의 일환이었다고 하는데 아버님께서도 좋아하셨다고 하네요. 조금 길지만 여기 인용해 보겠습니다.


웃음 한번 웃지 않고 눈물 한번 흘리지 않아


허영회(81세)

김재형, 이미연 채록 시.




며칠 전에도 뒷집 친구가 죽었어.


나도 이제 언제 죽을 지 몰라.


후손들에게 이제 말하고 싶어.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을 때


머리 위에서 미국과 일본 비행기가 싸우는 걸 직접 봤어.


힘센 놈이 약한 놈 따라 다니며 공격하는 게


강아지 싸우는 것과 똑 같았어.


한림항에서는 일본 해군 함정이 폭파되어 기울어 있고,


죽은 군인들 해변 모랫가에 묻는 것도 봤어.




12살에 해방이 되었지만


해방된 한국 경찰들도 일본 순사 옷 그대로 입고 있었어.


칼만 차지 않았지 똑 같은 사람들에게 계속 감시당했어.


미군정 아래에서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제주 청년들은 단일 정부 반대 투쟁을 한거야.


47년 4월 3일 밤 1시 한라산 오름마다 단일정부 반대를 표시하는 불을 피웠어.


산에서 밝게 타오르는 불을 멀리서 바라 봤어.




마을마다 건국 준비 위원회로 청년들이 몰려들었어.


마을 단위의 민주주의 운동이었어.


청년들이 아침마다 모여 조회하고 동네를 구보했어.


그들이 구보하면서 여차 여차 하는 걸 듣고,


경찰들은 와싸 부대라 부르며 놀렸어.




어느날 건준 인민위원회 청년들이 구보할 때


총성이 울려 한 사람이 죽고, 한 사람은 크게 다쳤어.


화북지서 순경들이 숨어 있다 쏜거야


이 때부터 경찰과 청년들이 대립하기 시작했어.




47년 관덕정에서 3.1절 행사 있던 날.


13살인 나도 화북에서 관덕정까지 혼자서 걸어 갔어.


그 때까지도 한국 경찰은 여전히 일본 경찰 옷 입고 다녔어


말타고 가던 경찰이 아이를 넘어 뜨리고는 도망을 가는거야


미군정 아래에서 친일파에 대해 분노하고 있던 민중들은 친일 경찰을 혐오했고


도망가는 그들을 쫓아갔는데 그 사람들을 향해 경찰이 총을 쏜거야.


6명이 죽고 8명이 다쳤어.


4.3 항쟁이 시작된거지.




학생들은 친일파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쓰고 저항을 해나갔고,


저항이 심해지자 육지에서 경찰이 재배치되었어.


청년 학생들을 검거하고, 경찰을 피해 한라산으로 도주하고,


경찰은 다시 산으로 토벌다니고,


항복하면 고문하고 사형시켜 싸우다 죽게 몰아갔어.


경찰지서 여러 곳이 공격당했는데 청년들이 경찰지서 공격한 주된 이유가 무기를 탈취해서 싸우기 위해서 였어.




우리집은 일제 때부터 감시당했어.


고조부와 증조부는 통정대부 벼슬을 지냈고, 조부님은 서당 선생이었어.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할아버지에게 글을 배웠어.


우리 집은 허준의 후손이어서 사람들 치료하는 게 우리 집안의 가업이었어.




중산간 지역 토벌이 시작되면서


우리 아버지는 산사람들에게 약을 보냈다고 총살하고


어머니, 큰 형, 큰 누나, 작은 누나 다섯 사람이 하루에 죽었어,




그 자리에서 살아 나온 한 사람이 전해주길


사람들 죽인 경찰이 작은 누나에게 같이 살면 살려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해서 죽였다는 거야.


큰 형은 위험을 알고 피했지만, 마을의 지도자로 책임을 지고 다시 돌아왔다 총살 당했어.


어쩔 수 없이 모두들 산으로 피했는데


뒤이어 둘째 형은 부모님 돌아가시고 9일만에 산에서 죽고,


형수도 학살 당하고, 작은 형은 한국 전쟁 때 죽고…


우리 가족 여덟이 죽었어.




부모님 돌아가시던 날 땅에 묻고 오면서


오촌 숙모 집에서 하루 잤는데 콩죽을 쑤어줬어, 너무 슬퍼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는데


숙모님이 산 사람은 먹어야 한다고 해서 먹었는데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부모님 죽였던 경찰들 다시 와서 내게 물었어.


‘너의 아버지, 어머니 죽은 걸 어떻게 생각하니?’


‘아버지, 어머니가 잘못해서 돌아가셨으니 억울하지 않습니다.’ 하고 말했어.


갑자기 물었는데도 그랬어.


몇 번이나 물었어.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죽이는 거야.


제주 사람은 자기 생각 말하지 않아.


감정을 숨길 수 밖에 없어.




고아된 뒤로 66년 동안 웃음 한번 웃지 않고,


눈물 한번 흘리지 않고 살았어.




예 어른들 말씀에


사람많이 죽는 자리에 한 사람은 수습할 사람 나온다고 했어.


내가 그 역할인 것 같아.


4.3 희생자들 신고할 때 연고없는 이들 챙겼어.


이름도 없이 기억도 없이 억울하게 죽은 이들 비라도 세우길 바래.




우리 집사람이 점집에 가서 내 점을 봤는데


‘이 사람은 이 세상 사람 아니어서 점칠 수 없다’고 했다는 거야.


지나온 시간 생각하면 꿈같은 이야기야.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하늘의 도움 아니었으면 못 살았어.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온 거야.




5. 삼성혈

이 곳은 탐라국 개국 전설의 배경이 되는 곳인데요, 나무가 많은 호젓한 분위기에 들려오는 새소리가 좋습니다. 사실 크기도 작고 볼거리가 많지 않아서 굳이 일정을 따로 잡고 찾아올 정도는 아니지만, 여행의 마지막에 제주공항 가기 전 시간이 조금 남을 때 들르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서 제주공항까지 택시로 15분 정도 걸리거든요. 공항 도착시간 전까지 1시간 정도 애매하게 남았을 때 들러서 차분하게 쉬며 여행을 마무리하기 좋은 곳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주시 구좌읍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화장실 앞에서 길막하시던 고양이 님의 모습.



댓글
  • 하석란 2019/04/29 00:53

    잘 읽었습니다^ ^
    제주도에 여행을 간다면 참고 할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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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anley Cup 2019/04/29 00:54

    시 내용 정말슬프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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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맹 2019/04/29 00:56

    4.3 이야기는 정말 슬프네요. 이런 이승만을 국부라고 떠들어대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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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noKid 2019/04/29 00:58

    하석란// 별 말씀을요 나중에 도움된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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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noKid 2019/04/29 00:59

    Stanley Cup// 처음 보고 이게 말이 되는가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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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noKid 2019/04/29 01:00

    글맹// 이 사연을 어디 말도 못하던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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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키수 2019/04/29 01:18

    4.3 사건 생존자분 이야기가 너무 슬프네요ㅠㅠ 순식간에 부모형제 잃고 고아가 된 어린이(소년?)가 자기 부모님을 죽인 사람들한테, 부모님 죽음이 억울하지 않다고 몇번이나 거짓말을 해야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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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noKid 2019/04/29 01:25

    [리플수정]바키수// 이렇게 억울함을 말못하는 것이 제주도민들의 일반적인 경험이었다고 하니 슬퍼지더라구요.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다시 들은 후 좋아하셨다니 트라우마의 치유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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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루이젠 2019/04/29 18:10

    [리플수정]4.3은 진짜 너무 끔찍함.. 특히 할아버지와 손주를 마주 세워 놓은 후 총부리 들이대고 서로 뺨을 때리라고 하는건 진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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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리나온다 2019/04/29 18:33

    4.3 평화 공원가면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행불자 표석이 수천이고..
    그 가족들이 이름있는 표석 3곳을 돌며 전부 절 하는거 보고 가슴 아프더군요..
    희생자들 중에 이름도 몰라..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아내, 아들로 기록 된 분들도 많고..
    제주 오시는 분들은 4.3 평화공원 꼭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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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돼호스터 2019/04/29 20:57

    너무 슬프고 먹먹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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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이슨본 2019/04/29 21:34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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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noKid 2019/04/29 21:39

    홍루이젠// 평화공원을 둘러보며 세삼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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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noKid 2019/04/29 21:42

    사리나온다// 의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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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noKid 2019/04/29 21:43

    돼호스터// 제삼자인 저도 그런데 당사자들의 슬픔과 고통은 상상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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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noKid 2019/04/29 21:43

    제이슨본// 관심가지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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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닥터제이 2019/04/30 16:15

    채식카페빼고 다 가본 곳이네요. 너븐숭이랑 무남촌 4.3기념관은 일부러 하루 투자해서 들른 곳이었는데, 다음에 다시 가게 되면 일정을 더 늘려서 피난처(산골)로 가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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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noKid 2019/04/30 21:25

    닥터제이// 그러시군요. 저도 못가본 곳 때문에 한번더 제주를 가볼 생각입니다. 제주43 주제의 여행을 도와주는 제주다크투어라는 비영리단체도 있는 걸로 아는데 그곳을 이용해볼까도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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